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4 18:15최종 업데이트 22.05.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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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과 그로부터 12년 후에 출판한 (1871) I, II ⓒ 권신영

 
얼마 전 중고 및 고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에 갔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책 3권을 발견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1859)과 그로부터 12년 후에 출판한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1871) I, II가 유리문이 달린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여느 책들과 달리 유리문 속에 있는 책의 위상에 쫄아 차마 책을 뽑아 펼치지는 못하고 유리문 열고 사진만 찍었다.

현재 다윈 책들은 웬만한 도서관에서 쉽게 구해 볼 수 있다. 도서관 책들은 내용도 동일할 뿐더러 종이 질, 인쇄 상태, 디자인, 제본 방식에서 월등한 품질을 가지고 있고 오래된 책에서 나는 꿉꿉한 냄새도 없다. 하지만, 새 책들은 위 책과 견줄 수 없다. 오래된 세 권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 단어, 다윈, 런던, 존 머리가 만들어내는 힘 때문이다. 저자, 19세기 세계 지성 사회의 중심 런던, 그리고 지식의 산파 출판사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요즘 많이 언급되는 반지성주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무명의 다윈, 인생 출판사를 만나다

다윈(1809-1882)이 출판사 대표 존 머리 3세(John Murray, 1808-1892)를 처음 만난 1845년, 다윈은 무명이었다. 1836년 비글(Beagle)호 항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다윈은 항해 동안 써놓은 메모를 3년에 걸쳐 정리해 헨리 콜번(Henry Colburn)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3권의 책을 냈다. 하지만 출판사와의 계약이 맘에 들지 않아 다른 출판사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해 다윈은 절친인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에게 조언을 구한다. 둘의 인연은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에서 비롯되었다. 지구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천지 창조와 같은 초자연적인 사건이 아닌, 끊임없이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 가령 부식이나 지진 등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비글호 항해 중 이 책을 읽은 다윈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라이엘을 찾아가 생각을 공유하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

라이엘은 출판사를 찾는 다윈에게 존 머리 출판사를 추천했다. 존 머리 출판사는 1768년에 세워진 가족 경영 출판사로, 머리 2세 때인 1806년 19세기 영국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성경과 같은 존재였다고 평가받는 요리책 <가정 요리의 신제도(A New System of Domestic Cookery)>(Maria Rundell)로 첫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조지 바이런의 글과 제인 오스틴의 후기 작품 <에마(Emma)>(1815),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1817),  <설득(Persuasion)>(1817)까지 출판, 영국 출판계의 큰 손이 됐다.
  

존 머리 3세. <종의 기원> 이후 대학자의 반열에 올라선 다윈은 이후에도 그의 모든 저서를 머리 3세에게 맡겼고 그는 기꺼이 다윈의 책을 출판했다. ⓒ Wikipedia Public Domain

 
머리 3세도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1830년경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한 그는 여행 책자를 기획, <여행자를 위한 핸드북(Murray's Handbook for Travellers)>(1836- 1910)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학술지 및 대중 잡지로의 영역 확대와 대영 제국 내 식민지로의 도서 판매를 꾀하고 있었다.

다윈과 만난 머리 3세는 기꺼이 다윈의 책을 단행본으로 재구성해서 '홈 앤드 콜로니얼 라이브러리'(Home and colonial library) 시리즈의 일부로 출판했다. 약 40년간 이어질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 둘의 관계는 두 사람이 35년간 교환한 편지 꾸러미 속에서 나타나는데, 훗날 머리 4세는 "이 속에서 악의적인 말을 찾으면, 그건 상당한 돈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위험한 책 <종의 기원> 출판

첫 인연이 시작되고 14년이 지난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 원고를 머리 3세에게 보냈다. 그 동안 다윈의 책은 출판사에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게다가 다윈은 이번 책이 엄청난 사회적 저항을 부를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윈은 라이엘에게 머리 3세가 종교적 이유로 거부할지도 모른다며 다음과 같이 편지에 썼다.

"내 책이 주제가 그래서 그렇지, 그렇게까지 정통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머리에게) 말해야 할까? 난 인간의 기원에 대해 논한 것이 아니고, 천지 창조에 대한 논의를 건드리지 않았고 단지 사실만을 제시할 뿐이다. 사실로부터 나온 결론이라 내게는 타당해 보인다. 그렇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나을까?"   

다가올 논쟁과 출판 거부에 대한 우려 속에서 "사실"에 입각했음을 강조하는 중년의 다윈이다.  

다윈의 학자적 진심을 알고 있는 머리는 "나는 출판에 어떤 망설임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확고한 지지에 다윈은 좀 더 솔직해진다. "출판 결정을 취소해도 됩니다 […]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원고가 아닙니다. 어디는 대단히 건조하고 어디는 난해합니다"라고 했다. 
 

<자연 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즉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2판.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 ⓒ Wikipedia Public Domain

 
실제로 회사 내에서는 출판 반대 의견이 많았다. 논란의 소지가 너무 많다는 게 이유였고 머리 3세 역시 진화론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윈의 생각을 존중, 경제적 손실과 회사 평판 하락이라는 위험을 무릅썼다. 이후 다윈은 다시 편지를 써 보냈다.
 
"많이 수정할 것이 없을 것이라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썼습니다만, 오류가 꽤 있습니다. 글 스타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쁘고 글이 분명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습니다. 수정 과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로 인한 비용과 시간 낭비에 대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원고가 이 정도로 나쁜 것은 저도 믿기 어렵습니다."
 
몇 년간 공을 쏟아 부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는 자기 평가였다. 머리 3세는 수정에 드는 모든 비용을 출판사가 부담하겠다며 다윈의 예상을 상회하는 1250부를 초판으로 찍겠다고 전했다. 판매에도 노력을 기울여 '책 판매를 위한 저녁 식사(Sale Dinner)' 자리를 가졌다. 인터넷은커녕 전화도 없는 19세기에 책을 홍보하던 방식으로, 주요 책 상인들을 초대해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을 발표하고 주문할 경우 할인 가격을 제시하기도 하는 행사였다. 머리 3세의 노력에 다윈은 "제 생각을 사회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1871년 당시 찰스 다윈을 원숭이에 빗대서 풍자한 영국의 신문 만평 ⓒ Wikipedia Public Domain

 
<종의 기원> 이후 대학자의 반열에 올라선 다윈은 이후에도 그의 모든 저서를 머리 3세에게 맡겼고 그는 기꺼이 출판했다. 그리고 72살의 노학자가 된 다윈은 1881년 초 또 머리 3세를 찾아간다. 죽기 1년 전이다. 
 
"내가 또 책 한 권을 가져 왔어요. 몇 년간 열심히 공을 들인 책입니다. 내게는 아주 흥미로운 책인데, 주제가 썩 매력적인 건 아니라 대중이 관심을 보일지는 모르겠어요. 지렁이에 대한 책이에요."  
 
세상을 들었다 놓은 대학자지만 새로운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건 여전히 떨렸던 듯하다. 그가 약속할 수 있는 건 "몇 년간 들인 노력"뿐이다. 이 원고는 다윈의 마지막 저서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1881)이다. 그리고 머리 3세는 다윈의 사후 그의 기록물을 모은 <찰스 다윈의 인생과 서신들>(1887)까지 출판함으로써 "다윈의 출판사"로 별칭을 얻었다.

존 머리 출판사는 첫 아들의 이름을 존 머리로 해서 가족 경영 체제 출판을 이어갔다. 이 전통을 깬 이가 머리 7세로, 그는 아들에게 다른 이름을 주었다. 21세기에 가족 경영 출판사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 2002년 250년 역사를 접고 호더 헤드라인(Hodder Headline)에 회사를 넘긴다. 현재 이 회사는 세계 출판계의 '빅 5' 중 하나인 아셰트(Hachette)의 계열사로 있다.  

반지성의 시대, 다윈의 가치

중고서점에서 만난 존 머리 판 <종의 기원>은 다윈의 글쓰기 원칙을 보여준다. 자신의 생각을 사회에 전할 유일한 수단이었던 글쓰기를 위해 다윈은 사실에 입각한 논리적 분석으로 스스로 타당한 결론에 이를 때까지 수정하며 장기간 공을 들였다. 이성·논리·분석에 기반해 종교적 세계관에 도전한 <종의 기원>은 19세기 근대 지성주의의 산물이었다.

민주주의 위기의 한 원인으로 반지성주의가 거론되는 현재 다윈의 글쓰기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 반지성주의란 종교적 믿음, 문화적 도덕, 그리고 감정에 의해 사고하는 것을 뜻한다. 대니얼 리그니(Daniel Rigney)에 따르면 세가지 사회 현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반이성주의로 종교적 믿음에 기대어 사고하는 현상이다. 두번째는 반엘리트주의로, 고학력자, 지식인, 전문가 층에 대한 불신이다. 1%의 엘리트들 대 99%의 대중으로 사고하는 포퓰리즘과 쉽게 결합한다. 세번째는 경박한 도구주의(unreflective instrumentalism)로, 물질 만능주의다.     
  

Charles Robert Darwin by John Collier ⓒ Wikipedia Public Domain

 
현재 반지성주의에 불을 지피는 한 요소는 글의 범람이다.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허위 정보와 이성적 사고로 연결되지 않는 자극적이고 짧은 글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진다. 일부 엘리트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들이지 않은 글들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생산해 낸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이는 반지성주의를 부추겨 큰 사회적 폐해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반지성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 소셜 미디어는 의미 있는 토론을 할 수 없는 독설을 불러온다. 좀 더 긴 형태의 글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 주디스 버틀러, 2020년 10월 <뉴 스테이츠맨(The New Statesman)>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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