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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친일인명사전'편찬을 준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을 만났다. 민족 문제 연구소는 지난 1990년 설립돼「친일파99인」「청산하지 못한 역사」「친일파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많은 저작서를 냈으며, 전시회, 학술행사, 강연등과 친일파 심판활동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친일인명사전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사전은 크게 총론부, 인명부, 자료부로 구성된다. 분량은 원고지 5만매 정도로 예상하고 있지만 자료수집과 증언 채록 등 조사과정에 따라 분량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편찬기간은 작업이 순조로울 경우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가장 중요한 문제가 친일파를 규정하는 것인데 친일파를 규정하는 일관된 기준과 원칙은 무엇이고, '친일파'라는 개념에 이견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견해는 어떤가?
"지난해 12월 2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제1차 국민공청회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바 있다. 이날 공청회의 주제가 '친일파의 개념과 범주'였는데 학자들은 물론 언론계·정계의 인사가 패널로 참가하여 적극적인 토론이 이루어졌고 시민들의 질의도 활발했다.

친일파를 선정하는 기준과 원칙은 편찬위원회에서 몇 차례의 워크샵을 가진 뒤 다시 국민 공청회에 논의가 부쳐질 것이다. 일단 친일파는 '반민족행위자'와 '부일협력자'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편찬위에서는 친일파를 '일제의 국권 침탈과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에 의식적으로 협력한 자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발적이든 피동적이든 우리 민족 또는 민족성원에게 신체적·물질적·정신적으로 직간접적인 상당한 피해를 끼친 행위자'라 정의하고 있다.

굳이 친일파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친일' '친일파'라는 단어가 이미 반민족범죄자를 규정하는 하나의 역사적 용어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은 과거 해방공간에서 이루어진 친일파 규정은 처벌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범죄의 구성요건을 중시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따라서 작위를 받았거나 직책이 높았거나 뚜렷한 독립운동 탄압 행적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현재적 관점에서 편찬위는 정신적·윤리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문인 등 예술가, 언론인, 교육자 등은 반민특위에서도 일차 소환대상에서는 대부분 빠져 있었다. 반민특위의 수사가 계속 되었다면 이들의 친일 행위도 반드시 문제가 되었겠지만 그 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처리된 경향이 없지 않았다. 우리는 오히려 이들의 반민족 행위가 문제가 많다고 본다. 지식인 특히 문필로 정신적 영향을 끼친 자들의 죄상은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 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 박정희, 최규하 등 국가 통수권자들이 친일인사에 속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친일인사라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국가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 아닌가. 일제에 저항한 민족운동세력이 독립국가 건설의 주체가 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우리 현대사의 화근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집권과정이나 기반에 정당성이 결여되었으므로 일탈된 정치 행태를 보이게 된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전직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과오를 덮어두는 것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준엄한 비판이 있어야만 국가 기강이 바로 설 것으로 본다. 지도자에 대한 도덕적 기준은 보다 엄격해야 할 것이다."

- 해방 후 북한은 무엇보다 먼저 친일인사를 처형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아직도 친일인사의 후손들이 사회 각 분야의 중요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예상되는데 어떻게 보나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군정이 점령기구로서 친일파를 온존시켰고 이승만이 이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활용했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무장독립운동세력의 부재, 냉전구도의 정착 등 내외적 요인이 작용했다. 친일문제는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숙제다. 친일파는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맺어진 굳건한 인맥으로 각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 편찬 작업에도 많은 저항과 방해가 따를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고 앞으로도 여러 형태의 탄압을 해 올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편찬위는 순수한 학문적 기구이다.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제시와 엄정한 사료 비판을 전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편찬 과정에서 공청회, 학술 심포지움 등을 통해 국민적 동의를 구해나갈 것이다. 장담하지만 친일파와 그 후진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는 해도 편찬사업을 저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

- '한일 월드컵과 지구촌이라는 현 세계화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라는 여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또 '너무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여론에 대해서는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이며 훌륭히 치러져야 한다. 한일관계도 보다 성숙한 관계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이나 세계화 때문에 부끄러운 역사를 덮어두어야 한다는 논리는 속은 곪아도 포장만 잘하자는 몰가치적 행태라고 밖에 달리 평가할 수 없다. 더욱이 월드컵이 일과성의 행사라면 민족사 정립은 국가대계를 세우는 일 아닌가. 진정한 한일관계의 발전도 한일 양국간 역사인식의 격차를 줄이는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과거사가 문제되는 것은 한국에서는 친일세 력이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세력이 그대로 지배층으로 전화하였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나라가 모두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때문이다. 역사 청산을 외치는 목소리를 과도한 민족주의의 발현이라고 보는 일부 주장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관 즉 인권이라든지 국제평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타당하지 못한 시각이다. 일제의 침략전쟁에 복무하고 독재정권에 협력한 이들을 비판하는 민족 내부의 자성 움직임을 과도한 민족주의라 매도할 수 있는가."

- 연구소를 꾸려 나가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역시 재정 문제가 가장 큰 난제이다. 연구소의 일상적 운영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전편찬 사업은 물론이고 기획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연구소가 중심이 돼 역사문화운동을 지원할 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사실 사전 편찬이라는 단위 사업에만도 수 십억원의 자금이 소요된다. 자료의 수집, 정리, 정보화에서부터 집필에 이르기까지 일개 연구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적 지원과 역량을 담아낼 재단을 구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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