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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직서를 쓰고 돌아나오는 길이에요
꿈 찾겠다고, 이제 서른이 다 되어서
이러면 안돼는데, 안돼는데 오래 망설이다가
돌아오는 길이에요. 어딜 가야할지 몰라
집근처 피씨방에 들렸는데
다시 후배님들이 그리워졌어요.

괴테의 파우스트 한 구절에 이런 글이 있어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저 이 자본주의를 견디기 위해
갖가지 욕망을 키워가며
위태위태한 하루 하루를 살아왔는데
이제 방황해도 되겠다 싶어요

나의 방황은 좀 대책없지만요
자본주의적 일상으로부터 도피라고나 할까여
이건 너무 주제넘은 사변이고요
그냥 좀 달아나보자
좀 더 그리워하면 살고
좀 더 사랑하며 살자
그래서 어머니께
늙은 어머니
나를 위해 항상 희생하셨던
어머니에겐 비밀로
사직서를 썼답니다.
너무 미안해서
집에 돌아갈 용기가 없어
후배들을 위해 사랑을
붙잡고 이렇게 늘어지고 있답니다.

후배님들
당신들을 너무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들을 볼 때마다
나는 싱그러워진답니다.
어려운 세상
돈 놓고 돈 먹기 같은
엉성한 자본주의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기보다
그래고 그리운 게 많다고
사랑하는 게 너무 많다고
대책없이 문창과에 입학한
당신들은 너무 싱그러운 영혼이에요.

이제 저는 그 영혼으로부터 너무 멀어져서
당신들을 먼 발치에서나마 짝사랑 하고 있죠
내가 너무나 훔치고 싶은
당신들의 영혼을
아름답게 지켜주세요.

한 10년쯤
너무 그리운 게 많아 끄적이던 게
짝사랑 하는 여자 아이에게
연애편지를 되풀이해서 쓰던 게
문학을 가깝게 한 거 같아요
그런데 아직 문학이 뭔지 잘 모른답니다.
다만 문학에 대한 열병을 앓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고
아름다워서 바라보기 힘든 세상 땜에
술 잔을 기울였지요.
그 후유증으로 대책없이 사람을 사랑하고
자유를 향해 뛰쳐나갔다
돌아오고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일탈과 복귀를 수없이 되풀이 했죠.
그 후유증으로
한 여자아이를 짝사랑 하다가
그 사랑이 나무에게 갔고
들꽃에게 갔고
이 살맛없는 자본주의를 안고 살아가는
세상에게 갔지요.
그 사랑이 떠돌고 떠돌다
또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이러다 젊은베르테르처럼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로
다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에서의 사랑은
늘 엇갈린 사랑이지요
이루어질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고 상처받고
그래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 이만큼 아팠으니까
너희는 아프지 말라고
다독여주는 거라고나 할까요.

문학의 후유증으로 인해
대책없이 낭만에 빠져들어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저는 바보같아요.
그저 술에 취해 세상을 바라보거나
아님 세상이 욕망에 취해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린 너무도 엇갈린 사랑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눈높이를 맞출 수가 없어요

나는 당신들이 오전에 E동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상상해요
그리고 김삼주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는 당신들을 상상해요
때론 딴짓에 빠져버리곤 하지만
아름다운 시 한편에 매료되어버린
당신들의 눈빛을 상상해여
그 뒤에 하품하다가
시를 입에 넣고 말아버리는
한 남학생의 모습을 상상해요
상상이 자꾸 삐져나가면요
당신들을 닮은 예쁜 시 한 편이 쓰고싶어지죠.

김삼주 교수님께서 당신들을 예쁘게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어쩜 당신들의 영혼에게서 영원한 청춘을 건져올리는
교수님을 봐여. 그러니 쌤쌤인가요.

저는 기형도를 좋아해요
기형도를 읽고 랭보를 읽어요
하버마스를 읽고 데카르트를 읽어요
니체를 읽고 칸트를 읽어요
푸코를 읽고 하이데거를 읽어요
그렇지만 천상병을 읽어요
막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사랑을 읽고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당신들을 읽고 있고
당신들의 영혼을 읽고 있고
그러다가 당신들이
나를 읽기 시작해요
내 사랑을 읽고
내 상처를 읽고
내 욕망을 읽어내는 당신
그래서 훔짓 놀라
아름다워야지 해요
헐거운 내 영혼을 들키지 않게
아름다워야지 해요

당신들이 영혼이 시들지 않았음 해요
그 영혼에다 예쁜 컵으로 물을 줄거에요
적당히 당신들의 영혼을 적셔보고 싶어요

당신들이 너무 그리워서
내일은 학교에 한 번 찾아갈까 해요
바보같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며 깔깔거리는 당신들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봐야 겠어요

저 나이든 학상은 뭣이냐 하며
깔깔거리는 당신들의 영혼을
나 너무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어요

지금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가 주무시지 않을 거 같아요
어머니가 주무셔야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을텐데

다시 당신들에 대한 사랑을 이어나가야 겠어요.
어제는 엠비씨에서 책읽기 운동으로 선전했던
무량수전 배흘기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었어요
거기 나온 맑은 한 옥 한채를 바라보다가
당신들을 생각했어요.
수수한 곡선의 미학으로
세상에 조용히 숨어 있는
맑은 한 옥 한 채는요
바로 당신들의 집이에요
당신들이 거기 들어가서
소꼽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너무 이뻐서 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돌아서는 저는 나그네에요
그 나그네의 슬픈 눈동자가 저에요
저도 기형도처럼
누가 나의 영혼을 훔쳐볼까 겁나하는
어설픈 시인이지요.

그렇지만 당신들도 시인이에요
당신들도 소설가에요
당신들의 영혼은 화가에요
당신들의 손을 잡고 싶어졌어요
살짝 잡으면
슬며시 손을 빼내겠지요.

오늘도 당신들을 사랑해서 방황해요
방황하다 지치면 당신들의 영혼의 거처에
살짝 코를 골고 싶어져요.

사랑해요!
당신들이 문학에 한 발 한 발 걸어들갈 때마다
저는 한 발 한 발 당신들을 사랑해야겠어요

저 많이 힘들어요
이제 방황하겠다고 회사를 뛰쳐나왔으니
뭐를 해먹고 살까 막연해지네요
사랑으로만은 안되겠지요?
당신들 사랑하는 힘으로 살고 싶은데
그걸로는 좀 힘들겠지요.

후배님들
당신들이 내일 저를 위로해줘야 겠어요
당신들이 저를 문학의 외길 안에
스스로 고독의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수행에 길에 남아있었음 좋겠다고
선배가 시를 쓰는 게 나쁜 일이 아니라구만
해주세요. 그럼 거하게 한 잔 쏠께여.
불행하게도 이제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크게 못쏠거 같은데. 봐주실거죠.

다시 당신들에 대한 사랑을
이어나가야 겠어요.
어디까지 얘기했죠
어디까지가 당신들의 영혼이고
어디까지가 나의 영혼이지요
경계 허물어지고
우리 다 그냥 사랑이라고 쓸까요
선배도 후배도
너도 나도
그냥 다 모조리 밀어넣고
사랑이라고 불러보죠.

당신들의 영혼은 늘
봄이랍니다.
봄을 기억하세요
오티때 했던 각오들을 기억하세요
안녕!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어요.
어두워져야만 내가 선명해지거든요
당신들을 사랑하는 나의 영혼이 더 선명해지거든요

오늘은 술 한 잔 걸치지 않고
말이 많아졌어요.

잘 살아요!
살아서 그리운 것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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