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 리포트

오십쇼

"밥은 다이어트의 적? 천만에!"
[오십쇼-미실란①] 섬진강 '박사 농부'가 만드는 유기농 발아현미

17.09.27 11:02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

'오십쇼'를 엽니다. 오십쇼는 매월 1만원 이상씩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들의 나눔 쇼핑 공간입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주)미실란의 논에는 친환경 유기농 쌀이 자라고 있다. ⓒ 정대희

논바닥을 들여다 봤다. 메추리알만하다. 각질의 황갈색 껍질로 무장한 녀석들은 길고 가느다란 더듬이를 가졌다. 그걸 쭉 빼서 깊이 10cm 물 속을 휘저으며 나아갔다. 그때마다 등에 짊어진 집이 꿈틀거렸다. 진흙을 뒤집어 쓴 독일 병정 투구 같지만, 가을볕 내리쬐는 들녘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생명체는 논에 농약을 치기 시작한 뒤 사라진 왕우렁이다. 옆을 보니 콩알을 몇 줌 뿌려놓은 듯 새끼 우렁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짱짱한 벼 포기에 연분홍색 꽃처럼 알알이 달라붙은 건 녀석들이 낳은 알이다. 벼 잎은 미풍에도 흔들렸다. 잠자리가 날다가 팔뚝을 툭 쳤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따~따~따~" 소리를 내며, 놀란 메뚜기들이 달아났다.

[식약동원]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

▲ 미실란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 ⓒ 미실란

유기농 농촌에선 흔한 모습이지만 생소한 게 있다. 도랑 끝에 일렬로 세운 흰색 푯말이다. 거기엔 이렇게 썼다.

'삼광벼', '적진주', '수원 0000호'...  

"이건 쌀빵을 만드는 데 실험할 벼입니다. 이건 미숫가루 전용이고요, 이건 발아현미를 만들 때 사용하려고 심은 벼입니다."

㈜미실란 이동현 대표가 친환경 유기농 쌀 품종 연구를 위해 세워놓은 표지판이다. 이 대표는 그것만 보고도 앞으로 수확할 쌀의 용도를 알았다. 34개 품종을 심어놓은 1200여 평의 논은 '박사 농부'의 발아 현미 실험실이다. 사용 용도에 따라 맛과 영양분이 최적화된 벼 품종을 연구하는 우리 농업의 미래이기도 하다.

식약동원(食藥同原). 그가 추구하는 가치다. 먹는 음식과 약은 근본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이런 그가 만드는 유기농 발아 오색미를 '오십쇼'에 내놨다. 오색미는 국내 여러 기관에서 최고 품질을 인정을 받은 발아현미, 발아찹쌀현미, 발아적미, 발아흑미, 발아녹미 등이다.    

☞미실란 홈페이지 둘러보기

[미실란]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다

▲ 이동현 대표는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큐슈대학교에서 생물자원개발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곡성에 있는 폐교에 친환경 유기농 쌀 연구소 '미실란'을 만들었다. 미실란(美實蘭)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이란 뜻이다. ⓒ 정대희

이동현 대표는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큐슈대학교에서 생물자원개발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에 일본에서 귀국한 뒤 이듬해 9월에 순천대 연구실에서 농업회사 법인 '미실란'을 창업했다. 미실란(美實蘭)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이란 뜻이다.

"미생물을 활용한 친환경 느타리버섯을 연구하다가 기능성 쌀로 눈을 돌렸습니다. 국내 최초로 유기농 발아현미를 개발했죠. 처음엔 쌀 미(米)자를 썼는데, 어느 날 아내가 '당신이 쌀장사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당신이 가려는 길이 농부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모여 우리 농업의 희망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해서 아름다울 미(美)자로 고쳤습니다."

미실란이 2005년 5월에 전남 곡성의 한 폐교로 이전한 것은 곡성군의 초청으로 특강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맨 앞줄에서 강의를 끝까지 들은 고현석 군수는 그에게 "곡성에서 희망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단다. 그 뒤에도 곡성군은 공무원을 보내 7번에 걸쳐 투자 유치를 요청해 왔고, 마지막에는 군수가 직접 그를 찾아 왔다. 투자 유치 조건도 파격적이었다.

'폐교와 논 8000평을 10년간 무상임대. 각종 인허가 획득에 조력.'

하지만 그해 군수가 선거에서 떨어진 뒤, 곡성군은 2년 동안 폐교 임대비만 대주겠다고 했다.

"사실상 나가라는 말이었지요."

캄캄했단다. 학교 선배들이 십시일반 도와줬던 투자금도 떨어졌다.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폐교로 찾아왔다. 이 대표에게 "왜 여기서 연구실을 차렸냐"고 물었단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미실란에 투자한 2억 원의 채무를 갚을 수 있도록 벤처기업 인증서와 담보대출 보증서를 써줬다. 그를 도운 뜻밖의 귀인은 이노비즈(기술 혁신형 중소기업) 기업을 찾아다니던 기술보증기금측 인사들이었다.
 
[발아현미] 현미에 싹과 뿌리를 냈더니...

▲ (주)미실란의 논에는 왕우렁이가 산다. ⓒ 정대희

이들이 도움을 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대표가 가진 유기농 발아현미 가공 기술이었다. 현미는 수확한 벼를 건조, 탈곡한 뒤 왕겨를 벗긴 쌀이다. 백미처럼 도정을 하지 않고 적정한 수분과 온도를 공급해서 1mm~5mm 정도의 싹을 틔우는 기술이다. 이 대표는 특히 현미에 싹과 뿌리가 동시에 발아되는(발아율) 현미를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우리 현미의 발아율은 90% 이상입니다. 발아율이 50% 이하이면 죽은 쌀이죠. 예전에 몸에 좋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너도나도 현미를 사먹었는데, 몇 년 전부터 잠시 시들해졌습니다. 원인은 낮은 발아율에 있습니다. 발아율이 낮은 현미는 물에 오래 불리면 썩습니다. 밥에서 시큼한 구린내가 납니다.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찹니다. 이래서 시장이 외면을 한 겁니다."

그러나 최근 미실란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를 알리면서 다시 발아현미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대표는 "농약과 비료를 주고 키운 벼에는 농약이 잔류하고 있다"면서 "백미에 비해 영양분이 많다고 해도 왕겨만 벗겨 먹으면 몸에 해롭기 때문에 유기농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오색미는 밥을 지을 때 씻을 필요도 없습니다. 섬진강 1급수로 농사를 짓고, 발아 현미로 만드는 가공 과정에서도 지하수로 세척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발아현미로 지은 밥은 쫄깃하고 톡톡 씹히는데, 식감이 좋죠.

GABA(가바) 성분은 뇌세포 대사를 촉진시키고 고혈압을 예방하는데, 발아 현미는 백미보다 10배, 현미보다 3~5배 함유되어 있어요. 식이섬유도 흰 쌀보다 3배 더 많습니다. 변비나 당뇨 등 성인병 예방 효과도 큽니다. 옥타코사놀도 함유하고 있어 암세포 예방에 좋습니다. 비타민 E와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리놀산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죠."

그는 농촌진흥청, 분당재생병원, 전남대학교와 공동으로 발아현미 당뇨질환 관련 임상실험도 하고 있다. 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국내 최초의 실험 결과를 오는 10월에 발표한다.

[발아의 비결] 기술보다 원료

▲ (주) 미실란이 키우는 쌀 ⓒ 정대희

그는 발아현미 가공 기술로 특허를 받긴 했지만, 기술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란다. 처음엔 발아현미를 연구하면서 유기농 농부들의 원료를 사들였다. 그 중 발아율이 96%로 가장 높았던 전남 보성군의 농가에 갔더니 '유기농 쌀농사의 대부'로 알려진 강대인씨였단다. 강씨는 이 대표가 보여준 발아 현미를 본 뒤, 즉석에서 7000만원 어치의 쌀을 외상으로 주었다.

"좋은 발아현미는 농업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원료가 좋아야 발아율이 높습니다. 탈곡기 속도가 빠르면 쌀에 금이 가거나 쪼개집니다. 그건 발아할 수 없는 죽은 쌀입니다. 지금은 지역 농가에 유기농 계약재배를 합니다. 처음엔 31개 농가로 시작했는데, 그 중 발아율이 높은 12개 농가가 50헥타르 정도 되는 농지에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저는 발아율 90% 이하인 것은 출하를 안 합니다."

미실란은 지역에서 1년 평균 110톤 정도의 쌀을 사들였다. 지난 12년 동안 1200톤을 매입했고, 가격은 농민들과 협의해서 결정한다. 농협 매입 가격보다 가마니당 평균 5000~7000원 정도가 비쌌단다. 미실란 쌀의 가격이 일반 쌀보다 3배정도 높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매입한 뒤에도 쌀을 물에 담그고(침지), 발아, 저온 건조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 3일이 걸린다.

이런 장인정신으로 그는 '친환경농업 대상', '친환경농산물 품평회 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그중 가장 기뻤던 상은 2015년 24번째 대산농촌문화상 기술부분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농업분야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상이고 상금도 현금 5000만원이다. 그는 "상금은 모두 원료를 샀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농업이란] 종합 예술

▲ (주)미실란은 쌀만 키우는 게 아니다. 식당에서는 발아현미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있고, 카페에서는 유기농 커피를 맛볼 수 있다. ⓒ 정대희

미실란의 발아현미는 호텔제주 신라, 리츠칼튼 호텔 등에 납품됐고,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에 입점했다. 또 CJ오쇼핑의 '1촌 1명품'으로 선정되면서 매출이 늘었다. 작년엔 9억 6000만 원, 올해엔 1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쌀은 '다이어트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 먹거리를 수입산 밀가루 빵과 고기가 점령하다시피했는데요, 잘못된 홍보가 낳은 결과입니다. '식량안보 주권을 빼앗기면 우리 농촌도 잃고 건강도 잃는다'고 말로만 강조해 봤자 빼앗긴 식탁을 되돌려올 수 없습니다. 발아현미와 오색미를 브랜딩한 미실란이 다양한 쌀 가공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죠."

그는 "어머니 위암 말기 때 곡기를 끊지 않게 하려고 개발한 발아오색 미숫가루가 요즘 미실란 매출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실란은 발아오색떡국, 발아현미쌀과자, 발아현미누룽지, 아이들 이유식용 쌀가루 등도 만들고 있다. 곡성지역과 함께하려고 발아현미 토란미숫가루, 미국 수출용으로 글루텐 프리 미숫가루도 개발했다. 발아현미 전용품종으로 삼강벼를 개발해 브랜드화 했다. 

"도시 사람들이 흔히 '사업 실패하면 농사나 짓지'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농사는 종합 예술입니다. 자연과 사람, 곡식이 어우러지는 예술 기술입니다. 농민들은 정부의 책상머리 지침에만 끌려 다니지 말고 직접 실험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또 정부와 언론들은 이런 농민들에게 자긍심을 주고 경제적으로 도와야 우리 농촌의 미래가 있습니다."

  ☞[미실란 2] 곡성 폐교의 기적...천년 숲 만든다

섬진강 미실란 들녘으로 놀러 오세요
이동연 대표가 '오십쇼'에 참여한 까닭

▲ (주)미실란 이동현 대표 ⓒ 정대희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매월 1만 원 이상씩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시민들의 모임이다. 이동현 대표는 2011년 4월에 10만인클럽에 가입한 장기 후원자이다. 그 이유를 물었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인상이 깊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잘못된 것을 덮으려는 언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정직하게 할 말을 했습니다. 특히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귀국해서 돈을 번다면 오마이뉴스 같은 언론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오십쇼'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나눔 쇼핑이다. 회원들 간의 상품과 서비스 등 재능 나눔 직거래 장터이기도 한데, 회원들에게는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경제공동체이다. 10만인클럽은 그 첫 번째 참여자로 '미실란'을 선정했다.

"사람 마음은 시간이 가면 옅어집니다. 처음엔 호감이 있어 가입했지만 회비만 내는 사람으로 그치면 애정도 사라지죠. '오십쇼'가 오마이뉴스에 대한 호감도를 지속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실란을 한 마디로 홍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쌀의 가치를 알리는 공간이죠. 농촌에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모이면 즐겁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곡성에 들를 일이 있다면 오마이뉴스처럼 행복을 주는 '섬진강 미실란 들녘'에 놀러오세요. 또 전국 어디에서도 택배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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