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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학원을 소홀히 한다. 물론 학교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오는 아이들이 학원에 와서 뭘 더 열심히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원 오는 길엔 맘을 굳게 먹고 온다고 한다. 학교에서 하지 못한 공부 열심히 해 보자 하고.

수업 시작 시간이 5분이 지나도록 아이들은 오지 않는다. 제일 공부를 잘 한다는 수민이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 가방을 훌쩍 던져놓고 이내 사라진다. 아이들을 찾아오겠노라고.

결국 아이들은 10여 분을 넘어서야 둘셋씩 짝을 지어 들어온다. 학원 아래층의 당구장에서 많이 놀다 오기에 단속을 했더니만, 이젠 아예 눈을 피해 어디에선가 우르르 몰려 있다가 오는 듯했다.

껄렁껄렁 들어오는 아이들. 그만 할 땐 치기 어린 모습으로 그럴 수 있는 행동들. 왠지 커 보이고 싶고 어른대접을 받고 싶어한다. 조금이라도 의견을 들어주지 않으면 무시한다며 무척이나 서운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의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토론 수업은 어려울 것 같아, 몇 가지 질문을 담은 설문지를 돌렸다. 물론 많은 성과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들의 솔직한 답을 듣고 싶었고 그것으로 아이들과의 대화 창구를 조금씩 열어볼 양이었다.

질문은 모두 여섯 문항이었지만 대개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었다. 주제는 청소년의 언어사용에 대한 생각과 그 예였다. 참여자는 학원에 다니는 고 1 남녀 학생 30여명이다.


1. 요즘 흔히 사용하는 비속어(유행어 포함)가 있다면?

- 잘 사용하지 않는다.
- 십센치, 쌌다, 피봤다(망쳤다), 구라(거짓말), 냄비(여자), 싹외(망볼 때), 따가리, 훌터, 다간엑스파이브, 용가리, 디비, 개피, 뚜띠(황당하고 화날 때), 엽기, 빠구리·콩(성관계), 빡촌(588전화), 십창(못 생긴 여자를 보았을 때), 제기럴, 구려(이상하다), 존나(많이), 빠 (오빠의 준말), 된장(젠장), 쌩까다(서로 말을 안 하는 현상), 왈(심하다), 찌푸(여자 성기), 깔(여자친구), 이빨(거짓말), 그릇(성 관계 횟수단위), 동그라미(일명 땡땡이) 등

2. 비속어는 어떨 때 사용하게 되는가?

- 아무 때나, 전화 받을 때,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황당하거나 화가 날 때, 평소 생활에서 그냥 나온다. 친목 도모, 어떨 때라는 것이 없고 그냥 '말'일 뿐이다. 투정, 온라인오락, 채팅할 때, 일상 생활에서 저절로.

3. 언어사용의 예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떤가?
(특히, 듣는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 어른한테는 가급적 안 쓴다.
- 자신은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일 경우에는 오히려 더 친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이 학생에게 부르는 욕들은 정말 인격체를 무시하는 느낌이 든다.
- 신경 써서 말해야한다. 상대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 어른이 있거나 공식적인 행사에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게 좋다. 그냥 친구 사이는 비속어를 쓰는 게 친근감을 더 있게 한다.
- 나쁘다, 안 좋다.

4. 비속어는 습관 속에서 많이 나타나게 된다. 중독성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 통신상에서 친구나 통신과 친해지기 위해서 금방 배우고 사용하게 된다.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 모두가 같이 쓰므로 습관적으로 쓰는 것을 잊게 된다.
- 중독성이 강해도 실질적으로 못 느낀다.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비속어를 쓰게 되면 더 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 같다.
-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말하기도 쉽고 저절로 익숙하게 되기 때문이다.
- 재미있으니까
- 쓰기 편하니까
- 발음이 쉽고 재미있다.
- 일상적으로 주고받기 때문에
- 돌려 말하는 것이 무안하지 않기 때문
- 친구들끼리 말을 하다가 서로 닮게 된다

5. 통신상의 용어가 일상화되는 예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은?

- 까비(아깝다). 즐팅(즐거운 채팅), 빵까루(안녕), ㅋㅋㅋ(케케케, 웃음소리), 허접( 별 볼일 없는 짓), 말을 발음상으로 하거나 연음시킨다.( 그냥→걍, 지금→짐, 입니다→임당...... ), 글구(그리고), 벙(모자란 사람에게), 흑백영화(포트리스 죽을 때), 거거거(gogogo), 깝샷(아까운 샷), 피(에너지), 마물(마무리), k(ok), you(u), 아가쒸(아가씨), 끄즈(잘가), 하이·하이요·루~(하이루의 준말, 안녕이란 인사말), 번개(통신상에서 만나 실제로 만나게 될 때)

6. 비속어나 통신상의 용어를 바로잡는 방법은?

- 법으로 정한다.(벌금을 낸다)
- 통신 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은 프로그램을 패치시켜 은어 사용을 자제하게 한다.
- 웬만한 노력으로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굳이 바로 잡을 필요가 있는지...
- 표준어로 넣을 수 있는 것은 넣어 개정하는 게 좋다
- 잘 모르겠다.
- 너무 보편화되어서 몇 사람만 지킨다고 다른 사람들이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
- 없다고 본다.
- 의식을 바꿔야 한다.
- 시대의 흐름이다.
- 사용을 하지 않아야 한다.

언어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잘 살아가기 위한 의사 소통의 수단이다. 물론 말이 아니고 몸짓이나 글을 통해서도 의사 소통은 잘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따르면서 부쩍 비속어가 늘어나게 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랜 세월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걸쭉한 육담도 실제 억압의 표출로 많이 쓰여진 것이라고 하니,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늘어나는 비속어도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로 인해 우리의 고운말이 침식되고 쉽게 내뱉어지는 말들이 사회화된다면 힘겨운 세상에 얼마나 더 황폐해질 것인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느낀 것은

첫째, TV나 영화에서 여과없이 내보내지는 비속어들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듯 시원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편하고, 쓰기 쉽고, 은밀한 것을 자기네끼리 표현하고,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서 따로 사용하는 것엔 맛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들만의 공간을 비속어에서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둘째, 좋지 않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이다 치부하고 내버려 두거나, 친구의 말을 따라 쉽게 배워 버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구 사이를 더 친밀하게 한다지만 거친 입담으로 친해진다면 얼마나 가까워진다는 말인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바르게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단순히 편하고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는 것이다.

셋째, 언어들 중 거의 성에 대한 단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놓고 말할 수 없으므로 자기들만의 단어를 설정하여 사용하는데 이것이 공공연하게 돌고 돌아 새로운 언어로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우리말인지 일본어인지 쉬이 구별을 갖지 않고 사용한다. 외래어 속에서 영어로 된 욕설을 사용하는 것이 이제 통례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문화 대개방이라는 차원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하지 않느냐며 내놓고 사용하는 것이 비속어라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요즘 물밀 듯이 들여오는 만화를 보면서 아이들은 일어를 배우겠노라고 사전을 들고 다니는 것은 그 중 다행한 일이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배우는 것에 대해선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지만 우리말을 토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어만 탐식하는 것은 고려해 볼 일이다.

다섯째, 언어를 통해 그들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만 자신의 개성은 없고 어떤 하나에 심취한 이들을 따라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요즘 새롭게 당구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십오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퀵보드나 유명 브랜드 옷 사 입고 와 자랑하기 등, 자신 만의 세계를 구축해서 보여주는 그들만의 잔치와 나름대로 한 가지 일에 심취해 나가는 모습을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그들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행동하고 그 행동에 깊이 연구해 보기를 바랄 뿐이다.

어정쩡한 질문이기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무엇을 물어보는지에 대한 파악도 잘 되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그래서인지 질문에 알맞은 대답을 하는 녀석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밑둥도 없이 나무가 자라고 싶어하는 형상의 요즘 아이들. 그저 잎사귀만 있고, 줄기만 있으면 나무는 저절로 자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장 영혼이 맑은 시기에 자연스러움의 참 맛을 깨닫고,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세계를 창조적으로 만들어갈 설계도를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닌가 싶다. 눈에 보이는 것에 쉬이 빠져들기보단 내 심지를 갖고 참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바스락바스락 문 앞을 서성거리는 잎사귀들을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들만의 궁전으로 가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곳이란 생각에. 아이들도 그들만의 궁전을 찾아가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보는 여행을 하고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단순히 언어를 통해 그들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음을 밝히고 싶다. 이 설문에 답해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이밖에 노골적인 성적 단어가 많이 나왔지만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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