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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정운현 편집국장
정리 : 손병관 기자


지난달 28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회장 김희선 민주당 의원)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 명단 708명을 1차로 공개한 이후 친일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대다수 국민들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국회 차원에서 친일문제를 거론한 것을 대단히 뜻깊은 일로 평가하고 있는 반면, 일부 언론에서는 자사 전 사주가 포함된 것을 두고 연일 자사 지면을 통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에 불과하다.

올해 3대 연중기획 사업 가운데 하나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집중보도, 지원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는 이번 국회의원들의 1차 명단 공개가 우리 사회의 일제잔제 청산의 첫걸음으로 보고 보다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위해 관계자 인터뷰와 발굴자료들로 엮어 7~8회 규모의 <집중기획>을 마련했다. 그 첫번째는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줄기차게 친일파 청산을 위해 활동해온 조문기 통일시대 민족문화재단 이사장의 인터뷰를 선보인다. <편집자 주>


"16명 가지고 그 난리를 치니 우리나라가 친일천국이 됐구나" 조문기 통일시대 민족문화재단 이사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의 친일파 명단 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한 심경을 얘기하자면... 힘이 나야 하는데 반대로 답답하다. (명단발표를) 하려면 좀 제대로 하든가, 거꾸로 된 것 아닌가? 독립유공자들이 모여 있는 광복회에서 명단을 찔러주며 뒤로 빠지고, 국회의원들이 앞장 섰으니 이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독립유공자 수백 명이 아직 살아있는데, 그들과 공감대 형성도 하지 않고... (광복회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내 심중을 그대로 얘기할 수는 없고... 이번 명단 발표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다"

-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란 게 무엇을 뜻하는가?

"어쨌든 친일파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국회의원들이 반민특위의 정신을 계승해 늦게나마 문제를 제기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내가 못마땅한 것은 광복회다. 다른 데 가서는 누워서 침 뱉기식이라서 얘기를 못한다. 광복회에서 만든 (친일파) 명단이 이래서야 되겠나? 훨씬 더 많이 들어갔어야 했다. 광복회에서 제출한 명단이라는 게 (규모가 너무 적어) 내놓기가 부끄럽다.

몇 십만 명의 친일군상들을 놔두고 귀퉁이만 몇 명 건드리고, 또 여기에 16명이 더해진 것인데 대단한 것인 양 하느냐? 친일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 적어도 3천∼4천여 명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런데 고작 7백여 명이라니... 내가 얘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당연히 넣어야 할 사람들이 이리저리 해서 빠졌다"

- 광복회가 명단공개 작업에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는가?

"사실 광복회는 그 동안 친일잔재 청산이나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의 작업에 대해 전혀 생각도 안 하는 단체가 아니었나?

이번에 발표한 '광복회 명단'도 그 동안 전혀 자료준비를 안 하다가 윤경빈 광복회장이 물러가기 전에 자기 업적을 하나 남겨두려고 시작한 것이다.

재작년에 명단 작업을 시작한 광복회 모 이사가 나를 찾아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그가 윤 회장에게 '자료조사를 도와줄 사람을 붙여달라, 컴퓨터라도 하나 사달라'고 사정했는데도 지원이 제대로 안됐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 친일파 연구서에서 명단을 빼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가 나중에 '최소한의 도움도 없는 상태에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컴퓨터도 사 주고 직원을 붙여주고 해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광복회가 정말로 의지가 있었다면 우리(민족문제연구소)에게도 찾아왔을 텐데, 한번도 찾아오지도 않았다. 우리가 근 10년간 '친일인명사전' 작업에 매달렸다는 것을 뻔히 알았을 텐데... 요 얼마 전에도 광복회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때도 명단 문제는 전혀 얘기도 안 했다"

- '집중심의 대상'으로 나중에 명단에 포함된 16명에 대한 조선, 동아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선, 동아에서 나중에 추가된 16명에 대해 시비 거는 것을 보고 이 나라가 친일공화국임을 다시 절감했다. 즉 친일세력들이 단단히 굳어진 토양, 성역화된 토대를 다져놓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작 16명 가지고도 그 난리를 치는데... 우리나라가 '친일천국'이 됐구나. 친일 청산이 이렇게도 안됐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 동아, 조선이 '추가명단'에 대해 윤 회장이 반발했다고 왜곡보도를 하기도 했는데...

"3.1절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친일시화전'할 때, 방응모의 아들 방재선 씨도 왔었다. 그 사람도 '선친의 친일행위에 대해 대신 용서를 빈다"고 했다.

동아, 조선이 가만히 있었다면 모르지만, 반발해서 논란이 생긴 게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본다. 언론이라는 게 민족정신을 흐리는 데 얼마나 무서운 역할을 해 왔는가? 일본 시책에 제일 먼저 추종한 언론 보도가 우리 국민의 황민화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8.15 해방 직후였다면 이런 게 논란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당시 친일파에게 '너는 친일했으니 죽일 놈' 그랬다면,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이라고 심판을 달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2차대전 후 나치독일 부역자 청산작업을 마친 후 '이제 다시는 민족배신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청산이 가장 안된 분야가 어디라고 보는가?

"흔히들 하는 얘기가 법조계, 문화계가 대표적으로 친일잔재 청산이 제일 안됐다. 특히, 법조계는 정말 심한 것 같다"

- 미당 서정주에 대해서는 친일경력이 있지만 좋은 시를 남겼으니 그의 공과를 같이 논해야 한다는, 소위 '공과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이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해방직후)제대로 청산됐으면 서정주에 대해 그런 소리 못한다. 독립운동가들끼리 하는 말로, 설사 독립운동을 아무리 많이 했더라도 나중에 변절한 사람들은 친일파로 단정해버린다. 반대로, 아무리 친일파라도 나중에 뉘우치고 독립운동에 매진했다면 그 사람은 독립운동가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른바 '공과론'이라는 것은, 그런 지조의 원칙에서 보면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독립운동가나 친일파나 똑같은 놈들이라는 논리다"

조문기, 일제하 마지막 무장항일운동의 주역

조문기 통일시대 민족문화재단 이사장(75)은 해방직전 마지막 무장항일운동인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역 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45년 7월24일 오후6시 서울 부민관에서 친일민족반역자 박춘금(1891-?, 해방후 일본으로 도피) 주최로 '아세아민족 분격대회'라는 친일집회가 열렸다. '일본 대표' 박춘금이 '아세아 민족의 해방'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고 있을 때, 무대 입구 쪽에서 폭발물 2개가 연속으로 터져 참석자 가운데 1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일제의 패망을 약 3주 앞두고 조선민족의 민족정기를 보여준 의거의 주인공은 조문기, 강윤국, 유만수. 같은 해 5월 '대한애국청년단'을 결성한 이들은 수색의 군수공장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빼내 거사를 준비했다. 부민관 사건으로 당시 5만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조 이사장은 일제의 검거령을 피해 고향(경기도 화성)으로 내려가 야학운동을 펼치다 광복을 맞았다.

함께 거사를 한 유만수, 강윤국 씨는 77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지만, 조 이사장은 한사코 유공자 지정을 거부하다가 가족들의 강권으로 82년 유공자로 선정됐다. 조 이사장은 독립운동가 22인과 함께 2000년 11월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생존 독립지사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조 이사장은 '현대판 독립운동'으로 친일파 청산운동을 줄기차게 펼쳐왔으며, 지난 2000년부터 친일파 전문 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음양으로 도와 왔다.

- 다시 묻지만, 그 동안 왜 광복회가 친일잔재 청산작업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는가?

"(머뭇거리며) 그거 난감한 질문인데... 이유야 뻔한 것 아니냐? 광복회가 제대로 된 독립유공자 단체라면 옛날에 이미 (친일파)명단을 내놨겠지. 독립유공자라고 떠들어대지만, 광복회에 온갖 이상한 사람들도 더러 끼어 있다. 이런 단체에서 제대로 된 명단이 나온다는 거 가망 없는 짓이다. 내가 두 번이나 광복회 경기도지부장 하다가 뛰쳐나오지 않았나? 그런 조그마한 데서도 지부장 감투 하나 쓰려고 별의별 모략을 하고 그러는데... 감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답게 살아야 한다"

- 독립운동가답게 사는 자세란?

"죽는 날까지 독립운동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서 완수가 안되면 후대에라도 과업을 전수해서 친일파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것이 지금의 독립운동이다. 그러나 이런 운동에 같이 나서겠다는 동지가 주위에 아무도 없다. 생존자들이 제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면, 이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도 현재로서는 여건이 대단히 어렵다. 나는 연구소의 젊은 직원들에게 '독립운동을 하는 자세로 일하라. 독립운동은 쉽게 되지도 않으며, 한도 끝도 없는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독립운동'이라고 얘기하고 한다. 쉬운 민족운동은 결코 없다. 누군가 내게 "당신, 그러다가 언제 맞아죽을지 몰라"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각오하고 있다. 젊어서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도 했는데 이제 늙은이가 뭘 두려워하겠는가?"

- 독립유공자 가운데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더러 포함돼 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렇다. 다 알고 있고, 참 예민한 얘기지만... 독립유공자 사회에서 '말발'이 센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다. 정말로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말없이 조용히 엎드려 있다. 꼭 무슨 위협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말을 해서는 안될 사람들이 너무 나서니 그것에 대한 저항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옥고를 치른 적도 없고, (독립운동)경력도 일천한 사람들이 너무 설치고 다닌다"

"친일파 공과론은 독립운동가나 친일파나 똑같다는 논리" ⓒ 오마이뉴스 이종호
- 통일시대 민족문화재단(www.historyfund.com)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에 들어갔는데, 친일파의 전체 규모를 몇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나?

"현재로는 3천명 선으로 잡고 있는데, 그 규모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료가 보충되면 추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찾아올 자료들이 많다.

(해외자료는)우리 연구소에서 고작 손 뻗치고 있는 중국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에 1천만원 주고 가져온 것밖에 없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료가 많은 지역에는 아직 손을 뻗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자료만 제대로 뒷받침되면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집어넣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다 집어넣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현재의 추산인원인 3천명보다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 정부로부터의 지원은 어떤가?

"국가 예산으로 이런 작업을 하는 게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지금 정부가 과거와 같은 독재정권은 아니고... 정부 쪽에서도 우리 재단 이사도 있고... 차츰 정부 지원도 받고, 하나하나 일을 진행하면 갈수록 일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지 않을까?

- 기업인, 정치인 중에 연구소 후원금을 내는 사람은 없나?

"소액 지원은 있지만, 큰돈을 내는 사람은 아직 없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들어온 게 2000년인데, 그 전에 한번은 국내 유수 재벌급 회사 대표가 찾아와서 '우리 창업주 이름을 친일파 명단에서 빼주면 몇십 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직 민간 차원의 지원은 미미하다"

조 이사장은 "자료만 뒷받침되면 친일파 규모 훨씬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좌측은 대담중인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많을 것 같은데, 왜 국민들의 동참이 그리 많지 않은가?

"그거야 뻔하지 않은가? 그 동안 친일파들이 사회 상층부를 장악하고서 국민 우민화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단 나온 후 '그 당시 친일파 아닌 사람 어딨나'라는 엉뚱한 소리가 나오지 않나?"

- 이번 친일파 명단공개에 이어 어떤 후속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보는가?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경력자에 대한 상훈 박탈과 국립묘지내 친일인사들의 이장문제, 그리고 곳곳에 서 있는 친일인사들의 동상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을 민족문제연구소(www.minjok.or.kr)가 도맡아 할 수는 없다. 친일인명사전 하나에만 십여 년을 매달리고 있으니 다른 일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현재로선 누가 친일파인지 조사해내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통일시대 민족문화재단 발기인 대회 때 누군가 한 말처럼 인명사전 편찬은 시작에 불과하다"

-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는 조선, 동아 같은 반민족언론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언론이 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한다. 친일파 청산은 일본이나 친일파에 대한 과거사 들추기나 한풀이 차원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올바르게 살고 못살고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반민족행위자들과는 싸워야 한다. 그 작업을 가장 힘 있게 할 수 있는 곳 또한 역시 언론이라는 걸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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