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2 19:31최종 업데이트 22.09.1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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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2020년 11월 6일 자로 국회에 제출된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사회적경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 지역공동체 재생과 지역순환경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 등 공동체 구성원의 공동이익과 사회적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사회적경제조직이 호혜⋅협력과 사회연대를 바탕으로 사업체를 통해 수행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

국제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위기의 홍수 속에서 헤매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필요성과 역할은 점점 커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데, 여전히 사회적경제기본법은 통과되지 않고 있으며, 현 정부는 사회적경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듯하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기업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기업육성법이 2007년에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 안에서 육성되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컨설팅과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회적기업은 현재 3000개 이상 운영하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취약 계층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 및 제공하고 있다.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구분되는 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이 2012년 말에 제정되면서 제도 안으로 편입되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진흥법의 성격보다 관리를 위한 법률로 볼 수 있는데 협동조합은 비록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은 없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와 조합원의 경제적 성장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일반협동조합은 법률이 정한 요건을 갖추고 등록만 하면 설립이 가능하고, 사회적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편, 마을기업은 지역 사회의 자원을 이용한 수익 사업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사업체이며, 자활기업은 자활근로사업단을 통해 근로 의지가 충분하게 높아진 취약계층이 참여하여 창업하는 경영 모델을 의미한다.

모든 유형을 정확히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들 네 가지 유형의 사회적경제기업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경제적 가치만이 진정한 경영의 가치로 판단하는 전통적인 기업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사회적경제기업이 감당하고 있다.

세 가지 오해

다시 앞서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최근에 차갑게 식은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여든 야든 '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뿌리 깊은 세 가지 오해에 근거한다.

첫 번째 오해는 사회적경제의 역할에 관한 오해다. 사회적경제는 정당한 노동 행위를 통해 획득한 이윤을 노동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전하여 무임승차자(free-rider)를 양산함으로써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사회적경제의 발목을 잡아 왔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과 일부 평론가는 사회적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부르며 이념적 색깔을 칠하기도 했다. 사회적경제는 정부의 사회 서비스 공급이 미치지 못하는 계층에게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시장에서 생산성 등을 이유로 고용을 꺼리는 취약 계층을 고용함으로써 정부의 역할과 시장의 역할을 보완한다. 이런 기능을 고려할 때, 사회적경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더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오해는 사회적경제의 참여자에 관한 오해이다. 사회적경제 참여자는 대부분 특정 이념에 경도된 자들이므로 사회적경제를 정치권의 입법을 통해 지원하는 것은 세금으로 좌파 세력을 양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사회적경제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오해다. 사회적경제기업은 기업의 정관을 통해 단체 명의의 정치 참여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사회적경제 참여자 개인이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뿐 아니라, 최근의 참여자들이 좌파적이라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사회적경제의 참여자들은 기업 고유의 경영 활동을 통해 좌와 우를 구분하지 않고 정부 정책의 집행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 청년공유공간 JU동교동에서는 ‘서울시 사회적경제 정책 및 예산분석 토론회’가 열렸다. 2021.12.14 ⓒ 이희동

 
세 번째 오해는 사회적경제의 지속성에 관한 오해이다. 사회적경제기업은 대부분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생존할 수 없으므로 제대로 된 경영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없고, 정부의 용역 사업 수주를 위한 페이퍼 컴퍼니 역할만 하고 사라지는 기업이 다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오해는 현재 사회적경제기업의 발굴과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은 지역별 창업 교육(사회적경제 창업 아카데미)의 수료, 권역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진출, 부처별 또는 지역별 예비 사회적기업 지정,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 등의 단계별 절차를 거치면서 지속해서 경영 모델과 사회적 가치를 점검 받는다.

고용노동부의 인증 이후에도 분기별 보고서의 제출, 경영공시 참여, 사회적 가치 측정 등의 과정을 통해 혁신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히려 외부적 통제를 전통적인 기업보다 훨씬 촘촘히 받는 셈이다. 사회적기업이 발굴부터 인증 이후까지 매우 까다로운 점검 절차를 통해 지속해서 검증받는 이유는 국민의 세금이 조금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오해는 비단 정치권만의 오해는 아니다.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이나 평론가도 이런 입장을 많이 취한다. 따라서 정치권은 입법을 통한 사회적경제 지원이 일반 대중에게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전임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책 지향이란 이유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 축소가 일부 지역에서 논의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최적의 파트너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즉, 행정부의 입장에서 사회적경제의 가장 큰 의의는 국정 또는 시정의 가장 확실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생산 이론(co-production theory)을 통해 이를 설명할 수 있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동생산을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 기여하는 다수의 개인이 하나의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정의하였다. 공동생산 이론이 주장하는 핵심은 시민을 공공서비스의 소비자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닌 공동 생산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현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과 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병준 교수는 공동생산의 필요성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강조한 바 있다.
 

김병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2.4.25 ⓒ 인수위사진기자단

 
먼저 공동생산은 시민에게 생산적 활동을 인정하고 정부의 특정 기능 중 일부 혹은 전부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작은 정부를 구현하여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이런 지적은 현 정부나 보수당의 깃발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이 참고할 만하다. 또한 김병준 교수는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민이 아니라 공익의 전달자로서의 시민을 양성하여 지역사회의 사회적 가치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경제기업은 공동생산에 적합한 최적의 조직체이다. 경영의 목적 자체가 사회적 가치의 실현으로 정부의 존재 이유와 같을 뿐만 아니라, 유무형의 공공서비스를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증명한 사회적경제기업이 이미 시장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

무엇이 정상적인 사회일까? 필자가 사회적경제에 관해 특강을 할 때면 언제나 서두에 청중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은 등록 장애인 기준 전체 국민 대비 5% 정도다. 하지만 사회적 낙인 우려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숫자를 부풀려 10% 정도가 실제 장애인이라고 가정해 보자.

필자가 강의하는 강의실에 100명의 학생이 앉아 있다면 그중 10명은 장애인이어야 정상적인 학교이며, 필자가 출석하는 종교 시설에 500명의 신도가 앉아 있다면 그중 50명은 장애인이어야 정상적인 종교 시설이다. 또 독자가 자주 찾는 한식당에 50명의 손님이 동시에 식사 중이라면 그중 5명은 장애인이어야 정상적인 식당이고, 독자가 출근하는 사업체의 근로자가 1000명이라면 100명은 장애인이어야 정상적인 사업체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며 장애인이 시설이나 가정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 사회는 '정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묻고 싶다. 무엇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지속하는 경쟁과 이에 따른 낙오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그간 우리는 장애인과 같은 취약 계층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였으며, 그들이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상황을 오히려 비정상으로 인식하여 부자연스럽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1.12.1 ⓒ 청와대 제공

 
사회적경제는 이런 우리 사회가 매우 불편하다. 존재를 부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존재를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적경제는 정부와 시장이 '합리성' 또는 '효율성'의 가치를 달성하고자 비틀어 버린 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우리 곁에 굳건히 세워져야 한다.

재정이나 재원의 부족으로 정부가 정부다움에 한계를 느낀다면, 사회적경제에 도움을 청하자. 더욱 적극적으로 정부가 사회적경제에 손을 내밀 때 비틀린 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정의가 바로 잡힐 것이다.

* 필자 소개: 도시행정학 박사. 현재 강남대학교 공공인재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강남대학교 사회적기업지원센터 및 경기도 하남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도시의 사회적 가치를 담은 책 <도시, 다시 살다>(가나출판사)를 최근에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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