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3 22:09최종 업데이트 22.11.0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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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금요일 저녁, 나는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K-귀신 잔치'에 놀러 갔다. 친구들은 저승사자와 토끼 귀신, 해적으로 분장했고 나도 개량한복을 입었다. 우리는 마치 행사 스태프처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방문객들과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고 나서 9시경 귀가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업무를 하는데 재난 문자 알람이 울렸다. 코로나 확진자 공지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알람 소리는 짧은 간격으로 계속되었다. 나는 곧 이태원 해밀턴 호텔 근방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과 주변 도로가 통제되었다는 교통 안내, 주변에 있는 사람의 빠른 귀가를 당부하는 공지를 연달아 읽게 되었다. 


그렇게 '이태원 사고'를 SNS에 검색하다가 자동 재생되는 동영상과 마주쳤다. 십수  명의 사람들이 길바닥에 뻣뻣하게 누워 있고, 그 위로 의료진과 시민들이 붙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대규모 압사 사고로 30여 명이 심정지 상태라고 보도되는 시점이었다.

충격으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직후 눈에 들어온 것은 '이태원에 사람 많을 거 몰랐냐? 왜 놀러갔냐'는 말들과 탈의 상태인 희생자들에 대한 성적 모욕이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당신도 이 재난의 일부다

스물한 살 핼러윈에 나도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았었다. 그러게, 왜 놀러 갔을까?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으니 오히려 더 안전하고 더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태원은 외국인과 성소수자가 많이 모이는 문화적으로 개방적인 지역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대표적인 핼러윈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매년 이태원을 찾았지만 압사 사고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 누구도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놀러 나오지는 않는다. 참사 소식에 '사람 많을 거 뻔히 알면서 왜 나갔냐', '이런 날 놀러 가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친구 없어서 집에만 있었는데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희생자와 생존자 모두 자신만의 역사와 개성을 가진 소중한 인간이다. 인명의 무게를 모르는 발언이다.

생각해보자. 특별한 날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게 잘못된 일일까? 유명한 장소에 놀러 가는 게 손가락질 받을 일인가? 다른 사람들과 친교를 추구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건 건강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바람이며 성인 초기까지 이어지는 청소년기의 정상적인 발달 과정 중 일부다. 이를 빈정거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본인의 인간관계를 돌아봐야 한다. 

핼러윈은 분장하는 날이기에 사람이 곧 콘텐츠이며 관계맺음 자체가 재미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의 분장을 구경하고, 나의 분장을 자랑하고, 서로 재밋거리가 되어주고,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 사진 찍어주고 그 사진을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안면을 트고 연락처를 교환한다.

이처럼 핼러윈은 사회성이 두드러지는 행사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맞은 핼러윈이었다.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에 사회적 관계 맺음을 충분히 하지 못해 갈증을 느끼는 세대가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 더 깊은 애도를 표해야 할 이유이지, 결코 더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당사자는 피해자만을 일컫는 표현이 아니다. 대형 참사는 종류를 불문하고 해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전반에 상흔을 남긴다. 재난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같은 시기에 참사를 함께 겪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 재난에 바람직하게 대응하고 후속 세대에게 같은 고통을 물려주지 않을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광의의 피해자로서 또는 광의의 연대자로서만 우리의 당사자성을 성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희생자들을 향한 폭력에 크든 작든 직접 가담했다면 가해자로서도 또한 사건의 당사자가 된다.

그렇기에 이 재난 앞에 선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자와 생존자, 현장에서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선 시민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며 재난을 확장시키는 모습은 내게 이태원 참사 그 자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반드시 이를 반성해 문제점을 규명하고 바람직한 태도를 학습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사자로서의 책임감을 인식하고 피해 확산을 방지하며 비슷한 고통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고 동영상 유포하고 소비한 대가

우선 가장 심각했던 것은 현장의 참담한 이미지를 촬영해 유포하며 희생자와 생존자, 이들을 도우려 애쓰는 사람들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련의 행위들이었다.

심폐소생술(CPR)을 위해서는 성별을 불문하고 몸을 옥죄는 옷과 장신구를 제거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심장 압박 시 브래지어가 부상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탈의시켜야만 한다. 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위한 응급처치의 일환일 뿐이다. 

생존자들의 급박한 모습과 이들을 돕기 위한 숭고한 노력이 선정적인 이미지로 격하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무분별하게 촬영하고 유포하는 이들에 의해서다.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에서 이렇게 무분별하게 현장의 모습을 촬영하고 업로드한 이들에 의해 희생자 및 생존자들의 프라이버시가 포함된 민감한 모습이 대중에 공개되었다. 이를 접한 사람들이 2차, 3차 유포에 참여했다. 모두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이뤄진 일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했거나 급박한 위기에 처한 참담한 모습, 옷을 탈의한 채로 의식을 잃은 모습,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절박한 노력까지도 한낱 구경거리와 평가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 권우성

 
이러한 행위는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 의료진,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시민들 모두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만약 당신이나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죽음의 문턱에서 옷이 탈의되어 신체가 노출된 상태로 CPR을 받는 모습을 여과없이 전 국민이 돌려 보고 말을 얹는다면 어떨까?

생존자는 남들이 자신의 모습을 봤을까 봐 고통을 느끼고, 결국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키지 못한 의료진은 자신이 애쓰는 모습이 인터넷을 떠돈다는 것에 절망할 것이다. 희생자의 가족은 소중한 가족을 잃은 고통에 더해 망자의 참담한 모습이 인터넷에 떠돌고 심지어 성적으로 조롱당하는 모습을 보며 더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조회수와 호기심을 핑계로 무분별하게 이미지를 촬영해 공유하고 소비하고 현장 관계자들의 존엄을 침해함으로써 일어난 결과다.

대가는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존재가 겪는 일에 본능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는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죽거나 다치고 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본인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긴다. 희생된 이들의 존엄을 존중하고 애도하며 자신의 충격을 돌아보기보다 희생자들의 모습을 선정적으로 소비하길 택한다면 자신의 인간성과 건강 또한 훼손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무언가를 손가락질할 때 세 손가락은 날 향한다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했듯 희생자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 '왜 놀러갔냐', '나는 안 가서 다행이다'라는 말에는 희생자를 타자화함으로써 상대와 나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고 '나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안 그랬으니까'라는 안정을 느끼려는 심리적인 동기가 있다.

'저들이 죽은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비난하는 쪽이지 행하는 쪽이 아니다, 그러니 난 안전할 것이고 안전할 자격도 있다'는 자기 선언의 일환이기에 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냉소는 재난으로부터 자신과 타인을 실질적으로 지켜주지도 않을뿐더러 희생자들의 피해를 수치스럽게 만들어 문제 규명과 해결을 방해하고 사회 구성원 간의 단절감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를 악화시키면 악화시키지, 개선하지 못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각종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 또한 많았다. 물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을 경청할 수는 있지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해 진실인 것처럼 퍼뜨리는 건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 여론을 불안하게 만들고 수사를 방해할 여지도 있어 피해야 할 태도다.

마지막으로 언론의 보도 태도도 지적하고 싶다. 시민이 사건을 대하고 재현해 소비하는 방식에는 미디어의 태도 또한 큰 영향을 끼친다. 한국 언론의 태도는 이런 점에서 낙제점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동영상과 사진에 면피 수준의 아주 약한 모자이크나 블러 처리만 하고 그대로 보도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조회수와 시청률에 책임감을 팔아먹었다고 욕을 먹어도 싸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도 사고 당일, 현장에 있는 시민에게 제보 영상을 찍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사고 수습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조속한 귀가를 권해도 모자랄 판에 이 태도를 보이는 공영방송의 모습이 경악스러울 뿐이다(KBS를 비롯한 방송 3사는 31일부터 참사 영상을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경찰과 지자체 대응 여부를 감찰,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2일 오후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8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서울경찰청사앞에 ‘민주국가에서 경찰은 국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 단란한 가정,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가 새겨진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 ⓒ 권우성

 
개인 탓하며 시스템 은폐 

재난학에서는 현대에 일어나는 재난 사고의 원인을 대체로 인간에게서 찾는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시스템의 일부로서 재난의 가해자인 동시에 시스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부 개인에게 이 참사의 모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그에게 잘못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을 움직이고 또한 인간이 움직이는 시스템에 있다는 점이 은폐되기 때문이다. 특정 개개인을 악마화하고 탓함으로써 문제의 핵심부가 꼬리자르기를 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는 시민으로서 결정권자를 지켜보며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즉 사과와 피해 규명,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는 문제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개인을 처벌하는 것과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재난과 재난의 희생자를 선정적으로 재현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헷갈린다면 나 또는 내 가족, 지인이 재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재현되길 원하는지 상상하는 데에서 시작해보자.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내가 실천할 바를 찾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추모의 방식이다. 우리는 나아질 수 있고, 우리가 나아지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도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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