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파키스탄 남자와 결혼, 인생이 바뀌었다

10만인 리포트

김종술, 금강에 산다

멱살 잡혀도 현장 가는 '거지갑' 기자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⑧] 밀양과 영덕의 좌충우돌 노숙취재 이야기

17.01.12 07:21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개고생 취재에 나선 기자가 있습니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닙니다.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금강을 지켜온 그를 뭍사람들은 '금강요정'이라고 합니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입니다. 김 기자의 '개고생' 취재를 통해 기자란 무엇인가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 서울 동대문에서 청바지를 팔던 잘 나가던 사장 김종술은 4대강 사업으로 빈털터리가 됐다. ⓒ 김종술

취재수첩을 잠시 내려놓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풀밭에 누워 잠을 잔다. 꼬질꼬질한 얼굴에 수염을 아무렇게나 기른 모습으로 금강에서 노숙한다. 낮에는 카메라를 품에 끼고 다니고, 밤이면 노트북 앞에서 잠을 설친다. 요샛말로 '거지갑'이 떠오르는 품행이다. 4대강 사업의 민낯을 고발하려고 금강에 죽치고 사는 김종술 기자의 이야기다.

금강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취재현장에서 먹고 잔다. 상처투성이 그의 손끝에서 수많은 특종이 쏟아졌다. 그의 몸과 기사에서 '현장 냄새'가 묻어나는 이유다. '기사는 손이 아니라 발로 뛰어 쓴다'. 그가 고집하는 취재방식이다.

밀양과 영덕에서도 그랬다. 송전탑과 핵발전소 건설에 입을 꽉 다문 잘난 언론과 달랐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 가까이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온몸으로 기사를 썼다. 잠시 스치듯 오가는 직업기자와는 달리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과 뒤엉켜 지냈다. 그게 특종으로 이어졌다. 그만의 방식으로 기울어진 운동장과 침묵하는 세상에 '짱돌'을 던지는 일이었다.

#영덕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 현장

▲ 경북 영덕리 영덕읍 천정리 주민들이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요리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이들은 3~4인에 4만9000원짜리 오리요리 풀코스로 55만 원 정도의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 김종술

"왜 한수원 직원이 주민들 밥값을 냈죠?"

김 기자는 말을 내뱉고 불안했다. 해코지당할까 두려웠다. 여럿이 달려든다면, 혼자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오만가지 불길한 생각에 땀이 났다. 하지만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민을 대신해서 묻는 자다. 그는 '모든 시민은 기자'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그래서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

"(한수원 직원에게) 밥값 계산했죠?"

2015년 11월 10일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전문 식당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영덕 핵발전소 찬반투표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동안 영덕에선 소문이 파다했다. 한수원이 핵발전소를 유치하려 일부 주민들을 모아 여행 보내주고 선물도 사주고 밥도 사준다는 말이었다. 이날 김 기자는 또 다른 현장에서 만났던 한 지인의 제보 전화를 받고 현장을 덮친 것이었다.

식당 안에는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엔 음식이 꽉 차 있고 소주병과 음료수 병들도 군데군데 빈 공간을 채웠다. 잔치가 벌어진 것일까? 김 기자가 식당 한 귀퉁이에서 쇼핑백을 발견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을 또, 던졌다.

"쇼핑백에 든 선물도 한수원에서 나눠 준 거죠?"

돌직구 질문에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 직원은 순간, 얼음이 됐다.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허둥지둥하며, 동문서답했다. "주민들이 기금으로 움직이고 안내만 했다"고 둘러댔다가 이내 "국책사업으로 하면서 홍보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을 돌렸다. 스스로 '식사대접'을 인정한 셈이 되자 이번에는 또 말을 바꿔 "식비 결제는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물러서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주방으로 튀어 들어가 식당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했다.

"식비는 한수원 직원이 계산했다."

구체적이었다. 테이블 11개에 3~4인에 4만 9천 원짜리 오리요리 풀코스를 차렸다고 했다. 소주와 음료수 값까지 합해 총 55만 원 어치를 계산했다고 했다. 외상장부도 있는데, 다른 가게서도 똑같이 외상을 하고 나중에 몰아서 결재한다고 했다. 김 기자가 취재하는 모습을 까칠하게 바라보면서 밥 먹던 주민도 역정을 냈다.

"이건(쇼핑백), 집에서 가져온 거다."

현장이 발각됐는데도 딱 잡아 댔다. '밥 먹는 데까지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한다'고 성질을 부렸다. 눈 앞에 펼쳐진 사실을 감추고 속이려고만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었다.

주민들은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손에 들린 쇼핑백을 다시 확인했다. 틀림없이 한수원 '에너지팜' 마크였다. 김 기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됐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사를 썼다. 안전을 담보로 거래가 이뤄진 추악한 '뒷거래 현장'이 처음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관련 기사 : [단독] 영덕주민들에게 밥 사주고...'주민투표 소문' 사실이었다)

그가 <오마이뉴스>에 특종 기사를 쏘아 올린 뒤 주민투표 대책위 사무실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마음 졸였는데, 김 기자님 때문에 이젠 끝났다."

풍문으로 떠돌던 한수원의 식사대접 기사가 나가자 동네가 들썩였다. 이튿날 투표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식사대접 기사 쓴 기자냐"며 김 기자를 알아봤다.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는 이들도 있었다.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기자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투표 당일에도 또 다른 특종을 보도해 영덕군이 떠들썩했다. 사연을 이랬다. 그날 현장을 지키던 김 기자는 투표소 인근에서 수상한 자동차를 발견했다. 자동차 번호판에 적힌 '허, 하'를 보는 순간, 촉이 왔다. 렌터카가 분명했다. 김 기자는 뒤쪽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끈질기게 관찰했다.

▲ 차량 조수석 뒷문에 0안 양면테이프를 이용하여 블랙박스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 김종술

검게 선팅된 자동차 안에는 건장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초소형 블랙박스가 보였다. 운전석 앞 대시보드에는 빈 도시락도 놓여 있었다. 카메라를 자동차 창문에 바짝 들이대 버튼을 눌러 '도촬'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그는 렌터카에서 한수원이 투표자들을 '도촬(도둑촬영)'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특종 기사를 썼다. 

그 뒤, 판이 뒤집혔다. 식사대접에 도촬까지... 핵발전소 유치를 위해 일삼은 한수원의 민낯이 연거푸 공개되자 투표장를 찾는 주민들의 수가 늘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등에 업고 어르신들은 지팡이에 의지해 투표장을 찾았다. 106세 최고령 할머니도 핵발전소 유치 찬반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개표결과 97.7%로 핵발전소 유치반대가 나왔다. 기적에 가까운 수치였다. 20개 투표소에 1만 1209명이 몰렸고 865명(7.7%)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정부는 주민투표에 '불법선거'라는 딱지를 붙였다. 동창회 선거도 지원하는 선관위는 선거인 명부조자 내주지 않았다. 불법이라고 윽박지르고 철저하게 외면했다. 심지어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기존 언론도 마찬가지. 일부 언론은 중앙선관위 유권자 3만 4432명(2015년 9월 기준)을 기준으로 주민투표법상 효력 수치인 3분의 1에 미달되기에 효력이 없다고 보도했다. 1만 1478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277명이 미달했다고 보도했다. '안전'을 선택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숫자놀이에 집중했다. 공공의 안전보단 이익만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현장은 밀양과 판박이였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

▲ 최호금(85) 할머니의 손등이 날카로운 흉기에 베인 것처럼 깊숙이 찢어졌다. ⓒ 김종술

"여기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땅바닥에 피가 얼룩졌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차디찬 바닥에 쓰러진 최오금(87) 할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손등에서 피가 철철 솟구쳤다. 날카로운 것에 베인 흔적이 뚜렷했다. 최 할머니는 지나가는 경찰의 옷을 잡고 난 뒤 손등에 뭔가 스쳤다고 전했다. 결국 이날 최 할머니는 다섯 바늘을 꿰맸다. 김정자(72) 할머니도 손등에 칼로 베인 것 같은 상처가 생겼다.

2014년 1월 6일.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경찰이 숙소로 사용할 컨테이너를 두고 경찰과 주민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와 중상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이건 약과였다. 김 기자가 한 달간 먹고 자며, 취재한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건설 공사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1인분 지나갈 수 있잖아요."

김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경찰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송전탑 건설 반대주민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로 들어가기 위해 한 주민이 "비켜달라"고 하자 경찰이 신경질을 내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경찰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그야말로 개돼지 취급을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경찰과 주민 간의 실랑이가 벌어진 날이었다. 경찰은 저항하던 어르신을 밀쳐냈다. 또, 이 장면을 찍던 주민의 손을 잡아 비틀고 다른 손으로 내려치기도 했다. 몸싸움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발을 걷어차는 것도 수차례 목격했다.

사복경찰은 더했다. 달려드는 어르신의 가슴을 잡아 내팽개치고, 쓰러진 할머니를 도우려는 주민을 밀쳐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흥분한 몇몇 사복경찰은 씩씩거리며 어르신들에게 달려들다가 동료 경찰에게 저지를 당하기도 했다. 서슬 퍼런 공권력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기자면 어쩔 건데?"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3년 12월 17일. 송전탑 건설한 작업자는 김 기자의 멱살을 잡았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산 아래 어두컴컴한 곳으로 질질 끌고 갔다. 덜컥 겁이 났다.

개처럼 끌려가던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작업자의 얼굴 정도는 자료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그는 "또 찍어?"라며 김 가자의 멱살을 힘껏 잡아당겨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밀양에서 처음으로 당한 봉변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현장을 날아다녔다.

▲ 경찰 진입에 저항하는 주민 ⓒ 정대희

날다람쥐. 밀양 할매와 할배가 붙여준 그의 별명이다. 2014년 1월 27일. 밀양시청 앞에서 공권력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 인권훼손 현장을 기록한 대가였다. 이날 이른바 1박 2일간이 '돗자리 전쟁'이 벌어졌다.

"돗자리 하나가 뭐라고 지난번(민주노총 강제진압)에는 커피 믹스 훔쳐 갔다고 하더니 이제 돗자리냐!"

할매는 악다구니를 썼다. 냉골 바닥에 돗자리를 피려 하자 경찰 30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빼섰다. 밀치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 할머니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갈기갈기 찢어져 누더기 된 돗자리가 당시 상황을 대변했다.

상황은 이렇다.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양소 이전 설치를 요구하며 밀양765송전탑반대책위와 유족, 주민 40여 명이 밀양 시청 앞에서 밀양시장 면담을 요구하는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2013년 12월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는 영남루 건너편 체육공원 입구에 설치됐으나 이곳 상인연합회가 철거를 요구한 상태였다.

시장을 만나러 갔으나 할매, 할배를 마중 나온 것은 경찰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경찰이 이들을 둘러쌓다. 연좌농성의 시작이었다. 밀양시청 앞에서 주민과 경찰의 크고 작은 실랑이 계속됐다. 

"화장실 다녀와도 좋다. 다만, 밖으로 나갔던 사람은 다시 들어올 수 없다."

경찰은 못을 박았다. 인간 장벽을 세워 할매와 할배를 빙 둘러 고립시켰다. 감옥이 따로 없었다. 화장실과 농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농성을 풀지 않은 주민들은 화장실 걱정에 배를 곪아가며, 차디찬 바닥을 견뎠다. 그러다 결국 한 남성은 소변을 참지 못하고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런 모습을 김 기자는 나무에 올라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그를 '날다람쥐'라고 불렀다. 

#현장을 지키는 노숙기자

▲ 23일 오후 충남 부여 금강 백제보 상류 2km 지점에서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가 강바닥의 토양을 채취해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기자가 있으면, 경찰이 진압을 그나마 살살하니까."

김 기자는 밀양 송전탑 취재를 하며, 새벽 댓바람부터 충돌현장으로 향했다. '상황'이 발생했다면, 곧바로 뛰쳐나갔다. '상황'은 송전탑 건설을 위해 작업자가 투입되는 일을 뜻하는 주민들 용어이다. 이유가 있었다. 주민과 경찰, 주민과 작업자 사이에 극심한 몸싸움이 진행됐다. 그때마다 숫자가 적은 주민들은 경찰에, 작업자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 현장을 기록하는 기자가 있어야 경찰과 작업자가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꼭 기록해야 할 현장이 있다. 매일매일 기록하다 보면, 조금만 변해도 눈에 확 띄게 달라진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송전탑 건설 반대에 나선 주민들의 심정을 알라면, 적어도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해야 이해한다. 그렇지 않고 말만 듣고 쓴다면, 그 심정을 기사에 다 담지 못한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기사는 그런 거다." 

현장을 지키는 기자. 노숙취재의 달인. 그는 오늘도 현장에서 먹고 잔다. 누군가는 현장을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지난해 12월 16일 제2회 성유보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시상식이 끝나자 곧바로 다시 공주로 향했다(관련 기사 : '금강요정' 김종술 시민기자, 성유보 특별상 받는다). 늦은 밤, 하룻밤 묵고 가라는 제안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안돼! 내일 금강에 나가봐야 돼."

김종술 기자의 카메라는 항상 낮은 곳을 향한다. 힘없고 약한 생명체들이 발버둥 치는 현장이다. 손때 묻은 취재수첩엔 기존 언론들이 외면했던 '생명의 냄새'가 진동한다. 외롭고 힘들게 싸우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현장에서 다급하게 쏘아 올리는 그의 기사는 때로는 다소 투박하지만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와 같다.

권력과 자본은 4대강 사업의 민낯을 강제로 잠재웠다. 7년간 김종술 기자가 끊임없이 깨우고 또 깨우지 않았다면, MB 정부의 '가짜 삽질'은 깊이 잠들어 버렸을 거다. 그가 봉변을 당하면서도 노숙취재를 이어가지 않았다면, 밀양에서 일어난 서슬 퍼런 공권력의 칼날, 영덕에서 벌어진 추악한 뒷거래의 현장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거다.

그의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지켜주고 싶다. 권력과 자본에 돌직구를 날리는 짱돌이자 무기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바로 서야 언론이, 나라가 바로 선다.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