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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대로 발트어는 유럽의 대표적인 언어인 인도유럽어족의 한 일파이다. 주변으로 슬라브, 북유럽 등의 문화권과 맞닿아 있지만, 그들의 언어와는 별개의 어군을 이루고 있다.

리투아니아어의 경우 폴란드어, 러시아어 등의 슬라브어, 라트비아어의 경우 독일어와 북유럽어의 영향이 상당히 두드러지는 편이다. 인접국가들간의 언어적인 영향은 항상 있는 일이므로, 그런 역사적 추이 속에 한 민족의 언어는 상당한 변화를 하게 된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어 같은 경우는 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는 게 낫겠다. 예를 들어 지금 사는 한국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고려 시대로 갔을 경우, 고려 사람들과 지금 쓰는 우리말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당근 불가능. 분단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의 남북한 언어에도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이때, 고려인과 현대 한국인과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어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1547년 '마즈비다스(Mazvydas)'라는 신부가 리투아니아어로 최초로 발간한 책 '교리문답(katekizmas)'에 나오는 중세 리투아니아어는 리투아니아어를 조금 아는 이 외국인도 원문만 보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나라 말쌈이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하던 시절에서 100년 차이가 나는 시절의 언어이다.

리투아니아어는 현재 사용하는 인도유럽어족 언어 중 가장 고대 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리투아니아어는 요즘은 쓰이지 않는 산스크리트, 다시 말해 현재 인도의 고대언어 중 하나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단어라던가 문장 구성에서 많이 남아 있는 산스크리트어어와 리투아니아어의 공통점은 많은 언어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은 네로 학정의 폭정을 피해 로마에서 탈출한 귀족이라는 전설이 있는 만큼, 라틴어와의 연관성도 아주 많다. 현재 다른 인도유럽어족 언어에서는 쓰이지 않는 라틴어식 동사변화나 분사, 구문 등이 아직 리투아니아어에 많이 남아 있다.

실제로 리투아니아인의 이름을 들으면 꼭 소설 '쿠오 바디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처럼 들릴 때가 있다. '마리우스' '율리우스' '게디미나스' '비타우타스' 등등. 그리고 라틴어처럼 단지 동사 변화 하나로 이 문장의 시제, 태, 완료 여부를 알 수가 있다.

리투아니아어가 이렇게 변화를 많이 겪지 않고 지켜져 올 수 있던 것은 상당히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러시아어가 공식어였던 제정러시아 시절이나 소련 시절에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질이 상당히 높아서 정통 리투아니아어를 배우는 데 별 문제가 없었으며, 가정에서는 전부 리투아니아말은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또 리투아니아어 표기가 전면 금지되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리투아니아 민족정신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 현대 리투아니아 문화의 틀을 많이 갖추게 되었던 만큼, 인간이란 누르면 누를 수록 더 자신의 것을 끌어안는 본능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발트어는 상당히 인상적인 명사어미를 가지고 있다. 발트어도 인도유럽어족의 한 일파이니만큼 명사마다 남성명사, 여성명사 하는 성이 존재한다. 리투아니아어의 경우, 여성명사에는 다른 유럽어와 비슷하게, 어미로 a나 위에 점이 달린 e(예 라고 읽는다)가 붙는다. 남성명사의 경우는 -as,-us,-is 등이 붙는데 as어미가 월등하게 많다.

그래서 리투아니아에 들어오는 외래어의 경우 as를 붙여 리투아니아어식 버전(?)을 만들곤 하는데, 전화는 telefonas(텔레포나스), 리투아니아에서 자생된 것이 아닌 축구는 futbolas(풋볼라스), 극장은 teatras(테아트라스), 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Seulas(세울라스), 버스는 autobusas(아우토부사스) 그리고 필자의 이름은 리투아니아어로 'Dzinsokas(진서카스 *&%$&%*???!!)'.

자신의 이름 뒤로 as라는 어미를 붙히기 곤란한 사람(예를 들어 상호, 영호, 기영 같은)이나 여성어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이름의 경우 리투아니아사람들이 문장에서 사용하는데 상당한 애를 먹을 수 있다.

그 어미들이 변화하면서 문장 속에서 의미를 전해주는데 그 어미가 없으면 그 단어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사람'에게' 주었단 말인지, 그 사람'이' 주었단 말인지, 그 사람'을' 주었단 말인지, 전치사 없이 명사어미변화에 많이 의존하는 리투아니아어에서 그놈의 as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의 자국어 사랑은 다른 나라에 못지않아 보인다. 일단 외래어가 리투아니아에 들어왔을 경우, 그것을 현지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언어위원회가 있어서, 방송이나 신문, 광고 등에서 쓰이는 리투아니아어를 심사하고 교정하며, 심한 경우 벌금까지 매기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말한대로 외래어를 리투아니아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맥도날다스(MacDonaldas ^_^)에서 파는 햄버거라는 말은 '고기가 들어간 빵'이란 뜻의 리투아니아어 명사로 바꿔 버렸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인들이 이미 햄버거라는 영어단어에 is라는 리투아니아어 남성명사 어미를 붙인 채 사용을 시작한 이후였으므로, hamburgeris라는 명사와의 경쟁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면 메뉴에 햄버거와 비슷한 단어는 없을 수가 있으나, 햄버거 라고 하면 다 알아듣긴 한다.

리투아니아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가 않다. 사실 어려운 언어이긴 하다. 익혀야 하는 문법내용이 많고, 또 말한 대로 라틴어처럼 여러 문장을 단지 '동사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분사구문 등이 아주 발달해 있기 때문에 동사의 변화형태를 익히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렵지 않다고 단언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규칙이 명확하고 논리적이고 예외가 많이 없어, 배우다보면 심지어 에스페란토어처럼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언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옆 나라 폴란드나 에스토니아 등과 비교해 볼 때, 리투아니아어는 정말 배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언어이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복잡한 리투아니아어를 정리하여 현대 리투아니아어로 만든 장본인은 '요나스 야블론스키스(Jonas Jablonskis)'라는 사람으로, 리투아니아 현대사를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 비타우타스 란스베르기스(Vytautas Landsbergis)의 먼 친척 뻘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지면에서는 별도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발트어에도 별도의 특별한 표기가 있음을 알아두기 바랍니다. 
발트3국에 대한 필자의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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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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