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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이야기라기 보다 영상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던 경험을 한가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최근 본인은 모 방송사 아침 방송에 향기 나는 식물 '허브(Herb)' 시리즈를 만들어 내보냈다. 허브라는 단일한 소재를 가지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펴본 기획물이었다.

윤동혁 PD가 아침방송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미니다큐'의 형식을 취하고자 여러모로 노력했다. 오락적인 면을 다소 지양하고 유용한 정보 그 중에서도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좋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자 노력했다. 여러 편을 했는데 특히 우리 허브에 대한 취재를 할 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래서 당시 취재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소개한다.

허브 하면 우리는 흔히 서양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허브라는 말이 사용 되게 된 것은 10여년 전 농업 하는 분들이 외국에서 라벤더니 로즈마리니 하는 향기 식물을 들여와 재배하고 이를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 판매를 하면서 였다.

당연히 우리는 외국의 향기 나는 식물을 허브라고 하는구나 라고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허브란 단어상에서는 별 뜻이 없다. 다만 '향이 있어서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정도로 생각 하면 되는데 단어의 뜻은 그보다도 단순하여 그냥 '식물'을 의미하는 외국어일 뿐이다.

▲ 우리 나라 특산물 백단향. 서양허브 타임계통의 허브 ⓒ 박성호
향이 있어서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이라고 하면 지금의 외래 허브 도입 이전에 한국에 없었을 리가 없다. 우리도 전통적으로 향기 나는 식물을 이용해 왔다. 다만 서양의 허브처럼 식물의 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우리가 한방에서 사용하는 천궁이니 당귀니 인삼이니 박하니 하는 것들이 서양의 허브도감 같은 곳에 다 올라와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 동양의 한의사를 '허브닥터'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약재들은 식물성 외에 동물성인 녹용이니 웅담 같은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식물성인 '약초'들이라는 점에서 허브닥터라고 부르는 것일 것이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서양에서 허브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식물들은 우리의 한방에서 예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것이라는 점이다. 허준의 동의보감 '탕액'편을 보면 정향, 백단향, 백두구, 회향 등의 약재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각각 서양허브에서 클로브 버드, 샌들우드, 카드몬, 팬넬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정향이나 동박 박사들이 예수가 태어났을 때 가져 다 바쳤다는 유향도 이미 우리 한방에서 사용되었다.

▲ 본초학에 나오는 로즈마리(미질향)
ⓒ 박성호
더더욱 놀라운 것은 서양허브의 대명사 로즈마리는 본초강목을 보면 '미질향'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본초강목은 우리의 의학서적이 아니라 중국 이시진이 쓴 책이므로 미질향 즉 로즈마리가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약재로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와서 사용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허브를 이용한 대표적인 대체의학이라고 할 수 있는 향기치료(아로마테라피)도 우리의 한방에서는 부분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향낭을 허리에 차게 한다든지, 향나무 대팻밥을 베개에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런 한약재를 제외하고 과연 우리가 예전부터 사용해 온 허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제일 먼저 인삼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인삼은 이제 전세계에서 재배하는 식물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고려인삼 즉 한국의 인삼을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유는 우리의 토양과 기후가 인삼재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의 허브재배를 공부하기 위해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농부가 그곳에서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인삼이 허브의 왕이라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좀더 자세히 이야기 하면 허브를 재배하는 호주 농부가 한국 농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허브의 여왕은 라벤더지만 허브의 왕은 인삼이다. 그런데 인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신네 나라에는 왜 허브협회나 허브재배와 관련된 조직이나 단체가 없는가?"
그 말을 들은 우리 농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허브를 재배하는 사람들의 단체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인삼의 가치를 짐작케 하는 이야기다.

ⓒ 박성호
다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은 우리의 향신료로 쓰이는 식물들이다. 마늘, 고추, 파, 양파, 생강 등 한국의 향신료들은 이미 외국에서 허브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는 음식의 향신료로만 사용하지만 그들은 이 식물들에서 주로 아로마(향)을 추출하여 에센셜 오일 형태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마늘은 우리에게도 그 쓰임새가 약간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마늘의 항암효과가 알려지면서 약용으로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필자가 아는 어떤 분의 아버님은 복합적인 암을 가지고 계셨는데 수술을 하고 나서 생마늘을 통으로 호일에 감싸서 살짝 구운 다음 하루에도 몇개씩 이걸 드신다고 한다. 그랬더니 굳은 살이니 수술한 상처니 투병 중에 나빠진 살에 새살이 돋아 나더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마늘을 먹으라고 권유하고 다닌다고 한다. 이 외에도 파나 양파 같은 식물들은 대체의학 중 동종요법에서 그 새로운 사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고 한다.

▲ 순대요리 속의 허브 깻잎. 깻잎은 요리외에 라벤더처럼 향기치료에 사용할 수도 있다
ⓒ 박성호
깻잎도 마찬가지다. 깻잎은 아마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허브 중의 허브일 것이다. 신림동 순대골목에 가면 깻잎 없이는 장사가 안된다. 순대요리에 들어가는 깻잎의 양은 엄청나다. 거의 순대 볶음을 다 뒤덮을 정도로 많이 사용한다. 이유는 고기의 노린내를 없애준다는 서양의 몇몇 허브처럼 돼지고기의 느끼한 맛을 없애고 독특한 향으로 입맛을 돋구어 주기 때문이라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돼지고기 요리에 비타민C를 보강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용도가 이렇기 때문에 당연히 깻잎은 허브가 되는 것이다.

진남 한의원 박성은 원장에 따르면 이 깻잎을 요리가 아니라 향기 요법으로 사용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깻잎은 라벤더 처럼 차조기과의 식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보채면 깻잎을 베개 속에 넣어 준다거나 새벽녘에 따뜻한 물에 깻잎을 우려내서 그 물로 아이의 배에 찜질을 해주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식물들이 서양허브 도입 이전에 이미 우리가 사용한 허브인 셈이다.

▲ 우리의 허브 축제 단오날에는 우리의 다양한 허브들이 등장한다 ⓒ 박성호
식물을 이용하는 데에 다른 문화권에 뒤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허브축제 같은 것이 없었을까? 있었다. 바로 음력 5월 5일 단오는 우리 민족의 허브축제라고 할 수 있다. 단옷날 우리 선조들은 쑥이나 익모초를 캤다. 이날 캔 쑥이나 익모초는 다른 날 캔 것에 비해 약효과 월등히 낫다고 생각했고 이날 캔 것을 말려서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경북 자인면에 가면 단옷날 한장군 놀이가 행해지고 있는데 이때 쑥을 한장군이 모셔져 있는 곳에 걸어 놓는다고 한다. 의미는 악귀를 막는다는 의미인데 쑥은 벽사의 의미보다는 우리 민족에게 아주 훌륭한 약재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천의 한 할머니의 기억에 의하면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면 요강에다 쑥을 삶아서 넣고 그 쑥에서 올라오는 증기를 쐬기 위해 요강을 타고 앉아 있곤 했다고 한다. 강릉대 환경조경학과 조태동 교수에 의하면 민간에서는 이런 쑥 찜을 쐬는 방법이 이용되었지만 조선시대 왕궁에서는 산모가 해산을 하면 반드시 쑥 목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쑥을 이런 방법으로 사용한 것은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공통적인 사용법에 속한다. 전세계적으로 쑥은 각종 부인병에 효과가 있어 '어머니의 풀-머그워터'라고 불리고 있다.

익모초의 경우 여름에 장독대에 서리를 맞힌 다음 달여 먹으면 여름의 더위를 이길 수 있다고 해서 많이 사용되었고 이걸 삶아서 짓이겨 동글 동글하고 작은 경단을 만든 다음 배가 아프면 먹기도 했다.

▲ 한국의 미용용 허브 '창포' ⓒ 박성호
또한 단옷날 여인네들은 창포뿌리나 줄기를 삶아서 그물로 머리를 감았다고 하니 창포는 우리 민족의 미용용 허브인 셈이다. 창포의 경우 직선 하천이니 하천의 범람과 유실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콘크리트들로 인하여 많이 사라졌다. 심지어 어떤 식물학자는 창포를 멸종위기식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우리의 허브는 부지기수다. 서양허브에서 타임으로 불려지는 식물은 우리 들판에 나는 백리향 바로 그것이며, 페퍼민트는 박하의 일종이다. 특히 백리향은 우리나라 특산물로 손꼽히기도 한다.

박하의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다. 허브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페퍼민트를 우리의 박하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우리 선조들이 들판에서 박하를 뜯어 사용하기도 하고 장독대 주변에 심어 재배를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들은 우리의 자생식물이 아닌 코리아 민트 혹은 제페니즈민트, 노스(NORTH)민트일 확률이 높다. 이 식물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들어와 재배하면서 한반도에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 예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들판에서 본 박하는 무엇일까? 그것은 개박하(캐트닢-서양에서는 가짜라는 의미에 '개'가 아니라 '고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듯하다)일 가능성이 높다. 개박하는 박하에 비해 멘톨성분이 적게 들어 있어 화한 느낌이 적지만 최근에 한 자연요법을 연구하는 분에 의하면 이 개박하가 신경안정에 어떤 다른 식물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 향이 너무 좋은 배초향 일명 야박하, 방아잎 ⓒ 박성호
또 다른 한가지는 야박하라고 불려지는 방아잎이다. 배초향이라고 불리는 이 식물 또한 박하 같은 화한 느낌을 주어 예전부터 음식에 많이 넣어 먹었는데 최근에는 그 사용법조차 다들 잊어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주절이 주절이 이것도 우리 허브 저것도 우리 허브라는 이야기를 늘어 놓았는데 이쯤에서 허브의 정의를 다시 한번 이야기 해야 할 듯하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허브로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가 나올 듯 하다.

허브는 크게 보아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 모두를 말한다. 그리고 좁게 보면 '향이 있어서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을 말한다. 그런데 그 유용성이란 식물 그 자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과 실패를 통해 사용법을 만들면서 생기는 것이다.

요즘 식물은 하나의 자원으로 간주된다. 그 중요성이 새로이 부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서양의 허브는 몇 천년 전부터 민간에서 혹은 산업적으로 그 쓰임새가 연구되고 개발되고 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전세계로 수출도 되고 허브를 이용한 각종 제품들도 나오고 하나의 자원으로서 톡톡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식물에 대한 관심은 너무 보잘 것 없다. 예전 사람들은 들판에 나는 풀들의 이름을 대강은 알았고 민간요법으로서의 쓰임새도 많이 알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고작 쑥이나 냉이 정도나 알까 그 나머지 들판에 나는 모든 풀들은 잡초라고 생각해 버린다.

자생식물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또한 식물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닌 활용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양허브로 만든 미용제품이나 에센셜 오일이 백화점의 고가 수입코너를 차지하고서는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는데 실상 이는 우리가 우리 허브, 우리 식물은 외면한 채 외국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호하는 문화적 사대주의의 또 다른 한 현상으로 보인다.

분명 허브는 식물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활용성, 혹은 유용성이 있을 때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 들판의 수많은 풀들도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의 활용성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땅속의 지하자원만 자원이 아니라 들판의 풀도 아주 유용한 자원임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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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