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4 17:54최종 업데이트 22.05.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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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비평연재 <좋은데, 싫었습니다>(좋싫)는 주류의 담론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조차 어쩌면 '당위'라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질문합니다. 그저 이것'만'이 옳고, 이것은 '반드시' 좋아해야 하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언어들이 정말로 대안과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편집자말]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더 이상 돌려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더불어민주당이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수사/기소권 분리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데는 지난 3월 9일의 대선 패배가 가장 큰 원인이다.

만약 0.73%포인트가 부족했던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아마도 검찰 수사권 폐지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정책 과제이자 입법 과제였던 검찰 개혁에는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을 것이고 '숙의'를 통해 완성도 있는 법안을 만들고 검찰 조직을 설득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일에 만약은 없다. 패배는 패배일 뿐이다. 그런데 때로는 패배의 반복된 경험은 트라우마를 소환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트라우마는 여러 이름들을 거쳤다. 노무현, 한명숙, 조국. 정반대의 의미로는 우병우와 김학의.

익히 알려졌다시피 트라우마는 이성적인 사고와 반대되는 의미의 무질서(disorder)를 수반한다. 정상적인 정당 일정이라면 대선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코 앞에 닥친 지방 선거에 전력투구를 해도 시원찮을 텐데 거의 더불어민주당은 20대 대선의 전장 정리가 대강 끝나기 무섭게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입법, 즉 관련법인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는 거의 자동반사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국회 역사에 길이 남을 속전속결   

뒤따르는 입법 절차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회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론 채택 사흘 만인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전부 삭제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대표 발의했고 현직 의원 172명 전원이 모두 공동 발의했다.

국민의힘과 검찰은 즉각 반발했고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틀 뒤인 4월 17일 사표까지 제출했다. 여야 간 극한 대립 속에 4월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기존 검찰의 직접수사권인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를 전부 삭제했던 박홍근 원내대표 안에서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수사권을 보전하는 안으로 중재안을 제안해 여야 원내대표가 중재안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 합의가 실패해 중재안 합의는 곧 파기되었다.

이후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단독 의결하고 본회의 상정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진행했지만 회기 쪼개기로 종료되었고 4월 30일 검찰청법은 본회의 가결되었다. 형사소송법은 쪼개진 다음 회기인 5월 3일 오전에 가결되어 그날 오후 검찰청법과 함께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두 법안의 공포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제도적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소요된 날만 헤아려보면 한 나라 형사사법제도의 대수술이 불과 20일도 안돼 끝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 본관에서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아이러니한 문 대통령의 말

더불어민주당이 속전속결로 법안을 처리하는 동안 국회가 환기하고 사회적 토론을 거쳤어야 할 중요한 의견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의견들을 못 들은 척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관련 법안들의 무리한 처리로 민생이 실종되고 안 그래도 위축된 당이 지방선거 패배로 더욱 위축될 것을 근심했다. 검찰 개혁의 속도보다는 민심과 함께하는 방향성과 신중함을 강조한 것이다.

권력감시 단체인 참여연대는 검찰의 수사 권한이 축소되는 만큼 경찰의 권력이 비대해져 경찰에 대한 견제 수단이 필요하다며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삭제하고 있는 형사법 조항의 폐기를 요구했다. 검찰의 권한이 축소되면서 오히려 경찰이 새롭게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종이다.

오랜 시간 아동·장애인 인권 영역에서 활동한 김예원 변호사를 포함한 여러 진보적 법률가들도 지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더해 이번 개정으로 수사 지연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 검찰의 보완 수사가 축소되고 고발인의 이의신청이 폐기되어 아동·장애인·노인·서민과 같은 법률 약자들의 권리나 공익 고발이 위축된다는 이유로 검찰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이번 입법을 반대했다. 검찰 수사권에 문제가 있었지만 그 권한으로 지켜지는 인권과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입법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든 제도는 다 연유가 있습니다. 그게 설사 문제가 있지 싶어도 그런 문제가 있는 제도가 운용되는 것은 다 오랜 연유가 있는 거죠."

문재인 대통령이 JTBC 특집 프로그램 '대담- 문재인의 5년'에서 윤석열 당선자의 민정수석 폐지를 두고 한 말은 검찰개혁 막바지 상황에도 적용된다.
  
민주당이 할 일

더불어민주당이 못 들은 척 하고 있는 목소리들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결국 검찰개혁이라는 정의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급하게 입법화 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된 민생과 약자들의 인권이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만 서른 명에 이르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입법으로 사회적 약자들과 공익의 대변자들이 처하게 될 처지를 정말로 몰랐다고 생각할 정도로 국민들은 순진하지 않다.

그저 윤석열 당선자가 주인이 될 국무회의에서 검찰개혁이 좌초되는 것을 막는 게 더 급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점을 모두 알고 있다. 이미 국무회의까지 통과된 검찰개혁 법안들을 누가 다시 되돌릴까.

이제 더불어민주당에 남은 일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진 검찰개혁으로 인해 고통받을 약자와 서민들이 생기지 않도록 개혁의 사후적 보완에 당의 모든 역량을 쏟아 넣는 것뿐이다. 그게 국민과 사회에 대한 염치이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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