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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는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주최로 '21세기 주한미군의 새 역할과 위상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취재/ 공희정 기자
사진/ 권우성 기자


"한 국가의 수도 한가운데 외국군이 주둔하는 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용산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전쟁 억지력을 가지지 못한다. 주한미군이 용산에 있는 한 앞으로도 반미감정이 계속 고조될 것이다."

"북한의 군사위협이 소멸되기 이전에는 용산기지 이전 등에 의한 전쟁억제력 감소는 바람직하지 않다."


위 발언내용은 16일 서울의 한 세미나 장에서 나온 것들이다. 얼핏보면 최근 논란이 돼온 용산 미군기지 내 아파트 건설문제와 관련한 진보단체와 보수단체간의 '설전' 정도로 생각된다.

그러나 위 발언의 주인공들은 뜻밖에도 이같은 예상을 모두 빗나갔다. 첫 번째, 두 번째 발언의 주인공은 미국의 전직 고위관리였고, 세 번째 발언의 주인공은 한국의 전직 국방부 장관이었다.

결론부터 앞세운다면 미국측 인사들은 용산 미군기지의 효용성을 그리 크지 않게 평가한 반면, 한국측 인사들은 이들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마치 미국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날 발언한 미국측 인사들이 전직 주한미군사령관, 주한 미국대사, 미 의회 아태 소위원장 등 주한미군 관련 '정보의 최고봉'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왼쪽부터 윌리엄 립시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 제프리 존스 미 상공회의소 소장,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외교분과 소위 위원장,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16일 오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는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주최로 '21세기 주한미군의 새 역할과 위상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에 이어, 세미나의 두 번째 주제인 '주한미군기지와 병력재배치 : 용산기지 이전에 대하여'에 참석한 한미 양측 패널들의 주장은 상반됐다.

이날 두 번째 주제 토론자로 참석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예를 들면서 "현대전의 방식이 바뀜에 따라 용산(미군 기지)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오히려 오산과 군산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면서 "용산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전쟁 억지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미군의 전쟁 방식이 바뀌고 있다. 현대전은 군인이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기술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은 덜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용산(미군 기지)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오히려 오산과 군산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산기지 이전은 쉬워질 것이다."

또한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아태 외교분과 소위 위원장도 "미 2사단이 현재의 위치에 주둔해 있는 한 (용산)기지를 이전한다고 해서 전쟁 억지력이 손상되지 않는다"면서 "한 국가의 수도 한가운데 외국군이 주둔하는 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용산기지 이전 문제는 미국의 판단의 문제가 아닌 한국 정부의 의지의 문제"라면서 "주한미군이 용산에 있는 한 앞으로도 반미감정이 계속 고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전직 고위관리의 발언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차 주한미군에게 있어서 용산기지의 중요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한국의 전 국방장관의 시각은 미국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와 솔라즈 전 미하원 의원의 한 국가의 수도 한복판에 있는 미군기지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과는 크게 배치됐다.

▲조성태 전 국방부장관(동국대 객원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첫 번째 발표자로 참석한 조성태 전 국방장관은 "북한의 군사위협이 소멸되기 이전에는 용산기지 이전 등에 의한 전쟁억지력 감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 전 국방장관은 또 "90년 초 발표한 용산기지 이전 계획으로 주한미군 측은 그후 5년간 시설투자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용산기지 시설이 낙후됐다"면서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숙소개선에 대한 여건보장은 절대 필요하며 용산기지 이전과는 무관하게 조기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토론자로 나선 김재창 국방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은 미군의 배치와 연계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와 인접한 주한미군 지휘본부를 이전하는 것은 효과적인 작전 수행을 불편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두 번째 세미나는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의 사회로 한국측에서는 조성태 전 국방장관,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참석하고, 미국측에서는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아태 외교분과 소위 위원장,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 윌리엄 립시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참여했다.

▲김재창 국방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의 전 고위관료들의 전향적인 발언과 달리 두 번째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미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회장은 "외국 투자자들의 한국에 투자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미군이 이 나라에 있다는 것"이라며 "미군은 아마도 앞으로 50-60년간 한국에 있을 텐데 이들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편안히 봉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위해 미군이 희생하고 있다"면서 "통일이 어떤 구조와 형태로 이뤄진다 해도 미군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첫 번째 세미나는 정종욱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 사회로 한국 측에서는 유종하 전 외무장관, 이정복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했고 미국 측에서는 리처드 알렌 전 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로이 전 주중 미 대사, 리처드 솔로몬 미 평화연구소 소장 등이 참여했다.

"주한미군에 존경하는 마음 가져야"

▲윌리엄 립시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다음은 '21세기 주한미군의 새 역할과 위상에 관한 세미나'의 두 번째 주제인 '주한미군기지와 병력재배치: 용산기지 이전에 대하여'에 참석한 주요 참석자들의 발표를 요약한 것이다.

윌리엄 립시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

"주한미군은 한국에서의 전쟁 억지력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삶의 질 높여 주어야 한다. 주택개선은 이러한 추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위협이 감소되면 연합사와 주한미군 사령부 건물은 현재 용산 위치에서 타 지역으로 이전시켜야 할 시기이다."

제프리 존스 미상공회의소 회장

▲제프리 존스 미 상공회의소 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외국 투자자들의 한국 투자 원인 중의 하나는 미군이 이 나라에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한국은 큰 혜택을 받고 있다. 미군은 아마도 앞으로 50-60년간 한국에 있을 텐데 이들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편안히 봉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상공회의소 산하 회원사에서만 25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외국투자자들이 한국회사들의 주식 30% 정도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군이 없다면 한국에서의 외국 투자는 기대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위해 미군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통일이 어떤 구조와 형태로 이뤄진다 해도 미군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서 미군의 한국 주둔은 유익하다. 물론 미국도 유익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주한미군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시설은 30-50년 낙후되어 있다. 용산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만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전국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미군이 평화롭게 살면서 봉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한국에 있는 미군기지를 다 가봤지만 미군이 그런 낙후된 시설에서 사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미군은 한국인들의 생활수준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아태 외교분과 소위 위원장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외교분과 소위 위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이 분단된 상황에서 주한미군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10년 전 한미간 용산기지 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전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전 비용문제인데 수십억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전 비용 문제는 용산기지 부지를 민간화하여 자금을 조달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부지를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용산기지 이전 문제는 미국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의지의 문제다.

두 번째 용산미군기지가 전쟁 억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 2사단이 현재의 위치에 주둔해 있는 한 (용산)기지를 이전한다고 해서 전쟁 억지력은 손상되지 않는다. 한 국가의 수도 한가운데 외국군이 주둔하는 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용산 기지에 주한미군이 주둔함으로써 반미 감정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군 기지 이전 문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의 전쟁 방식이 바뀌고 있다. 현대전은 군인이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기술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한미군 용산 기지 이전은 덜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용산(미군 기지)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오히려 오산과 군산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산 기지 이전은 쉬워질 것이다. 용산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전쟁 억제력을 가지지 못한다.

한국과 미국은 좀더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군사력 보강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한국은 그런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언급하면 인기가 없겠지만 말하겠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있어 영국의 역할처럼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에서 그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전쟁 위협에 대한 억제력 유지라는 과제와 더불어 이런 위협이 없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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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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