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한 주 전 오늘, '민족정기를 세우는 여야 국회의원 모임'에 의한 친일파 명단 발표가 있었다.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번 발표는 많은 국민들이 민족적 긍지와 자존감을 세워나가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이번 성과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데 있어 큰 밑거름이 됨과 동시에,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후손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막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이 작업의 성패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이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이 역사적 과업의 수행을 가로막고 있는 탓이다. 이들은 견고한 방호벽으로 자신의 모습을 은폐시킨 채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여 이 작업에 참여한 이들의 진을 빼놓고 있다. 당장 친일 문제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능적인 기사작성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포함한 일부에선 절차의 문제를 집중 부각, 이번 발표의 의미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친일자의 공(功)과 과(過)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행된 친일에 대해서는 보다 관대하게 봐주자는 입장까지 피력하고 있다. 한 마디로 대량의 면죄부를 한꺼번에 뿌리자는 뜻이다.

이들 주장에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 의해 강점 당한 35년 그 폭압적 권력 아래선 우리가 결코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 속에서 체득된 경험들은 국민 각자의 민족관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그 결과 이념적·이해타산적·맹목적 형태의 친일이 광범위하게 자행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들 모두를 범죄자로 만들어 단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해방 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과거의 죄상을 규명하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은 일이며, 그 비난과 처벌의 수위가 과연 어느 선에 머물러야 할 지 필연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결핍되어있는 관용의 미덕을 유독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 대답은 '아니다'로 모아져야 한다. 고종석 한국일보 편집위원의 말을 빌자면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법적 기반이 일본제국주의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친일행위와 관련된 문제는 그 경중을 두고 따져야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철저히 그 본질에 입각해 판단해야 한다. 너도 잘못을 저질렀고 나도 잘못을 저질렀으니 우리 서로 눈감자는 식의 집단최면은 역사에 대한 중대한 모독행위다. 따라서 당시의 죄상을 함께 고백하고 민족 앞에 사죄하려는 움직임이 크고 작은 모든 친일의 잘못을 저지른 이들 사이에서 나와야 한다.

문제는 적극적으로 친일에 가담한 자들이다. 고종석 씨의 말을 다시 빌자면 이들은 해방 후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비판하고 새롭게 태어나든가, 아니면 비록 미국의 힘에 눌려 좌절되기는 했으나 대동아 공영권은 아시아인의 궁극적 미래라는 논리를 굽히지 않은 채 일본으로 망명하거나 국내의 소수파로 남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뛰어난 처세술로 해방된 조국의 주류가 되는 길을 선택했고,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국민의 역사인식에 혼란만 가중시켜 왔다. 오늘날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사회 각 분야의 힘, 그리고 친일잔재 청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내세우고 있는 논리가 이 땅에 만연해 있는 왜곡을 바로 잡는 데 얼마나 큰 장애물로 작용해왔는지를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이라면 정의란 쓰레기통에서도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말은 동국대 한상범 교수의 말이다.

우리는 가까운 과거에 친일파의 후손들이 친일의 대가로 획득한 재산을 다시 돌려달라며 법정싸움을 벌인 일을 본 적이 있다. 법원에 의해 이들 후손들의 시도가 좌절되기는 했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아직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 노릇이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여세를 몰아 후속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하루 빨리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 과거를 매듭지어야 하며, 친일인명사전 발간에도 박차를 가해 불행한 과거를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알려야 한다. 또한 역사교과서를 개정하여 우리 근현대사의 일그러진 모습이 어디서부터 연원했는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분명히 짚어줘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친일에 가담했던 인사들이 이 역사적인 과업의 수행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역사 앞에 진정으로 참회하는 길이며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길이기도 하다.

친일파의 후손들도 자신들의 조상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했던 대로 공과 과를 분명히 구분해 비판할 것은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그들 선조들이 미처 사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대신 그 죄상을 뉘우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죄상이 조금이라도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역사의 물결을 거부한다면 그들 또한 씻을 수 없는 역사의 대죄를 저지르는 것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