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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재 가족의 TV 끊기 세번째 날. 아빠는 어떤 즐거운 일로 저녁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며 퇴근하였다. 창재 엄마는 오늘 당직근무고, 이모집에서 창재, 건호 그리고 아빠가 모두 저녁을 먹고 8시쯤 집으로 왔다.

아빠는 오늘 저녁 음악 감상을 위하여 '서편제'를 준비하였다. 영화 김수철이 작곡한 영화 서편제의 라이브 음반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금 소리, 중간 중간에 영화에서 들었던 남도 창이 섞여 있는 음반이다.

아빠는 방석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명상을 하며, 음악듣기에 몰입했지만, 그 음악은 아무래도 창재와 건호에게는 역시 무리였다. 결국 둘은 큰방과 작은방 침대를 오가며 뛰고, 구르고, 부딪히고, 울고, 달래고 그렇게 40분짜리 음반 한 장을 소화(?)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책읽기 시간. 창재는 첫째 날부터 읽기 시작한 '보리타작하는 날'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오늘도 화장실에서 동화 한 편을 모두 읽고 나왔다. 창재는 화장실에만 가면 책을 들고 들어가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다. 엄마, 아빠를 보고 배운 것이라 나무랄 수도 없지만, 창재 아빠는 창재와 건호의 배변 습관이 나빠질까봐 걱정이다. 요즘은 건호도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책을 들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셋째날 책읽기. 아빠는 정수복 선생님이 최근에 쓴 '바다로 간 게으름뱅이'를 읽고, 건호는 '붕붕차차' 그림책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다섯 살짜리 건호가 끼여 있으니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재미없다" "아빠 이거 읽어 조" "호 야는 재미없다. 딴 거 하자"하며 연신 방해를 한다.

셋째 날 마지막 프로그램은 책 읽어주기. 아빠가 읽어주던 어린왕자는 창재가 이모집에 가지고 가서 두고 왔기 때문에 오늘은 창재가 가족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하였다.

창재는 오늘 저녁에 읽었던 '보리타작하는 날' 중에서 '곶감 이야기'를 읽어준다. 보리타작하는 날의 주인공은 창재 또래의 현이와 건호보다 조금 더 먹은 석이가 주인공이다. 오늘 이야기는 현이와 석이가 할머니께서 감을 깍아서 곶감을 만들기 위에 매달아 놓은 것을 할머니 몰래 먹다가 탈이 난 이야기이다.

"곶감 많이 먹으면 똥 못눈다"는 할머니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달고 맛있는 곶감 맛 때문에 욕심을 부린 석이가 그만 똥구멍이 막혀버렸다. 할머니는 피마자 기름을 먹이고 대꼬챙이로 석이의 똥구멍에서 똥을 파내는 이야기이다. 사실감 있게 그려진 삽화와 생생하게 쓰여진 글이 연방 웃음을 머금게 하는 이야기이다. 창재는 책을 읽어주며 마치 자신의 일인 듯 부끄러워한다.

책읽기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무렵 아빠가 창재한테 묻는다.
"창재야 테레비 안보니까 뭐가 안 좋아?"
"쫌 심심해요"
"그러면 테레비 안봐서 좋은 거는?"
"엄마, 아빠랑 우리 가족들이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좋아요"
"책읽기는 어때?"
"쪼끔 재미있어요"

창재 가족의 TV 끊기 셋째 날, 분명히 좀 심심하다. 그렇지만,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은 무척 늘었다. TV를 대신할, TV보다 더 재미있는 저녁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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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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