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창재의 TV끊기가 어느새 석 달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 창재는 여전히 TV 끊기에 성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약간의 융통성도 생겨서 우리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서 진행하고 있다. '창재의 TV 끊기'를 아는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창재 요즘도 테레비 안보나?"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TV 끊기 석 달째, 창재는 여전히 텔레비전을 안보고 잘 지내고 있다.

우선 달라진 것은 창재가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날이 생겼다. 일주일에 단 한 번 집에서 TV를 보는데, 일요일 오전에 방송되는 어리이 만화영화이다. 오전 8시부터 50분간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집에서 지내는 일요일에는 창재와 건호가 유일하게 집에서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그 동안 몇 번의 일요일을 하루종일 집에서 보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안타까워하였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 50분 방송하는 어린이만화 시간을 시청하기로 하였다.

'friday night family movie'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실패의 대부분은 아빠가 금요일 밤에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창재네가 금요일에 본 영화는 피노키오의 모험, 마우스 헌트, 애들이 똑같아요, 로빈 윌리암스의 잭 등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모두 금요일 밤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볼 수는 없었다. 엄마 혹은 아빠 중에서 한 사람씩 금요일 퇴근이 늦은 경우가 많아서 'saturday night family movie'로 요일이 바뀐 경우도 많았고, 딱 한 번은 창재와 건호 둘이서 '피노키오의 모험'을 본 날도 있었다.

아이들만 비디오를 보게 하는 경우는 역시 'TV와 비디오'에게 베이비 시터를 시키는 꼴이 되어버려서 별로 좋지 않았다. 비디오를 보는 경우에는 반드시 가족이 함께 보는 규칙을 지켜야 하며, 엄마, 아빠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비디오를 보는 것이 좋다.

또 다른 실패 이유는 우리에게 'friday night family movie' 프로그램을 알려준 '장성희 님'이 사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토요일에도 엄마, 아빠는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에 영화를 보는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재는 다음날 학교에 가기 위해서 숙제를 해야 하고, 숙제가 끝난 후에 영화를 보게 되면 잠자는 시간이 너무 늦어져 다음날 일찍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friday night family movie' 약속이 여러 번 지켜지지 않자 급기야 창재는 "아빠 아무 날이라도 그냥 가족이 다 빨리 모이는 날 볼까요?"하고 타협안을 내놓는다. 이것은 금요일 저녁을 놓치면 비디오를 못보고 한 주일을 보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는 제안이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는 불규칙적으로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어서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에서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가족영화시간'을 계속 진행하기로 하였다.

TV 끊기 석 달째, 꾸준히 계속 되는 긍정적인 변화 중에서 엄마, 아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창재가 스스로 저녁시간을 유용하게 보낸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에 창재는 엄마, 아빠 중에서 먼저 퇴근하는 사람과 집에 돌아오면, '숙제와 일기'를 가장 먼저 챙긴다.

예전에 텔레비전을 볼 때는 저녁마다 반복되는 엄마, 아빠의 "창재야 숙제 다했냐?, 숙제 먼저하고 테레비 봐라!"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TV를 끊고 나서 창재는 알아서 숙제하고 일기 쓰는 자신의 일을 챙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엄마, 아빠에게 도움되는 일은 아침 출근시간이 덜 바쁘게 된 것이다. 방학 동안에 TV끊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석 달째를 맞으며 달라진 모습 중에 하나가 아침 출근시간에 여유를 찾게 된 것이다. 엄마, 아빠의 출근시간을 가로막으며 아침 방송에 한눈을 팔던 창재가 밥 먹고, 학교 갈 준비를 대부분 혼자서 해낸다.

반대로, 집에서 TV를 보지 않는 불편함 중에 하나는 뉴스를 시청할 수 없어서 세상소식에 조금씩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창재 엄마와 아빠는 남들이 다 아는 소식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문을 보기는 하지만,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가 다루는 내용에 차이가 있고 신문이 텔레비전만큼 리얼하게 전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보름여 동안 사무실을 이전하느라고 신문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창재 아빠는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전쟁 소식도 잘 모르고 지낸다. 그렇지만, 불편해서 못살 정도는 아니다. 일방적으로 쉬지 않고 마구 전해주는 텔레비전 뉴스보다는 조금씩 소식이 늦기는 하지만 인터넷과 신문으로 TV 뉴스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지낸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창재 엄마는 "TV끊기를 계속하고, 6개월이나 1년쯤 지난 뒤에 텔레비전을 골라보는 훈련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어른도 아이들도 텔레비전의 노예가 되거나 텔레비전에 빠져들지 않고 올바로 선택하며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