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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기억 속에 잊혀졌다가 이 맘때쯤 되니까 다시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장이모 감독의 <내 책상서랍 속의 동화>가 그것이다. 재작년 4회 부산 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첨 봤을때, 보기 시작한 지 몇 분 안 됐을 때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란 영화를 너무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시골의 마을, 어린이들과 나이 어린 임시선생, 학교 배경. 웬지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키에로스타미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장이모의 리얼리즘이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어쩌면 이란 문화권보다는 중국의 문화권이 친근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이 영화 속의 어린 주인공들은 내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매는 이란의 꼬마처럼 마냥 착하고 순박하지만은 않다. 가난한 삶에 시달려서일까 순수하기보다는 무척 억척스러워 보이고 첨엔 무척 밉상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이 영화를 보시고는 장휘거를 찾아 도시로 어렵게 떠나는 웨이민치란 소녀의 모습을 보시고 처녀시절 큰 이모를 따라 서울로 상경하던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셨다.

소녀가 국장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을 잡고 묻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황당해 하는 장면에서 당신께서도 서울 사람들한테 말을 걸면 사투리 때문에 - 어머니는 전라남도 도초도란 섬이 고향이시다 - 사람들이 말도 잘 못 알아듣고 웃고 해서 사람들과 한 동안 잘 말을 못했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니 그 장면이 정말 가슴 속 깊이 파고 들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나는 소녀가 국장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또 물을때 소녀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수많은 자동차들과 사람들의 오버랩이 그렇게 차갑고 무섭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소녀가 전봇대에 기대어 쓰러져 잠이 들었을 때 바람에 날리는 소중한 벽보들이 청소부들의 비질에 사라져 갈 때도 참 무섭고 서글프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도시에서 나 역시 싸늘한 도시인으로 살고 있다니.

아무튼 끝까지 영화 속에 빠져들어갈 수만 있다면 클라이막스에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키에로스타미 영화에 동양적인 정서와 극적인 요소를 더 추가하면 이 영화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 키에로스타미의 영화와 비교하게 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총천연색 분필을 갖게 된 이 시골 꼬마들은 흑판에 한 자씩을 적어 보는데, 그 칠판에 고사리 손들이 적어가는 한자 한자한자의 깊은 울림은 한자를 사용하는 한자 문화권 속에 사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교감이다.

우리 한글도 과학적이고 대단하지만, 한 글자로 큰 뜻을 담을 수 있는 한자란 글도 참 놀랍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
설연휴에 가족, 친지들과 왁자지껄 즐겁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가족들이 함께 어른들의 어릴적 이야기도 들어보고 옛 시절을 회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너무 빨리 가고 싸늘한 서울이란 도시가 싫어지면 한번 보자.
싫어도 싫어도 이 도시를 떠나서 살 수는 없는 우리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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