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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에서 백두>라는 헌책방은 잠들었지만 이 헌책방과 맺고 쌓인 이야기는 그대로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날 흔적을 더듬으면서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되새기며 <한라에서 백두> 헌책방 이야기를 하나 더 올립니다. 앞으로는 이곳 이야기를 더는 쓸 수 없으리라 보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지금은 네 분이 모두 북녘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네 분이 살림을 조촐하니 이어갈 수 있는 살림돈을 벌어준 헌책방도 그 뜻을 물려받은 분이 어려운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끝내 문을 닫았고요.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북녘으로 떠나기 전, `한백의 집'에 찾아가서 김은환 할아버지에게 헌책방을 왜 꾸릴 생각을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밤새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들을 내보낼 때 말야, 우리들이 무얼 할 수 있었겠어? 나이 예순도 넘고 일흔도 넘은 우리들을 어디 받아줄 곳이 있나? 일할 자리가 있나?..."
그때 정부는 선심쓰듯 당신들을 사회로 내보냈지만 사회로 내보내면서 이 분들이 `밥이라도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방법)은 하나도 없이 내보냈답니다.

연금을 부은 적도 없고 연고도 따로 없기에 살아갈 길이 까마득할 뿐인 현실. 그리고 당신들이 처음 옥살이를 하던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달라져 버린 현실.
"중들이 한 십 년 벽을 보고 뭐라더라, 면벽수도를 하면 깨우친다고 하잖아. 그 말을 생각하면 우리도 감옥에서 벽만 보고 삼십 년, 사십 년 있었으니 다 도를 깨달았어야 할 텐데 그게 아니더라구. 세상에 나와서 한 일 년 살아 보니까 바로 그게 깨달음이더라구."

당신들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따로 없으나 자신들을 아무런 보호망 없이 내팽개치듯 밖으로 내보내고 보호감찰로 귀찮게 한 정부에게 보란 듯 떳떳하고 즐겁게 잘 산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해서 어느 결에 `헌책방'이란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헌책방을 하면서 뭐 아는 게 있나? 책을 사러 온 사람에게 `이거 얼마 받으면 좋겠수?'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가끔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이 자기들이 파는 책을 그냥 가져와서 우리에게 팔라고 줘서 참 고마왔는데, 그런 새 책들을 새책값 비슷하게 매겨놓으니까 또 안 사가더라구. 아 그렇구나, 어차피 헌 책이면 다 헌 책이니까, 좀 깨끗하다고 해도 다 똑같이 값을 매겨야 하겠구나 싶어서 다른 책과 똑같이 `헌 책'으로 보고 파니까 다 금세 나가더라구."

그렇게 서너 달 고생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니 이제 좀 헌책방도 자리를 잡겠구나 싶었답니다. 그래, 헌책방도 자리잡고 당신들이 꾸리는 헌책방 옆과 앞에 낡았지만 깨끗한 옷가지와 신발가지를 모아놓고 거의 거저 주는 값에 가까운 돈을 주고 팔기도 했지요.
"우리가 뭐 크게 돈벌라고 이 일을 하겠어? 사람을 만나는 재미도 있고, 또 그렇게 좋은 책과 좋은 옷을 나누면서 깨달아 가는 거지."

한 달에 백만 원을 가까스로 벌기에 가게세 내기도 빠듯하기도 하지만 당신들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하고 이렇게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당신들이 속으로 품었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책손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더 좋았고, 그렇게 자신들이 전혀 모르던 낯선 사람들과도 만나면서 서로 허물도 없고 `뿔난 도깨비'도 `공산분자'도 `남파간첩'도 아닌 `이웃집 할아버지'요, `오랜 겪음과 깨달음으로 슬기로운 어르신' 노릇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옥살이하며 겪었던 일도 들려 주십니다.
할아버지를 찾아온 공안검사는 "당신은 공산주의가 좋소, 자본주의가 좋소?", "공산주의 통일을 바라오, 자본주의 통일을 바라오?" 하고 물을 때 한동안 잠자코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억센 목소리로 우리에겐 `사상 논쟁'은 없었다고, 당신은 내게 사상 논쟁을 하자고 그러냐고 말씀하셨답니다.

"우리에게 있어 온 것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였소. 일제 때부터 통일 운동을 하고 독립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을 `반공법'으로 공산주의로 몰아넣었듯 해방 뒤에도 통일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을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 `빨갱이'라 하며 `무슨 주의자'를 만들지 않았소"하고 얘기했답니다.

"우리는 7.4 공동성명 때 했던 말처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통일을 말했을 뿐이오"라고 떳떳하게 이야기를 하니 공안검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답니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감찰보호를 하겠다면 그냥 감옥에 있겠다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들을 그냥 풀어 주었답니다. 하지만 실제로 풀려난 뒤에 가까운 경찰서에서 `감찰보호' 문제로 몇 차례 전화를 해서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겠다는 말도 했고... 헌책방을 열어 당신들 스스로 살림을 꾸리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지요.

책방 이름을 <한라에서 백두>로 짓고 당신들이 사는 공동체 살림터를 `한백의 집'이라 했던 할아버지 네 분과 할아버지들이 꾸리던 헌책방을 물려받아 꾸려가던 분에게는 꿈이 있었다고 봅니다. 당신들은 이제 나이도 많이 먹고 한 평도 되잖는 곳에서 허리굽도록 살아왔기에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어 보였으나 낮에는 헌책방 일을 하고 밤에는 붓글씨도 쓰고 한방 공부도 하고 침놓기로 몸아픈 이웃분을 보살피기도 하면서 우리가 다 함께 살아가는 온 누리를 빛내는 일을 할 수 있으리란 믿음과 꿈 말입니다.

`한라'에서 `백두'는 바로 남누리 북누리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자기 깜냥껏 `우리 모두'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하고 이렇게 일을 하면서 웃고 땀흘리고 어깨동무를 하면 그때 바로 자연스럽게 남북이 하나될 수 있지 않겠냐는 믿음을 담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라에서 백두>에 가서 책을 사던 때 할아버지는 책값을 굳이 안 받겠노라 손을 내저었지만, 사는 사람은 또 그게 아니기에 당신 손에 책값을 쥐어드렸고 그러면 저녁이나 같이 먹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해서 `한백의 집'에 가서 하룻밤 묵으면서 통일 이야기와 헌책방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장 호 선생님, 북쪽에도 헌책방이 있지요?"
나이 여든이 훌쩍 넘고 옥에서 고생해서 머리도 수염도 눈썹도 모두 하얗게 센 장 호 선생님도 안영기 할아버지도 당신들 조국,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남북누리에도 헌책방이 있음을 확인합니다. `헌 책'은 말 그대로 `헐어버린' 책이지만 반들반들한 갓 나온 새 책만이 책 값어치를 하는 게 아니라 오래 묵기도 하고 먼지도 묵어서 아무 쓸모도 없어 뵈는 책 또한 누군가에겐, 어느 곳에서는 제 구실을 다하며 찾을모가 있듯 당신들은 이미 늙고 쭈그러들었어도 어디에 가서 무얼 하더라도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로 `헌책방'에서 보여주고 꽃피우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은환 할아버지도, 안영기 할아버지도, 장호 할아버지도, 홍문거 할아버지도 모두 "세상 속에서 일 년만 부대끼면서 생각 갖고 살아가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슬기와 깨달음이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꽃피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하나됨(통일)'이란 길 또한 현실 속에서 현실살이를 하는 사람들 삶과 부대끼면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라에서 백두>를 꾸린 할아버지들은 바로 현실에 몸담고 부대끼면서 좌판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고물상 아저씨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서울호프호텔'이라는 건물에서 가게를 꾸리는 젊은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들이 미처 보거나 느끼지 못한 `현실감각'과 일반 사람들 생각을 얻고 당신들은 살아오면서 깨달은 물미와 슬기를 꺼내서 함께 나눴습니다.

이 나눔은 비록 이제는 <한라에서 백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이 땅덩어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씨를 뿌려서 누군가가 그 씨앗을 받아서 싹틔우고 줄기 올리고 잎 돋우고 꽃 피워 열매 맺으면서 시나브로 하나씩 자리잡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갇힌 채 서른 해를 살아 보니 사회에서 한 해만 살아도 깨닫겠더라"는 말씀. 우리는 `갇히지 않은' 채 `열린 사회'에서 늘 살고 있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고난받았던 이들을 되새기고 생각한다면 바로 지금 우리가 저마다 살고 있는 곳과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고 다 함께 조촐하나마 즐거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된 누리가 어떠한 누리인지 느끼고 깨달아 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어제(2/7) 찾아간 6호선 언저리 헌책방은 다행히 아저씨가 문을 안 닫고 지금 있는 건물 뒤로 옮겨간다 하십니다. 5월 안에 건물 허는 공사를 하는데 날짜는 잡히지 않아 언제 날짜 떨어지나 기다리고 있다더군요. 6호선 길넓히기 공사로 밀려나 버리는 헌책방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문닫은 헌책방 이야기를 다음에도 또 쓰나 했으나 가게만 옮기면 된다 하여 무겁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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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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