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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미레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잠시 살았습니다. 외갓집은 시골이었습니다. 서울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드리'라는 이름의 진짜 시골이었습니다.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면 달구지에 쌀자루를 싣고서 장에 가곤 했습니다. 우선 들르는 곳이 싸전이었습니다. 쌀을 팔아서 받은 돈으로 이것저것을 사는 것이었지요.

싸전에 가면 주인이 원통형으로 생긴 한말들이 말통에다가 가져간 쌀을 쏟아붓고는 좌우로 흔들어댔습니다. 그때 말통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재미있었습니다. '쿠웅, 쿠웅'하는 소리가 몇 번 나다가 이내 '콩콩콩콩...'하는 소리로 바뀝니다. 말통 속의 쌀이 꾹꾹 채워지도록 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둥글게 잘 다듬어진 막대기를 썩 꺼내 가지고 말통 위에 쌓인 쌀을 싸악 깎아냅니다. 그 막대기가 바로 '평미레'입니다. 평미레가 쓸고 지나가면 말통 윗부분의 쌀은 깨끗이 깎이고 말통 속에 남은 쌀은 '정확히 한 말'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요즘이야 평미레를 쓰는 경우가 별로 없고 평미레라는 말조차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쌀이나 콩이 담긴 말통이나 됫박을 쓸어내고서 '한 말' 혹은 '한 되'라는 선언을 이끌어내곤 하던 평미레가 제 기억 속에 각인된 것을 보면 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었던 듯싶습니다.

개념

대학에서 사회학 공부를 시작한 이래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념(槪念)의 위력이었습니다. 개념은 여러 문장이나 심지어 여러 권의 책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생각을 한 낱말로 딱 부러지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해도 대단한 것이지요. 그런 데다가 어떤 개념을 어떤 식으로 쓰느냐는 그 사람의 학문적인 지향과 사회적 실천의 방법까지 드러내 주더군요.

좀 쉬었다가 대학에 복학했을 무렵 가장 인상적인 대학가의 경쟁 혹은 적대 관계는 "민족해방(NL)"이라는 개념을 우선시하던 진영과 "민중민주(PD)"개념을 우선시하던 진영 사이의 대립이었지요. 기성세대의 눈에는 다 똑같은 반독재 운동권 학생들이었지만 그들 사이의 이념 투쟁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대자보나 팸플릿 혹은 세미나와 술자리를 막론하고 전개됐던 '반제국주의' 개념과 '민중혁명' 개념 사이의 사상투쟁은 불꽃튀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계보를 따지면 저도 그 중 하나에 속했던 셈이었겠습니다만 이미 이론 무장이 더 잘 된 후배들 덕분에 저는 그 사상투쟁에 낄 필요나 여지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말로 하는 논쟁에는 약하거든요.

어쨌든 지금까지 인상깊게 남은 것은 어느 개념이 더 옳았는가에 대한 논쟁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 양 진영을 그다지도 전투적으로 만들었던 '개념(槪念)의 위력'이었습니다.

한국 '말'과 '개념'

제가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 연구소에서 잠시 일하다가 메국에 건너와 박사과정을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생활비가 모자라고 책 읽을 시간이 째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공부 자체는 이미 익숙한 것이었으니까요.

과목듣기를 대충 마쳤지만 집안에 생긴 우환으로 메국 체류가 길어지면서 같은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때 한국 '이름'에 대한 제 무식을 절감했습니다. 한국말로는 꽤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곤 했던 저였지만 아주 기본적인 한국 '이름'과 '개념'에 굉장히 무지했던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것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왜 United States of America를 '미국'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으면 일단 말문이 막히곤 했습니다. 그밖에도 Baseball을 왜 야구(野球)라고 하느냐, Civilization은 왜 문명(文明)이라고 하느냐, Human Being은 왜 인간(人間)이라고 하느냐. Society는 왜 사회(社會)라고 부르느냐. 그리고 같은 글자를 앞뒤로만 바꾸어 놓았을 뿐인데 어째서 회사(會社)는 Company라는 뜻이냐. 뭐, 그런 질문들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학생들이 묻지 않아도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늘어났습니다. 한국말 '사랑'은 원래 무슨 뜻이었을까? '하늘'이나 '땅'이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두레는 왜 '두레'라고 불리게 됐을까? 중국에 없는 한자 '시(媤)'자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와 '헤아리다'의 어원적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알다'와 '깨닫다'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런 질문에 답해 보기 위해서 나름대로 씨름을 하다보니까 한국말과 개념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이름과 개념들에 대한 기존의 설명이 다소 중구난방이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불운했던 한국의 역사 때문에 남이 만든 것을 억지로 들여온 탓도 있고, 혹은 급박한 필요에 의해서 깊은 생각없이 마구 만들어낸 탓도 있을 겝니다.

어쨌든 이런 저런 까닭으로 오늘날 쓰이고 있는 한국 이름과 개념들 중에는 논리적 정합성이 모자라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많게 된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얼른 떠오른 변명거리는 '언어는 자의적'이라는 소쉬르식의 명제였습니다. 이름과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은, 그것이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어떤 내면적인 연관성이 없이 우연히 연관된 것이기가 쉽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설명은 번역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번역어들은 '왜 그렇게 번역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학문 용어로 쓰이는 개념들 중에 특히 번역된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학문의 아마도 90퍼센트 이상은 서양에서 들여온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개념과 그 번역어들은 대체로 기존의 한국 고유어들을 대체해 버렸기 때문에 그런 혼란은 좀더 가중됐습니다.

자생적인 한국 '학문'

요즘 '한국 학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국 학문' 이야기는 인문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한국의 학문이 복덕방식"이라는 자조도 나옵니다. 새로운 개념과 학설을 창조해내어 지적 재산권으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외국 것을 들여다가 소개하면서 소개비로 먹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런 관행은 환란과 IMF 시기에 크게 비판의 대상이 됐었습니다. 그 많던 사회과학자들은 다 뭐했느냐는 것이지요. 인문학은 IMF의 피해자로서 크게 위축됐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이공계 종사자들이 자식들을 절대로 이공계에 보내지 않겠다고 자탄합니다. 자생적인 존립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한국의 학문관행과 그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위기를 맞은 것이지요.

자생적인 '한국 학문'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근본 이유의 하나는 한국 개념이 정비되지 못한 데에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이론이니 학설이니 학문이니를 제대로 쌓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개념은 학문을 짓는 벽돌'이라고들 하잖습니까?

실증된 개념

자생적인 '한국 학문'이 성립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로 저는 실증적인 사고 방식이 다소 모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실증이란 '실(實)한 증거(證據)'라는 뜻입니다. 어떤 개념화나 명제화나 이론화도 실증의 과정을 거쳐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자주 그러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이미 검증됐기 때문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혹은 많은 사람이 이미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개념이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증이 아닙니다. '한국 학문'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이미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조차도 찬찬히 의심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당연한 것조차도 찬찬히 뜯어보고 의심함으로써 실증으로 뒷받침되는 한국 개념을 만드는 작업'을 '평미레질'이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사실 개념의 개(槪)자가 바로 '평미레'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동사로 쓴다면 '평미레질하다'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개념(槪念)이란 우리의 생각(念)을 말통에다가 가득 채워 넣고서 이리저리 잘 흔든 다음 평미레로 싹 깍아내서 정확하게 만드는 과정, 혹은 그 결과로 나온 잘 다져지고 깎여진 생각을 가리킨다고 보겠습니다.

뜬구름 잡기에서 평미레질로

'평미레'라는 이름의 글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소 구름잡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구름잡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고 꼼꼼하게 다져나가 보려고 합니다.

때로는 고리타분한 어원분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남의 글을 신랄하게 비판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식의 글쓰기는 이미 <오마이뉴스>의 일반기사 형식으로 일부 소개됐으므로 감을 잡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글의 형식과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제가 노리고 싶은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쓸만한 한국 개념을 일구어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듬어진 개념들은 우리의 생각살이와 말글살이는 물론 자생적인 한국 학문을 위해서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과 함께 가차없는 비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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