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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에서 인기 있는 캐나다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장 크레치엥 캐나다 수상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만큼 '엽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 이름이나마 기억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있을까 궁금하다. 그런 것을 떠나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외국 정치인들에 관심이 없다.

한때는 팝 가수 브라이언 아담스, 앤 머레이가 명성을 떨쳤지만, 지금은 추억의 스타로 간신히 명성을 지키고 있고, 얼마전까지 정상의 위치에 섰던 퀘벡 출신의 여가수 셀린 디온은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에 밀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불렀던 '좋은 시절'을 그리고 있다. 희극영화 배우인 짐 캐리나 스크림 시리즈의 네브 캠벨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지만, 그들이 캐나다 사람이라는 걸 의식하며 영화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퀘벡 출신의 떠꺼머리 10대 기욤 패트리가 인터넷 게임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크)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섰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들었을 때, 설마 그가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기욤이 한국의 난다긴다하는 프로게이머들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을 때, 적어도 그가 '스타크의 종주국' 한국의 신세대 젊은이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캐나다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욤 패트리는 99년 각종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한국의 고수들과 경쟁,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고수들도 배틀넷 아이디 '그르르'(X'Ds~Grrrr)의 기욤을 가장 힘든 상대라고 평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욤이 프로게이머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기자는 그를 캐나다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그를 8개월후인 9월10일 토론토에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캐나다 사람을 캐나다에서 만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욤의 이미지는 한국화 되었다는 느낌이다.

기욤은 모국의 게임업체인 배틀탑과 (주)ICM이 공동주최하는 '월드 사이버 게임 챌린지'(World Cyber Game Challenge, 이하 WCGC)라는 제법 굵직한 게임 대회(10월7일-15일, 용인 에버랜드)에 스타크 종목의 캐나다 대표 선발전을 거쳐 본선 진출권을 따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스타크 분야의 실력자로서의 어떠한 프리미엄도 없이 1백여 명에 달하는 다른 선수들에 뒤섞여 3일간 자웅을 겨룬 결과 기욤은 캐나다 예선 2등으로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게임을 모두 마치고 출전권을 확보한 기욤을 이번에는 지역 방송국의 카메라가 놔주지를 않는다. 방송국 인터뷰가 끝난 후 조금은 지친 기색의 기욤을 대회장인 토론토 다운타운의 호텔 'Day's Inn' 1층 로비에서 만나보았다.

기욤 패트리 같은 세계적인 게이머가 한국에서 열리는 본선대회 출전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굳이 고국으로 돌아와 예선전을 가진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

"WCGC는 한국에서 하는 대회지만, 세계 14개국의 대표들이 예선을 거쳐 대회를 치르는 국가대표 대항전의 성격이 강하다. 한국에서 출전권을 따고 싶었지만, 지역 예선전을 거쳐야 한다는 대회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국인 캐나다로 돌아와 예선전을 치렀다. 번거롭긴 하지만, 오랜만에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부수적인 소득이 있었다."

지역 예선 1등을 다른 게이머에게 내줬는데, 예전의 기량이 녹슨 게 아닌가?

"게임도 프로 스포츠다. 프로로서 기량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지만, 지구상 어딘가에 나만큼이나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한국에는 물론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그렇다고 고향인 캐나다의 친구들을 얕보지 않는다. 긴장을 멈추지 않았지만, 고향 와서 한 대 먹었다.(웃음)"

그럼에도 기욤 패트리는 여전히 스타크 분야의 최강자이다. 2000년초부터 한국에 와서 벌어들인 총상금액이 3,200만원. 예선에서 낙마하지 않는 입상권에서는 기필코 1등으로 올라서고야 만다. 상금이 많이 걸리고, 방송이 되는 큰 대회는 기필코 잡아내는 승부사라는 것이 게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이다.

가장 최근의 우승은 지난 5월 세계 랭킹 50위권의 고수들이 한국에 대거 집결한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크래프트 리그」였다. 기욤 패트리는 이 대회에서 강도경이라는 새로운 강자(강은 프로 입문후 참가한 대부분의 스타크 대회에서 4강에 진입하는 고른 실력을 자랑했다.)을 만나 3대2로 이겨 우승했다. 이때 그가 받은 상금이 2천만원, 캐나다 달러로 2만5천달러라는 거금이다. 그는 고향에서도 한국에서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을까?

아까보니 TV방송국에서도 인터뷰를 하던데, 이젠 캐나다에서도 유명인이 된 건가?

"토론토의 지역 방송국과 인터뷰했다. 고향(퀘벡)까지 방송될 지는 모르겠다. 작년 여름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지난 1월부터 한국에서 장기 체류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번민이 많았다.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대단했다.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야 정말 행복한 것'이라는 아버지의 격려가 한국행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낯선 한국 땅에서 외로움도 타지만,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한국이 맘에 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고향 퀘벡에서 나는 여전히 '게임에 미친 문제아'로 통한다."

여담이지만, 당신의 프랑스식 이름이 아니라면, 당신을 미국인과 구별되는 캐나다 사람으로 쉽게 알아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혹시 한국에서 미국인으로 오인 받은 적은 없는가? 백인으로서 한국에서 텃세를 느낀 적은 없었나?

"내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거의 없었다. '백지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편견도 없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글쎄? 나를 미국인으로 생각하고, 못살게 구는 한국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솔직한 얘기로, 미주대륙에서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에 비해 한국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인상이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것과 나쁜 것 한 가지, 그리고 한국에 없는 한 가지를 캐나다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프로게이머에게 저렴한 요금에 최상의 접속상태가 유지되는 2만여개의 PC방이 있는 한국은 게이머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개월간 한국 음식과 가요도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는 음식은 자꾸 변한다. 처음에 와서는 김치찌개, 제육덮밥 등이 맵다고 느껴졌다. 지금은 비빔밥도 잘 먹고, 갈비를 제일 좋아하게 됐다. 모든 것이 가까운 곳에 오밀조밀 붙어있어서 편리하다. 반대로, 한국의 난폭 운전은 끔찍하다. 도무지 양보를 모른다. 선한 인상의 한국인도 운전대만 잡으면 돌변한다. 옆에 타고 있는 내가 불안하게 느낄 정도이다. 서양사람들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개인주의적이지만, 운전문화에 있어서는 훨씬 인간적이었다는 느낌이다.

캐나다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은 가족과 친구들이다. 나의 지인들에게 한국에서 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기욤은 캐나다 출신의 다른 동료 제롬 리욱스와 함께 한국의 첫 「용병」 게임구단 U2U4의 대들보이다. 3개월 기약으로 시작된 한국생활이 프로 게임구단에 입단하면서 벌써 8개월째 접어들었다. 그리고, 다음달에는 총상금이 30만달러(약 3억5천만원)에 달하는 또 다른 세계대회 WCGC에 나가게 된다. 아직은 정상의 지위를 좀더 누리고 싶어하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한국에 오기 위해 학업까지 중단한 것으로 아는데, 혹시 나이를 더 먹은 후에도 게임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돈을 한창 벌 때는 모은 돈으로 게임 비즈니스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프로 게임의 판도를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프로 게임계에 비근한 예가 없는데, 다른 프로스포츠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노장 선수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최고 2, 3년 정도 더해 보고 한계를 느끼면 다시 학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캐나다에서는 이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시들해졌는데,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돼 기쁘기만 하다."

인터뷰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올리면,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기욤은 자신의 이메일 주소가 공개되는 걸 극도로 꺼렸다. 그래도 자신의 얘기가 알려지는 것이 싫지는 않은지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돌아선다. 인터넷, 스타크래프트가 없었다면 인구 20만의 소도시 퀘벡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냈을 한 젊은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약관 18세에 게임으로 세계를 제패한 젊은이. 그는 10, 20년 후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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