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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리 선생님, <문학과 지성사>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려 놓으신 글(7월 26일 게재) 잘 읽었습니다. 이어지는 기사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점과 궁금한 점 등을 엮어 놓은 '공개 질문서'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파리 8대학 철학과 DEA과정에서 스피노자를 주제로 공부하고 있는 박재우라고 합니다.

공개질문서를 드리는 장소로 <오마이뉴스>를 선택했다는 점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세요. <문학과지성사> 게시판이 너무 답답해 보였다는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마이뉴스>에도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좀더 이성적인 논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쪽 지면, 아니 화면을 택했습니다.

선생님이 시간 나시는 대로 <문학과지성사> 혹은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답변 글을 올려 주시면 정말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니, 이왕이면 <오마이뉴스> 사이트에도 글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인터넷 상에서는 현실세계와 같은 거리감이 없어 링크를 걸어두는 것으로 충분히 상호참조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오마이뉴스>는 하나의 웹사이트이기 전에 고유한 색채를 갖고 있는 언론사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답변을 하신다면(물론 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답변을 못하셔도 무방합니다), 질문이 제기되었던 <오마이뉴스>를 통해 의견을 피력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사과드릴 일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 올린 제 기사, <안티조선과 지식인 운동의 한계>에서 '고종석 씨와 정과리 씨 간의 토론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민중문학의 논리를 날카롭게 파헤쳤던 논객 정과리 씨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반응은 좀 게을렀다'거나, '방담 수준이었다'는 투로 두 분의 대화를 폄하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제가 <문학과지성사> 게시판에 올려 놓으신 선생님의 글을 읽기 전이라 이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글이 <문학과 지성사>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김훈'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그럼 본문으로 들어 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조선일보가 정말 극우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의견을 전개해 놓으신, 글의 앞쪽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동인문학상>과 <조선일보> 사이의 관계설정 문제, 그리고 정치권력과 문학일반의 관계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이 주를 이루는 이 부분은,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문제의식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학과 문학계의 상황에 무지한 저로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냥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라고만 해 두겠습니다(혹시 이 부분에 대한 저의 판단을 원하시는 독자분이 있다면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문제의 핵심은, '과연 <조선일보>가 극우 신문인가', '만약 극우 신문이 아니라면 어떤 신문인가'라는 질문들에 대해 선생님이 내리신 해답들 속에 놓여있을 듯합니다.

이번에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일군의 비판적 지식집단(선생님의 표현을 잠깐 빌리겠습니다)"이 저지른 실수들 가운데 하나가, <조선일보>의 성격규정에 관한 체계적인 설명 없이 거부성명만을 달랑 발표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글에도 그에 대한 노여움이 격하게 나타나 있는 듯합니다. "저는 저들로부터 새겨들어 납득할 수 있는 어떤 합리적 판단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비아냥과 욕설과 극언을 제외하면요." 따라서 성격규정의 문제는 '비아냥과 욕설과 극언'의 난장판을,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쟁의 장으로 이끌 열쇠인 셈입니다.

저 역시 <조선일보>가 아무런 논쟁도 거치지 않은 채, 대중추수적인 방식으로 '극우신문'이라는 올가미를 쓰는 것에 반대하니까요.

그럼 먼저 '조선일보는 극우신문이 아니다'라는 선생님의 잠정적인 결론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조선일보>가 이념적으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언론집단이기 때문에, 극우 이데올로기로 단일화된 이념 단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이념적 편차는 평기자와 논설진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논설위원들 사이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부언해 놓으셨습니다.

저 또한 동감하는 말입니다. <조선일보>는 대중지이며 종합지입니다. 상대적으로 뚜렷한 이념적 일관성이 존재하는 'La Croix' 나 'L'Humanité' 같은 신문들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언급하신 "일군의 비판적 지식집단"에 속하는 분들도 이러한 사실, 모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선생님께서도 <조선일보>에 "극우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합의점입니다.

논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여기서 첫번째 질문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언급하신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조선일보> 사설 집필에 참여한다고 보십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의 의견이 <조선일보>의 공식 의견으로 대중에게 제출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비판적 지식집단'이 극우라 지칭하는 몇몇 분들의 사설에 대해 다시 한번 세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테구요, 질문에 긍정하신다면 제가 논의를 풀어나가기 훨씬 간단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설이란 한 신문의 공식적 의견을 개진하는 칼럼입니다. 따라서 구성원의 이념적 편차가 아무리 다양한 대중지라 하더라도, 사설만큼은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합의를 거쳐 집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사설에 극우 이데올로그들의 의견이 종종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은 그러한 합의 체계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물론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지요. <조선일보>의 구성원 전체가 이 극우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은 선생님과 저 모두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가진 극우보수주의적 성향은 내부 합의체계의 비민주성을 담론생산의 조건으로 가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방금 지적한 <조선일보>의 문제점들을 제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전체적인 그림 속에 위치시켜 말씀 드리자면, 발화주체의 문제(몇몇 논설위원들), 사적(史的) 토대의 문제(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적 토대의 문제(남한 자본주의에 순응한 언론 재벌들의 소유구조/경영방식/노동관리)와 담론생산 기제의 문제(내부 합의체계의 비민주성), 마지막으로 남한 사회 이념지형의 문제 정도가 되겠지요.

앞에서 제가 건드린 문제들은 보시다시피 첫번째와 네번째입니다. 특히 이에 대해서는 이미 강준만 씨가 풍부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다음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물론 각각의 분야에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더 정치한 분석을 올려 주시면 더욱 좋겠구요. 이 글에서 저는 주로 네 번째 지점에 기대어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어서 <조선일보>에 내재하는 이념적 편차들이 서로 길항(拮抗)하면서 신문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전망하셨습니다.

이로부터 <동인문학상>의 개편과 같은 문화면에서의 개혁작업이, <조선일보> 전체에 일종의 충격파를 던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셨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의 해법 역시 상당히 기능주의적으로 보입니다.

특히 다양한 이념들 간의 길항관계를 <조선일보>의 정치면과 문화면 사이의 길항관계로 치환하시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그렇습니다. 정치면에 '이데올로기의 생산', 그리고 문화면에 '저항 이데올로기의 생산'을 각각 배치시키는 구도가, 선생님께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조선일보>의 변화 메커니즘이라면, 그것 또한 기능주의적인 방식의 설명이거든요('좋은 의미에서의 길항작용'이라 첨언하시긴 하셨지만, '나쁜 의미에서의 길항작용'은 선생님의 주장 전체를 허물어 버리기 때문에 선생님 글의 맥락에서는 대두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능주의적이라 비판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다양한 이념적 편차들의 길항은 <조선일보>가 가진 각각의 모든 지면마다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선일보>가 모든 지면에서, 특히나 정치면에서, 그렇게 다양한 이념들의 엇갈림과 마주침을 허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생각을 하셨던 탓인지,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그럴 수 있는지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언론 전반의 문제는 한국 언론인들 전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니까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문제를 남한 언론 스스로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도 지적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전망 역시 난관에 봉착하는 듯합니다. 전술했듯이 <조선일보> 내부의 합의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지요. 남한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보수 언론들이 그렇듯이 <조선일보> 구성원 스스로 내부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기제가 망가져 있는 셈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념들간의 길항에 따른 변화' 역시 이러한 기제 없이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언론계의 여러 기자들이 노력하고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선일보>의 외부 혹은 남한 언론사회의 외부로부터 내부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이제 두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동인문학상>의 개편이 문학계의 타성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 그대로 믿겠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 혹은 남한 언론의 변화를 위해 유효한 개입방식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또한 '안티조선'의 운동 방식이 그러한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 만큼 효과적이라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티조선' 운동에 관한 저의 평가 아니 비판은 미약하나마 제 이전 기사에 적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은 <조선일보>의 이념적 복합성과 그에 기반한 변화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시고 '조선일보는 극우신문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리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상당히 근거가 박약한 듯 하네요.

저도 의구심이 들어 다시 한번 선생님의 글을 살펴봤는데, 이렇게만 설명하시고서는 두 번째 질문 그러니까 '만약 극우신문이 아니라면 <조선일보>는 어떤 신문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셨으니까요.

제 판단착오라면 용서해 주시고, 혹시 실수로 언급하지 않으신 논거가 있다면 그것도 함께 답변글에서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조선일보=극우신문'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몇 극우 이데올로그들의 발언이 <조선일보>의 지면 위에서 일정한 담론 생산의 조건을 가진 채 계속적으로 생산/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은 명확해졌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드는데요. '<조선일보>는 극우의 온상이다' 따위의 선동적 발언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도, '안티조선'의 기본취지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운동이 가진 효율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더 논의를 해봐야 할 것입니다.

기사가 너무 길어져서 일단 이것으로 줄이겠습니다. 몹시 날림으로 쓰여진 글이라 읽기 괴로우셨을 것 같습니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올릴 두 번째 글에서는 선생님께서 더욱 구체화하신 <조선일보>의 '보수적' 성격에 대해 계속 질문 드리겠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제가 빌려 썼던 "비판적 지식집단(아무래도 '集'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이라는 선생님의 표현을 '진보적 지식인들' 정도로 순화하려는 이유도 함께 적어보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덧붙이는 글 | 원래 '반미감정'에 관한 글을 올리려고 했으나, 이왕 시작한 김에 또 한편 같은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다들 읽으셨겠지만, 아직 안보신 분들은 <문학과지성사> 사이트의 게시판에 가셔서 정과리교수님의 글을 한번쯤 읽어보실 것을 부탁드리구요(그게 예의 아니겠습니까). 제가 잘못 이해한 게 있으면 글을 올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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