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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지금은 8월 26일 토요일 낮 2시 10분(한국시간으로 8월 27일 새벽 4시 10분), 저는 한국에서 보낸 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7월 12에 한국을 떠난 짐은 한국 시간으로, 7월 14경 멕시코에 도착했다가 20일 경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지요. 7월 27일 경 다시 짐은 한국을 출발했고, 29일 경에 멕시코에 도착했지요. 오늘이 8월 26일이니까 44일 만에 드디어 짐을 받게 되었군요.

오전 11시 경에 멕시코 DHL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제는 짐을 받고 싶다고 말했지요. 그때 직원이 아무리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도착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반신반의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는군요. 이 짐 때문에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놓은 휴일의 반을 그저 기다림으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박노해식 표현으로 하자면 DHL이 제 하늘인데요. 의사가 환자에게, 사장이 노동자에게 하늘이듯, 언제나 회사는 고객에게 하늘이지요.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하고 있어야지요.

2.

지난 7월 29일 경 멕시코에 짐이 다시 도착했을 때 저는 세관과 멕시코 DHL에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요. 24만 5천원을 내고 한국에서 보낸 물건의 통관세가 88달러(원화 약 10만원)나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수차례 문의를 했습니다. 멕시코 DHL에서는 '물건의 가치'(Invoice Value 즉 운송장에 적힌 물건의 가치를 말한다)가 150달러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물건 보낼 때 무게에 따라 가중되는 운송비 말고 물건의 가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멕시코 DHL의 제 물건 담당자는 물건에 옷이 들어 있냐, 전자제품이 들어 있냐고 묻더군요. 아니다. 거기엔 책과 공책, 펜, 이불 하나가 들어 있을 뿐이라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의 DHL에서 물건가치를 너무 높게 책정한 것이라고 직원이 답하더군요. 순간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7월 12일 경 처음 보낸 물건이 멕시코에서 통관될 수 없는 음식물과 약을 넣어 한국으로 반송되었지요. 그때 한국 DHL은 분명히 한국의 저희 가족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합리적인 기준을 알 수 없는 멕시코의 통관 사정을 고려해 한국 DHL에서 통관시 협상(Nego)의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지요. 저는 그 말을 신뢰했습니다.

저는 국제적인 물건 운송의 과정을 모르며, 더군다나 난마처럼 얽혀 있는 멕시코의 통관 행정에 대해 문외한이며, 여기 온 지 석 달도 채 안된 상태라 생활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있을 뿐이었으니, 도움을 준다는 소식에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DHL직원이 실수로 통관될 수 없는 품목을 담아 처음 물건을 보냈을 때 가졌던 황당한 심정도 그 약속에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협상의 약속은 온 간 데 없고, 물건이 다시 도착한 지가 1주일이 지나서 제가 들은 소리가 한국 DHL이 물건 가치를 높게 책정해서 보냈다는 소리였으니 제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저는 8월 8일 경 한국DHL에 항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8월 10일에 한국DHL의 직원이 저에게 전자우편 한 통을 보내왔지요.

"제가 멕시코 DHL로 변경된 Invoice(물건의 '운송장'을 가리킨다)를 넣어 주고, 관세를 다시 조정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Invoice Value는 발송하신 분(필자의 부친)께서 작성해 주신 거라 하고. 발송자(필자의 부친)와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아 물건을 pick up한 직원과 통화했습니다. 제가 Value 를 USD 80(미화 80불)으로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잘 진행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결과 확인되는 대로 다시 메일 보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저는 책임을 인정하고 변경된 운송장(Invoice)를 넣어주고, 변경된 물건 가치(Invoice Value)를 멕시코로 보냈다는 직원의 편지를 받고 차분히 기다리기로 다시 마음먹었습니다 .

그렇게 열흘이 속절없이 흘렀지요. 드디어 8월 21일 한국의 동생에게서 기다리던 DHL짐에 대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한국 DHL에서 전화가 왔는데 미화 88불(원화 10만원 상당)이 통관세고, 물건 안 찾으면 반송 조치될 거라고 함. 이번 반송은 DHL에서 책임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빨리 연락주길"

저는 8월 21일 또 다시 항의 전화를 걸었지요. 그때 당신이 했던 첫마디는 우리도 할 만큼 했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속절없이 열흘을 기다리다가 '반송 조치' '책임 없다' 운운하는 회사의 무책임함에 분노해 전화를 건 고객에게 '매일같이 멕시코 DHL에서 연락이 온다. 짐을 찾아갈 것인지 아닌지 해달라는 연락이다. 그래서, 한국의 가족에게 연락한 것이다. 너무 짐이 세관에 머물러 있으면 반송조치나 폐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게 귀찮은 듯이 당신이 말했지요. 거기에는 고객의 처지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고려도 없더군요.

제 전자우편으로 성의 있는 편지를 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 멕시코 현지 전화 번호를 알고 있으니 연락을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짐을 기다린 고객에게 대하는 책임 있는 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송조치라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고객에게 어떻게 '할 만큼 다했다'고 발언할 수 있을까요? 짐을 기다리는 고객에게는 아무런 성의 있는 행동도 취하지 않았으면서요.

3.

7월 14일 처음으로 짐이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저는 계속 통화 중인 멕시코 DHL과 연락할 수 없어서 직접 멕시코 시티 베니또 후아레스 공항에 있는 DHL멕시코 사무소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짐 당당자인 알레한드라 보르하에게 왜 통관세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가 여기는 멕시코라고 한마디 하더군요.

좋다. 그럼 얼마를 내야 하냐 했더니 처음엔 150달러를 불렀다가 그 다음엔 50달러를 내라고 하더군요. 통관도 안 되는 짐을 보내놓고 관세를 낸다는 사실도 알려 주지 않는 한국DHL에 화가 나서 차라리 안 받는 게 낫겠다고 말했더니 그녀가 그게 낫겠다고 진지하게 답하더군요. 뭔가 도움이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단호하게 말했는데 그녀가 그렇게 답하자 허탈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지요. 90불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날엔 40불을 내라고 하더군요.

규칙적이진 않지만 대충 금액이 줄어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지요. 제 친구 패트릭은 한 일주일만 더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럼 그냥 가져가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구요. 합리적인 기준 없이 권한을 가진 특정한 개인에 의해 책정되는 통관 시스템은 언제나 부패의 온상이지요. 당연히 뒷돈이 오가게 되고 누구는 단돈 2만원에 물건을 찾기도 하지만, 누구는 10만원을 내고도 물건 찾기가 힘들어지지요. 직원의 말마따나 바로 이게 멕시코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과 통화할 때 물었지요. 왜 한국 DHL은 미리 통관세를 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고요. 그랬더니 당신이 답했지요. 아니 그것도 몰랐느냐고? 전세계 어디나 일정한 물건 가치 이상은 통관세를 문다고. 한국의 경우도 외국에서 물건이 들어올 때 60달러 이상은 통관세를 물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멕시코처럼 못 사는 나라'는 통관세가 아주 비싸다고 말했지요. 아! 저는 그때서야 국제적인 통관관행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바로 내가 물었던 것은 바로 이런 얘기를 처음 짐을 부칠 때 왜 미리 친절하게 얘기해 주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보낼 물건의 실제 구입 가격에 상당할 24만원 5천원을 지불하고 다시 물건을 받기 위해 10만원이 넘는 액수를 수취인이 지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는지 물었던 것입니다. 고객이 놓이게 될 수 있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해 미리 왜 언질하지 않았느냐는 소박한 항의에 아니 그것을 몰랐느냐고 되레 반문했지요.

또 물건을 발송자에게서 받아오는 직원에게 교육을 하지만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고, 그것을 어떻게 일일이 다 확인하냐고 당신이 말했지요. 마치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듯 얘기하더군요. 전 당신의 상사도 아니고, 당신과 개인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지요. 책임을 인정하고 앞으로 시정하겠다는 말 한마디면 누그러질 고객의 마음을 도무지 헤아리지를 못하더군요.

그리고 7월 13일 경 멕시코에 도착한 짐을 한국으로 반송할 때 제가 왜 모두 돌려보냈냐고 묻자 당신이 답했지요. 제 동생이 다 돌려보내라고 했다고. 아니 어차피 통관세를 낼 것인데 왜 그렇게 하게 된 거냐고 묻자 제 동생이 터무니없는 통관세를 무느니 다 돌려보내는 것이 낫다고 했다지요. 당신은 제 동생에게 나머지 짐은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지요.

저는 만약 제 동생이 그 설명을 듣고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면 그것은 동생이 잘못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제 동생에게 제가 전화했지요. 어차피 통관세는 물텐데 짐을 다시 멕시코로 보낼 생각을 했다면 왜 한국으로 모두 반송시키라고 했냐고 묻자 동생은 물건의 일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자기는 잘 몰랐다고 하더군요.

좋습니다. 오래 전 일이고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할 문제라고 생각합시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국 DHL이 무엇이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지 판단할 능력이 있다면, 이럴 땐 고객에게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친절히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동생은 음식물과 약이 통관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통관세를 낸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당연히 한국 DHL에 대한 신뢰를 잃었겠지요. 그런 고객의 상황 정도는 고려해서 차분하고 자세하게 어떤 선택이 더 옳은지 알려주어야지요. 그것이 한국DHL에게도, 저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제가 왜 제 물건 가치가 150달러로 책정된 거냐고 물었지요. 그것은 아버님과 함께 책정한 거라고 답했지요. 직원이 아버지께 물건 가치는 얼마로 할까요?라고 물었더니 지난번과 똑 같이 해달라고 해서 첫 번째 물건 가치가 150달러였으니 똑 같이 그렇게 했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이 물건 가치에 따라 관세가 매겨진다고 말하면서 관례상 '운송장의 물건 가치'는 '물건의 실제 가치'(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물건 구입시의 가격을 말하는 것인지, 물건 가격시 구입비에서 감가상각비를 뺀 것을 말하는 것인지 언제나 그 가치는 애매하겠지요)에 비해 비교적 낮게 책정한다고 말했지요.

물건을 픽업한 직원은 저희 부모님께 물건 가치를 낮게 매기면 통관세가 낮아진다고 막연하게 말했답니다. 저희 부모들은 물건 발송비 24만 5천원이라는 한국DHL이 매긴 발송 가격과 별개의 물건 가치에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 가치에 따라 멕시코에 있는 자식이 150달러로 책정된 물건 가치의 반이 넘는 88달러를 통관세로 지불할 수도 있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런 화물운송의 제 과정, 통관세가 매겨지는 과정에 대해 저희 부모님들이 전혀 모르는데 그들에게 운송장의 물건 가치를 추인 받았다니 이것이 과연 책임 있는 조치입니까? 당신은 저에게 왜 모든 책임을 한국 DHL로 떠넘기려 하냐고 항의했지요. 저는 왜 당신은 한국DHL의 책임을 한 가지도 인정하려 들지 않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까지는 그런 대로 참을 만했습니다. 더욱 가관이고 기가 막힌 일은 그 다음이지요. 당신은 마치 결론을 짓자는 투로 "그럼 얼마면 받겠냐"고 아주 적나라하게 말했지요. 마치 흥정하자는 투로 말했지요. 저는 그제서야 당신이 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혹시 당신은 그때 저와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사실 이 말 속엔 이미 한국 DHL이 물건 가치를 매길 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저에게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말은 그 동안 물건의 가치에 적합한 통관세를 물고 물건을 수취하겠다는 고객을 우롱하는 처사입니다.

저는 지난 44일 동안 물건을 기다리면서 이번처럼 황당한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뒷돈 거래로 싸게 받을 생각도, 터무니없이 비싼 비용을 내고 물건을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제 물건 가치에 적합하게 합리적으로 책정된 물건 가치에 해당하는 통관세를 정당하게 지불하고 물건을 인수할 생각이었습니다.

전 이미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다 지쳐 46096원의 국제전화비를 썼습니다. 통관세 88$달러의 반에 해당하는 비용을 벌써 지불했습니다. 44일 동안 정당하게 책정된 물건 가치에 해당하는 통관세를 물고 물건을 수령하려고 기다리다가 물건 반송조치를 하겠으니 물건 찾아가라는 통보 한마디 받고 분노한 고객에게 당신이 장사꾼처럼 흥정하자는 소리를 했다면 그것은 의심할 필요 없이 그 고객을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객이 할 말이 남았는데도 전화를 끊어버렸지요.

4.

저는 DHL을 국제적인 수송 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멕시코를 비롯해 전세계로 짐을 보내는 운송 회사이므로 각 나라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정보들을 고객들에게 충분히 전달해 주리라 믿었습니다. 물건을 처음 보내 보는 저희 가족이나 물건을 처음 받는 저나 그저 한국DHL을 믿고 행동했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44일 동안 짐 받을 날을 기다리면서 제가 느낀 것은 한국 DHL이 아는 것이라곤 한국에서 물건 보낼 때 얼마 내야 하는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물건의 정확한 가치도, 멕시코의 터무니없는 통관세도, 권위 있는 개인에 의해 책정되어 합리적인 기준이 없는 멕시코의 통관 관행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처음 보내고 받는 고객들이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서 한국 DHL은 친절히 얘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따라서 고객들은 물건 가치가 두 개라는 사실과 통관세에 대해 미리 자세히 조사해서 짐을 보내고 받아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때론 고객과 약속도 지키지 않고 고객에게 책임도 떠넘기고 고객을 모욕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들이 당한 어처구니없는 경험이 예외적인 경우라면 정말로 다행이겠지만, 순간 얼마나 많은 해외 체류 한국인들이 저와 같은 황당한 경험을 당하고도 참고 있는지가 무척 궁금해집니다.

다시 짐을 보내고 받게 될지도 모를 제가 받을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분노와 스트레스와 짜증을 다스리고 담담하게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 글을 쓰는 이유는 한국 DHL의 서비스가 고객 중심으로 바뀌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국의 하늘 아래서 의지할 곳이라곤 아무도 없는 냉정한 통관 시스템 속에서 멕시코 DHL직원이 "통관세가 터무니 없으니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당신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던 그 말에 저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언어가 제대로 통하지도 않은 그녀의 황당한 제안에 제가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저를 존중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모국어를 쓰고 저와 대화했던 한국DHL에 더욱 분노하는 것입니다.

전 지금 당신 개인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동안 당신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싸운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는 아무런 개인적인 감정이 없습니다.

당신이 맡고 있는 고객 직접 대면의 악역, 제가 받은 한국 DHL의 형편없는 고객 서비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통관세와 그것을 매길 권리를 권위 있는 개인에게 부여한 멕시코의 시스템, 그로 인해 물건 수취하는 데도 뒷돈을 요구하는 일이 팽배한 멕시코 사회.

그것들과 지난 44일 동안 '기다림'이라는 무기로 싸운 것입니다.

2000년 8월 26일 멕시코의 수취인 박정훈


추신

1.

짐은 3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88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페소화로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짐을 풀어보았습니다.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3권,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과 [납치일기] 2권, 보르헤스 전집 4권과 시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대학시절 영어작문 시간에 공부했던 원서 두권, 작년에 공부했던 영어 문법 서적 두 권, 새 유럽의 역사,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고종석의 [언문세설]과 [국어의 풍경],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제가 요청한 대로 가볍고 제 발을 덮을 말한 이불 하나, 취재용 기자수첩 10개, 그리고 색연필 10개, 파란색과 검은색 수성 싸인펜 각각 10개, 그리고 이미 한달 반을 박스 속에서 흘려 보낸 낡은 책상용 달력 하나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짐을 받기 위해 44일이라는 시간, 24만원 5천원 발송비용, 국제전화비와 통관세 10만원 가량, 한국의 동생과 주고받은 40여 통의 이메일, 그리고 속절없는 기다림이 필요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갑자기 짐들이 한없이 가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DHL이 48달러를 냈다고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더군요.
제 싸움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2.

짐을 받고 나니 한국의 동생으로부터 한통의 이멜이 날아왔더군요.
국민카드사와 비씨카드사에 국민비자카드와 조흥마스타카드를 신청하고 나서 두 카드 모두 아시아나 항공사 제휴 마일리지 카드로 바꾸려 했더니 그럴러면 네 개 카드 모두 연회비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더군요. 즉 이미 신청한 국민비자카드와 아시아나 항공사 제휴 국민비자카드, 이미 신청한 조흥마스타 카드와 아시아나 항공사 제휴 조흥 마스터 카드. 이렇게 네 개의 연회비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처음에 카드 만들 때 자세히 설명 해주지 않았다고 동생이 흥분해서 메일을 보냈더군요. 전 간결하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다시는 회사를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고 처신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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