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3 12:17최종 업데이트 22.06.1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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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뉴욕주 버팔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백인우월주의자가 흑인 등을 대상으로 총기난사를 했다. 현장 부근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 조성됐다. ⓒ EPA=연합뉴스

 
참사와 축제. 6월 첫 주 미국과 영국의 상반된 헤드라인이었다. 2일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문제를 주제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 지난 5월 뉴욕 주의 슈퍼마켓과 텍사스 주의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서른 명 넘는 사망자가 나온 것에 대해 사회적 각성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반면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즉위 70주년을 축하하는 주말이었다. 버킹엄 궁 주변은 유니언 잭을 흔드는 시민들로 빼곡했다.  
  
총과 입헌 군주제. 얼핏 보기에 무관하지만 이 둘은 영국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 성립을 이야기할 때  마그나 카르타(1215)와 함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문서로 기본권과 의회의 권한을 명시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했다. 이 중 하나가 무기 소유였다.

권리장전의 영향 하에 미국은 무기 소유권을 1791년 헌법에 올렸고 이후 문화로 정착했다. 법률화된 전통. 법은 사회 변화에 가장 더디게 반응하고 전통은 완고하다. 이것이 미국이 매년 반복되는 총기 사고에도 돌파구를 못 찾는 근본 이유다. 현재 미국 총기 문제는 폭력 문제 이상이다. 연방대법원이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기본권의 문제요, 월스트리트까지 끌어들이는 문화 전쟁이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주의와 사회적 연대가 힘겨루기를 하는 전환기 민주주의의 문제다.  

시민과 무기

기본권으로서의 무기 소유. 여기에는 개인이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 즉 근대 시민이 되기 위한 조건의 하나로 무기를 꼽았던 뜻밖의 과거가 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자유와 무기(군)"를 이론화한 대표적 사상가다. 사회를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요소로 좋은 법과 좋은 군대를 중시했던 그는 군대의 경우 용병보다는 시민으로 구성된 민병대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민병대 유지를 위해 국가는 시민에게 무기를 소유할 권리를 부여해야 하고 시민은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17세기 중반 영국 의회주의자들은 마키아벨리를 수용했다. 왕정주의자와 전쟁을 불사했던 이들은 군대가 왕이 아닌 자유로운 시민들 손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제임스 해링턴(1611-1677)과 같은 급진주의자들은 무기 소유를 개인이 독립된 힘을 확인하는 기본 수단으로 이해했다. 구속되지 않은 개인, 즉 경제적으로 일정 재산이 있고 외부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무장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 자유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정치체가 이들의 이상이었다.

영국의 17세기 무기 소유권은 18세기에 대서양을 건넌다. 독립 전쟁(1775-1783)으로 자유와 군사력의 상관성을 경험했던 미국 건국 주도 세력에게 영국 정치 이론은 호소력이 있었다. 이 중에는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1751-1836)도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로 언급되는 7인 중의 한 명이자 훗날 4대 대통령이 되는 인물이다.

헌법을 쓸 당시 그는 두 차원에서 중앙군을 견제하고자 했다. 하나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으로, 각 주의 민병대가 한 방안이었다. 두 번째는 정부와 개인 차원이다. 정부가 시민을 무장 해제할 가능성을 우려, 개인의 무기 소지를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믿었다.

1789년 최초 헌법에 이어 1791년 1, 2차 수정을 쓴 매디슨은 토론 끝에  2차 수정 헌법 (Second amendment)에 다음과 같은 조항을 넣는다.  
 
"자유 국가의 안보에 필요한 잘 규제된 민병대, 사람들이 무기를 소유할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2022년, 무기 소유권 더 확대되나

무기 소유권은 헌법 내 단어 무기(arms)가 총기(firearms)를 의미하는가에서 부터 뜨거운 논쟁 거리였다. 미연방 대법원은 6월말이나 7월 초에 또 하나의 해석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해 4월 연방법원으로 올라간 '뉴욕 소총 & 권총협회 대 브루엔'(New York State Rifle&Pistol Association vs. Bruen)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요약하면, 현재 뉴욕 주에서 총을 공공장소에 가지고 가려면 "적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면허를 따야 한다. 적당한 이유란 자기 방어가 필요한 사유다. 면허를 신청했다가 조건 불충분으로 거부당한 시민이 "기본권 행사에 왜 정부 허가가 필요한가?"라고 문제 제기했다.

연방 대법원이 판단할 부분은 "공공장소"로, 기본권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적 범위다. 2008년 연방 대법원은 무기 소유권에는 개인의 공간, 집에서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는 당시 논의에서 제외되었던 공간, 공공장소를 다룬다. 공공장소가 포함될 경우, 총기 소유자는 허가 없이 총을 소지한 채 거리를 누빌 수 있다.

현 연방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3명의 법관을 임명하면서 보수가 6으로 진보 3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뉴욕 주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타임스퀘어 같은 번화가가 과거 서부시대로 변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뉴욕시 경찰(NYPD)이 긴장하고 있다.    
 

텍사스 총격 참사에도 강행한 전미총기협회 연례총회. 5월 26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조지 브라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NRA) 연례총회·전시회 참석자들이 NRA 표지판이 세워진 복도를 오가고 있다. 지난 24일 발생한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격 참사에도 강행된 NRA 151회 연례총회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등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텍사스의 배수진

미국 공화당은 2016년 당 강령으로 "우리는 2차 수정 헌법이 규정한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 무기 소유권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 중에서도 강경파인 텍사스 주지사 그레고리 애벗은 텍사스를 "2차 수정 헌법 조항(무기 소유권)의 성역"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는  2021년 2월 "2차 수정 헌법이 공격받고 있기 때문에 주정부가 완벽한 방어막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2021년 9월, 텍사스는 친- 총기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에 따르면 면허와 훈련 없이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가 가능하다. 그리고 주 정부와 관련된 모든 기관은 "총기 산업 그리고 관련 개인을 차별하는" 회사와 거래를 금지한다. 주정부 사업에 참가하고자 하는 회사들은 총기 산업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주 법무장관에게 미리 제출해야 한다.

이 법안의 직접적 목표는 월스트리트다. 미국 최대 은행들인 JP 모건, 시티그룹 등은 2018년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17명이 사살된 총기 사건 후, 총기 산업과 거리를 두겠다고 발표했다. 텍사스 주는 이 조치가 "깨어있는 사회의식 문화(woke culture)"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정치적 올바름 자체가 하나의 강요이고 편향적 시각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총기 산업에 취한 조치는 부당한 차별이라는 비판이다.
 

미국 텍사스주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공화당) ⓒ 연합뉴스

 
결과는 월스트리트의 항복이었다. 시티은행에 이어 5월 JP 모건은 텍사스 주 장관에게 텍사스의 총기 산업과 거래를 유지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JP 모건의 CEO 제임스 다이먼은 "나는 '깨어있는'(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I am not woke)"라며 물러섰다. 금융권은 2018년과는 달리 이번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이후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

텍사스와 유사한 법들이 애리조나 등 공화당색이 짙은 주에서 통과되자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캘리포니아 주가 나설 때라고 <가디언>을 통해 주장했다. 민주당인 캘리포니아가 텍사스와 정반대되는 법안, 즉 총기 산업과 거래하는 회사와는 거래를 끊겠다는 법을 통과시켜 월스트리트 은행들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도 다하고 경제력 1위인 캘리포니아와 거래할 것이냐 아니면 2위인 텍사스와의 거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절머리 난다", 그럼에도

총기 문제가 연방대법원과 월스트리트까지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5월 24일 바이든 대통령은 "진절머리 난다"라고 말했다. 뉴욕 버펄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10명의 흑인이 사살된 사고 발생 열흘 만에 텍사스 초등학교에 십대가 난입, 19명의 어린이와 두 명의 선생님을 총으로 죽인 날이었다.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텍사스 총기난사에 격노한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앞·79)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질 바이든(70)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텍사스주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런 일은 미국 이외 세계에선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왜인지 아느냐?"면서 "우리는 도대체 언제 총기 로비에 맞설 것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 아픔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며 분노를 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순방을 떠나기 이틀 전 뉴욕 버펄로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피해자의 유가족을 만난 바 있다. ⓒ 연합뉴스/AP

 
"진절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적 악몽과 맞닿아있다. 2013년, 코네티컷의 한 초등학교에서 20살 청년이 스무 명의 6-7세 어린이와 6명의 교원을 총으로 죽였다.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 지시로 총기 규제안을 만들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이후 민주당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대형 총기 사고가 날 때마다 규제안을 냈고 매번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 2일, "진절머리"에서 "여기서 멈추자(enough)"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한 번 규제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제안은 온건하다. 공격용 무기와 연발총은 금지하자, 총기 구매 나이를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하자, 총기 구매자 신상 조회를 강화하자 정도다. 그리고 "(총기 소유) 문화와 전통을 존중"한다며 규제안이 "총을 뺏는 게 아닐" 뿐더러 "총기 소유자를 악마화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바이든 안의 온건성은 1791년 2차 수정 헌법을 건드리는 것이 현재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90년도부터 매년 총기 관련 여론 조사를 해온 갤럽의 2021년 11월 조사에 따르면, 권총 소지 금지에 찬성하는 미국 여론은 19%로 역대 최저다. 민주당 지지자 내에서도 금지하자는 쪽은 40%에 불과하다. 수치는 중도층의 경우 14%, 공화당 지지자는 6%까지 떨어진다.

금지가 아닌 규제 강화도 압도적 지지가 아니다. 위 같은 조사에 따르면 총기 규제 지지는 52%다.(물론 총기 사고 직후에는 지지율이 단기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한다.) 무엇이 총기 규제 지지/반대에 결정적일까. 예일 법대 댄 카한(Dan M. Kahan) 교수는 지역, 성별, 인종과 같은 요소보다 세계관이 가장 직접적이라고 설명한다. 평등과 사회 연대를 중시하는 이는 규제를 지지하고 전통과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이는 규제를 반대한다는 뜻이다.

세계관의 차이는 현실 정치에서 "자유 보호" 대 "권리 보호"로 나타났다. 슈퍼마켓과 학교에 안전하게 갈 자유를 언급한 바이든은 사회 연대성이 발휘된 자유를 호소한다. 반대로 권리 보호를 내세운 공화당은 최대화된 개인, 최소화된 사회를 원한다. 총기 사고라는 부작용 때문에 헌법상 권리를 축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총기 규제안은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부결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민주당은 총기 문제를 11월 중간 선거에서 쟁점화 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다. 최대화된 개인주의와 사회 연대성, 미국 민주주의의 방향이 정해질 예정인만큼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선거가 될 듯하다. 
 

美 잇단 총기사건에 '규제 강화' 요구 집회 봇물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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