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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군산시 대명동 매춘업소 화재참사로 희생된 매춘여성 5명의 49재가 6일 오전 11시 화재현장 앞에서 유가족과 전북지역 여성·사회단체 1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화재 현장에는 희생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쇠창살이 보기 흉하게 매달려 있고, 잿더미로 변한 내부 또한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걸려 있는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축하 현수막과 대조를 이루었다.

49재에 참석한 시민들은 추도사와 추도시가 낭송될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고, 유가족들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영정만을 응시한 채 간간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상렬 목사는 추도사를 통해 "30년전 전태일이 분신하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쳤던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이 다섯 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젠 이들의 명예를 복권시키고 윤락녀라는 딱지를 떼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수 신부는 직접 추도시를 낭독하며 "평소 이들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희생자 권OO(26) 씨의 아버지 권OO(55) 씨는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49재가 되었다"며 "이 악마같은 세상에서 죽음으로써 새가 되어 좋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갔다"고 울먹였다.

새움터의 김현선(33) 대표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부와 여성단체들이 모여 윤락행위 등 방지법 개정과 특별법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49재를 끝내고 포주와 유착된 비리 경찰과 공무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원을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 30여명과 경찰 50여명이 30여분간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에게 줄 상납금을 한 명당 10만원씩 걷어갔다는데…"

"추석 전날 파출소 경찰관에게 돈을 준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을 준비해 윤락업소들이 모두 수금해서 경찰관에게 갖다주는 다른 포주에게 맡겨놓고 왔다고 했습니다."

화재참사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OO(28) 씨가 지난 10월 13일 작성한 진술서가 밝혀지자 경찰은 "'다른 포주'를 잡지 못해 수사를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10월 20일 사건발생 한 달이 지난 뒤에서야 '다른 포주' 전OO 씨가 갑자기 자수를 했다. 그는 '경찰과 유착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자수했다'고 밝혔다.

경찰과 유착관계가 전혀 없었다면 계속해서 은신하고 있어도 됐을 일을 경찰을 위해 자수했다는 포주 전씨의 진술에 여성단체와 유가족은 더욱 경찰과 포주의 유착관계를 의심하게 되었다.

정미례 '군산여성의 전화' 사무국장은 "사건 피해자의 진술은 완전히 무시하고 인권유린과 감금 및 매매춘 사업을 해 온 포주들의 말에만 의존해서 수사를 종결하려는 군산경찰과 전라북도 경찰당국의 처사에 분노를 넘어서 허탈함마저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군산경찰이 별다른 수사진척을 보이지 못하자 여성단체와 유가족은 지난 10월 27일 전북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담당검사, 경찰, 공무원 등 14명을 형사고발했다.

또 같은 날 행자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전북경찰청 국정감사를 통해 수사상의 문제점을 집중 추궁하자 전북경찰청은 10월 30일 특별 수사팀을 만들고 긴급수사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가족과 여성단체는 이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무마책"으로 보고 있다.

정 국장은 "그동안 관련 공무원과 경찰, 포주와의 유착관계를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경찰의 공언은 모두 거짓말로 여론무마용이었다"며 "경찰은 애꿎은 말단 공무원 몇명 징계하는 식으로 결국 시간이 지나 이번 사건이 조용히 묻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춘여성의 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했던 일기장의 주인공 임OO(20) 씨의 아버지 임OO(46) 씨도 "경찰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야 특별수사팀을 만든다 어쩐다 법석을 떨고 있지만 다 도둑놈들이라 못 믿겠다"며 "이 나라에서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한다면 세계인권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씨는 또 이 사건 담당변호사이며 세계인권위원회 위원인 배금자 변호사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상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윤락가화재사건대책위 안향자(53. 군산 여성의 전화 회장) 공동대표는 "경찰의 주장대로 군산경찰이 유착비리나 상납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수십년 동안 불법영업에 감금 상태로 윤락행위를 강요하는 매매춘 업소가 10여 개나 존재해 왔겠느냐?"며 "국회에서 이 사건을 국정 조사하여 구조적 유착비리와 이 사건의 축소, 은폐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직무유기 혐의가 있는 관련공무원 4∼5명을 사법처리하는 수준에서 2∼3일 안에 이번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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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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