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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3월 7일자 강위석 씨의 <중앙시평>


그가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의 민족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듯이, 나는 그의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했다. 세상에...이런 시평도 다 있구나 하고.

정말이지 이런 글이 중앙일간지에 시평으로 나올 수가 있는 것인가? 실로 반세기 넘어 처음으로 친일잔재청산의 물꼬를 텄다고 평가받는 2. 28 쾌거에 찬물을 끼얹는 그런 시평이. 그것도 발행부수 1, 2위를 다툰다는 신문에. 그리고 연초에 "업그레이드 코리아"라는 기획기사에 "정부예산의 1%를 북한을 돕는데 쓰자"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던 신문에. 그렇다면 그것은 한낱 쇼에 불과한 것이었단 말인가.

그의 글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자칫 잘못하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강력한 지뢰가 곳곳에 밟힌다. 웬만큼 강심장이 아니면 중간에 내동댕이를 쳐버릴 것만 같은 그런 글이다.

그는 말한다.

"***조선에 민족의식 있었나

일제가 조선을 합방(合邦)하던 때 조선에는 이 합방을 수치스럽게 여길 주체인 민족의식이 없었다. 민족은 민족의식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조선에는 '민족'이 없었다. 이완용 등이 '매국(賣國)'한 조선에는 주권(主權)과 영토는 있었지만 스스로를 국민이라 의식하고 그 주권과 영토가 자기네 것임을 주장하는 민족이 없었다.

왕과 양반의 것으로서의 조선조의 주권은 한일합방 전에 거의 자멸해 있었다. 외세와 싸우다 져서 멸망한 것이 아니다. 이완용 등이 '매국'했다는 것은 과장된 수사(修辭)다."


조선에 민족의식이 있었냐고 묻고 있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정신 차려서 반문해 본다. 조선 이전의 고려에 민족의식이 있었나? 아니 그 이전 3국시대에 민족의식이 있었나? 어느 왕조 때부터 민족의식이 없어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3국시대 때는 동족이지만 서로 다른 왕조로 갈라져있었으니 (백보를 양보하여)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전 방영된 TV드라마 '왕건'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 사극에서 견훤, 왕건이 서로 3국의 통일을 이룩하려 다투고 있었고 결국 왕건이 3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이루었으니 그때 이미 동족의식 다시 말하면 민족의식이, 무성해지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싹트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 후 고려시대 때 몽고의 침입 당시 항몽투쟁도 민족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의식은 계속 조선조에도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왕조만 바뀌었을 뿐 그 구성원은 동일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민족의식이 일제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니?

그리고 그는 일제가 조선을 합방할 때 (정확하게 말하면 이 때는 대한제국이었다) 이를 수치스럽게 여길 민족의식이 우리에겐 없었단다. 수치를 느낄 만큼의 민족의식이 없었다면 애국지사들은 무엇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많은 백성들은 무엇 때문에 만주로, 연해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고향을 등졌단 말인가.

나라의 멸망 앞에서 그 울분과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애국지사와 조상을 후손이 이렇게 모독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완용이 '매국'노라고 배웠고 그렇게 알아 왔는데 그는 이완용이가 '매국'노가 아니란다. 기존의 교과서 내용을 뒤집을 새 학설이 나올 모양이다. 기다려 보기로 하자.

그 글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부분이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 현재 잣대로 과거 단죄

한국에서도 민족의식이 본격적으로 우거지기 시작한 것은 남한에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로 보인다. 외부적으로는 일제 때 싹텄던 민족의식이 내부적으로 이때야 무성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와 번영이라는 미래의 신화가 한국에서도 민족의식의 온전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제 때 민족적 항일운동을 한 선각자들은 민족의 사표로 길이 찬양받을 만하다. 그러나 일제 때의 친일을 곧 민족에 대한 배반으로 보는 데는 과거의 무의식을 현재의 의식으로써 판단하는 시간적 오류가 있다."


현재 잣대로 과거를 단죄하지 말라한다. 현재 민족의식이 그나마 조금 있다고 그 당시의 민족의 개념도 없을 때 친일부역한 것을 단죄하지 말란다. 그 때를 사신 우리의 조상님들의 민족의식수준이 거의 동물수준이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민족의 침략에도 수치심을 느낄 만한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하니.

"친일을 곧 민족에 대한 배반으로 보는 데는 과거의 무의식을 현재의 의식으로써 판단하는 시간적 오류가 있다"는, 쉽게 말하면 친일이 곧 민족반역이 아니라는 그의 현란한 말장난에는 이견을 달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의 이 말에는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친일잔재청산 움직임에 발목을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

그 후 이어지는 글은 이렇다.

"그러므로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는 정치적 퇴행성 강박관념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실패한 또는 실패할 정치가들의 운명적인 선동으로서 낡은 레코드처럼 반복 회전할 뿐일 것이다."

친일파 단죄가 정치적 퇴행성 강박관념이란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친일잔재를 청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많은 국민의 염원은 그에게 한낱 "정치적 퇴행성 강박관념"으로, 그리고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소신있게 국회 밖에서 발표를 감행한 의원들의 행동은 '선동'으로 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다. 지독한 독설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절차상의 하자"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를 동원해서 친일파명단 발표에 대해 교묘하게 딴지를 걸던 3월 6일자 남시욱의 조선일보 시론 "기본안된 역사청산 논의"와 어떤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두 개의 시론, 시평 모두, 쉽게 한마디로 "친일파가 어디 있어, 어리석은 민중들아?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는 말을 원로언론인의 권위를 빌어 현학적으로, 일반 독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코드를 이용하여 썼다는 것이다. 그 코드를 해독하는 데 일정 정도의 노력과 지식이 필요하게끔 말이다. 그리하여 일반인에게 친일파 명단발표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을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두 분이 다 언론계에서 상당 기간 몸담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이렇게 생각이 "퇴행적"인지 구토가 나오려 한다. 이런 견해도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견해의 하나로서 존중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의 지식인의 수준이란 말인가. 그들도 지식인의 범주에 들어간단 말인가. 정말 지식인의 정의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의식이 없다면 무식할 일이다. 의식 없는 지식인이 사회적으로 어떤 폐해를 끼치는 지를 우리는 이 두 글에서 똑똑히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슬프기 그지없다. 두 언론인의 망발을 보며 나는 역사청산을, 특히 친일 언론인과 문인에 대한 단죄를,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를 우리가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글에 대해 중앙일보에 강력히 항의한다. 거꾸로 선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런 한심한 시평을 게재한 중앙일보 편집책임자는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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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철 기자는 카이스트의 감사와 연구교수를 지냈습니다. 친일청산에 관심이 많아 오래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을 지내고,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장준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장준하부활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코칭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와 '에듀코칭'을 통한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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