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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아동노동 착취하는 월드컵의 초국적 기업 반대 캠페인' 포스터 ⓒ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공부하고 싶었지만 축구공을 꿰매야했어요. 싫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손가락 꿰맨 고통이 지금도 있습니다. 공을 만드는 것말고도 많은 어린이들이 일하고 있다는 걸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전세계 어디에서든 아이들이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이틀 앞둔 29일 '노동자·아동노동착취 월드컵 후원 초국적 기업 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인도의 어린이 노동자였던 소니아 양을 초청해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불교문화원에서 수원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월드컵을 후원하는 초국적 기업들의 '노동자와 아동노동 착취' 상황을 고발했다.

연필과 책 대신 바늘과 실을 손에 쥐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축구공을 꿰매는 어린아이들. 보통 아이들과 같이 축구공을 차며 뛰어 놀고 공부를 해야할 아이들이 하루종일 고된 노역의 결과로 바늘에 찔린 상처와 굳은살, 얼마되지 않은 돈이 손에 쥐어질 뿐이라고 한다. 손이 비틀리는 것은 허다하며, 심하면 시력까지 잃는 등 인도에서 한 어린 소녀의 증언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다.

▲ 축구공을 꿰매는 일을 하다 7살 때 완전히 시력을 잃은 인도의 소녀 소니아 ⓒ 오마이뉴스 유창재
인도의 전통의상을 입은 작고 아름다운 소녀 소니아(Sonia). 인도 글로벌 마치의 제이슨(Jai Singh) 씨와 동행한 소니아는 인사를 하자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커다란 눈망울을 고정시키고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북 인디아 질란다루에서 찾아온 소녀 소니아. 그녀는 주위의 아이들과 자신들이 만든 축구공을 누가 사용하는지도 모른 채 생계를 잇기 위해 한뜸한뜸 바느질을 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자 집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5살 때부터 축구공을 꿰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아버지와 어머니가 축구공을 꿰매는 일을 했기에 자연스럽게 일을 하게 됐고, 시력이 안좋았는데 어두운 환경에서 일을 하다보니 점차 안보이기 시작해 결국 7살 때 열이 오르고 구토가 나면서 눈이 완전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열다섯 살의 소녀 소니아는 사람들과 손을 통해 밝고 따뜻한 자신의 마음을 나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열다섯살 소녀 소니아의 커다란 눈을 보고 있으면 눈이 안보이는 아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마에 여드름이 피어오르는 소니아는 여느 아이들처럼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다. 약간은 수줍은 듯한 웃고 있는 소니아는 밝고 명랑한 소녀다. 누군가 손에 초콜릿을 쥐어줬더니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며 함께 먹자고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임금에 노동력 착취

"무릎과 무릎 사이에 축구공을 만드는 가죽조각을 끼고서 꿰맵니다. 바늘이 들어갈 구멍을 가까이 보며 꿰매다 보니 눈과 머리에 긴장이 되고, 실을 꼭 조이다보니 손가락이 휘어지기도 하죠. 입으로 실을 당기기도 하죠. 보통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해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하죠. 전기를 아끼느라 저녁이면 어두운 불빛 아래서 일을 하기도 하죠. 아이들은 공을 반구로 만드는 정도까지의 작업을 하는데, 하루에 5루피(100원 정도)를 받습니다."

소니아가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해서 받는 돈은 우유 1리터도 살 수 없는 돈이다. 현재 소니아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스포츠용품 생산에 아동노동이 사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성인노동자 역시도 아주 낮은 임금을 받으며 노동력 착취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된다.

"가족의 현재 한 달 수입은 20달러 정도입니다. 아버지는 페인트 공을 하고 있지만 일이 매일 있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는 여전히 축구공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섯명의 동생들 가운데 2명은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2명은 공부만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아직 어려서 일하지는 못합니다."

소니아의 가족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4성에 속하지 않는 아우트 카스트라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에 속한다. 이들은 거주, 직업 등에서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간디가 이들을 '신(神)의 아들'이라 부르고 해방을 위해 노력했으며, 인도 독립 후 폐지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차별을 금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카스트 제도는 존재해 대도시에서는 점차 차별이 해소돼가고 있지만 지방에서는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인도에는 축구공 제작과 관련된 전문가와 의사들도 아이들 노동환경에 관심이 없는 상황. 대부분 자신의 집에서 7∼8명의 식구들이 가내수공업으로 축구공을 만들고 있다. 인도 등 대부분 아시아지역은 성인노동자의 일자리 부족으로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린이들이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일을 해 가족의 생계를 돕고 있다고 한다.

▲ 어린 노동자들의 손은 책과 연필이 아닌 바늘과 실로 축구공을 꿰매는 일을 해 바늘에 찔린 상처로 가득하다. ⓒ '노동자·아동노동착취 월드컵 후원 초국적 기업반대 공동행동'

"아이들이 만든 축구공으로 월드컵 경기 열려선 안돼"

"한 지방에 눈먼 소녀가 손의 감촉만으로 축구공을 능숙히 잘 꿰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때 소니아의 나이가 9살이었으며, 자신이 노동으로 인해 시력을 잃게 된 것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조사해본 결과 소니아는 축구공 표면의 로고나 그림 등을 프린팅할 때 사용되는 '암모니아'의 독성으로 시력을 잃게 된 것이었습니다."
▲ 5월29일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수원시 팔달문 앞에서 소니아는 후원자 제이슨과 함께 어린이 노동착취를 반대하는 캠페인에 참여해 수원시민들에게 초국적 기업의 아동노동 착취 실태를 알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NGO활동가인 제이슨은 시력을 잃고도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는 소니아를 만나 NGO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게 했다. 소니아에 대한 교육비를 학교와 제이슨이 공동부담하고 있으며, 재활교육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젠 더 이상 소니아는 바늘과 실을 손에 잡지 않아도 된다.

"커서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특히 어린이 노동을 찾아 고발하고 아동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에는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의 손에 책과 연필을 쥐고 배고프지 않을 자유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소니아는 월드컵 경기가 있는 수원에서 열린 '노동자·아동노동착취 월드컵 초국적 기업 반대 캠페인'에서 아동노동의 착취 실태를 증언했다. 전날 28일 밤에 입국해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데도 거리 캠페인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30일부터 이틀간 국내 기업의 생산현장과 노조, 사회단체를 방문하고 오는 6월2일 인도로 출국할 예정이다. 소니아는 국내에 있는 동안 아시아의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이 한국에도 알려져 '2002 한·일 월드컵'이 인권월드컵으로 세계인의 진정한 축제가 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공을 만들 뿐이지 우리들이 만든 공을 한 번도 차본 적은 없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의 노동이 계속되지 않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만든 축구공으로 월드컵 경기가 열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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