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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허브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소위 말하는 서양허브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 하고자 한다.

아침방송 코너물로 '허브'시리즈를 제작하기로 결정해 놓고 막상 시작하려니 첫번째 이야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당연히 시리즈니 만큼 허브개론을 할까?', 아니면 '허브 열풍을 스케치 해볼까?'등등.

이때 도움을 주신 분이 바로 '채식의 힘'이라는 기획물을 하셨던 윤동혁 PD였다. 그 분의 조언은 허브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한 가정을 택해서 허브가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집이라는 특정공간 안에서 러닝타임 10분을 가져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그래도 고민이 가시지 않았다. 만약에 촬영대상이 사는 집이 아파트라면 10분을 끌고 가기는 더 힘들어진다. 왜냐면 카메라를 여기 찍고 돌려서 다른 방향을 찍고 다시 돌리면 아까 그 화면이 나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교외에서 즉 너른 마당에, 그리고 허브도 베란다에서 화분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텃밭 형식으로 기르는, 아마추어 아닌 아마추어 허브매니아를 찾기로 했다. 그래서 섭외를 하게 된 곳은 바로 강릉의 한 아주머니댁이었다.

나름대로 실내가 아닌 실외 촬영을 많이 할 수 있는 촬영대상이었지만 그래도 촬영할 때는 힘이 많이 들었다. 최대한 그림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했으므로...

힘든 촬영을 끝내고 방송도 잘 나갔다. 이 아이템을 제작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허브의 다양한 용도를 보여주는 정보프로그램 형식을 따라갔지만 사실 촬영에 협조해주신 분이 허브를 기르고 매니아처럼 허브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허브가 자연친화적 삶을 가능하게 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것'이었는데 프로그램 내에서 잘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허브를 활용하는 법은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사치롭지도 않다. 그 사용법을 알아두면 유용할 것 같아 당시 취재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일전에 한 일간지에서는 21세기에 떠는 소자본 창업 아이템으로 몇 가지를 뽑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는 향기 나는 식물 허브와 관련된 업종도 있었다. 소자본이니 만큼 결국 허브 숍 아이템을 지칭한 것인 듯했는데 좌우지간 이제 허브가 우리네 생활과도 아주 밀접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기사였다.

허브는 단순히 향이 있는 식물로 알려져 있어 방향(芳香)과 관련된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허브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활용법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건강 혹은 미용의 목적에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허브를 좋아하고 허브를 통해 많은 것을 하고 있는 일반인 한 분을 만나 그가 어떻게 허브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알아 보았다. 시중에는 허브관련 제품들이 수없이 나와 있지만 돈을 주고 사지 않더라도 집에서 허브를 조금이라도 기른다면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법이 무궁무진함을 보여주고자 특별히 일반인을 선택한 것이다.

강릉에 사는 주영주 아주머니의 댁은 강릉시내에서 차로 20여분 들어가야 하는 산골이다. 주소는 강릉시로 되어 있지만 앞뒤로 나지막한 산이 버티고 있는 골짜기에 그녀의 집이 있다. 대학교수인 남편과 초등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주영주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허브 하나로 가족의 삶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인물이었다.

강릉시내에 살다가 3년 전 이곳 산골로 이사를 오면서 그녀에게 새로 생긴 것이 있었다. 바로 텃밭이었다. 그녀는 이 텃밭에 허브를 한가지 두가지씩 심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은 거의 20종류가 자라는 허브 밭으로 변모했다. 20종류면 웬만큼 유명한 허브는 다 갖추고 있는 셈인데 주영주 아주머니는 이걸 그냥 기르는 것이 아니라 길러서 방향제, 요리, 인테리어, 목욕제 등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집안에 들어서면 곳곳에 다양한 허브들이 배치되어 있다. 물론 화분도 있지만 대개는 한번 가공한 것들이었다. 먼저 거실에는 말린 허브로 만든 허브리스가 여러 군데 걸려 있었고 보라색 꽃이 예쁜 라벤더가 그대로 말려져 집안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거실, 침실 그리고 아이들 목욕탕 등 여러 군데 있었는데 심지어 옷장에도 조그만 소쿠리 가득 말린 라벤더가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침실의 베개 밑에는 허브 향낭이 놓여져 있었다. 이렇게 심지어 아이가 공부하는 책상머리 맡에는 로즈마리 향낭이 놓여 있었고 옷장에는 말린 허브로 만든 옷걸이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텃밭에서 기른 허브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수제로 만들어진 다양한 허브 용품들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 배치였다. 즉 각각의 허브의 효능에 맞게 배치해 놓은 것이었다. 물론 허브 리스나 화병에 꽂혀 있는 라벤더는 실내에 은은한 향도 풍기고 장식의 개념으로 놓은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장식의 개념보다는 건강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베개 밑에 허브를 놓는 것은 숙면을 위한 것이다. 숙면에는 라벤더, 로즈, 마조람, 레몬밤 같은 허브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옷장에 배치되어 있는 허브는 방충용이었다. 일반적으로 화학 제품인 나프탈렌을 쓰지만 이를 허브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방충에는 라벤더, 타임, 유칼리, 탄지, 세이보리가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의 책상에 놓여 있는 로즈마리 향은 정신집중에 도움이 되는 허브라고 한다. 당연히 수험생을 둔 집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허브다. 몇 년 전 한 향기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가 뇌집중 아로마를 개발했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매스컴을 탄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허브 향을 추출한 에센셜 오일 중에서 정신집중에 좋은 로즈마리와 다른 몇 가지를 혼합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집에서는 허브를 이용한 민간요법들도 쓰이고 있었다. 막내 아이 정문철 군이 주로 쓰는 방법이라는데, 치통이 생길 경우 텃밭에 있는 페퍼민트의 잎을 진통이 있는 이빨로 씹으면 진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응급처치가 된다고 한다. 또한 치약대신에 말린 세이지나 민트하고 구운 소금을 함께 곱게 갈아서 그 가루를 칫솔에 뭍혀서 치솔질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각종 잇몸병을 막아 준다고 한다. 앞에서 설명한 허브의 기능들은 향을 이용한 것이라면 이것은 약초로서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소개할 아주 유용한 활용법은 각종 허브를 이용한 목욕법이다. 일종의 향기 요법이다. 주영주 아주머니 댁에서는 주로 피로회복을 위한 목욕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목욕은 그 자체만으로도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이때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아 로즈마리나 세이보리, 스위드 바질, 라벤더 같은 허브를 담근 다음, 수증기와 함께 허브 향이 증발할 정도로 우려내어 그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회복에 훨씬 더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원리는 따뜻한 물의 수증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허브 향이 후각을 통해 인체로 흡입되어 인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때 생 허브를 사용할 수도 있고 말린 허브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피로회복만이 아니라 생리통이나 다른 간단한 질병은 그에 맞는 허브를 선택해서 목욕법을 취하게 되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을 위해서는 로즈마리 우려낸 물에 발목욕을 해도 좋다고 한다. 또한 발냄새 제거에는 로즈마리, 세이지를 이용한 발목욕을 할 수도 있고 탈모방지를 위해서는 샴푸 후 타임과 세이지를 우려낸 물에 린스를 해도 좋다.

주영주 아주머니의 허브 활용법 중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것은 요리 부분이다. 이태리 요리나 기타 서양 요리에서는 오래 전부터 허브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되는 파슬리도 허브고 이태리 요리의 단골 바질도 허브다. 그녀는 독특한 허브 요리법을 개발해 지방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댁에서는 여름에 얼음을 그냥 얼리지 않는다. 냉장고에 딸려 있는 얼음용기에 얼음을 얼릴 때 칸칸이 오레가노나 민트를 한 잎씩 따서 넣으면 허브 얼음이 된다. 이 얼음을 음료수나 물에 띄워서 마시면 청량감을 더해 준다고 한다. 또한 돼지고기나 닭 요리처럼 느끼한 고기요리를 할 때는 로즈마리나 타임을 첨가해 느끼함을 없애기도 한다. 또한 취향에 맞는 향을 골라 샐러드에 넣기도 한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향을 가진 허브들을 골라 비빔밥에 넣기도 하고 아이들 간식으로 쿠키를 구울 때 허브를 한 잎씩만 올려 놓아도 특별한 간식이 된다고 한다.

허브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라면 허브차다. 허브의 붐과 함께 허브차를 전문으로 파는 카페도 생기고 있지만 허브차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기 좋아하는 허브를 말린 다음 녹차처럼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시면 되는 것이다. 각각의 허브차는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식욕을 억제해 주는 향을 가진 허브티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카모마일 꽃을 말려서 먹는 카모마일 차는 초기 감기나 감기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주영주 아주머니 댁에서는 봄에 심은 허브가 여름을 지나 한창 자라면 윗부분들을 잘라내어 말린 다음 작은 병들에 담아 놓고 취향에 따라 혹은 증상에 따라 맞는 허브차를 즐긴다고 한다.

실로 주영주 아주머니의 허브 활용법은 무궁무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책이나 인터넷 혹은 각종 잡지를 통해 얻은 허브 상식을 얻은 다음 자신의 텃밭에서 자란 허브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 본다는 것이다. 허브 숍에서 돈을 주고 사면 간단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아주머니가 이렇게 직접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먼저 텃밭에서 허브를 기르면 아이들에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그 허브로 뭔가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 중에서도 주영주 아주머니가 내세우는 허브의 가장 큰 매력은 부분적이지만 자연친화적인 삶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치약, 린스, 화학방향제, 그리고 감기약 등등 인공 화학 제품이 당장에는 몸에 좋을 수 있지만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조금씩 몸에 독이 되기 때문에 자연의 산물인 허브를 이용해 대체할 수 있다면 그 만큼 자연친화적인 삶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복잡한 도시에서 혹은 좁은 아파트에서 허브 화분을 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주영주 아주머니는 여러 사람들에게 허브를 길러 여러모로 한번 활용해 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자신의 텃밭에서 자란 허브들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주 선물한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www.degadocu.com)에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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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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