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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4일 밤은 우리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시간일 것이다. 참으로 멋진 플레이였고 완벽한 승리였다.

나는 세네갈의 개막전 승리를 처음에는 적이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세네갈이 강력한 우승 후보 프랑스를 격침시켰다는 사실보다도 첫 본선 출전 첫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우리 나라의 48년에 걸친 '첫 승' 염원과 대비되면서 씁쓸한 부러움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세네갈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세네갈이 충분히 실력을 갖춘 팀이라 하더라도, 본 대회 첫 출전 첫 경기 승리는 그들에게 영원히 '이변'이라는 딱지를 붙여줄 것이라는 생각에 귀착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네갈의 개막전 승리가, 그 이변이 우리 한국팀에도 좋은 영향을 주리라는 말을 했다. 그런 내용의 신문 기사도 보았다. 나는 그런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우리의 대 폴란드 전 승리도 이변이라는 범주 안에 묶여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나는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변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경계하며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월드컵 본선 출전 48년만에 폴란드를 제물로 삼아 '첫 승'이라는 위업을 쌓았을 뿐이지 결코 이변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 48년이라는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참으로 열심히 오늘을 향해 달려왔고, 마침내 오늘 첫 승의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시종 박짐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는 가운데 전반 26분에 터진 노장 황선홍의 첫 골과 후반 9분에 터진 유상철의 둘째 골은 온 세계에 우리의 실력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골들은 결코 수훈 갑 선수들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라운드를 뛴 열한 명 선수들만의 합작품인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48년 동안을 줄기차게 달려온 모든 축구인들의 땀방울이 농축되어 있고, 이념이나 지역감정 따위를 너끈히 초극하는 우리 국민의 멋진 단합과 성원의 미학이 농밀하게 어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감격에만 도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 폴란드 전의 승리, 그 1승은 16강 진출의 교두보일 뿐이다. 아직 16강 진출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늘의 이 기쁨과 감격을 더욱 크고 덩실한 저력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특히 축구는 참으로 미학적인 경기다. 힘과 스피드와 기술, 조직력과 지략 따위가 골고루 다 동원되는 것이 축구다. 축구처럼 전술이 다양하고도 치밀한 스포츠는 없을 것이다.

축구의 다이내믹함과 아기자기함과 극적인 상황이 관중을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도 우리는 축구가 보여 주는 팀워크의 미학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승리 속에서 우리가 구가할 수 있었던, 이념과 지역감정 따위를 너끈히 초극할 수 있었던 모든 국민의 단합, 그 멋진 애국심의 발화와 충전을 더욱 뜨겁게 유지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히딩크 감독과 모든 선수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6월 5일자 <대전일보>에 게재된 글로 대전일보의 '긴급' 청탁에 의해 쓴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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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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