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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큐멘터리 그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만들게 되면서 우리들이 자주 생각하게 되는 문제 한 가지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제작을 하는 제 입장에서도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이 말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문화적 상대주의’입니다. 아마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주로 관람하는 사람들도 이 말을 자주 생각할 것입니다.

문화적 상대주의란 서로 다른 문화권은 그 나름의 도덕적 규범, 기준을 가지며 그 문화권 안에서 객관적 정당성이 허용되기도 하지만, 모든 문화권을 넘어서서 어느 시대에나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규범이나 기준은 없다는 것입니다.

1.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전달하는가?

좀더 부연하자면 다큐멘터리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어떤 집단이나 사람들을 촬영하여 특정한 스토리대로 편집을 해서 보여지는 것이 다큐멘터리인데 과연 그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정말 그들 삶의 모습 그대로일까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아닙니다.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감독이 주제의식을 가지고 그 주제 의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만 허구의 사실 즉 드라마와 같은 픽션을 통해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혹은 실화 즉 논픽션을 가지고 자신의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이며 보는 이들에게 공감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는 대개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다 보니 더 더욱 객관적인 진실 혹은 사실을 전달한다는 것은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있어서는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철저하게 문화적 상대주의에 입각한 주제의식과 주제의식 표현만이 진실한 다큐멘터리에 좀더 근접하게 되는 것이죠.

감독 자신의 가치관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통념과 상식에 따라 사물과 사실을 재단하거나, 편집을 통해 조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말의 뜻처럼 그 시대 그 사회 사람들의 상식과 가치관에 따라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외부인이 함부로 이건 이런 거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2. 오지 원주민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의 문제점

예를 들면 오지 원주민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그런 경우인데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하며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본은 좀더 일찍부터 그리고 우리는 아주 최근에 오지의 원주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내용에서 얘기되는 것들이 사실인지는 의심이 갑니다. 예를 들면 원주민들이 우리들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의식 같은 것을 하는데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은 그건 뭐 뭐가 어째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에는 ‘아직까지 문명의 때를 묻히지 않고 자신들의 순리대로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오지 원주민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자연 친화적이고 순리적인 모습에서 뭔가 배워야 한다’라고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메시지가 의미 있는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물론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개념의 확산으로 그들의 생활과 풍습에 대해 미개하다는 해석을 하는 다큐멘터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런 해석 도한 결국 감독의 주제의식을 보는 이들에게 ‘똑같이 느껴라’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며 잘못된 것입니다.

3. 어떤 다큐멘터리가 좀더 진실한 다큐멘터리인가?

이런 경우는 대개 아이템을 취재하고 나서 주제를 나중에 만든 경우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아이템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은 주제 도출이 과도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니면 주제를 만들다 만들다 딱히 정할 것이 없다 보니 막연히 사회적인 대세에 따라 대충 주제를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아직도 원시의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의 행위는 모두 자연 친화적이고 순수한 행위라고 해석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그 자연 친화적이라는 내용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무지 무지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어쩌면 외지인인 감독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큐멘터리는 문화적 상대주의에 철저히 입각하되 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의 주제의식 수준 또한 문제제기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떤 사회적 대세에 따라서 해석을 한 경우입니다. 도시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사회에서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해지면서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지는 담론인 셈이죠. 그리고 그 담론을 오지 사람들에게 적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볼 경우, 제작자의 주제해석에 따라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다큐멘터리가 있는 사실 그대로의 전달이 아닌 이상 이들 감독의 주제의식 혹은 가치판단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본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은, 과도한 해석은 다큐멘터리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감독이 좀더 문화적 상대주의에 입각해서 주제의식을 표현하려면 철저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선에 끝을 맺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어떤 해석을 달아서는 안된다는 얘기죠.

감독의 해석처럼 오지 원주민의 그런 점이 우리들이 그들에게 배울 점인 것은 확실하지만 감독의 해석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의미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의미는 보는 이들이 보여진 내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것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일 것입니다.

아래 글은 제가 아프리카에 갔을 때 목격한 한 원주민 부족의 풍습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들 오지 원주민들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글을 읽어 보시고 다들 나름대로의 해석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면 아래 글의 내용은 방송에 나간 원주민에 관한 글이며 당시 감독과 작가의 주제의식은 모호했으며 과도한 해석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그 프로그램의 조연출이었고요.

4.알 수 없는 사람들 이디오피아 반나족 -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

마을 전체에서 알아 들을 수 없는 여인네들의 노래 소리와 함석으로 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십여 명의 젊은 여인들이 나팔을 불며 일렬로 줄을 지어 어디론가 갔다. 그곳에는 손에 미짜리라는 회초리를 든 청년(마자)들이 모여 있었다. 남녀 두 집단이 만나면서 희귀한 일이 벌어졌다. 간 큰 남자 이야기에 익숙한 1997년의 한국 남성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리를 지어 나팔을 불던 여자들이 한 사람씩 마자 앞으로 나가 나팔을 불며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마자들은 그때마다 손에 쥐고 있던 회초리를 하나 빼서 여자와 마주본 상태에서 여자의 오른쪽 어깨를 후려쳤다. 그러면 여자는 자신을 때린 마자 앞으로 한발 더 다가가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는 방금 사용된 회초리를 빼앗았다. 때로는 마자들이 알아서 땅에 버리기도 했다.

여자들에게 그것은 수난이었다. 회초리가 휘어지기 때문에 살이 별로 없는 어깨에는 상처가 남지 않았다. 오히려 때릴 때 회초리의 끝이 휘어져 닫는 등이 찢어졌다. 피가 흐를 정도로 찢어졌다. 대부분의 여자들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맞을수록 더욱 악착같이 마자에게 다가가 때려 주기를 간청했다. 그녀들의 등에는 이미 수많은 흉터들이 있었다. 그 흉터 위로 또 다시 피가 흐르고 딱지가 앉고 있었다. 무엇을 위한 고통일까?
     
6.25때 참전한 아프리카 국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디오피아. 이디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랜드크루져로 이틀 정도 달리면(950Km) 오모강 유역 하마르 지역에 도착한다. 이 곳에는 바깥 세상이야 어떻게 변화해 가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의식을 지켜가고 있는 원주민 부족들이 있다.

반나족은 사바나 기후의 이곳에서 소, 양, 염소의 유목과 옥수수, 밀렛 등의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수렵이 가장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이디오피아 정부가 수렵을 금지하고 있어서 그들이 가진 무기는 장식용 및 호신용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디오피아의 잦은 내전으로 이들이 창과 활을 내던지고 AK소총 등의 현대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기 때 몰려드는 야생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때만 사용한다고 했다.  

모커니 아르바라는 청년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안 여자들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네 시골에서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한쪽에서는 곡식을 갈아 전을 부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물과 꿀을 항아리에 담아 끓이고 있었다. 보디라는 술이었다. 음식의 양으로 미루어 많은 손님들이 오는 것 같았다. 한 가정의 잔치가 아니라 마을 잔치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커니는 내일 왕가라는 소뛰어 넘기 의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했다. 여인들은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흥을 잃지 않았다. 마을 아낙네들은 양쪽 팔목에 차고 있는 여러 개의 알루미늄 링을 서로 비벼서 리듬을 만들고 거기에 맞추어 노래를 했다. 무리를 지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잔칫집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오후가 되면서 이웃 마을 사람들이 청년의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청년의 집에서는 집 근처 시원한 그늘 아래에 잔치를 위해 임시건물을 지어 놓았다. 나무를 잘라 기둥을 세우고 그 잎사귀와 갈대로 지붕을 덮고 바닥에는 갓 잘라낸 파릇파릇한 나뭇잎을 깔아 놓았다. 족히 칠팔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찾아오는 손님 중 빈손으로 오는 이는 없었다. 다들 우유와 꿀, 고기 등 한가지씩을 들고 왔다. 우리처럼 공동부조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모커니의 아버지와 삼촌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방문한 손님들을 일일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보디를 대접했다. 더러는 미시기도 하고 더러는 예의상 입만 대기도 했다. 모커니 아버지가 그늘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낙들에게 돈을 건네 주기도 했다.

아이에서 노인까지 삼,사백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 중 마자들의 모습은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머리 앞부분 머리털을 깎아 U자의 심벌을 하고 목에는 빨강, 노랑, 녹색 등의 원색적인 구슬목걸이를 걸치고 손에는 한 묶음의 회초리를 들었다. 기쁜 날이랍시고 도시 빈민들이나 걸침직한 옷가지를 한가지씩 걸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들의 모습은 분명 전통 그대로였고 절제되어 있었다.

마자란 모커니가 치르게 될 소뛰어 넘기 의식을 이미 행한 청년들이었다. 반나족에 있어서 왕가(소뛰어 넘기) 의식은 결혼을 위한 첫번째 의례이다. 대부분의 원시 부계 사회가 그렇듯이 이들에게 있어서 남성이란 야생동물과 침략자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는 전사이자 생산의 주체이다. 전사로서의 역할이 형식적으로만 남아 있다면 생산의 주체라는 역할은 여전히 부계 사회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 부계사회에서 한 사람의 어른이자 전사로 대접 받기 위해서, 그리고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힘든 절차가 있기 마련이었다. 모커니는 이미 왕가 의식을 위해서 6개월 전부터 숲에 들어가 혼자 생활했다. 음식도 가려먹었다. 우유와 커피 그리고 소고기만 먹었다.

왕가 의식을 치르고 나서도 모커니는 대충 2년간 소떼를 몰고 들판에서 유목을 하며 외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선택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으며 완전히 독립적인 어른으로 대접 받게 된다. 반나의 남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와 함께 아버지의 집을 나와 독립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의식과 절차들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단련의 과정이라고 한다.  
     
왕가 의식은 이삼일 동안 계속되는 잔치 기간 중 상황에 따라 둘째 날이나 셋째 날 치러진다. 멀리서 바다와 대륙을 건너온 외지인으로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의식이었다. 왕가 의식이 치루어지기 전에 특이한 사전 의식이 한가지 진행되었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의식은 치러졌다. 먼저 왕가 의식을 치를 신랑이 모커니는 히리(흰 흙이라는 뜻)를 어깨에 뿌렸다.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먼저 왕가를 치른 다른 마자(신랑과 가까운 친구)와 마주 앉은 채 벤지라는 의식이 치러졌다. 이 벤지 의식은 아주 복잡했다. 대충 순서를 정리해 보면 먼저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중간을 가로 질러 회초리 대 여섯 개가 놓여 지고 그 회초리 사이에 남성의 성기 모양을 한 나무 조각을 끼워서 세운다.

이때 식을 집행하는 어른이 그 성기조각에 우리 나라의 전통한옥에서 볼 수 있는 문고리 모양의 쇠고리를 서너 개 걸어 준다. 그리고 어른이 뭐라고 주문을 외우고 나면 두 사람은 주먹을 쥔 채로 양손을 맞붙인다. 다음으로 엄지손가락을 앞으로 나란히 한 채 자신의 몸 안쪽에서 성기쪽으로 손을 내밀어 성기에 걸려 있는 쇠고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벗겨 낸다.

이 의식이 끝나면 다음으로 신랑은 다리를 쭉 뻗은 상태로 앉는다. 그러면 친구 마자들이 요구르트가 담겨 있는 그릇을 신랑의 허벅지 위에 올려 놓은 다음 발끝까지 그릇을 옮겨온다. 발끝까지 요구르트 그릇이 옮겨져 오면 이때 조금 전 의식에서 사용된 성기모양의 나무조각의 귀두와 뿌리 부분을 번갈아 가며 요구르트에 약간씩 적신다. 굳이 심오한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이는 자손을 많이 낳고 잘 살라는 다산의 의식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성인식의 하이라이트인 소뛰어 넘기 왕가의식이 다음으로 치러진다. 이 의식을 위해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를 몰고 오기도 한다. 총 열 대여섯 마리의 소들이 마을 장정들의 힘에 의해 등을 나란히 한 채 옆으로 세워진다. 이렇게 일렬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마을 장정들과 소의 한판 힘대결이 불가피하다.

장정들은 소의 발에 차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소의 뿔을 잡고 제압한다. 그리고 억지로 다른 소의 옆에 세운다. 열 대여섯 마리의 소가 횡대로 정렬해 있는 모습을 이루게 된다. 소머리 쪽의 장정들은 소의 뿔을 잡고 엉덩이 쪽의 장정들은 소의 꼬리를 잡아 소들이 대열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온몸에 천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신랑 모커니가 달려가서 단숨에 소등을 하나 둘씩 밟고 뛰어 넘는다. 그 광경은 순식간에 끝이 나지만 머리에 아주 오래 남는 특이한 풍경이었습니다. 뛰어 넘어갔다가 다시 뛰어 넘어오면 의식은 끝이 난다. 소등을 밟고 뛰어 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나족의 청년들은 대부분 이 의식에 성공한다고 한다.

간혹 소를 뛰어 넘다가 중간에 떨어지는 청년들도 있다는데 그런 경우 마을에서 엄청난 놀림거리가 된다고 한다. 다행히 이날 성인식을 치른 신랑 모커니는 바람처럼 번개처럼 단번에 소뛰어 넘기를 치러냈다. 이 의식을 마지막으로 성인식은 막을 내린다. 크게 보면 마을 잔치가 끝이 나는 것이다.


나름대로 통역을 통해 의식의 각 단계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했고 그래서 이 글을 쓴 것이지만 이들의 행동을 본 기자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 특히 여자들의 몸을 회초리로 때리는 부분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위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사고로 생각한다면 그런 행위가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만 과연 우리가 그걸 보고 문화적 상대주의에 입각해서 생각한다면 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제 글을 다큐멘터리라고 간주한다면 이들의 생활과 풍습에 대한 해석은 바로 글을 읽는 사람,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큐멘터리를 생산하고 수용하는 제대로 된 방식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myhome.shinbiro.com/~fh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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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