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1 11:58최종 업데이트 22.05.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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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 영국 하원에서 여성 관련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안젤라 레이너(Angela Rayner) 노동당 부대표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어 다른 쪽으로 바꾸는 모습을 본 익명의 보수당 의원이 일간지에 "그녀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이 그랬던 것처럼 총리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며칠 후 보수당 닐 패리시(Neil Parish) 의원이 하원 회의장에서 휴대 전화로 포르노를 보다 들켜 며칠 후 회의장 내 부적절한 행동으로 의원직에서 사퇴했다.

두 사건에 쏟아지는 반응 중 눈에 띄는 단어는 '문화 전쟁'과 '사립 교육'이다.


보수당 내각의 비즈니스·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 콰시 콰르텡(Kwasi Kwarteng)은 하원 내 사건을 몇개의 "나쁜 사과"가 일으킨 것으로 빗대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고자 했다. <가디언> 칼럼니스트 허룬 시디키(Haroon Siddiqui)는 콰르텡의 태도가 보수당의 '문화 전쟁'  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평했다. 다시 말하면, 역사 해석, 인종, 성소수자, 여성 등의 이슈를  제도적 차원으로 이해하는 쪽의 주장을  "정치적 올바름" 혹은 "사회 의식을 강요하는 문화"(woke culture)로 규정,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보수당의 사고와 연결된다는 뜻이다.

반면 웨스트요크셔의 시장 트레이시 브라빈(Tracy Brabin)은 하원 내 여성 비하 문화가 "사립 교육을 받은 남성의 오만함"에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 전쟁과 사립 교육은 여성 비하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사립 교육의 대표 주자이며 남자 기숙학교인 이튼의 '영어 교사 해고 스캔들'은 다른 영역에 속한 세 단어가 모이는 지점을 보여준다. 해고 스캔들이란, 이튼 교장이 수업 교재로 "남성의 공격성은 생물학적 사실"이라는 내용을 담은 영상물을 제작한 후 유튜브에 올린 영어 교사를 2020년 말 해고했던 사건이다. 해고 직후 논쟁은 이튼 동문은 물론 영국 사회로 확대, 문화 전쟁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튼은 폐쇄적 공간이다. 1200명이 넘는 십대 소년들이 기숙사에서 공동 생활하는 금녀의 공간이고 부, 권력, 사회적 특권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최상류층 초엘리트 집단이다. 게다가 이들은 수백 년 된 고풍스러운 캠퍼스에서 이들만의 교육을 받는다. 개인의 자유, 가부장제, 계층적 특권, 전통이 뒤섞인 '이튼의 문화 전쟁'은 특권층 내부 문화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보여준다.
 

이튼 칼리지 ⓒ etoncollege

 
이튼의 특권층 교육

엘리트 사립 남자 기숙 중고등 학교의 문화는 졸업생들이 쓴 저서와 인터뷰를 통해 일정 부분 알 수 있다.

<동물농장> < 1984 >의 조지 오웰은 이튼이 내세우는 자랑이지만 정작 그는 이튼과 거리를 두고자 했다. 특권 문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는 1940년 "운이 좋게도 장학금을 받아 1917-1921년 이튼에서 교육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배운 것도 거의 없다. 그리고 이튼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혹평했지만, "소년들 각자의 재능을 그대로 인정하고 최대로 개발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환경"이라는 학교의 교육 원칙은 지킬 가치가 있는 덕목으로 꼽았다.

오웰의 발언이 보여주는 괴리, 즉 개인성을 장려하는 교육과 최상류층이 만들어내는 특권 문화의 괴리는 20세기 말에도 보인다. 1993-1998년 5년간 이튼을 다녔던 무사 오콩가(Musa Okwonga)는 2021년 출간한 < One of Them: An Eton College Memoir(이튼칼리지 회고록) >에서 "소년들은 이튼에서 부끄러움을 배우지 않는다. 그 곳에서 뻔뻔함(shamelessness)을 완성시킨다"라고 말했다. "뻔뻔함"은 학년간 위계 질서와 엄격한 규율 속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움을 습득한 소년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대중성은 따라온다는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콩가 또한 오웰과 마찬가지로 이튼에서 다른 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 그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숭고함을 배웠다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튼은 아니지만 1980년대 유명 남자 사립학교를 나온 작가 리처드 비어드(Richard Beard)는 2021년 8월 <옵저버>(Observer)에서 계층적 특권이 인종주의, 여성 혐오와 결합하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여자, 공부벌레, 동성애자만 아니라면, 학교에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앞의 부류들은 강자에 의해 무자비하게 놀림감이 될 수 있는 '연약함'의 동의어였다. […] 노예, 수녀, 여자는 반복되는 레퍼토리였다. 백신처럼 독을 내면화시켰기 때문에 정작 정말 악성적인 차별의 예를 접했을 때 무덤덤하게 되었다. 우리와는 다른 모든 이들이 우리 발밑에 있었다."

그는 "이것이 나와 보리스 존슨처럼 사립학교 나온 이들이 국가 운영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라고 고백했다.
   

사이먼 핸더슨(Simon Henderson) 이튼 칼리지 교장 ⓒ 이튼

 
"이튼의 근대화" 시도

"이튼의 근대화"를 외치며 2015년 취임한 사이먼 핸더슨(Simon Henderson) 교장은 이튼인들의 다른 이들에 대한 조롱문화와 "뻔뻔함"을 수정하고자 했다. 핵심은 폐쇄성 극복이다. 저소득층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계층적 폐쇄성을 줄이는 것과(세계 최고 명문 학교가 시골로 가는 이유, http://omn.kr/1yj1p), 동시대의 사회 변화를 공유함으로써 문화적 폐쇄성을 낮추는 것이다. 이는 교장이 추구하는 목표, "오만하지 않은 자신감" "개방적이고 앞을 향하는 사고방식" "보다 넓은 사회적 기여"로 표현되었다.

사이먼 핸더슨 교장은 사회 및 문화 영역에서 젠더와 인종주의 교육을 강화했다. 학교가 압도적인 백인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2017년 "젊은 청년들에게 젠더 지능(gender intelligence)이 필요하다"고 밝힌 교장은 <일상속의 성차별>로 유명한 여성학자 로라 베이츠(Laura Bates)를 학교로 초대했다. '성소수자 (LGBT) 역사의 달' 행사를 마련하고 관련 강의도 열었다.

2020년 6월 "흑인인권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직후에는 "커리큘럼의 탈식민지화"를 선언했다. 1960년대 흑인 최초로 이튼에 들어갔지만 1972년 이튼에서 겪은 일상적 인종 차별을 책으로 출간, 모교 방문 금지를 통보 받은 딜리베 온예마(Dillibe Onyeama)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학교로 초대했다.  
  
이러한 교내 개혁으로 교장은 "트렌디 헨디(Trendy Hendy)"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행에 맞는" 혹은 "시류를 따라가는" 교장. 이 별명은 개혁에 반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경우, 이튼의 전통이나 문화 전쟁이 대항 논리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2020년 말, 영어 교사 해고 스캔들이 터졌다.
  

이튼의 영어 교사 윌 놀랜드(Will Knowland)가 직접 제작한 '가부장제의 역설'(Patriarchy Paradox) 유튜브 영상 화면 ⓒ Will Knowland

 
논란의 영상물

이튼의 영어 교사 윌 놀랜드(Will Knowland)는 2020년 9월, 직접 제작한 "가부장제의 역설(Patriarchy Paradox)"이라는 30여 분짜리 영상물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를 본 여성 교사가 여성 혐오 내용을 문제 삼아 교장에게 항의했고 교장은 변호사와 논의했다. 평등법 위반 논란이 있다는 말에 교장은 영상물을 내리라고 했다. 놀랜드는 가부장제에 대한 토론 자료라며 내리지 않았고 교장은 내리라는 지시를 이후에도 수차례 더했다. 교사는 끝내 내리지 않았고, 교장은 2020년 11월 말 그를 파면했다.

영상물에서 교사는 가부장제는 역사적·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생물학적 특성을 부각시킨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남성의 공격성은 생물학적 사실"이라며, "여성은 남성에게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만들고 남성을 경쟁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코끼리 물범(elephant seal)의 짝짓기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가부장제는 부분적으로 여성의 선택"이라며 여성이 가부장제를 통해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고 노동의 대가를 "제공받는" 등 이득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감옥에서 벌어지는 남성간의 성폭행을 예를 들며 "성폭행이 남성의 여성 억압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교사 해고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여성 혐오 대 언론 자유'라는 대립 구도로 논쟁이 확산됐다. 약 2500여 명의 이튼 동문이 교사 복직 요구에 서명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육성과 토론은 이튼 교육의 핵심 전통'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교장이 그간 도입한 젠더 및 인종주의 프로그램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목소리가 "급진적" "교조주의" "깨어 있음(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요" 등으로 터졌다. 다른 일부는 "이튼이 사상경찰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라며 해고된 교사를 두둔했다. 동문들의 기부금 취소를 각오해야 한다는 경고와 교장 사퇴 요구도 나왔다.   

교장을 지지하는 동문들도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언론의 자유와 젠더 평등 양쪽을 지지하는 이튼 동문으로써, 우리는 영상물의 지적 취약성, 여성 혐오, 독설적 내용에 공포를 느꼈다. (영어 교사) 지지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동문은 "허위 정보를 십대에게 퍼트리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가부장제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는 좋으나 영상물이 논지를 쌓아가는 과정과 제시한 근거의 질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문제 제기다. 남성 간에도 성폭행이 벌어지니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행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류라고 하는 주장은 통계자료조차 없이 제시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컷들을 경쟁하게 만드는 암컷 코끼리 물범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차라리 교배 후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거미가 더 극적인 사례일 거라는 냉소도 이어졌다.

논쟁은 2021년 8월 교육부 산하 감독 기관(The Teaching Regulation Agency)이 해당 영어 교사에 대한 추가 징계를 내리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튼 측이 교육 영역에서의 이후 활동을 금지하는 징계(teaching ban)까지는 원하지 않았고, 감독 기관도 이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튼 측은 "이 결정이 교사가 잘못한 것이 없다거나 이튼이 그를 해고할 권리가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우려하던 "뻔뻔함"과 조롱 문화가 2022년 초반부터 정치권에서 터졌다. 이튼 졸업생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로나 봉쇄령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파티를 벌였다. 이튼에 버금가는 윈체스터 사립학교를 나온 재무부 장관 리시 수낙(Rishi Sunak)은 불법은 아니지만 거액의 세금을 피했음이 드러났다. 4월 여성 혐오 사건이 영국 정치의 심장 하원에서 연달아 터졌을 때 이튼 졸업생 콰르텡 장관은 "나쁜 사과"로 축소했다.

결과는 5월 5일 지방 선거에서 나타났다. 보수당은 전국적으로 500여석을 빼앗기며 노동당에 완패했다.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가 말하듯, 브렉시트 당시부터 보수당이 주도하는 문화 전쟁에 상당히 고전했던 노동당에게는 "전환점"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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