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0 06:06최종 업데이트 22.06.1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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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근데 비자 받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무조건 갈 생각이에요! 아, 한국 너무 가보고 싶어요."

일본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고2)은 올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했다. 이 학교는 2020년부터 러시아어를 빼고 한국어를 대신 채택했다. 이유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년 방영)과 그룹 '트와이스'로 재점화된 폭발적인 한류 열풍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학부모, 학생들까지 강력하게 한국어의 제2외국어 채택을 지지했고, 선생님도 두 명 새로 뽑았다.


큰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한국어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제2외국어의 특수성 때문에 이 시간에는 전체 클래스가 '헤쳐 모여' 한다. 2학년 전체 학생 수는 120명. 그 중 60여 명이 한국어를 선택해 두 클래스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그래서 다른 제2외국어 교사는 한 명인 반면 한국어는 두 명의 교사가 담당한다고 말한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으로 촉발된 일본 내의 한류 열풍은 이젠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이번 한류 열풍은 열풍이라 말하기가 무안할 정도로, 특히 10-20대들의 일상생활 깊숙한 곳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 영사관 앞에 줄 선 일본인들

그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한국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외국인 관광객 전면 개방이다. 특히 한국관광비자 업무를 재개한 지난 6월 1일 도쿄주일한국영사관 입구에 새벽부터 약 100미터에 달하는 줄이 형성돼 일본 언론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TV아사히는 아침 뉴스정보 프로그램 <굿모닝>에서 영사관 앞을 라이브 현장 중계로 연결해 줄 선 사람들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여행만 기다렸다며 들뜬 기대감을 나타냈다. 
 

1일 오후 일본 도쿄 소재 주일본한국대사관 영사부 앞에서 한국 여행을 위한 비자(사증)를 신청하려는 일본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날 영사부의 신청서 접수는 이미 종료한 상황이며 이들은 다음날 업무가 개시되면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자리를 펴놓고 철야 대기를 하려고 하고 있다. 2022.6.1 ⓒ 연합뉴스

 
주일한국영사관 관계자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보통 관광비자는 1주일 안에, 길어야 열흘 정도면 나오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지금 상황이라면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코로나 터진 후에 (주일영사관에 발령받아) 왔는데, 그간 조용하다가 갑자기 이런 상황을 맞게 돼서 솔직히 지금 너무 당황스럽다"고 놀라워했다.

처음에만 반짝할 걸로 예상됐던 한국 관광비자 발급 열풍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현재 이중국적인 큰 딸과 그의 일본인 학교 친구들이 수험생이 되기 전 마지막 추억을 한국여행으로 장식하고 싶다고 해 내가 비자발급 등을 문의해보니 지금은 아예 비자발급 예정일을 알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주일영사관은 첫날 예상외의 인파가 몰려 250명에서 잘랐고, 지금도 매일 인원수 15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영사관 문 열자마자 그 날 인원수를 채워 버릴 정도로 '비자쟁탈전'이 극심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주일한국영사관 홈페이지에는 10일 현재 "비자 발급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되면 가까운 시일 내의 항공권 티켓을 미리 예약할 수가 없다. 비자가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한일본영사관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런 상황은 주한일본영사관도 마찬가지다. 지인을 통해 알아본바 현재 서울에 있는 주한일본영사관에 하루 평균 500명 정도의 일본관광비자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주일한국영사관과 마찬가지로 신청 서류를 처리하는 것에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라 관광비자 발급일정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일본정부가 6월 10일 개방하는 외국인 관광객 입국 조건을 1개월 2만 명 이내, 투어 가이드를 포함한 단체투어로 한정하고 있는데도 이러하니 개인 여행이 개방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을 이후, 그리고 예전처럼 무비자 방문이 가능해질 내년 이후에는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 수가 훨씬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코로나 이전으로 시계를 돌린다면 이러한 양국의 과열 현상은 이미 예상됐었다. 일본관광청의 과거 통계를 보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2017년 714만 438명을 기점으로 연간 700만 명대를 넘어섰고, 2018년에는 753만 8918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정부의 수출규제정책 등으로 노재팬(NO JAPAN) 운동이 활발하던 2019년에도 558만 4597명이 일본을 찾았으며, 방문객 수 국가별 랭킹에서는 항상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찾는 일본관광객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10년 동안 방한일본인 수는 2012년 351만 명을 찍은 후 서서히 감소했다가 2015년 187만 명으로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본격화된 제4차 한류 열풍으로 다시 늘기 시작해 2018년 294만 명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노재팬' 운동이 본격화된 2019년에는 전년 대비 11% 상승한 327만 명을 기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해외여행 전문업체 <타비코보>(旅工房)가 지난 5월 초순 실시한 '코로나가 진정된 후 가장 먼저 가고 싶은 나라' 앙케트(복수응답 가능)에서 한국은 하와이, 대만, 타이, 이탈리아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21년 일본에 살았지만 이런 건 처음

일본인들의 한국 여행 욕구는 코로나 기간 중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를 통해 시청한 한국관련 콘텐츠의 영향도 크다. 아마존 프라임과 티버에 이어 일본 OTT 서비스 시장 점유율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 넷플릭스 랭킹 톱10에는 늘 한국 드라마가 다수 포진해 있다.

10일 현재 1위 <의사 요한>, 4위 <우리들의 블루스>, 6위 <이태원클라쓰>, 7위 <사랑의 불시착>, 8위 <그린 마더스 클럽>, 9위 <나의 해방일지>, 10위 <사내맞선>으로 총 7편이 랭킹에 올라와 있는데 어떨 때는 10편 전부가 한국 드라마로 채워질 때도 있다.
 

10일 현재 일본 넷플릭스 랭킹. 1위 <의사 요한>, 4위 <우리들의 블루스>, 6위 <이태원클라쓰>, 7위 <사랑의 불시착>, 8위 <그린 마더스 클럽>, 9위 <나의 해방일지>, 10위 <사내맞선> 등 총 7편의 한국 드라마가 올라와 있다. ⓒ 넷플릭스

 
지난 2년간 한국 드라마에 빠져든 일본 시청자들이 드라마 때문에 한국을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내 일본인 지인들 중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이태원클라쓰>와 <사랑의 불시착> 때문에 서울 이태원과 경기도 파주 세트장에 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한국-일본여행 관련기업의 주가도 크게 뛰고 있다. 한일여행 인바운드, 아웃바운드를 동시에 전개하는 '하나투어재팬'의 주가는 코로나 시국 이후 급락해 지난 2년간 600-800엔대를 유지했지만, 양국정부의 해외관광객 입국자유화 방침이 발표되자마자 급등하기 시작해 6월 6일에는 1814엔을 기록했다.

일본인들이 더 한국여행에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엔저' 때문이다. 9일 현재 달러엔 환율은 1달러 당 134엔을 기록했다. 달러당 134엔은 20년만이다. 문제는 엔저현상이 앞으로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엔의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에서의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보통 해외여행을 기피하게 된다. 유류가격도 올라 항공권도 평소보다 1.5배 이상 비싸다. 그런데도 한국여행을 벼르고 있다. 영사관에 매일같이 새벽부터 줄을 설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한국여행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소리다.

이런 버블 현상에 도저히 끼어들 자신이 없어, 큰 딸과 딸의 친구들에게 여름방학 말고 겨울에 한국 가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렇게 또 나쁜 아빠가 되어 버렸지만 마음속으론 참 별일이 다 있다는 생각만 든다.

21년 전 일본에 건너와 계속 여기 살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겪어보질 못했다. <겨울연가>가 히트 쳤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지금 일본사회는 9년여 간에 걸친 아베-스가 정권 시절의 영향으로 극우적 멘털리티가 메인스트림으로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국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외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어쩌면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지금까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형태로 흘러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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