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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산소길의 명물인 폰툰다리, 강물 위를 따라 계속 이어져 있다 (왕복 2km).
 화천 산소길의 명물인 폰툰다리, 강물 위를 따라 계속 이어져 있다 (왕복 2km).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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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의외성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 사는 내게 강원도 화천은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춘천에 여행을 오자 화천이 이웃동네가 아닌가. 춘천역 앞에 있는 관광 안내소 직원은 자전거 타고 춘천까지 왔는데 화천을 안 가보면 되겠느냐며 유혹의 미끼를 던졌다. 미끼란 화천에 두 군데나 있다는 무료 야영장 정보와 북한 강변을 따라 난 '화천 산소길'. 자전거 캠핑 여행을 온 내겐 도저히 덥썩 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천까지는 약 40km의 거리로 서울에서 춘천까지 달려온 100km 정도에 비하면 짧은 거리다. 하지만 거리보다 길의 상태가 문제란다. 자전거 도로는 물론 갓길로 거의 없는 차도에 가파른 언덕길이 파도처럼 칠 것이라는 관광 안내소 직원의 충고를 따라,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화천읍까지 점프(자전거를 대중교통편에 싣고 이동하는 자전거 용어)를 했다.

장대비속 자전거 여행자를 구해준 붕어섬

화천 산소길의 들머리, 뒤로 펼쳐진 물안개와 함께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무척 기대되는 길이다.
 화천 산소길의 들머리, 뒤로 펼쳐진 물안개와 함께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무척 기대되는 길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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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붕어섬은 유원지이자 비를 피할 곳이 있는 좋은 휴양지이기도 하다.
 화천 붕어섬은 유원지이자 비를 피할 곳이 있는 좋은 휴양지이기도 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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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변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언덕길과 터널을 지나 아담하고 이색적인 동네 화천읍에 도착했다. 터미널 주변에 앳된 얼굴의 군인들이 흔히 보이고 '군인 백화점' 같은 가게들이 성업 중이어서다. 후에 화천 산소길을 달리면서 알게 되었지만 인근에 군부대가 많다.

군민보다 군인이 많다는 동네라서 왠지 경직되고 삭막할 것 같지만, 화천 시내인 읍내 거리와 터미널 바로 옆 시장골목도 깨끗하고 밝았다. 터미널 앞에서 40년이 넘게 해오고 있다는 이발소 '서민 이용소'도 정답고, 화천시장통이 바로 이어져 있어 푸근한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는 지붕이 드리워진 화천시장에 들어가 국수요리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가까운 북한강변으로 향했다. 화천 북한강변엔 보행로 겸 자전거 도로인 '화천 산소길'이 마련되어 있다. 산소길을 따라 무료로 야영할 수 있다는 딴산 유원지를 향해 상류인 북쪽으로 신나게 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마주쳤다. 그냥 소나기도 아닌 안마를 받아도 될 것 같은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시야를 흐렸다. 

짐받이 가방을 방수천으로 쨉싸게 감싸며 어느 고마운 나무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장맛비도 아닌 소나기가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빗속을 뚫고 산소길 끝에 있다는 딴산 유원지에 갈 수는 있겠지만, 무사히 하룻밤 야영을 하리란 보장은 없어 보였다. 아쉽지만 야영을 포기하고 민박집이나 모텔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다시 화천읍을 향해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눈으로 보면 사진보다 백배는 아름다운 붕어섬의 구슬 가득한 밤하늘.
 눈으로 보면 사진보다 백배는 아름다운 붕어섬의 구슬 가득한 밤하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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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오락 가락 내리는 가운데 화천 터미널로 들어서는 길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방지축 잘 뛰어놀 것 같은 아이에게 비 안맞고 야영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정자같은 곳을 혹시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운좋게도 예감이 들어 맞았다. 눈을 반짝이며 중딩 녀석이 알려준 곳은 붕어섬. 화천에도 춘천처럼 북한강의 하중도(河中島)가 있었다. 그것도 화천읍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

화천 붕어섬은 유원지이자 휴양지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정말 붕어의 모습처럼 길쭉하게 생긴 섬의 강변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나무 그늘진 평상들이 보이고 지붕이 있는 정자 형태의 쉼터가 나타났다. 가까이에 문을 열면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깔끔한 화장실까지 있어서 더욱 좋았다. 널찍한 나무 정자에 자전거와 짐을 풀고 나니 오후 6시, 한결 부드러워진 햇살을 쬐며 붕어섬 산책에 나섰다. 비가 쏟아져서인지 섬엔 아무도 없고 하늘을 어지러히 수놓은 잠자리들만이 여행자를 반겼다.

잠시나마 붕어섬을 혼자 독차지한 것 같은 흐뭇한 기분은 밤까지 이어졌다. 비 개인 화천의 밤하늘을 무심코 쳐다보았다가 누가 구슬 부스러기를 흩뿌려 놓은 줄 알았다. 컴컴한 밤이 되어도 환한 느낌이 들어 달빛이겠거니 했는데 머리 위로 빛나는 별빛 덕분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생생하고 놀라운 밤하늘 풍경을 카메라는 아무리 찍어도 담아내질 못했다. 다 소나기 덕분이다. 소나기 피하려다 붕어섬을 알게 됐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밤하늘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런 때가 온다면 병실이 아닌 이런 밤하늘 아래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텐트 속에 누워 잠이 들면서 살풋 들었다.                           

까만 오디 열매, 빨간 산딸기가 풍성한 화천 오일장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무더위에 축쳐진 화천시장에 생기가 돋는다.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무더위에 축쳐진 화천시장에 생기가 돋는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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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붕어섬을 나오다가 마주친 관광 안내소에서 오늘이 (매 3일, 8일) 화천 오일장날이라는 정보를 듣고 바로 버스 터미널 앞 시장으로 갔다. 붕어섬 입구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데 운영 방식이 특이하다. 대여비 만 원에 하루 종일 탈 수 있고, 자전거를 반납할 때 만 원 어치의 화천사랑 상품권을 준다. 상품권은 화천 어디서나 심지어 택시탈 때도 쓸 수 있단다.

자전거길도 '산소길'이라 부를 정도로 청정지역 화천이다보니 과일 특히 빨간 산딸기와 뽕나무의 열매 까만 오디가 풍성하다. 천 원에 종이컵에 한가득 파는 산딸기와 오디, 쫄깃한 삶은 옥수수로 아침 식사를 하니 강원도의 힘이 생겨났는지 뜨거운 여름날씨가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름날의 자전거 여행자에게 보약과도 같은 토마토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큰 바구니 단위로 팔아 입맛만 다시다가 용기를 내어 한 상인 아저씨에게 천 원 어치 두 어 개만 살 수 있겠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별 대답도 없이 아저씨는 리어카 밑에서 주섬주섬 거리더니 토마토를 넣은 까만 봉지를 건넸다. 한 눈에 보아도 너 덧 개를 넣어준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여행하다 먹으려고 자전거 짐가방에 넣었다. 몇 시간 후 토마토를 먹으려고 꺼낸 까만 봉지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무려 아홉개의 토마토가 들어있었다. 순간 새까맣게 그을린데다 겨울 참나무처럼 단단하고 마른 토마토 장수 아저씨의 팔뚝이 떠올라 마음이 찡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서울에서 춘천까지 가는 동안 기능성 천으로 가린 얼굴과 팔은 타지 않았는데 반바지를 입은 다리만 까맣게 탔다. 화천에선 아무래도 화상을 입을 것 같아 버스 터미널 대합실 의자에 앉아 썬크림을 꺼내 열심히 장딴지에 발랐다. 옆에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할머니 한 분이 '어디 다쳤냐?'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건네시는 바람에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햇볕에 덜 타게 하는 화장품이라며 할머니도 한 번 바르세요 하고 권했더니 쪼글쪼글 주름진 입가에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으셨다.

한낮 더위에도 숨쉬기가 편한, 화천 산소길

달리는 자전거를 봐도 스님 고기보듯 하는 여름날의 견공.
 달리는 자전거를 봐도 스님 고기보듯 하는 여름날의 견공.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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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길에서 자주 마주쳤던 군복에 얼굴엔 위장 크림까지 바른 무당 개구리.
 산소길에서 자주 마주쳤던 군복에 얼굴엔 위장 크림까지 바른 무당 개구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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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은 강원도 북부에 위치한 접경지역으로 군부대와 군인들을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접경지역이자, 대구의 두 배만큼 큰 땅이지만 인구는 2만 5천여 명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청정지역이다.

이런 동네에 '화천 산소길'이라 하여 자전거타고 달리기 좋은 강변길이 나있다니 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시장과 버스 터미널이 있는 화천읍에서 코 앞에 있는 북한강변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강변길이 나있다.

북한강 하류 방향의 오른편은 붕어섬을 지나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동구래 들꽃마을까지 약 10km의 강변 자전거도로가 나있고, 상류인 왼편엔 캠핑장이 있는 딴산 유원지까지 약 10km의 강변길이 나있다.

여름날의 자전거 여행은 비 개인 다음 날이 가장 좋다. 셀 수 없이 많은 잠자리들이 몸을 툭툭 치기도 하며 동행하고, 온갖 풀벌레들이 길섶에서 노래를 부르며 여행자에게 힘을 보태준다. 고을 이름이 화천(빛날 華, 내 川)인 까닭일까, 강변 주위로 우뚝 둘러선 산들을 몽글몽글한 하얀 물안개가 휘감고 있는 수묵화같은 풍경은 매일 아침마다 펼쳐진단다. 화천 산소길의 명물이라는 '꺼먹다리'와 물위에 떠있는 긴 나무 다리 '폰툰다리(pontoon, 부교)'가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다.

화천 산소길에선 강위에 떠있는 낚시배 마저도 그림같다.
 화천 산소길에선 강위에 떠있는 낚시배 마저도 그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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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산소길의 남쪽 끝 동구래 마을은 화사한 들꽃들의 정원이다.
 화천 산소길의 남쪽 끝 동구래 마을은 화사한 들꽃들의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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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엔 군부대도 심심치 않게 보였는데, 군인 대신 용감한 개구리 한 마리가 검문이라도 하려는 듯 길을 막고 앉아 있어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군복을 입은 듯한 피부며 작전에 나서는 군인들처럼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른 모습이 화천에 사는 개구리는 군인을 닮아가나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산소길에서 자주 마주친 이 개구리 이름은 무당 개구리로, 국방부에서 이 개구리에게 영감을 받아 군복을 디자인하고 위장크림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었다.

딴산 유원지 강변의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흐르는 강가에 앉아 토마토도 씻어 먹고 발도 담그며 잘 쉬고 나서, 다시 화천읍으로 돌아가 북한강 하류의 들꽃마을 원천리 동구래 마을까지 달려갔다. 벌개미취, 참나리, 금낭화, 매발톱꽃, 초롱꽃 등 화사하고 예쁜 꽃들이 가득한 동구래 마을의 넓은 정원엔 포크송이 흘러 나오는 카페가 자리하고 음악을 들으며 쉬어가기 좋았다.

강가의 숲길을 따라 화천군의 또 다른 명소인 하남면 서오지리 건넌들 연꽃마을로 이어지는 좁은 오솔길이 나 있어 동구래 마을 카페 앞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잠시 걸어가 보았다. 작고 빨간 산딸기가 유혹하는 강가의 우거진 숲길엔 찬기운이 나오는 옛 동굴도 있어서 도보 여행자들과 함께 들어가 보기도 했다. 흙길에서 한두 발짝만 옆으로 디디면 바로 강물이 찰랑거렸다. 북한강을 바로 옆에 두고 산자락이 지닌 녹음이 수면에 드리워져 멋진 풍경화를 보여주는 '산소길' 걷기도 참 좋았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7월 13일에 다녀 왔습니다.
ㅇ 화천 관광 안내소 : 033)440-2575, 2557



태그:#자전거캠핑여행, #붕어섬 , #화천 오일장 , #딴산 유원지 , #화천 산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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