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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예술품은 만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 지난 한 주였다. 한국영화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과 그로 인한 애증(愛憎)도 동시에 체감한.

나의 졸고 <'오! 수정' '동감' '킬리만자로' 다 봤다. 그런데...>에 대한 몇몇 비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1800년대 중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영국의 노동 소설가 마가렛 하크네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적한 '세부적 진실의 총체로써 전형성의 획득'이라는 미덕을 '오! 수정'이 가지고 있다는 이준석 씨의 지적은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예술은 객관화시켜야 할 목적적 대상물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의 대상'이라는 김희정 씨의 견해에는 나 자신도 이견이 없다.

"지나치게 게릴라적 글쓰기(?)에 기댄 기사인지라 본격적 문제제기와 해법을 찾지 못하고, 한국영화 일반에 대한 미래 예측인지, 개별 영화에 대한 비난인지조차도 헷갈린다"는 우효측 씨의 글도 장황스럽긴 하지만 새겨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오세은 씨의 '20세기 산업자본의 총아로서의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는 아직도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딜레마가 외려 새로운 대안 모색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에 한국영화의 미래가 그닥 어둡지만은 않다'는 요지의 반론기사도 매우 매력적이고 건강한 비판으로 읽힌다.

이런 비판들은 앞으로 영화 관련 기사를 쓸 때 내게 매운 채찍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이 한국영화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헛소리냐"
"너는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결핍증이 심각한 병자다"
"영화에 대해 굉장히 아는 척 하는데 영화와 관련된 너의 과거 이력을 밝혀라"

등의 마구잡이식 비난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이렇다할 오락거리를 가질 시간과 금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가난한 한 청년이 그의 유일한 오락거리인 영화와 어떻게 만났고,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에 대한 솔직한 자기고백이다. 이것이 내게 퍼부어진 비난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지.

"영화보단 설탕을 섞은 미지근한 우유가 좋았다"- 6세~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내가 영화와 첫 조우를 한 건 6살 때다. 부산 번화가 서면의 한 극장. 나를 아버지보다 더 귀여워하던 둘째 삼촌은 조그만 흑백화면으로 '서부소년 차돌이'나 보고 자족해 하던 나에게 '세상에는 저렇게 큰 TV도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1976년 내가 그 무지막지하게 큰 TV로 봤던 '로버트 태권 V'의 주제가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나 사실 내가 그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안소니 퀸이 주연했던 전쟁영화의 커다랗고 근사한 총과 대포나 만화영화의 고운 색깔 때문이 아니다.

삼촌은 함께 영화를 보는 날이면 꼭 나를 끌고 어둑신한 다방을 찾았다. 하기야 그때는 거기가 다방인지도 몰랐지만. 거기서 맛보는 설탕을 섞은 미지근한 우유와 레지였을 것이 분명한 여자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던 혼곤한 느낌은 영화가 어린 소년에게 던져준 문화적 감흥보다 훨씬 더 달콤했다.

조카가 '집밖에도 이렇게 근사한 세상이 있구나'라는 대견한 깨달음을 얻으며 훌쩍 커가고 있을 때 삼촌은 낯선 여자들의 손이나 무릎을 만지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어쨌든 그 시절 영화는 내게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아, 여자의 몸은 저렇게 생겼구나"- 중학교 시절

1984년 가을. 그 도시에는 두 부류의 14살 소년들이 있었다. 용감하게 극장 입구를 통과해 '빨간 영화'(굳이 표현하자면 '성인 에로영화')를 본 '진짜 남자들'과 그럴 용기가 없는 '꼬마 녀석들'.

중학교 1학년 가을 소풍을 끝내고 '마산극장' 입구를 당당히 통과해 임동진. 유인촌 주연의 '장미부인'을 봄으로써 나도 '진짜 남자들'의 반열에 들었다. 세상이 달라 보였고, '나도 이제 알 건 다 안다구'라는 참으로 철없는 자만심에 며칠을 '꼬마 녀석들' 앞에서 거들먹거렸다.

치마를 자주 입고 와 어린 중학생들 사이에서 영화배우 정윤희 만큼이나 인기가 있던 과학 선생님의 치마 밑에 거울을 가져다대고 속옷 색깔을 알아내 낄낄대던 유치한 짓거리도 당장에 접었다. 600원만 주면 과학 선생님보다 열 배나 더 예쁜 여배우들의 알몸을 통째 볼 수 있는데 무엇하러 들키면 종아리에 멍이나 드는 별 무소득의 위험한 장난을 할 것인가.

사춘기 시절. 내게 영화는 성과 사랑에 대한 교과서에 다름 아니었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성과 사랑이 다소간 과장과 왜곡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때 나에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1986년. 그 도시 아이들 모두는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의 수영복 사진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광기에 가까웠다. 중학생 관람불가였던 '소피 마르소' 주연의 '라붐 2'를 보다가 '교외 합동단속반'에게 걸려 담임에게 두드려 맞고, 반성문을 쓰던 나와 형철이. 선생들에게 우리는 문제아였지만 또래 친구들에겐 스타였다.

그 시절 내게 영화 관람이란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강제되던 억압에 대한 반항이자 저항양식이었다.

"현실과 불화하며 공중을 부유하는 다양한 꿈들을 만나다"- 고교 시절

공부빼고 다른 건 다 잘하는 고등학생들이 우리 학교에도 많았다. 하여 어느 부류는 또래의 여고생들과 통닭집 다락에서 담배 피우고 소주 마시는 일에, 또 다른 부류는 책가방에 망치와 쌍절곤을 숨겨 다니며 패싸움을 일으켜 '마쵸적 기질'을 과시하는 일에 집착했다. 아주 소수이긴 했지만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에 집착하는 샌님들도 없진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8년. 나는 비슷한 녀석 대여섯 명과 매주 금요일마다 2본동시 상영관 '태양극장'을 찾았다. 소주와 오징어를 먹고 마시며 떠들다가 필름이 중간에 잠시라도 끊기면 영사실을 향해 감자를 먹이던 시절.

베드신이 나올 때마다 동네 건달들이 "휙휙" 휘파람을 불어대던 그 습기차고 지린내 나는 '태양극장'에서 나와 친구들은 참으로 많은 영화를 봤다. 당장 기억이 나는 것만도,
안성기 전무송 주연의 '만다라', 강수연이 열연한 'W의 비극', 임권택 감독의 '티켓', 데이비드 로렌스 원작의 '챠타레 부인의 사랑', 그리고 동네 건달과 우리 친구 모두를 공히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린 '애마부인', '산딸기', '빨간 앵두' 시리즈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중학교 시절처럼 여배우가 몇 번이나 발가벗는 가로 훌륭한 영화와 졸작을 구분하던 유치한 짓을 하지 않았다. 영화가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훌륭한 대리체험의 교과서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다.

그 시절 영화는 '성문종합영어'나 '정석수학'에서는 결코 체득해낼 수 없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내게 가르친 스승이라 부를 수 있겠다.

"영화를 통한 세계 변혁이 가능하다?"- 대학 시절

누가 뭐래도 1990년은 '파업 전야'의 해였다. 영화패 '장산곶매'가 제작한 그 '파업 전야'의 상영을 막기 위해 노태우 공안정권은 헬기를 동원해 대학 구내에 최루탄을 살포하고, 관객들을 무자비하게 연행했다. 최루탄 연기 때문인지, 감동 때문인지 나와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 영화를 봤고, '영화가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구나'라는 것에 고개 끄덕여 동의했다.

이듬해인 91년. 오직 '화장품 메이커'와 '예쁜 옷'에만 집착하던 여자친구 J와 '영화제작소 청년'의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함께 봤다. 영화를 보고 공대 합동강의실 상영관을 빠져 나오며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야, 전에 니가 읽던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빌려줄 수 있어?". 영화 한 편이 사소한 부분일망정 그녀 삶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 시절 내게 영화란 '예술을 통한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낙관케하는 가장 확고한 증거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된 2000년. 나는 오늘도 영화를 본다.

영화보기란 늘상 내게 기대에 상응하는 환멸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영화라는 미혹 속에 '희망'이 숨어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그 '희망'이 단순히 유미적인 재미와 자기만족의 현학에 한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나의 믿음이다.

설혹 '시네마 천국'의 토토처럼 영화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닐지라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쓴 소설가 안정효처럼 영화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박학다식을 가지지는 못했더라도 나는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쓸 것이다. 오늘도, 앞으로도.

증오는 애정의 자식말이다. '사물에 대한 비판에는 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옳다면 나는 떳떳하다. 위에서 고백한 내 삶이 그것을 담보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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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