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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시 40분- 취재 종료

개표가 92% 가량 진행되었다. 1500여표차로 우 후보가 지고 있다. 침묵이 흐르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지지자들이 위원장실로 들어와 더욱 더 열심히 일해 줄 것을 부탁하며, 우 후보를 위로한다.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가 직접 찾아와 우 후보를 위로한다. 열심히 했으니 회한이 없어야 한다는 당부의 말과 함께 우 후보의 손을 꼭 잡아쥔다. 여사의 눈에 물기가 어려 있다. 배은심 여사는 우 후보의 합동연설회 때에도 우 후보를 찾아와 그를 격려했었다.

지지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당직자들의 말에 우 후보가 위원장실 밖으로 나간다. YTN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우상호 후보의 선거 결과에 대한 연설이 시작된다. 우 후보가 지지자들 앞에 서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잠시 후, 침묵이 흐른다.

다음은 우 후보가 지지자들 앞에서 한 연설 전문이다. 팔이 아프도록 휘둘러 쓴 글이라 문맥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미처 귀담아 듣지 못한 부분도 있다. 사정이 어려웠던 점,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의 넓은 이해를 부탁드린다.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마지막 날 유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지난 한 달 반 동안 여러분이 저를 위해 고생하신 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에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여기에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여러분을 만나 팀웍과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열의를 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개표 결과 1500여표차로 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는 보이지만 만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제가 처음 여러분을 뵈었을 때부터 일관되게 말씀드린 것이 저는 결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쓰러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출마했다는 소신을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소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나라의 정치 개혁을 위해 내 한 몫을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마라톤을 뛰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IMF 장본인인 한나라당이 득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역주의와 낡은 정치 관념이 아직 사로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반증입니다. 통탄할 현실입니다. 이 상태로는 21세기를 열 수 없습니다.

유권자 의식이 바뀌고 새 나라를 건설할 때까지 더욱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우상호의 패배는 확실이 제 책임입니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서로 비판할 필요도 없고, 서로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비록 첫 싸움에서는 졌지만, 아직 이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과정을 모두 새 정치를 여는 지난한 과정으로 봅니다. 다시 한번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우리는 정정당당했습니다.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 한 번의 패배로 제게 등을 돌리지도 마십시오.

오늘의 승패에 관계없이 저는 여전히 서대문구 갑지구당의 위원장입니다. 위원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더 큰 힘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리고 제게 박카스를 건네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던 분들에게 더 큰 힘이 되었을 거지만, 그 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낡은 정치와 싸워서 최종 승리를 거둘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결과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늘 술 한 잔 같이 하실 분은 남아 주십시오. 패인은 제게 있습니다.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 유권자들이 많았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다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3가지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민국당으로 가신 분들을 회유하거나 합류를 종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분들이 자신들의 소신에 따라 선택한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지역에서 저와 정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인데도 내가 표를 얻기 위해 꼭 잡아야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구의원이나 시의원 자리를 내줄 것을 약속하며 그들을 속이지도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낡은 정치 관행으로 손꼽히는 금품 살포와 관권선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약에 그런 유혹에 쉽게 빠져들었다면 설사 국회의원이 된다 하더라도 결코 존경받는 정치인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의 결과에 섭섭하게 생각할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원칙과 소신을 반드시 지켜나갈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멋있게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국회의원이 되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 나라 정치를 바꿀 수 없습니. 나는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내일은 다시 밝은 낯으로 시작하도록 합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 목이 터져라 외쳤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는데 결과는 미흡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상호의 장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후 10시 45분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더 침울해지고 있다. 표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이는 점점 더 심하다.

우상호 후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우 후보를 맞는다. 다소 어두운 얼굴 표정의 우후보.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직자들도 패배를 자인하는 분위기다.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세 지역으로 점쳤던 지역에서 대부분 개표가 끝났고, 현재 개표가 남아 있는 지역은 열세 지역이다. 더 이상의 기대는 금물이다.

위원장실에 들어선 우 후보는 당직자들과 함께 동별 개표 현황을 점검한다. 우 후보 역시 뒤집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어렵겠어"라고 말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위원장실 밖에서는 지지자들이 "그래도 열심히 했어."라고 말한다. 더러는 막판 뒤집기를 기대해 보자는 말도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마침내 누군가 "끝나 버렸어."라고 말한다.

현재 우 후보는 다시 위원장실 밖으로 나가 지지자들 사이에 앉아 개표 방송을 보고 있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다.

기자는 지금 지구당 사무실을 나와 사무실 건물 옆의 PC방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 누구도 기자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 하나 없지만, 기자는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 기사를 쓰고 있을 수가 없다. 언제까지 계속해서 기사를 써야 할지 고민이다.

오후 9시 40분

우 후보와 이 후보는 현재 엎치락 뒤치락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면서 선두 다툼을 하고 있다. 9시 5분 경, 이 후보가 60여표차로 앞섰다가 9시 18분에는 30표차로 다시 우 후보에게 선두를 내줬다. TV 모니터를 지켜 보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도 일희일비. 환호성과 한숨이 뒤섞여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끝까지 갈 조짐이다.

잠깐 혼전을 거듭하고 있는 틈을 타, 김화준 실장과 간이 인터뷰를 가졌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이나?

"처음에는 불안했으나 안심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직 개표가 남아 있는 동이 우리가 강한 동이다."

이성헌 후보측은 현재 필승을 장담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긴다는 주장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우리도 장담할 수 있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보이는데,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젊은 층의 투표율, 그리고 전체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것은 다소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왜 투표율이 낮은지는 좀 분석을 해봐야겠다. 그러나 각 동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율과 관계없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표차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 1,200표 정도."

이미 한번 선거를 치뤄본 경험이 있는 이성헌 후보보다 여러 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았을 텐데 이번 선거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지구당 조직과의 결합이 완전히 안된 상태(김상현 의원과의 공천 경쟁 후유증으로 공천 후에도 지구당 조직을 접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에서 자금 없이 선거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다. 이성헌 후보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조직을 내세워 선거에 돌입하면서 초기에는 고전한 것이 사실이다."

인터뷰 중에 갑자기 환호성이 터진다 위원장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우 후보가 100여표차로 앞서가고 있는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인데도 간만에 이 후보를 따돌린 것이 그들을 흥분시킨 것이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다. 악수를 나누며,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 닭튀김을 배달시켰다. 닭튀김을 놓고 벌어지는 작은 실랑이. 양을 적고 입을 댈 사람 많다.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우리 닭먹고 합시다!

오후 8시 52분

MBC 개표 결과, 우 후보가 이성헌 후보를 63표차로 앞서가고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환호성. 그 환호성은 곧 바로 웃음으로 번진다. 겨우 63표 차이로 환호성을 지를 것까지 없지 않느냐는 반응들. 그러자 곧 지역 구민으로 보이는 한 분이 "어쨌든지간에 이기면 되는 거여."라고 말해서 사람들은 한 번 더 웃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위원장실에 앉아 개표 결과를 따로 지켜보고 있는 당직자들은 속이 타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표차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이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담배 연기만 더욱 자욱해지고... 기자는 지금 그들의 눈치만을 보고 있다.

오후 8시 25분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하고 있는 우 후보의 지구당 사무실에는 현재, 지역 내 민주당 당원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친지 몇 분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서대문구 갑지구의 개표는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다.

TV 앞에 모여 앉아 개표 방송을 지켜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 그리고 조금은 지리한 표정이다. 한 두사람씩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의 잡담이 늘어가고 있다. 가끔 농담이 오고가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사무실에 당직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부재자 투표 결과, 우 후보가 이성헌 후보를 230여표차 앞서 가고 있다고 발표.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인다. 하지만 당직자의 표정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당직자는 "부재자 투표에서 좀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었다. 기대에 못미친다."라고 답변한다.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 우 후보가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승부를 가를 수 있는 표차가 나올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 박빙의 접전이 예상된다. 이러다 날밤을 새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이다.

오후 6시 10분

6시 10분 우상호 후보 사무실.
담배 연기 자욱하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사무실에 모여 앉아 TV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 MBC방송. 출구조사 결과를 방송하고 있는 중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출구조사 결과부터 물어 보았다. 기자 역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는 3% 정도 앞서간다는 것. 그런데 별로 반가워하는 표정은 아니다. 그 정도로 아직 안심을 할 수가 없다는 듯.

별로 하는 일 없이 사무실 안은 분주하다.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기획팀 직원들. 잠시 후, KBS와 SBS의 출구조사에서 우 후보가 0.8% 가량 뒤진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조금 긴장하는 모습이다.

다른 386후보들의 결과를 물어 보았다. 대체로 선전을 하고 있다는 대답.

TV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앞설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들은 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일 또한 우 후보의 당선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듯.

우 후보는 지금 집에서 휴식 중이다. 하지만 그도 지금은 초긴장 상태로 개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의 고생을 말하자면, 단 몇 시간의 휴식으로 풀기 어려울 듯. 어느 정도 당락이 결정되면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낼 거라는 이야기.

기자는 지금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사무실 분위기에 휩쓸린 탓인지 기자마저 호흡이 가빠진다. 이러다 몇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 앉아 기사를 쓰려서 계속 목이 메인다. 잔기침이 터진다. 물 한 잔 마시고 다실 시작할 생각이다.

컴퓨터 쟁탈전이 치열하다. 기사를 작성하고 나서도 전송에 또 다시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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