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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사랑해!"
요즘의 연애 풍속도를 나타날 때 잘 쓰이는 카피다.

그 누가 말했던가?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그러나 이 말은 한때 연인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던 명언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평범한 글귀에 불과하다. 너나 없이 해외를 안방처럼 들락날락거리고 '푸른눈'과 '큰코'와의 살섞임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요즈음엔 더더욱 그렇다.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타고 북한 처녀와 남한 총각과의 사랑도 3.8선을 사이에 두고 뜨겁게 불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마당에 '사랑엔 국경이 없다'고 타령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답안처럼 싱거울 뿐만 아니라 바보같은 얘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까지만 해도 연인들 사이엔 쉽사리 넘지 못할 '국경'이 또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나이'라는 장벽이다. 89년 홍대앞 거리. 한 남자가 모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퀸카'를 만나 한참 속삭이고 마음속으로 손가락을 걸 즈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지막 확인차 나이를 물어본다.

"나이가 몇이세요?"
"그쪽은 몇이세요?"
여자가 반문한다.

남자는 혹시 몰라 나이를 한 살 올려 말한다.
"스물 네 살이요"

순간 여자가 눈을 깜박이며 되묻는다.
"스물 네 살이에요?"

여자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치마자락을 붙잡아 물어보니 여자는 스물다섯, 모여대를 졸업한 지 두해째란다.

나만의 경험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최근 들어 연인들 사이에 '나이파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름하여 '연상녀 연하남' 커플. 나이차로 인해 속앓이를 하던 이들의 '공개 선언'뒤에는 연예계 스타들의 영향력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

대표적인 예가 최진실이다. 10여년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로 엑스트라에서 일약 대스타로 변신한 최진실은 오는 12월 5일 자신보다 무려 다섯 살이나 연하인 야구선수 조성민과 화촉을 밝힌다고 한다. 그녀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에 옮기듯 그 높은 사회적 통념을 깨고 막내동생뻘 되는 연하남을 선택했다.

연하남을 택한 연예인은 최진실말고도 수두룩하다. 황신혜, 김미숙, 송채환등등. 현실보다 TV속은 셀 수 없이 많다. 모든 멜로 드라마가 '연상녀 연하남' 구도를 하나씩 양념으로 집어넣고 있다. 사회를 반영하는 건지 방송만이 혼자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유래를 살펴보자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려시대. 원나라는 여공(女貢) 5백명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1276년(충렬왕 2년) 국가에서는 그 이름도 불명예스러운 '과부처녀추고별감(寡婦處女推考別監)'을 설치해 조공으로 바칠 여자를 각 도에서 구한다.

딸을 둔 부모들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부모들은 서둘러 시집을 보냈다. 신랑의 나이는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대개 신부가 신랑보다 한두살내지 대여섯살 정도 많았다. 이런 조혼 풍속은 19세기말, 20세기초까지 오래도록 지속된다.

"아주머니, 김서방 있나?"
"응, 안에 있어요, 싸우지 말고 잘 놀아야 해요"
"아주머니, 오늘은 뭣하고 놀지?"
"누룽지를 싸 줄 테니 뒷산에 가 놀도록 해요"
"오오냐"

'한국학'의 대가로 불리는 이규태씨의 명저 '한국인의 性(성)과 사랑'(문음사 刊)에 나오는 한토막의 대화이다. 19세기말 조순이라는 열일곱살난 처녀는 10년 연하인 일곱 살난 신랑과 결혼한다. 신랑은 큰 누님같은 아내를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신랑의 친구들도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그러나 으레 말투는 반말이다. 비록 나이는 어렸어도 지아비요, 지아비의 친구들인 것이다.

이같은 연하남 신랑과 연상녀 신부는 '부부갈등'도 심했다. 음양의 이치엔 깜깜한 채 이부자리에 오줌만 싸는 코흘리개 '꼬마신랑'과, 가슴에 봉곳이 솟아오르고 물이 오를 대로 다 오른 신부간의 성적인 갈등은 급기야 신부가 딴 남자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거나 남편을 죽이는데로 까지 몰고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1930년 당시 한국의 형무소에 갇혀 있던 여자 살인범수는 47명에 달했다고 한다. 남자 살인범은 53명. 남자를 1백으로 치면 여자는 88이다. 이는 독일의 13.5, 일본의 11, 대만의 3에 비교해 보아도 엄청난 고율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들 여자살인범의 60% 이상이 자신의 본남편을 살해했다는 통계는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럼 여자 살인범들의 범행 동기는 무얼까? 이에 대해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규태씨는 상당한 부분이 나이가 어린 신랑을 둔 '처녀신부'들이 정욕을 참지못해 딴 남자와 간통을 하다 끝내 '꼬마 신랑'을 죽인 예를 들면서 이와 반대로 나이가 매우 어려 생리적으로 발육이 안된 '소녀신부'들이 남편들의 무리한 섹스 요구에 참지 못해 살인을 범한 경우도 많다고 분석한다.

어느 쪽이 더 컸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성적 갈등으로 빚어진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나 '꼬마신랑'을 둔 신부는 어땠을까? 아마도 평생 쓸쓸한 밤을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 신랑이 어릴 때는 몰라서 그랬고 성장해서는 바람을 피워서 그랬다. 신랑이 양어깨가 떡 벌어지는 건장한 청년이 되자 배꽃처럼 곱던 신부는 이미 얼굴에 주름살이 피어오르는 '언밸런스'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른 것 같다. 성격차로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나이차로 인해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무엇보다 혼인 방식이 중매에서 연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연하남 연상녀' 커플의 십중팔구는 일방 또는 쌍방의 '지독한' 연애로 얻어진 결실이다. 이들 커플 중에 부모나 주위사람들이 맺어준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결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같으면 '여자 등쌀에 어떻게 살아?' 라며 손사레를 치던 남성들도 지금은 '철든 아내가 좋다'며 두손를 들어 환영한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연하남을 선택한 친구에게 '애랑 어떻게 사냐'라고 놀려대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능력있네'라며 부러워한다.

누군가 나이를 초월해 결혼한다면 정작 눈치를 봐야할 상대는 친구나 주위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태어날 2세이다.

"왜 아빠는 엄마 동생이야?"
"동생인데 왜 엄마한테 반말해?"
"그럼 나도 00누나랑 결혼할래"

이렇게 물어올 초등학생 아들놈에게 촌철살인과 같은 화두를 던져 깨우침을 주어야 하는데 완전 무방비상태다.

그건 나중 일이니까 옆으로 밀어둔다고 치고 당장에 부모는 어떻게 설득할까? 그러나 염려 붙들어둘 일이다. 요즘 부모들도 많이 세련됐다. 이제는 부모들도 연하남 연상녀의 결혼에 대해 좀처럼 반대의사를 내놓지는 않는다. 단 옵션을 단다. "최진실 만큼 이쁘냐?" "조성민처럼 돈 잘버냐?"

바야흐로 '제3의 국경'이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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