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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개천절'인 기원 2600년(1940년 2월 11일) 기원절 봉축행사에 초대받은 인사들의 인명록. 이들 가운데는 조선인 300여명도 포함돼 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팀 제공


최근 국회의원들이 친일 반민족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공개한 이후 친일파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친일성향의 조선인들의 행적을 기록한 자료가 새로 발굴돼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 가운데 왜곡되고 감춰져온 역사의 비밀을 캐내온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팀(연출 정길화)은 최근 프로 제작과정에서 친일파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는 인명록을 입수, 본사에 공개했다.

기원절(紀元節)이란?

일본의 개국신(神)이랄 수 있는 신무(神武) 천황이 일본을 건국하고 즉위한 날(2월 11일)을 기념한 것으로, 우리로 치면 개천절에 해당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기원절로 불리다가 이후부터는 건국기념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일제는 기원 2600년인 1940년에는 당시 도쿄와 식민지 등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치렀는데,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 부의가 도쿄에 초대되기도 했다.

특기할 점은 일제는 1940년도 기원절을 '기념'해서 조선 전역에 창씨개명제를 실시했다. 창씨개명의 근거 법률은 제령 제19호 '조선민사령 중 개정건'과 제령 제20호 '조선인의 씨명(氏名)에 관한 건'이다.

일제가 '기원절'이라는 특정 기념일을 기해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추진했다는 점은 황국신민화 정책의 상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일제가 기원(紀元) 2600년인 1940년 2월 11일 기원절 행사를 도쿄와 경성(현 서울)에서 성대하게 개최하면서 이 행사에 초대된 인사들의 면면을 기록한 인명록으로, 정식 명칭은 <<기원이천육백년축전(祝典)기념 광영록(光榮錄)>>이다.

공주갑부이자 친일파로 유명한 김갑순(金甲淳)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신문사에서 1941년 10월에 간행한 이 <광영록>은 1백여 장에 이르는 기원절 행사 관련사진과 함께 <부록>으로 기념식과 봉축행사에 초대된 초대자들의 명단, 사진, 약력 등을 수록하였다.

전체 수록자는 모두 1100여 명으로, 이 가운데는 조선인 300여명도 포함돼 있다. 이 행사에 초대된 조선인들은 총독부 산하 각 기관의 고관대작을 비롯해 사회 지도급 인사, 자영업자, 면장, 하급 경찰간부, 그리고 지역유지 등 각계 인사가 망라돼 있다.

일제가 이 행사에 초대된 것을 두고 '자자손손 가문의 영광'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봐 이들은 총독부로부터 조선통치에 공로가 인정됐거나 또는 충성심이 검증된 인사들로, 소위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평가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명단 가운데는 최근 논란이 됐던 '집중심의 대상' 16명 가운데 포함됐던 동아일보 전 사주 김성수와 김활란 이화여대 전 총장을 비롯해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의 부친인 최준집(중추원 참의) 등도 포함돼 있어 이들 역시 당시 총독부 당국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 1940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 청사 앞마당에서 개최된 기원 2600년 관민 합동축하회 광경.
대표적 친일파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 가운데 <광영록>에는 '을사오적' 가운데 1인인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이왕직 장관, 당시 직책임)와 손자 이병길(후작)을 비롯해 남작 이풍한, 이경우, 이홍재, 자작 이규원(조선귀족회 이사, 대륙고무공업 사장) 등 한일병합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거나 또는 작위를 물려받은 '조선귀족'들이 더러 포함돼 있다.

또 조선총독부 어용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 가운데는 김화준, 박중양(귀족원 의원), 박상준(귀족원 의원), 이경식, 김사연, 최준집(창씨명 丸山隆準, 강릉조선주조 조합장), 조병상(종로경방단장), 김갑순(조선신문 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나중에 변절, 중추원 참의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을 역임한 최린도 이름이 들어 있다.

또 총독부 산하 기관의 인사로는 백윤하(경성복심법원 판사), 이상기(경성복심법원 판사), 김영환(대구복심법원 판사), 변호사 박천일(신의주 부회의원) 등 법조계 인사와 함께 조선총독부 편수관 출신으로 조선사편수회에서 다시 편수관으로 근무했던 신필호, 경찰관 출신으로 충남도지사, <매일신보> 사장을 지낸 이성근 등의 이름이 보인다.

공무원 가운데는 경찰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해방후 반민특위 습격사건에 주도적 역할을 한 최령(崔鈴, 나중에 崔燕으로 개명함), 노덕술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이번에 국회의원들이 발표한 명단 708명 가운데 포함돼 있다.

▲ 경복궁 내 경회루에서 열린 총독부 주최 축하연. 조선인 참석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밖에 외교관 출신으로 충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을 지낸 김우영도 포함돼 있는데 그는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남편이기도 하다. 김우영과 나혜석 부부는 나중에 이혼했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난 아들 김모씨는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기업인 출신으로 <광영록>에 이름이 기록된 자로는 광산거부 출신으로 일제하 수 차례 기부금과 비행기 등 전쟁물자를 헌납한 최창식이 눈에 띈다. 그는 해방후 귀국한 백범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저택(현 경교장)을 헌납하는 교활한 태도를 보인 자이기도 하다.

또 한성은행 두취(頭取, 현 은행장), 조선생명보험 사장을 지내면서 각종 친일단체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한상룡은 이완용이 그의 외숙이다. 화신백화점 사장 출신으로 해방후 반민특위 '검거 제1호'인 박흥식을 비롯해 경북 영덕지역의 광산거부 문명기(창씨명 文明琦一郞, 중추원참의), 함북지역에서 '자동차 왕'으로 불린 방의석(중추원참의) 등도 포함돼 있다.

교육.언론계 인사로는 김활란 이화여전 교장, 김성수(전 동아일보 사주) 보성전문 교장, 그리고 충북도회 의원이자 청주지역 교육사업가인 김원근 청주상업학교 이사장 등도 기원절 행사에 초대됐던 것으로 이름이 나와 있다.

'광영스런'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 가운데는 종교계 인사도 적지 않다. 우선 불교계에서는 송두한 범어사 주지, 이종욱 월정사 주지, 안본향덕(본명 미상) 마곡사 주지가 그들이다. 또 목사로는 김석진 조선야소교경남장로회 부산진 교회 목사의 이름이 눈에 띈다. 홍일점으로 개성 군용화제조조합 지도원 김경숙(창씨명 勝山雪子)의 이름이 보인다.

▲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청사)에서 열린 아악 축하공연. 악사들이 전통복장을 한 무대 뒤로 대형 일장기가 내걸려 있다.
한편 <광영록>에는 그동안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친일파 연구에 새로운 자료가치를 더하고 있다. 그동안 친일파로 알려진 사람 가운데는 이름이나 혹은 단편적인 직위 정도만 알려져 있어 구체적 행적 파악이 어려운 자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자료에는 도회(道會) 의원(현 도의원), 군수, 세무서장, 학교장 등 지역단위 기관장은 물론 읍.면장, 군청 촉탁, 기수(技手) 등 하위급 공직자를 비롯해 약종상, 양조업자 등 자영업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일제하에서 간행된 각종 인명록, 신사록(紳士錄), 직원록, 명감(銘鑑) 등이 대개 명망가나 고위직자 위주라면 <광영록>은 하위급 친일성향의 조선인들을 대거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분야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광영록>의 구체적인 내용은 10일(일요일) 밤 11시 25분에 방영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53년만의 증언 - 친일경찰 노덕술>편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 조선 귀족들. 왼쪽부터 이항구(이완용 장남), 이홍재, 박중양, 이풍한

▲ 중추원참의들. 왼쪽부터 방의석, 문명기, 김갑순, 조병상

▲ 각계 친일파들. 왼쪽부터 박흥식(화신백화점 사장), 김우영(충청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 이종욱(월정사 주지), 이진호(총독부 학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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