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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아하까 데 후아레스(Oaxaca de Juárez) 시에 도착한다. 쭉쭉 직선으로 곧게 뻗은 거리 양편엔 다채로운 빛깔로 채색된 집들, 그 거리를 걸어 소깔로(Zócalo)로 향한다. 이따금 열린 문 너머로 살짝 얼굴을 보여주는 아담한 정원들, 그 한복판에 개울물 소리를 내며 흐르는 조그만 분수 하나, 그 주변엔 활짝 핀 부감빌리아(Buganvilia)를 비롯한 여러 꽃들, 그 정원을 에워싸고 가족들의 방이 자리를 잡고 있으리라.

1529년 스페인 사람은 믹스떼까(Mixteca) 족과 사뽀떼까(Zapoteca) 족이 풍요로운 문명을 가꾸어 온 이곳에 도착한다. 그들은 지금의 소깔로 근처에 바로크 풍의 건물들을 짓기 시작한다. 그 이후 이 도시는 스페인 제국 부왕령 누에바 에스뺘냐(Nueva España,스페인 제국이 현재의 멕시코를 포함한 중미 지역에 세운 식민지 국가 이름)의 남부 거점 도시로 발전한다.

중앙 광장 소깔로 옆엔 알라메다 데 레온(Alameda de León)공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공원에 자리잡은 "라 까떼드랄" 성당은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좌우대칭의 바로크풍 건물로 고색창연한 외양으로 나를 맞는다. 1533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오아하까 분지를 강타한 지진으로 1730년에 재건했다고 전해진다. 성당 정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품이다. 벽감에는 성인들의 입상이 서 있고, 건물 정중앙엔 "성모의 승천"을 테마로 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소깔로는 다섯 개의 아기자기한 돔지붕이 팔각 모서리의 중앙과 네 방향을 부드럽게 덮고 있는 아라비아풍의 끼오스꼬(Quiosco,정자)가 서 있었다. 그 주변엔 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오아하까 분지의 땡볕을 식혀 주고 있다. 멕시코의 활력은 언제나 그 마을의 소깔로에서 볼 수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나무 그늘의 벤치 혹은 나무 줄기에 기대 서로의 입술을 탐닉하는 열정적인 연인들, 조악한 음질이지만 자기 노래를 담은 앨범을 손수 제작해 팔고 있는 무명 가수, 구멍난 남방 뒤로 하얀 내의가 비치지만 색소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부는 할아버지, 근처를 배회하는 오아하까 시골 출신의 원주민 청년 실업자들, 그리고 오늘 합류한 오아하까 주의 교사들.

오아하까 주 청사를 에워싼 교사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은 오아하까 주의 교사들은 오아하까 주 정부 청사를 에워싸고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여교장 아순시온 모레노(Asuncion Moreno. 43) 씨는 오늘부터 나흘간 오아하까의 일곱 개 지역 가운데 "라 까냐다(la Cañada, 계곡)" 지역 교사들이 농성을 벌이고 각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계속 시위를 벌인다고 전한다.

▲라 까떼드랄 성당의 정면 모습, 푸르스름한 외벽은 세월의 더께가 앉아 있다. ⓒ 박정훈
나는 그녀를 통해 치아빠스 주와 더불어 원주민 인구가 가장 많은 이곳 오아하까의 초등학교는 원주민어와 스페인어를 함께 가르치는 이중언어학교와 스페인어로 수업하는 일반 학교로 나뉜다는 것, 멕시코 공립학교에서는 교장이든 교사든 별 차이가 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스승의 날은 교사들이 박수를 받는 날이 아니고 시위를 시작하는 날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오아하까 교사 월급은 2~3천 페소(한화 30만원~40만원 상당)에도 못 미치며, 교재조차 구비되어 있지 못해 프린트 복사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 믿기지 않은 현실 뒤에는 71년간의 제도혁명당 정부의 부패가 자리잡고 있다고 같은 학교 여교사 가브리엘라(Gabriela,30)가 덧붙인다. 교사들의 조합조직인 전국교육노동자노조(SNTE)가 정부와 결탁해 부패를 더욱 심화시켜왔다면서 그래서 자신들은 전국교육노동자노조(SNTE) 틀 내부에 정부에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전국교육노동자조정위원회(CNTE)를 조직했다고 말한다.

이들이 수업마저 팽개치고 거리에 나선 데는 비센떼 폭스 정부의 세제 개혁안도 크게 작용했다. 가브리엘라는 식료품, 약, 책 세 가지 분야에 세금을 15% 인상해 빈민층을 돕겠다는 정책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고 반문했다. 빈민의 호주머니에서 15% 더 뜯어내 빈민을 돕겠다! 이 황당한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둔갑한 배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멕시코 코카콜라 경영자 출신인 현대통령의 철학이 절대 빈곤이라는 사회문제와 만나면 이런 정책도 생긴다.

교사들이 소깔로 주변의 건물 벽에 붙여 놓은 포스터는 정부 정책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음식, 약, 책에 대한 세금에 반대합니다.

책은 소비재도 사치품도 아닙니다.
책은 기억과 상상력과 해방을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들이 건강하다는 이유로 세금을 매겨서는 안됩니다.
건강은 하나의 사업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생명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들의 생명은 과세할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많은 과세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 건강, 상상력을 위하여!"

교사들에게 세금 문제는 경제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이 문제는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문제이다. 가난한 그들이 월급액수를 비교해 도표를 만들어 정부를 비판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저항"은 삶 자체를 위협하는 것과의 근본적인 대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폭스 정부는 그들에겐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정부가 된다.

하기에 이들의 투쟁이 오늘 이곳에 축제를 만들어낸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들에겐 싸우는 과정 자체가 인간적인 삶과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아하까는 올 7월 23일과 30일 전세계의 여행객들을 불러 모을 축제의 모습을 내게 선물했다. 멕시코 최대의 원주민 문화 축제 겔라겟사(Guelageutza) 축제를.

축제의 무대가 된 주청사

▲플로르 데 삐냐 춤의 한 장면, 그녀들의 춤은 삶의 자유로운 율동을 보여준다. ⓒ 박정훈


겔라겟사의 스페인어 명칭은 "언덕 위의 월요일 축제(Fiestas de los Lunes del Cerro)"로 7월 16일 이후 두 월요일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이 축제는 사뽀떼까 족 원주민들이 "베야 비스따"(Bella Vista, 아름다운 전망)라고 부르던 언덕에 자리잡은 "라 이글레시아 델 까르멘(La Iglesia del Carmen)" 교회가 벌이던 성찬 기념 축제 꼬르뿌스(Corpus)축제와 오아하까 원주민들이 센떼오뜰(Centéotl,채 여물지 않은 부드러운 옥수수 이삭을 뜻하는 '엘로떼 Elote'의 여신)에게 바치는 축제가 서로 섞인 일종의 추수감사 축제이다.

이 축제를 통해 원주민들과 스페인 사람들의 문화는 물론이고 스페인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왕들에게서 헐값에 '구입한' 흑인 노예들의 문화도 서로 섞였다.

'겔라겟사'를 위해 먼저 오아하까 주의 일곱 개 지역은 자기 지역의 문화유산을 선뵐 대표단을 선발한다. 중앙 분지, 해안, 계곡, 떼우안떼뻭 지협, 후아레스 산맥, 북부 뚝스떼뻭 지역, 남부 라 믹스떼까 지역 총 7개 지역은 자기 지역의 고유한 음악과 노래를 바탕으로 각 마을의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춤을 추고 나면 각 지역에서 수확한 특산물 즉 '겔라겟사'를 관중들에게 베푼다. 사뽀떼까 족의 단어인 겔라겟사는 이렇듯 "함께 만들고 함께 참여하는 행사"라는 뜻으로 축제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면서 겔라겟사때 "함께 나누는 수확물"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이 축제는 스페인 수도사들의 포교활동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고 식민지 시대에는 원주민, 아프리카인, 스페인 인들간의 불평등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활용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멕시코인들은 이 축제를 온전히 자신들의 문화적 자산으로 가꾸었으며,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교사들의 저항 속에서 빛나고 있다.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는 두꺼운 옷을 입고 서로 과묵하게 춤을 추는 미헤(Mixe)족 원주민들의 춤은 쌀쌀한 산악지대에서 가축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살아온 듯한 조용한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두명의 남녀가 수작을 걸고 연정을 주고 받는 장면을 재현하는 하라베 믹스떼꼬 Jarave Mixteco는 남녀상열지사의 솔직 적나라함을 보여준다.

▲하라베 믹스떼꼬 춤의 한 장면, 남자춤꾼이 입에 문 꽃은 여자춤꾼이 귀에 꽂고 있던 것. ⓒ 박정훈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무늬의 통 원피스 우이삘(huipil)을 입고 파인애플을 들고 추는 북부 뚝스떼뻭 (Tuxtepec)지방의 플로르 데 삐냐(flor de piña)를 춤는 여성춤꾼들은 무대를 온통 색채와 무늬로 가득 채운다. 이 춤의 절정은 무희들이 나란히 서서 허리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대목으로 그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몸의 율동은 아주 농염하고 유혹적이다.

해안 지방의 춤은 사빠떼아도(Zapateado)라는 발장단을 맞추는 스페인 춤의 영향을 받아 손수건을 흔드는 남자들과 하얀 레이스가 선명한 원색바탕에 물결무늬를 만드는 치마를 흔드는 여자들이 경쾌하게 춤을 춘다.

중앙분지의 춤인 라 단사 데 라 쁠루마(la Danza de la Pluma,깃털춤)는 깃털로 만든 부채꼴의 머리장식 뻬나추(penachu)를 쓰고 왼손엔 꽃모양을 새긴 나무 조각 마까나(macana), 오른손엔 쇠 속에 돌을 넣은 듯한 소나하(zonaja)를 들고 추는 역동적인 춤이다.

특히 몸을 돌릴 때마다 거대한 깃털 장식은 이들의 움직임을 아주 크게 과장해준다. 이 춤은 권위를 표현하는 듯한 머리 장식이 웅변하듯 고대 원주민들의 제사장 춤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등에 새겨진 초상은 멕시코 카톨릭교회의 성모 과달루뻬였다. 이렇게 이 축제는 기원이 서로 다른 문화가 섞였고 그것이 풍요로움으로 변모했다.

길거리 노점에서 오아하까 전통음식 뜰라유다(Tlayuda)를 산다. 점보 피자만한 또르띠야(Tortilla, 옥수수로 만들어 둥글넙적하게 구운 일종의 전병)에 강낭콩을 익혀 으깨어 바른다. 그 위에 닭, 쇠고기, 돼지고기 가운데 하나와 양배추를 잘게 썰어 넣는다. 그리고 살사(salsa, 소스)를 바른다.

생오렌지 쥬스를 사서 거리를 자리를 잡고 앉으니 한 소녀가 아코디언을 켜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굶주림이 배어 있는 목소리로 처연하고 쓸쓸하게 울려퍼지는 소녀의 노래, 교사들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그 어린 학생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리라.

수업권을 포기한 채 밤을 새워 농성할 교사들, 아마 학교를 그만두었을 그 어린 소녀, 내가 그 소녀를 선생님들이 모인 그 축제 자리에서 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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