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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 많이들 보셨으리라 믿는다. 부산국제 영화제에서도 호평받았고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개봉관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80년 광주' 를 겪은 한 청년의 20여 년 인생을 차분히 보여준다. 보고 나니 흔히 후일담 문학이라 불리는 소설 한편 본 기분이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은 역시 그 전달 방법이 다른 매체였나 보다. 이야기를 재치있게 구성하고 이를 깔끔한 영상으로 풀어내는 감독의 역량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덕택에 눈물 흘리는 관객도 여럿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문득 지금은 테크노 전사로 변신한 이정현이 출연한 영화 "꽃잎" 이 생각났다. 아마 80년 광주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광주라는 소재면에서 뿐만 아니라 거기에 접근하는 방식마저 비슷하게 느껴졌다. "꽃잎" 에서 이정현이 오빠들에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박하사탕" 의 설경구가 민들레 꽃 한송이에 눈물짓는 장면은 겹친다. 또 실수로 애꿎은 소녀를 사살해버리고는 흔들리는 후레쉬 불빛 사이로 울부짖는 설경구의 얼굴은 자기 손을 꼭잡은 채 총에 맞아 죽은 어머니를 떼어놓으려는 이정현의 얼굴과 닮았다. 80년 광주를 전후한 이 두 장면이 주인공의 나머지 삶을 지배한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가해자고 다른 한쪽은 피해자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가해자는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니다. 그도 피해자다. '되돌아갈래' 라고 외치며 기차에 뛰어드는 모습은 슬프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그 가해자가 가구점 사장이라는 지위를 계속 누렸더라면 자살을 택했을까. 종업원 미스리와 외도를 즐기면서 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전히 미친 채로 광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많은 이정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더 악의적으로 생각해서 그 가해자가 자살하기전 동창회에 가서 "나 어떡해" 를 부르는 대신 "지금 이대로" 를 외칠 가능성은 없었을까. 그의 5, 6공 시절 행적에서 "현실" 을 느낀 사람은 비단 나뿐이었을까. 그들은 여전히 한자리씩들 하면서 안락히 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본 것은 순결한 한 젊은 영혼이 몰락해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우리 중산층이 얼마나 허약한 지 얼마나 무기력하고 나태한 지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죽음을 택할 이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항할 이들도 아니다. 다만 도덕적 감정이 자신에게도 살아있다는 만족감을 얻고 싶은 뿐이다. 박하사탕이 장년층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80년 광주를 뒷짐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그래, 우리도 첫사랑이... 꿈이 있었지" 라고 속삭여준다. 그리고 눈물을 준다. 무거운 양심의 짐을 덜어주는 셈이다. 그러나 극장을 나오면 그들은 기차길에 뛰어들까? 오히려 그 기차를 타려고 안달하지 않을까? 결국 설경구의 첫사랑은 면죄부거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을는지.. 정작 울어야 할 지점은 그가 자살했다는 영화 속의 사건이 아니라 자살한 사람이라곤 한명도 없는, 아니 자살하려 했던 사람도 찾기 힘든 우리 중산층의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현실의 고통이 강할수록 과거를 미화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습성이 아닐까 합니다. 박하사탕, 재밌게 보았지만 전 그런 구도(과거를 이상화하려는)가 참으로 싫었습니다. 그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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