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7 15:34최종 업데이트 22.09.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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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입구 ⓒ 백경록

 
대구 중구(구청장 류규하)에는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건물이 있습니다. 중구청 소유인 이 건물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먼저 '대구 약령시'를 알아야 합니다.

대구 약령시는 조선 효종 9년인 1658년부터 한약재를 거래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 한약시장이자 전국 3대 한약재 전문시장, 국내외 한약재 교역의 거점입니다. 전국 최초 한방특구로 지정 받은 이곳은 중구 3.1만세운동길, 진골목, 동성로와 경상감영공원으로 이어지는 근대문화공간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러한 약령시가 침체일로에 빠지자 대구시와 중구에서 여러 가지 활성화 대책을 내놨는데, 이 건물도 그 대책의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350년이 넘는 전통을 간직한 약령시 한방문화를 발전시키고 주변에 산재한 각종 문화유산과 근대골목을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한방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이었습니다.

2014년 4월 남성로 24번지외 4필지에 약 230평 규모(지하 1층, 지상 2층)로 지어졌습니다. 현대백화점 쪽에서 기부받은 25억 원을 포함해 27억7천만 원으로 부지를 매입했고, 건축비는 25억 원 전액 국비를 지원받았습니다. 그렇게 총 예산 52억7천만 원을 썼습니다.

리모델링한다고 5억 달라더니... 갑자기 왜 다른 이야기를?

그런데 이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이 '불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2021년 12월 구의회에 제출된 리모델링비 예산 5억 원이 화근이었습니다. 다음은 그해 12월 3일 중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록 내용입니다.

중구 관광진흥과장 :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을 새로운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자 시설비 5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중략) 이인성(대구 출신 화백)과 관련해 어떤 유품이 온다고 해서 공모 자체는 연초에 할 예정입니다.

이경숙 구의원 : "(예산) 사용설명서에 이인성의 인 자도 없는데 그게 무슨 얘기예요?"

중구 관광진흥과장 : "새로운 공간 중 하나로 이인성 관련 유품에 대해 (이 화백 유족 측에서) 저희들한테 의사를 타진해 온 상태입니다."

이경숙 구의원 : "위원들한테 사업계획서를 얘기하면 앞으로 향후 계획을 어떻게 잡을 것이라는 내용이 여기 들어가 있어야 되잖아요."
 

사흘 뒤 중구 측 다른 관계자는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합니다.

중구 환경자원과장 : "이인성 전시관은 그날 (관광진흥)과장이 잘못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아직 정해진 게 한 개도 없습니다."

정리하면, 에코한방웰빙체험관과 관련해 편성해달라고 요구한 예산 5억 원은 순수 리모델링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이후 중구청에서 제출한 서류 한 장에는 자세한 내용이 없었습니다만 결국 예산은 의회에서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022년 2월 7일, 류규하 중구청장이 이인성 화백 유족 대표와 '이 화백의 예술세계 계승 및 활용을 위한 협약식'을 맺었습니다. 유족은 이 화백 작고 후 73년 동안 보관해온 유품 780점과 관련 연구자료를 중구청에 기증하고, 중구청은 근대미술과 이 화백을 기념하는 예술공간을 에코한방웰빙체험관에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이경숙 대구 중구의원(더불어민주당) ⓒ 백경록

 
이 의원에 따르면, 이후 3월경 중구청 국장이 찾아와 '이렇게 MOU를 체결했고 5억 원을 여기에 쓰겠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예산 자체가 위법이니 삭감하고 이 화백과 관련해서는 새로 예산을 잡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국가와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 또한 지방의회가 의결한 취지와 다르게 집행된 사업예산은 '전용제한' 되기 때문입니다. 리모델링에 쓰겠다고 보고해놓고 다른 데 쓰면 '불법'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이 의원이 지방선거에서 재선한 지 약 한 달 뒤인 7월 22일, 예산 불법 편성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구청 스스로 에코한방웰빙체험관 리모델링 예산 5억 원을 삭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구청 관계자는 기자에게 "당시에는 이 화백 사업 내용이 아니었고 노후한 센터 리모델링비였는데 상황이 급변해서 2월에 MOU가 진행된 것이다. 그래서 추경 때 리모델링비를 반납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지방 예산, 이렇게 마음대로 다뤄도 되나

시민들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예산이 정말 치밀하게 책정돼 쓰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 중구에서 확인한 건, 몇천 원도 아니고 몇억 원이라는 예산이 너무나 쉽게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다는 현실입니다.

대구 중구는 재정자립도 26.64%에 예산규모는 유사지방자치단체 평균액보다 860억 원이 적습니다. 스스로 공지한 바와 같이, 재정운영의 계획성과 건전성 확보, 자체수입 확충을 위해 노력해야 할 지자체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더욱 중요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중구는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해뒀습니다.

조례에 의하면, 체험관은 지역 한방산업, 문화의 홍보·전시·교육·체험·판매, 친환경, 전통한방 관련 각종 프로그램 운영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1월 1일, 설날 및 추석날, 매주 월요일, 구청장이 정하는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개관하게 돼 있습니다(구청장이 휴관일을 정할 때는 미리 홈페이지 등에 공고해야 합니다).

중구청은 이인성 화백 관련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2022년 4월 30일부터 내부 찻집을 제외하고 체험관 운영을 쉬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례에 근거가 없는 휴관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조례부터 개정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예산 배정 과정도 충분히 문제였지만, 체험관 운영 방식도 조례에 어긋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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