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3 06:03최종 업데이트 22.05.0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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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총리 면담 마친 한일정책협의단 정진석 국회 부의장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본에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이 2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면담을 마치고 일본 총리관저에서 나가려고 하고 있다. 2022.4.26 ⓒ 연합뉴스

 
정치 이야기를 주고받는 몇몇 일본인 지인들이 최근 들어 한결 같이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라 말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단장 정진석, 이하 '특사단')의 4박 5일 일정이 연일 일본 매스컴에 비중 있게 보도되면서 아무래도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라는 인상을 심어준 것 같다.

이 같은 반응은 일본 내의 재일동포나 뉴커머들, 특히 정치적 바이어스에서 자유로운 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지난 주말 도쿄 코리아타운 오쿠보 한국식당에서 만난 민주당 지지 성향의 뉴커머 지인들도 "윤석열 때문에 한국뉴스 아예 안 본 지 꽤 됐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한일관계는 나아질 것 같더라"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우리가 공사를 하고 있는 한국음식점 경영자들도 "솔직히 이웃국가인데 이왕이면 사이좋게 지내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순 없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내뱉는다.

특사단, 예상외의 반전

이런 상황 속에서 이뤄진 특사단의 방일은 예상외의 성과를 거뒀다. 애초 예정에 없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난 것 자체가 큰 성과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11월 제2차 내각을 구성했지만, 한국정부의 거듭된 관계회복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임기 내에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전임들(아베, 스가)과 달리 상대적 '온건합리' 성향인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함께 풀어보고자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기시다 내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역시 대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기시다 총리는 임기 말 정권과 뭔가를 해본들 차기 한국 정부가 들어선 후 다시 방향이 바뀔 것을 염려했고, 그럴 바에야 몇 개월 남지 않았으니 새로운 정부와 한일관계를 새롭게 논의해간다는 마스터플랜을 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일 특사단과의 일정은 잡지 않았다. 아직 정식으로 한국정부가 출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적인 면담이 이뤄졌다. 이 같은 극적 만남은, 일본 정치의 프로토콜을 생각한다면 사실 매우 이례적이다. 게다가 일본은 여전히 코로나19와 엔저 현상, 고물가 등 일본 국내 현안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외교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민당의 주요 지지층인 극우보수는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식이 아닌 '임시' 특사단의, 그것도 애초 예정에 없었던 총리 면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특사단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정책실무협의로 방향을 틀었다. 특사단의 애초 일정 중 일본 정부 주요 각료 및 자민당 의원 면담은, 25일 한일의원연맹의 조찬간담회,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 그리고 윤석열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북 미사일 문제로 불거진 한미일 안보협력강화와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GSOMMIA) 등을 협의하기 위한 기시 노부오 방위상 면담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특사단의 원래 명칭대로 부서별 실무정책면담으로 일정을 짰던 것이다.

달라진 일본 정부의 스탠스

반전은 25일 저녁에 일어났다. 특사단 만찬 자리에 총리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하야시 외무상이 참석해 기시다 총리와의 일정이 잡혔다고 알렸고, 특사단은 다음날(26일) 오전 총리관저를 방문해 25분간 기시다 총리와 회담했다. 25분은, 통역을 생각한다면 사실 15분 정도에 불과한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와중에도 기시다 총리는 몇 가지 중요한 발언을 했다. 특사단에 건넨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침공, 그리고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등 지금까지 국제적 룰에 기반해 성립돼 왔던 질서가 위협당하고 있다. 한일, 한미일 3개국 간의 전략적 연계가 지금만큼 중요한 시기는 없다. 한일관계 개선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구축돼 왔던 한일 간의 우호협력관계에 기반한 한일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조선반도출신 노동자 문제를 비롯해 양국 간의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특사단은 "한일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으며 관계개선을 위해 협력해 나가고 싶다"라고 답변했으며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출발선에 선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위해, 그리고 서로의 공동이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일치를 봤다"고 발표했다.
  

정진석 국회 부의장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본에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이 26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다. 대표단의 단장인 정 부의장이 기시다 총리에게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는 모습. 2022.4.26 ⓒ 연합뉴스

 
특사단은 이어 마쓰노 관방장관과도 25분간 회담을 가졌다. 관방장관의 포스트를 생각한다면 마쓰노 장관의 말은 곧 총리의 말이자, 일본 내각의 대(対)한국외교 방침이라 할 수 있다. 마쓰노 장관은 "한일관계는 현재 아주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윤 당선인의 미래지향적 리더십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본다면 일본정부는 차기 윤석열 정부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물론 재산압류 문제가 걸려 있는 신일철주금 징용문제를 거론하긴 했지만 자신이 외무상 시절 맺었다가 파기된 한일위안부 협상 합의 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일관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발언까지 했다. 또한 마쓰노 관방장관을 비롯해 다른 주요 각료들 역시 과거사 문제보단 '미래지향'이란 단어를 주로 썼다. 이러한 부분은 기존 일본정부의 스탠스와는 확연히 다르다.

문제는 여전히 막강한 아베

오히려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를 주로 거론하며 강경한 자세를 보인 사람은 아베 신조 전 총리였다. 아베 전 총리는 27일 오후 특사단을 만나 변함없는 자신의 지론을 펼쳤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합의를 (한국 측이)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 합의가 파기된 것은 안타깝다. 또한 일본기업의 재산을 차압하고 그것을 매각한다는 '현금화' 작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걸 피하기 위해 차기 한국정부가 노력해야 한다."(아베 신조 전총리, 2022년 4월 27일 오후.)

기시다 총리 및 마쓰노 관방장관의 발언과 비교해 본다면 확실히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기시다 총리는 징용공 문제에 대해 양국간의 현안이라고 했고, 위안부 합의는 아예 꺼내지 않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한국 측이 위안부 합의 파기문제를 원래대로 돌리고, 징용공 문제로 차압된 신일철주금의 한국내 재산 매각은 있을 수 없으니, 한국 측이 먼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양국 간의 신뢰관계가 회복될 것이라 말했다.
 

아베 전 총리 만나는 한일정책협의대표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본에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 단장인 정진석 국회부의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27일 도쿄 중의원 회관에서 아베 신조(제일 오른쪽) 전 일본 총리와 만나고 있다. 2022.4.27 [한일 정책협의대표단 제공] ⓒ 연합뉴스

 
문제는 아베 전 총리의 발언권이나 권력이 여전히 강고하다는 점이다. 그는 중/참의원 94명이 소속된 자민당 최대파벌 세이와정책연구회(이하 '아베파')의 수장이며, 그의 심복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비록 지난 중의원 선거 당시 알력은 있었지만 여전히 아베파 소속을 유지하고 있는 후쿠다 다쓰오가 자민당 당3역인 총무회장을 맡고 있다. 비록 다른 파벌이긴 하지만 근 8년간 지속된 아베 내각 시절 출셋길을 달린 모테기 도시미쓰는 자민당 간사장이다. 게다가 올해 7월에는 파벌 영향력이 작용하는 참의원 통상선거도 치러진다.

어찌되었건 일본의 요구는 명확해졌다. 특사단은 이러한 일본의 요구에 대해 "공동의 이익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 일치했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 놓았지만, 원론은 어디까지나 원론일 뿐 이제 차기 윤석열 정부는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액션을 취해야만 한다.

과연 일본정부 및 아베 전 총리의 요구사항을 과연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 국민 및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고 윤석열 정부가 대등하고 발전적인 한일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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