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 리포트

소년희망센터 건립을 위한 '희망의 한판승'

아내는 아프고 월급은 압류... '팔자 좋은' 어느 공무원 이야기
[희망의 한판승 11화] 안산청소년비행예방센터장 윤용범

18.08.07 16:03 | 조호진 기자쪽지보내기

▲ 소년희망센터를 후원하기 위해 시작한 아침 산행이 지난 4일(토) 30회를 맞았다. 이날 경기도 의왕시 모락산 정상에 도착한 윤용범 서기관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 조호진

사랑하는 아내가 아프다
사업가 형님에게 연대보증섰다가 월급이 차압됐다. 노모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뿐이 아니다. 아내의 병원비뿐이 아니다. 소년원 출원생 아들딸들도 도와줘야 한다. 오갈 곳이 없다고, 수술비가 없다고, 배가 고프다고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
팔자 좋은 공무원으로만 알았다
늘 웃고 나누고 배려하니 그런 판단은 당연했다. 그런데, 실상은 괴로운 공무원이다. 처한 현실로 보면 그는 불행하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을 나눠주는 행복 전도사를 자처한다. 4년째 그를 지켜보면서 위선이 아닐까? 싶어 의심했는데 불행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땅에 재산을 쌓는다. 돈 때문에 사람까지 해친다. 땅에 재산을 쌓다보면 형제애가 깨지고, 불효막심해지고, 부부의 사랑에 금이 가고, 인정이 메마른다. 그런데 그는 하늘에 재산을 쌓고 있다. 거기에 재산을 쌓으면 도둑이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 것 같다.

행복 전도사의 십일조 산행

지난 토요일(4일) 안산청소년비행예방센터장 윤용범(59) 서기관과 함께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해발 385m 모락산을 올랐다. 이 폭염에 산행이라니... 산행에는 그의 아들들인 소년원 출원생 4명이 동행했다.

그는 지난 6월초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고혈압과 당뇨 등 성인병 치료를 위해서였다. 쓰러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감당해야 할 부채와 식솔 때문만은 아니다. 소년원 아들딸들에게 행복을 더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산행 때마다 5천 원~1만 원을 후원금으로 적립 중이다. 이날 산행이 30회 째로 17만 원을 적립했다. 목표는 오는 11월까지 100회다. 후원금은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이 추진 중인 <소년희망센터> 건립기금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그는 <소년희망공장>을 지을 때도 도와주었다. 인테리어 공사비가 없어 공사가 중단되자 자기 일처럼 뛰어다니면서 '한국소년보호협회'(회장 이중명)를 통해 3000만 원을 지원하도록 했다. <소년희망공장> 문을 열게 한 그는 소년원생들의 아버지이자 소년 활동가들을 돕는 지원군이다.

그가 속사정을 밝혔다.

1987년, 결혼하면서부터 아내가 시름시름 앓았다. 근육이 굳는 등의 증세로 고통을 호소했다. 아내가 쓰러질 때마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여러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별의별 검사를 했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양의뿐 아니라 한의 치료도 받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병이 길어지면서 간병의 괴로움에 지쳐 갔다. 술을 잔뜩 마셨다. 이대로 취해 영영 잠들고 싶었다.
"하나님, 아내를 치료해주시든지
데려가시든지 어떻게 좀 해주세요!"

40일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항의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나 길다고. 차라리 아내를 데려 가시라고 했다. 40일 기도가 끝날 무렵에 응답을 받았는데 그것은 "아픈 아내는 너에게 준 특별히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아픈 아내가 특별한 선물?'

눈물이 흘렀다. 저토록 아픈 여인을 누구에게 맡기겠냐고, 윤용범 네가 아니면 책임질 사람이 없어서 너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하늘의 뜻에 무릎 꿇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하늘이 주신 특별한 선물, 그래 내가 아니면 그 누가 아픈 아내를 돌보랴. 아픈 아내가 불쌍했고 또 귀한 보화처럼 여겨졌다. 아내가 일기장에 쓴 간절한 소원이 생각나면서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단 하루만이라도 안 아프게 해주세요!"
아내는 여전히 아프다. 아내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부부의 사랑은 깊어졌다. 아픔까지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다. 아내가 '하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원망스럽던 세상이 달라졌다. 부도로 동생들을 힘들게 하는 형님과 미운 짓만 골라서하는 소년원생들도 선물로 여겨졌다.
▲ 미혼모 돌잔치에 참석한 아픈 아내와 윤용범 서기관. (왼쪽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 임종진

사업가 형님의 부도로
월급에 차압이 들어오고
노모의 집은 경매로 날아가고

"형님이 원망스러웠냐고요?
위로해드리면서 고통을 나눴습니다
비록 돈은 잃었지만 우애는 지켰습니다"
불행은 연속해서 왔다. 사업가인 형님이 사기를 당했다. 형님의 부도로 연대보증 선 그의 월급에 차압이 들어왔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노모의 집은 경매로 날아갔다. 5남매 중 셋째로 공무원인 그가 십자가를 졌다. 아파트를 2억에 전세를 내주고 그 돈으로 어머니 집을 마련해드렸다. 그리고 관사로 들어갔다. 그에게 물었다. 형님이 원망스러웠겠다고.

"형제는 천륜입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데 형님의 잘못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저버려야 하나요? 그럴 순 없습니다. 5남매 모두가 형님으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형제도 형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위로해드렸습니다. 10년 동안 고통을 나누어 지면서 힘든 세월을 보냈더니 형님이 신재생 에너지인 풍력발전 사업으로 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원망하고 싸우고 등을 돌렸다면 형님은 폐인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형제는 많은 돈을 잃었지만 우애는 지켰습니다. 고통을 지켜보던 구순의 어머니가 건강하신 것도 형제 우애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우애로 위기를 극복한 자식들로 인해 당신의 인생이 축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년원 출신들 도우려고 아내 몰래 마이너스 통장 만든 빚쟁이

▲ 소년원 출신 선교사를 돕기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한 윤용범 서기관. (앞줄 왼쪽 맨 앞) ⓒ 윤용범

윤 서기관은 2011년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갔다. 소년원 출신 박관일(48) 선교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박 선교사는 신학대 출신도, 선교단체 소속도 아니기 때문에 후원 받기 어려운 상태였다. 박 선교사는 에이즈 감염으로 희생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쉼터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귀국한 윤 서기관은 교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다. 목사와 장로를 비롯해 돈 있는 사람과 높은 사람들에게 에이즈로 희생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리자고 호소했지만 외면당했다.

힘 있는 선교사라면 그도 외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관일 선교사는 소년원 출신이다. 소년원 출신이라고, 신학대학도 나오지 않았다고 외면당하는 현실이 가슴 아팠기에 더욱 그를 돕고 싶어 하늘에 도움을 청했다. 이번에도 하늘의 응답은 구한 것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죽어가는 생명을 본 사람이 하라.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낀 사람이 하라!"

하늘은 왜 이럴까. 돈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빚쟁이인 그에게 하라는 것일까. 산을 옮길 것 같은 믿음을 자랑하는 이들은 놔두고 아내도 아프고 도와야 할 소년도 많은 그에게 하라는 것일까. 그는 또 다시 대출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1500만 원을 대출해 박 선교사에게 보냈다. 그 돈으로 에이즈 센터 부지를 매입했고 교회가 지어지면서 아프리카 최초로 점심을 주는 교회가 만들어졌다. 에이즈 환자들의 쉼터이자 생명의 통로가 됐다.

소년원 출신 아들·딸들의 도움 요청

▲ 소년원 출신 미혼모인 양딸이 윤용범 서기관에게 보내온 카톡 문자. ⓒ 윤용범

안양소년원 출신 미혼모인 애주(가명․19)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와 함께 살 집이 없다고 도움을 청했다. 소년원 출신 미혼모 선혜(가명․20)도 도움을 청해 각각 보증금 300만 원씩 보냈다. 소년원 출신 미혼모 남희(가명․22)에게도 연락이 왔다. 출산 후유증이 심각한데 수술비가 없다고 했다. 병원 이름과 계좌를 보내라고 했다. 미혼모들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아니다.

오갈 곳이 없는 출원생, 대학에 진학했는데 학비가 없는 소년, 병이 들었다고 연락해온 소년, 구속됐다고 연락해온 아이…. 취업시키랴, 학비 대주랴, 병원비 보내랴, 면회 가서 영치금 넣어주랴, 배고픈 아이들 밥 사주랴….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도움을 청하는 아들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돈을 보내주다보니 아내 몰래 사용하는 마이너스 통장이 3000만 원이 됐다.

청송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아들의 감사편지

▲ 청송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양아들이 윤용범 서기관에게 보낸 감사 편지. ⓒ 윤용범

처음부터 선한 공무원은 아니었다. 행복 전도사도 아니었다. 소년원 교사 초기에는 숨소리 빼고 거짓말이고, 틈만 나면 훔치고, 툭하면 시비 걸고 싸우기 일쑤인 소년원생들에게 많이 당했다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런 나쁜 놈들은 군함에 싣고 가서 태평양 한가운데에 모두 빠트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법자(법무부 자식들의 준말)들에 대한 증오심이 심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아이들의 억울함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쪽방을 선택한 적도, 부모 이혼을 선택한 적도, 가난을 선택한 적도 없다. 그런데 모든 책임이 아이들에게 전가됐다.

나쁜 놈, 쓰레기 같은 놈, 양아치××라는 비난의 화살에 소년들은 고슴도치가 됐다. 억울하고 아픈데 아무도 위로해주지도, 손을 잡아주지도 않으니 소년들의 가슴에 분노와 증오가 가득 찬다. 과연 이 모든 잘못을 소년 혼자 져야할까.

"억울함이 더해지고 곱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법자가 됩니다. 억울한 소년들에겐 위로가 필요합니다. 가난한 아이들의 가난을 나누고, 아이들의 고통을 분담하면 소년 범죄가 줄어듭니다. 소년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조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요청하기 전에 공복인 공무원들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소년원 출신 병준(가명․23)이는 청송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고아원 출신이기에 면회 올 사람도 연락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양아버지인 윤 서기관에게 면회와달라고 연락했다. 그는 또 먼 길을 나섰다. 면회하면서 병준이와 약속했다. 세상을 원망하고 증오하면 상처만 곪는다, 감사할 것을 찾아라. 감사하면 상처가 씻어진다고 말하면서 감사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병준이는 양아버지와의 약속대로 감사 훈련 중이다. 교도소에서 느낀 이런저런 감사를 모아 아버지 윤 서기관에게 매월 감사편지를 보낸다. 윤 서기관은 아들의 변화가 감사해서 영치금을 보낸다.

"저에게 병준이는 죄인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아들과 감사 훈련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어느덧 1년 3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상처와 분노가 많아서 아무리 손을 잡아주어도 감사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감사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서히 변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불만거리이고 시비 걸어 사고 칠 건수였는데 이를 감사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청송교도소 복역수인 아들의 감사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저녁 9시면 끄는 선풍기를 조금 더 틀어주어서 감사, 친구가 빨래를 같이 널어주어서 감사,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는데 '소지'(교도소에서 심부름을 담당하는 수인) 형이 약을 챙겨주어 감사, 못난 아들이 매번 실망시켜 드리기만 했는데 아버지가 영치금을 보내주시고 끝까지 옆에 있어주셔서 감사…. 이런 자그마한 것으로도 아버지와 통한다는 게 저는 너무 기쁩니다. 이제껏 왜 모르고 지냈을까요."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 법자들의 아버지 윤용범 서기관

▲ 대전소년원에서 소년원생들과 5박6일간 함께 지낸 윤용범 서기관. ⓒ 윤용범

그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좋아한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일부)

1985년 소년원 교사(9급)로 임용된 그는 충주소년원,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서울소년원, 법무부 소년과를 거쳐 안산청소년비행예방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하위직 공무원이 기관장이 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흔치 않다. 법무부의 한 공무원은 앞으로 윤용범 서기관 같은 사례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철밥통의 길과 공복의 길 중에서 소수의 공무원이 걸어간 공복의 길을 걸었다. 가시밭길을 웃으며 걸어온 그가 고맙다. 처세와 인맥으로 승승장구하지 않고 정성과 정직으로 기관장까지 오른 그가 고맙다. 넉넉히 베풀고 나누면서 소년들과 아픈 이웃의 눈물을 닦아준 그의 삶이 고맙고 또 고맙다.

그는 내년 6월 정년퇴직한다. 하지만 위기청소년들과 함께 걸어온 아프지만 행복한 길을 떠나진 않을 것이다.

"한 아이라도 더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건 하늘의 가르침이었고 그대로 따르려고 애썼습니다. 언제나 현장을 중시했고, 윗사람보다 국민(소년)에게 봉사하는 공복으로 일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후회 없는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내년 6월 공무원으로서는 정년퇴직하지만 행복 전도사로서 퇴직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수백 명입니다. 한 아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윤 서기관은 2012년 대전소년원에서 원생들과 5박6일 동안 같이 지냈다. 원생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이 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의 고민을 파악했다. 소년원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출원 후 먹고 사는 것이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싶다고 했다.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소년원 밖은 허허벌판이다. 그래서 결국은 죄를 짓고 만다.

그는 소년들의 사회정착을 돕고 있다. 여기저기에 취업을 부탁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현장 체험과 소통을 통해 소년원생 맞춤형 1:1 멘토링과 무의탁 소년원생 사회정착지원센터인 '예스센터'를 건립했다. 예스센터는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건립됐다.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소년원 출신 아들딸들의 아버지로 살았다. 쉽지 않은 길이다. 공복으로 걸어온 길도 쉽지 않은 길이다. 그에게 많은 상이 주어졌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야 희망의 길이 넓어진다. 그와 함께 소년 희망의 길을 가게 되어 행복하다.

공복의 길을 선택한 법무부 공무원

법무부 공무원인 윤용범 서기관은 대통령이 주는 2016년 대한민국 공무원상 국민포장, 인사혁신처의 자랑스러운 공무원에 등재, 정보문화대상(국무총리 표창), 모범공무원 선정(국무총리), 행정혁신으로 총무처 장관상, 법무부 장관상 2회 수상했다.

▲ 모락산 정상에서 완주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윤용범 서기관과 한국소년보호협회 생활자립관 김기헌 실장.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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