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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북미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간다.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물론 그 단초는 미국에서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느닷없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지으면서 비난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 됐다.

이것이 지난 9.11테러 이후 즉시 '반테러선언'을 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북한을 자극하였다. 북한에서는 이례적으로 즉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는 강경한 대응이 나왔고, 이에 또 부시 대통령이 재차 경고를 하는 등, 대응이 또 다른 대응을 부르며 점점 에스컬레이트되는 형국이 되었다.

부시는 2월2일 (미국시간 2월1일) 북한이 재래식무기를 후방배치하고 미사일 수출을 중단한다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시 행정부는 언제 어디서든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며, 북한이 원하지 않는다면 재래식 무기를 의제로 하는 논의를 뒤로 미룰 수 있다"고 한 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힘에는 힘으로 대답할 것"이며 "우리는 미국과 전쟁을 치를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강경대응을 재차 천명하였다. 이러한 감정적 반박성명과 맞대응이 몇 차례 오가다가는 자칫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이다.

심상찮은 북-미사태

지금의 세계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다. 지난 해의 미 테러 사태 이후 더욱 그렇게 치달아왔다. 힘의 균형을 이루어오던 소련이 붕괴되고, 남은 러시아는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미국이 저렇게 오만을 부릴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부시 대통령은 애초부터 북한의 지도자에 대해 나쁜 선입견이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취임 때부터 외교적 수사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로 북한을 자극을 해온 사람이다. 게다가 9.11 테러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침체문제, 엔론스캔들 연루의혹으로 인한 곤경, 우리의 차세대전투기사업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F-15K기 판매문제, 11월의 중간선거 등 여러 가지로 곤란한 입장에 처해져 있다. 자칫 국내문제를 호도하기 위해 눈을 밖으로 돌리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어느 나라건 희생양으로 삼아야 한다.

희생양 찾는 미국

일부에서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관측을 하고 있으나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부시 주변의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온건파인 국무부는 배제되고 강경파인 국방부 인사들이 득세하였으며 부시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부시는 취임 직후 강경노선을 밝혔다가 다시 대화입장으로 바뀌었으나, 결국 실익이 없다고 판단, 그의 원래 생각대로 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전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무책임한 전망이다.

거의 악에 받쳐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부시가 이번 기회에 전 지구상에서 '눈엣가시'같은 존재들을 몽땅 쓸어버릴 태세다. 문제는 부시가 마음만 먹으면 그것을 실행에 옮길 힘이 있다는 것이다. 미 국민의 여론도 대체로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걸림돌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상태다.

다가오는 전쟁위협, 지나친 낙관은 위험

그런 상황에서 자존심 때문에 그에 대항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북한의 여태까지의 대응만으로도 북한의 자존심은 충분히 지켜졌다고 본다. 더 이상의 강경 맞대응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민족을 위해서도 그렇다. 한반도를 다시금 전쟁의 땅으로 몰아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닌 밤중에 홍두깨'격인 이 사태가 물론 북한으로서는 피눈물이 나도록 억울한 일일 것이다.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로 핵무기 개발을 동결시키고 미사일 발사도 약속대로 유보시켜왔는데도 정작 미국은 그 대가로 이루어진 경수로 합의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이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남한의 전력공급에 대해서도 딴지를 걸고 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휴전선 부근의 재래식 무기를 후방으로 이동시키고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라는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어제만 해도 '손에 넣지 말라'고 하더니 그것도 하루 사이에 수위가 높아졌다. 부시 스스로는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압박은 계속 하고 있으니 북한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일 것이며 그에 따라 북한에서도 호전적 강경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내 강경파 득세 조장하는 미국

여기서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전 세계에 방영되는 자리에서 한반도 휴전선 부근의 재래식 무기 후방이동배치를 언급한 것은 우리 한국의 주권과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은 당사자인 우리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할 말은 더 더욱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부시는 우리나라가 그네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정부의 위임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그리고 휴전선 부근에 재래식 무기를 배치하고 말고는 북한의 군사전략이다. 적장에게 무기배치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권투선수가 상대방에게 팔을 내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 선수에게 팔을 내리라고 하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팔을 내리고 상대방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 순서다.

북한으로 하여금 미사일수출을 중단하라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나무에 올라가라 해놓고 흔드는 격이다. 왜냐하면 북한으로서는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생존의 수단으로 핵과 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에 의존하게 되었고 미국에 의한 경제제재로 인해 외화획득의 상당부분을 무기수출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대부분 미국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이 북한에게 미사일 수출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악의적 테러지정국 해제와 경제제재 해제 등의 우호적 조치를 먼저 취하는 것이 도리다.

나무에 오르라 해놓고 흔드는 미국

그런데 그런 미국이 북한에게 그런 무기를 손에 넣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것은 호랑이와 대치하고 있는 고슴도치에게 스스로 가시를 먼저 제거하라는 소리와 다름없다. 고슴도치에게 가시를 제거하라고 하려면 고슴도치가 정글 속에서 그렇게 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순리다. 호랑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어떻게 가시를 없앨 수 있겠는가. 북이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북미평화협정을 미국은 계속 거부하고 있지 않는가.

이렇듯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사안에 대하여는 모른 체 하면서 힘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북한으로서는 한이 맺히도록 억울하고 참담한 일일 것이다.

생떼 쓰는 미국, 분노하는 북한

그러나 호흡을 한번 길게 해보자. 상황은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리면 그 다음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국은 전시작전권이 미군에게 있다.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벌인다면 미군은 그들의 인명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남한의 군대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군대는 미군의 지휘 아래 또 다시 북의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남북이 모두 원치 않는 전쟁이 또 다시 이 땅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사태가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진전되고 있는 데에는 우리 정부의 무능함과 안이함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이제 모든 짐이 김대중 대통령에게로 떨어졌다. 김 대통령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강력한 중재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부시를 설득하여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는 고난의 짐을 지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한-공조에 연연한 나머지 더 이상 미국의 의사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미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절대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한미공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모두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북한도 "전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식으로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부시가 대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을 역으로 제시하여 일단 공을 미국으로 다시 넘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냉각기를 가지며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지만, 그것도 개 나름이다. 집채만한 미친개를 무슨 수로 당할 것인가. 우선은 피하고 볼 일이다.

지금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북한이 슬기롭게 이 고비를 넘겨주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다. 그것은 북한이 한 걸음 물러서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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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철 기자는 카이스트의 감사와 연구교수를 지냈습니다. 친일청산에 관심이 많아 오래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을 지내고,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장준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장준하부활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코칭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와 '에듀코칭'을 통한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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