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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공화국의 민낯

조물주 위에 건물주, 이 공식이 성립된 이유
[강남공화국의 민낯22] 강남공화국,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지배하는 나라

17.12.10 11:10 | 글:전상봉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2014년 9월 18일 강남구 삼성동 소재 한전 부지가 현대자동차그룹에 낙찰됐다. 5조 원 안팎일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현대차가 써낸 가격은 무려 10조5500억 원으로 감정가(3조3346억 원)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국토법 시행령에 따라 현대차는 한전 부지 매입 대금과 함께 1조7000억 원의 공공기여금을 서울시에 납부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거액을 확보한 서울시는 공공기여금의 일부를 투입, 2025년까지 코엑스-현대차 신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잠실종합운동장을 잇는 국제교류복합지구(MICE, 마이스)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마이스 사업 계획을 발표하자 강남구가 강력 반발했다. 그동안 구룡마을(강남구 포이동 소재) 개발, 제2시민청 건설, 메르스사태 등으로 사사건건 서울시와 갈등을 빚었던 강남구는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사들이면서 낸 공공기여금을 왜 송파구 소재 잠실종합운동장을 개발하는데 쓰느냐고 비판했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은 2015년 10월 1일 강남구청장 신연희의 '서울시장님께 드리는 공개 질문'으로 비화됐다.

"서울시는 차라리 가칭 '강남특별자치구' 설치를 중앙에 건의해 아예 강남구를 서울시에서 추방시키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 2015년 10월 1일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공개 질문서를 통해'강남특별자치구'의 분리 독립을 주장했다. ⓒ 강남구청

강남특별자치구로 분리 독립하겠다는 주장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강남구청장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강남이 오늘과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도심 개발 억제'라는 강북의 희생에 기초한 것이었다. 강북의 희생을 바탕으로 발전한 강남구는 '특별한 자치구'가 된지 오래이다.

강남 개발을 촉발한 세 가지 요인 

강남의 탄생은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 한미일 동맹에 기초한 경제개발 계획이 맞물린 결과이다. 해방 당시 90만 명 정도였던 서울의 인구는 1959년 200만 명을 돌파했다. 소설가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1966년에는 379만 명을 넘어섰고, 1.21사태가 발생한 1968년에는 433만 명을 헤아렸다.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강남 개발의 또 다른 요인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은 서울시민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였다. 극심한 남북 대치 상황에서 발생한 1.21사태(1968)와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1969), 그리고 미국의 베트남전쟁 패배(1975)는 서울의 인구를 한강 이남으로 분산하고, 정부의 주요 기관을 이전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이 같은 필요에 의해 강남이 개발되고, 경기도 과천시가 조성됐다.

인구 증가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이 강남 개발의 직접적인 이유였다면, 한미일 동맹에 기초한 경제개발계획은 강남 개발을 촉발한 거시적인 요인이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질서에 편승하는 수출주도형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했다. 박정희 정권은 수출주도형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울산, 포항, 창원 등 영남권에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이를 서울과 잇기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강남 개발이 시작됐다.

▲ 지하철 2호선이 완전 개통(1984)되면서 강남은 빠르게 발전한다. ⓒ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이 같은 요인이 맞물려 시작된 강남 개발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 이후 반포동 주공아파트 단지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강남의 골격이 갖춰졌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1976)과 지하철 2호선의 완공(1984)은 강남의 혈관에 해당한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건설된 잠실종합운동장과 한국종합무역센터 등의 주요한 건물들과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의 완공으로 강남의 신경계가 연결됐다. 그런 다음 1990년대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강남은 비대해진 몸집을 갖게 됐다.

강남이 남긴 네 가지 유산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된 이래 강남은 상전벽해와 같이 변모했다. 뽕밭이 콘크리트 숲으로 변한 지난 반세기, 강남은 우리 사회에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첫째, 강남은 부동산 투기의 진원지이다. 일제강점기 지주들은 부동산 투기를 통한 자본 이득보다는 소작료 수취에 몰두했고, 해방 후에도 이 같은 경향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강남 개발과 함께 사정은 달라졌다. 1968년 말죽거리 신화라는 투기붐이 일어난 이후 강남은 부동산 투기의 진원지가 됐다.

강남발 부동산 투기는 박정희 정권이 주도했다. 박정희 정권은 강남 개발을 추진하면서 투기를 막고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한 조치와 제도를 마련하기는커녕 비자금을 끌어다 투기를 조장하고 일삼았다. 박정희 정권이 조장한 투기의 결과는 한국의 경제 구조 왜곡과 국민들의 비틀어진 경제관념이다. 이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을 제작(2004년 4월 11일 방영)한 유현 PD는 다음과 같이 갈파한 바 있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어 온 강남의 도시 개발은 그 개발 방식의 속성상, 또 그 개발 주체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투기라는 어둔 싹을 자라나게 했다. 그리고 30년 동안 진행된 투기의 역사는 대중의 도덕성을 마비시킨 채 이제 당당하게도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둔갑했다. 하지만 투기는 인간의 주거권이라는 근본적인 권리를 박탈할 수도 있는 사회적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박정희식 성장주의 개발 독재의 폐해는 거대 경제 구조의 왜곡으로도 나타났지만, 동시에 대중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경제적 도덕성의 근간을 뒤틀리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 유현 외,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184쪽

▲ 잠실 시영아파트를 헐고 2008년 완공된 파크리오 아파트 단지 모습. ⓒ 전상봉

둘째, 강남 개발과 함께 아파트공화국이 탄생했다. 1974년 6월 반포주공 1단지가 완공된 것을 시작으로 강남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됐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신아파트와 경남아파트, 강남구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 송파구 잠실동의 잠실주공아파트와 시영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가 동진하면서 지어졌다.

강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은 자폐형 아파트공화국의 출현을 의미했다. 강남 개발을 통해 정부와 서울시가 드넓은 택지를 조성하여 도로만 뚫어 놓으면 민간 건설사들이 대단지 아파트는 물론 근린공원과 놀이터를 비롯한 주거시설을 짓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시스템을 통해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건설되면서 대한민국은 아파트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셋째, 강남 개발과 함께 토건국가 대한민국이 등장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강남 개발을 시작으로 1970년대 중동 건설에 건설사들이 진출하면서 대한민국의 토건국가 체제가 확립됐다. 토건국가의 등장은 정권과 토건족이 결탁한 공생관계가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정권이래 개발주의 정부는 대규모 택지 개발 등의 SOC 사업을 추진하여 정치자금을 확보했고, 건설사들은 정부가 추진한 개발사업에 참여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 강남 개발과 함께 대한민국은 아파트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시가 '서울기록화 2000' 사업으로 1999년 10월 촬영했다. ⓒ 서울특별시

정권과 건설사의 공생관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기 침체 조짐이 보이면 토건족은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띄우고 정권은 이를 수용,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이 같은 정권과 토건족의 공생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대통령 이명박이 추진한 4대강 사업이다.

넷째, 강남발 부동산 불패신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 2017년 3월 경실련이 발표한 "서울 아파트값 30년간 변화실태 분석"에 따르면 1988년 강남권 아파트는 평당 285만 원에서 2017년 4536만 원으로 16배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강북권 아파트는 평당 315만 원에서 2163만 원으로 6배 상승했다. 1988년 강남권의 전세가는 25평 아파트 기준 3천만 원, 월세는 18만 원이었으나 2017년 현재 전세가는 5억 원, 월세는 192만 원으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근로소득 증가분과 아파트 가격의 상승분은 비교할 바 없이 벌어졌다. 1988년 430만 원(월 36만 원)이던 노동자의 임금은 2016년 2895만 원(월 241만 원)으로 6.7배 올랐다. 같은 기간 비강남권 아파트 가격은 5억 원으로 18.7배 상승했고, 강남권은 11억 원으로 43.1배 뛰었다. 1988년 노동자 임금과 2016년 아파트 가격을 단순 비교해 보면 강남권은 264배, 비강남권은 126배 차이가 난다. 요컨대 땀 흘려 번 돈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사회가 됐다. 그 결과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으렵니까?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마오
처음 만나서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 강남 개발이 시작될 무렵인 1969년 1월 발표된 ‘서울의 찬가’(작사, 작곡 길옥윤, 노래 패티김)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에는 피아노 모습을 한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 전상봉

1969년 1월 발표된 '서울의 찬가'(작사, 작곡 길옥윤, 노래 패티김)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가 발표될 무렵 대통령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위해 3선 개헌에 골몰하면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71)을 추진했다. 이즈음 불도저 서울시장 김현옥은 시민아파트 건설에 열을 올렸고, 제3한강교가 완공되어 강남 개발이 시작됐다.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지난 반세기 서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고속 압축성장을 거듭했다. 서울은 1천만 명이 모여 사는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했다.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한 서울, 과연 양적인 성장만큼 질적으로도 성숙한 도시일까?

서울시가 발간한 <2016 서울서베이>의 통계를 살펴보면 강남과 강북의 편차는 너무 크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에 사는 세대주의 51.1%가 4년제 대졸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데 비해 강북구는 26.5%에 불과하다. 대기업 본사가 몰려있는 강남구의 재정자립도는 60.0%이나 노원구는 15.9%에 머무른다. 강남구의 교육재정 지원액은 177억 원인데 비해 금천구는 29억 원에 그친다.

이처럼 강남과 그 외 지역의 격차는 한강보다 넓고도 깊다. 이런 격차가 온존하는 상황에서 서울은 정말 살기 좋은 도시일까. 문득 반세기 전 서울시가(市歌)로 발표된 '서울의 찬가'의 노랫말이 역설적인 질문이 되어 귓가에 맴돈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으렵니까?"

덧붙이는 글 | 전상봉 시민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남공화국의 민낯]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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