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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 벤처가 생존하는 길은 세계 진출밖에 없어요. 시장이 협소한 국내용 제품 개발에 머물지 말고 선진국 시장을 겨냥한 연구 개발을 준비하고 기존 기업들과 경쟁 우위나 짝짓기 가능한 우리만의 강점을 가져야 합니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다지만 (주)씨트리 김완주(60) 사장 앞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다. 더군다나 40대만 넘어도 고령으로 여겨지는 벤처 업계에서 백발이 자연스러운 50대 후반의 나이에 바이오 벤처기업을 창업한 김완주 사장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바로 휴먼게놈프로젝트로 인한 갑작스런 바이오 붐에 아랑곳 없이 '의약품 카피 천국'의 오명을 씻겠다는 일념으로 30여 년간 신약 개발에 몰두해온 한 학자 출신 벤처인의 이야기다.

남양주 공장에서 김완주 사장을 만난 2월 12일은 공교롭게 HGP(휴먼게놈프로젝트)에서 최근 완성된 인간 게놈 지도를 공식 발표한 날이었다. 한국바이오벤처협회 부회장이자 국내 대표적인 생명과학 벤처기업인인 그에게도 분명 큰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유전자 지도 자체를 완성한 것보다는 그 기능을 연구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휴먼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고 무임승차하게 된 우리나라 업체들로선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바이오 벤처 붐으로 뭔가 희망섞인 전망을 기대했던 기자로선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계속됐다.
"지난해부터 관심은 커졌지만 연구, 투자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일 뿐입니다. 미국과 달리 후발주자 입장인 데다 자금, 연구력에서 열세인 상황에서 우리 특성에 맞는 전략수립이 필요하죠."

틈새시장 아닌 '메인마켓'에서 경쟁해야

하지만 열세인 상황을 감안해 틈새시장을 겨냥, 국내시장에만 한정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틈새시장은 곧 시장 자체가 작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시장보다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메인마켓에 들어가 우리의 강점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물량 위주의 경쟁은 안되고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게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씨트리가 선택한 분야는 면역 관련 신약 개발이었다. AIDS와 같이 인간이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질병이 치명적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면역시스템을 조절하는 신약을 개발하면 거의 모든 질병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외국에도 면역 분야에 특화된 기업이 없어 아직 국제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코스닥위원회에 바이오 전문가 필요

지난해 바이엘코리아 남양주 공장을 인수한 뒤 제약사업과 IGY(조류면역항체) 판매로 19억원대 매출을 달성, 다른 바이오벤처기업과 달리 안정된 수익기반을 갖춘 씨트리는 이달 중으로 코스닥 등록을 위해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 코스닥에 등록된 순수 바이오 벤처기업은 마크로젠이 유일한 상황에서 씨트리의 등록 시도는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초창기 투자가 많은 데 비해 실질적인 매출로 이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이오 벤처의 특성 때문에 이들 기업들이 코스닥 등록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

"나스닥에선 바이오 벤처의 특성을 인정해 기술력과 성장성으로 진입 여부를 결정해 이미 30여 개의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상장돼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아직 바이오 벤처의 기술력 평가를 못해 매출, 실적 등 회계학적 기준에 잣대가 맞춰지고 있어요. 코스닥위원회에서도 3자에게 평가를 의뢰하기보다 위원회 내에 바이오 전문가를 둬야 한다고 봅니다."

산학연 두루 거친 신약 개발 전도사

김완주 사장은 최근 국내외 바이오벤처산업의 현황을 정리한 <생명과학과 벤처비즈니스>(2001)란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 머리말에서 신이 자신에게 준 네 가지 선물을 꼽으며 가장 먼저 '약학에 대한 철학'을 들었다. 뚜렷한 비전 없이 약대를 졸업하고 평범한 약사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그를 신약 개발의 길로 인도한 이가 바로 독일 유학시절 은사였던 크로이츠캄프 교수다.

"60년대 후반 독일은 신약개발이 활성화 돼 있었어요. 약학대학이 단순히 약사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 신약을 개발하는 곳이란 사실도 그분 때문에 깨닫게 됐어요."

7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독일 쇄링 제약 연구원으로 있던 그가 귀국한 건 1977년 우리 정부의 해외과학자 유치정책 덕분이었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응용화학연구부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85년까지 유기화학3연구실장을 맡아 각종 화학 기술을 개발, 제약회사에 이전해 산업화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한미약품이 이전받아 개발한 세프트리악손 기술은 1988년 스위스 로슈사에 600만 달러의 기술료를 받고 팔리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세월도 손을 든 늦깎이 벤처정신

이후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있을 당시 퀴놀론계 항생제 'KR10664'을 개발, 다국적 기업인 영국 스미스클라인 미첨사와 2100만 달러 기술료 계약을 체결하면서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된 그는 신약개발을 위한 선진국형 기업모델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기에 이른다. 결국 95년 한미약품 부사장으로 업계에까지 진출한 그는 한미정밀화학 대표를 거쳐 98년 생명과학 벤처기업인 씨트리를 창업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57세였다.

"대학교수나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 대기업 임원과 같은 직위를 포기하고 벤처기업을 창업한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에요. 바이오 벤처기업을 통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신약을 만들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30여년간 산, 학, 연을 두루 거치며 연구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경영능력까지 갖춘 그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씨트리를 국내 대표적인 바이오기업으로 급성장시켰다.

트리플 화이브 전략에 담긴 벤처정신

그의 30년 노하우가 녹아든 경영전략이 바로 씨트리가 적용하고 있는 '트리블 화이브' 전략이다. 한 개의 프로젝트를 5명의 연구원에게 1년에 5억씩 투자해 5년 안에 개발하고 그 연구실적을 다국적 제약기업에 라이센싱해 로열티 수입을 얻자는 게 이 전략의 요체다.

현재 씨트리에서는 면역관련 신약 개발을 위한 3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3년 이내로 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닭을 이용한 항체(IGY)를 생산해 이미 제품화를 시작했으며 달걀을 통해 인터페론, 빈혈치료제 등 고부가가치 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인체단백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형질변경닭을 개발중이다.

트리플화이브전략이 제대로 성공만 한하면 5년간 25억원 정도를 투자해서 의약품 중간체를 개발, 600억원대의 라이센스비만 받아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선진업체의 마케팅 노하우를 습득하면서 점차 시장기반을 넓혀 궁극적으로 세계적인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다.

덧붙이는 글 | 김완주 사장 프로필

1942년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성균관대 약대 졸업
1975년 독일 함부르크대 약학대학원 박사
1977~85년 KIST 응용화학연구부 연구실장
1985~86년 성균관대 약대 교수
1986~94년 한국화학연구소 의약연구부장
1995~98년 한미약품 부사장 겸 한미정밀화학 대표이사
1998년 (주)씨트리 대표이사(현)
1998년 수원대 석좌교수(현)
2000년 한국바이오벤처협의회 부회장(현)
*저서: 생명과학과 벤처비즈니스(미래M&B. 2001)

Company Profile

(주)씨트리(www.c-tri.com)

대표이사: 김완주
설립일: 1998년 4월 23일
자본금: 35억 2,500만원
주요주주: 김완주, 대양이엔씨, 현대기술투자, 보광창투, 국민기술금융, 한솔케미언스 등
직원수: 65명
주요사업: 생물의약품, 원료 및 완제의약품 제조 및 도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778-1
연락처: 031-557-0001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68호(2001.2.19)에 실린 기사를 수정, 보완해 재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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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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