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주민들이 살아가는 법, 그들의 커뮤니티' 에서 좌측부터 정소희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 사무국장, 
<지구인의 정류장>김이찬 감독, <아시아 미디어 컬처 팩토리>
로빈 쉐익, 섹 알마문 감독이다.

▲ '한국에서 이주민들이 살아가는 법, 그들의 커뮤니티' 에서 좌측부터 정소희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 사무국장, <지구인의 정류장>김이찬 감독, <아시아 미디어 컬처 팩토리> 로빈 쉐익, 섹 알마문 감독이다. ⓒ 인천영상위원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저는 영화 없이 생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 쪽에 관심은 있었는데요. 직접 제작하겠다거나 연기하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이며 <이상한 나라의 산타>를 감독한 로빈 쉐익씨는 "한국에 오기 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있었는가, 아니면 여기서 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밝혔다.

"(한국에서) 살다보니까 기회가 생겨서, 하다 보니까 재미있고, 재미있으니까 더 하고 싶고, 그래서 영화제작을 계속 하게 된 것 같아요."

자신이 직접 주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출장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 일을 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산타>는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는 어떤 가정을 통해서 지금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정 문제와 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리얼하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주민만의 영화가 아니라 이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로빈씨는 <파키>의 감독 섹 알마문씨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역시 방글라데시 출신인 그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오다 한국여성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의 구성원이 되었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이주노동자 운동가이자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창립에 기여한 예술인이다.

"이런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통해서 계속 이주민들의 작품을 보여주면 언젠가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이런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해결책이에요."

영화 <파키>는 가구 공단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청년의 삶을 통해 지금 한국사회에서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 ‘디아스포라 영화제’이주민감독들과의 대화시간에서 가운데 부터 로빈 쉐익, 섹 알마문 감독 ⓒ 야마다다까꼬


지난 1일부터 양일간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제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인천 영화공간 주안에서 열렸다. 1일에는 '한국에서 이주민들이 살아가는 법, 그들의 커뮤니티'를 주제로, 김이찬, 로빈 쉐익, 섹 알마문 감독, 정소희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 사무국장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인삼 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에게 한 한국인 중간 관리자가 술을 마시면서 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너희들을 때려도 경찰 불러도, 나는 감옥에 안 가… 만약 미국, 영국인들을 때리면 감옥에 갈지도 모르지만, 너희들을 때려도 감옥에 안 가거든. "

이어진 로빈 쉐익, 섹 알마문씨의 경험담을 들으며 그들이 '차라리 한국어를 못 알아들었으면'하고 생각할 때도 많을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영화제작을 통해서 이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활동하는 '지구인의 정류장',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에 희망을 걸어본다.

이주민 영화상영, '토크'후에는? 버마출신 이주민 '소모뚜'의 어쿠스틱 음악 공연이 열렸다.

▲ 이주민 영화상영, '토크'후에는? 버마출신 이주민 '소모뚜'의 어쿠스틱 음악 공연이 열렸다. ⓒ 인천영상위원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불편함이 사람을 성장시킬 수도 있다

다음날인 2일에는 '이방인에 의한 이주민에 대한 포트릿'을 주제로 장률, 양영희, 박정범 감독과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가 모였다. 이들은 영화 속에 나타나는 이주민의 다양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이것이 이 시대와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에 관해 토론했다.

이 세 명의 감독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바로 영화의 주제를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같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는 것.

양영희 감독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있었다라는 것보다, 무엇보다 먼저 하고 싶은 나의 가족 이야기가 있었고,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영화였기 때문에 어느덧 감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주 불편한 국적을 가진 것 덕분에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불편함이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영희 감독은 일본에서 조선 국적으로 살아가면서 드물게 미국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6년간 미국에서 살았다.

'이방인에 의한 이주민에 대한 포트릿' 중에서 좌측부터 양영희, 장률, 박정범 감독이다.

▲ '이방인에 의한 이주민에 대한 포트릿' 중에서 좌측부터 양영희, 장률, 박정범 감독이다. ⓒ 인천영상위원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우리 오빠들이 일본에서 귀국사업을 통해서 북한으로 떠난 나이가 14, 16, 18살이라서요. (북한에) 가는 것을 그만둘까 라는 말도 했었어요. 그 나이의 청소년들이 다시 못 돌아오는 어딘가에 간다는 선택은 못하잖아요. 그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왕래도 못하는 지경이 계속 된다고 생각도 못했고, 길어도 10년 기다리면 통일이 된다는 말만 믿고 그 당시 많은 재일교포들이 북한에 가기를 선택했던 것이지요. "

그러나 막상 북한에 간 오빠들이 돌아올 수 없었던 현실을 돌아보면서, 양 감독은 지금 북한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가족이 없었다면 북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부모님의 고향은 남한이고 가족(오빠들)은 북한에 있고, 나는 일본에서 살았다는 이 삼각관계는 앞으로 제가 어느 나라에 살아도 벗어날 수 없는거지요.  그런 곳에서 아주 해방되고 싶어요. '여자'라는 것부터도 해방되고 싶고, '재일코리안'이라는 것부터도 해방되고 싶고, 아주 자유로워지고 싶은데…해방되기 위해서 지금 버티고 있어요. 해방되기 위해서는 마주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도망가서는 전혀 해방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마주 보는 자기의 방법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어요."

사랑의 우체통? 자국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와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준비되었단다.

▲ 사랑의 우체통? 자국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와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준비되었단다. ⓒ 야마다다까꼬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 말로 표현하는 것 보다 더욱 강렬한 표현력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나 자신도  인천에서 십수년 넘게 살아오면서, 엄마가 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일본놈' 이라고 시비를 거는 또래들이 있어 우리 아이들이 상처를 받은 일도 있다. 몸에 남은 상처는 회복되더라도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하나의 팁을 얻었다.

나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버티고 살아가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들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독특한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 보는 영화제가 지속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제 우리 인천 지역에서도 영화를 만들려는 이주민이나 소수자들을 지원하는 문화복지제도가 마련됐으면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 지역 사회에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보여줄 자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문화뉴스 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천 이주민 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 이주민영화제(MWFF) 프로그래머 참여 2015~ 인천시민명예외교관협회운영위원 2016~ 이주민영화제 실행위원 2017.3월~2019 이주민방송(MWTV) 운영위원 2023 3월~ JK DAILY 명예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