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4 20:03최종 업데이트 22.04.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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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비평연재 <좋은데, 싫었습니다>(좋싫)는 주류의 담론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조차 어쩌면 '당위'라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질문합니다. 그저 이것'만'이 옳고, 이것은 '반드시' 좋아해야 하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언어들이 정말로 대안과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편집자말]
사람의 적정 은퇴 나이는 몇 살일까? 말 그대로 지긋지긋한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나이 말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 만큼 법률을 먼저 따져보자. 소위 철밥통이라는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는 만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2019년에는 대법원 판례를 통해서 육체노동의 노동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한 판례가 눈에 띈다. 기존 판례에서는 60세를 육체노동의 정년으로 봤었는데 평균 수명이 늘고 경제 규모도 늘어 육체노동의 정년도 5년을 연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 노동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상향되고 있는 노동 연령의 현실과는 정반대다. 기간제법을 근거로 55세 이상 노동자는 계약직으로 2년을 넘겨 일해도 정규직은커녕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65세부터는 실직 상태일 때 지급되는 실업급여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생계를 위해 구직 중이어도 실직 상태가 아닌 강제적인 은퇴 상태인 것이다.

또 운 좋게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일터에서 산업재해를 입는다면 60세 이상부터는 보통 70%를 받는 휴업급여를 1세 당 4%P씩 감액된 돈으로 받는다. 60세에게는 66%, 61세에게는 62%만 지급하는 식이다.

이런 제도적인 노인 차별들이 빤한데 노인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남성의 경우에는 경비직, 여성의 경우에는 청소와 돌봄일 그리고 드문드문 생기는 지역의 공공근로, 그것도 못 잡는 노인들은 결국 폐지 수집 일로 가야 한다.

취약한 노인 복지와 노인 노동 차별이 맞물려 한국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인 빈곤율 1위를 지켜왔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2011년 46.5%에서 2019년 41.4%로, 2020년에는 38.9%로 매년 소폭 줄고 있기는 하지만 OECD 평균인 13.5%의 약 3배에 달한다. 한국이 여전히 압도적인 노인 빈곤 국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파이어(F.I.R.E)족'이 선망의 대상이란다. 여기서 파이어란 경제적 자립과 빠른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의미한다. 특히 경제적 자립이란 개념이 강한데, 파이어족의 경제적 자립은 단순히 노동으로 생계를 어엿하게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생 동안 임금 노동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즉 불로소득으로만 풍족한 생계가 가능한 자산 축적과 재생산 구조가 형성된 상태를 말한다.

이 파이어족에 대한 선망은 최근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의 가치가 폭등하며 더욱 뜨거워지는 중이다. 하지만 파이어족이 되는 게 어디 말처럼 쉽나.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신체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오래 안정적으로 일하다 정년을 맞고 은퇴 후에는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빈곤하지 않은 삶을 영위하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 소박한 소망은 노인 빈곤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이렇게 처절한 한국의 노인 빈곤과 파이어족에 대한 선망이 공존하는 세태를 비웃듯, 퇴직 뒤 꽤 풍족한 생활을 하던 중에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덕수 전 참여정부 국무총리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취재단

 
기업들 돈에 파묻혀 살다가 돌아와

지난 4월 3일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한덕수 전 총리(이하 직책 생략)가 지명됐다. 한덕수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서울대-행정고시 출신 경제 관료로 복무하다 김영삼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국무총리와 주미 대사를 포함 경제·무역·통상 관련 청와대 및 정부 요직을 두루 지냈다. 성향을 떠나 시대적으로는 민주화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진보와 보수 정권으로부터 모두 중용되어 한 시대 내내 활약했으며, 비정치인 관료로서는 갈 수 있는 한 가장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머문 인재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렇게 열심히 공직 생활을 한 한덕수의 현재 재산은 본인 재산 58억 9212만 원과 배우자 재산 23억 6725만 원을 합쳐 무려 82억 5937만 원이라고 한다. 2012년 주미 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날 때 공개한 재산보다 약 40억 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그가 이렇게 부를 축적한 데에는 고위공직자의 전관예우 재취업 덕이 크다. 그는 주미 대사를 퇴직하자마자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취임했고 그 뒤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2017년 12월부터 최근까지 고문으로 재직하며 4년 4개월간 18억 원이 넘는 연봉을 챙겼다. 앞서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8개월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지내며 1억 5000여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전관예우가 아니냐는 언론의 추궁에 머쓱했는지 그는 무역협회 회장 당시에도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비슷한 연봉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또 지난해에는 에쓰오일(S-OIL) 사외이사로 재직하기 시작해 8000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49년 생인 한덕수는 7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노인 빈곤국인 한국 상황이 무색하게 지금까지 '파이어'한 삶을 제대로 산 셈이다.

이렇게 풍족한 생활을 즐기던 그가 무엇이 아쉬워 다시 새 정부의 국무총리로 복귀하는 것일까. 아마도 윤석열 당선자 측의 적극적인 설득이 있었던 것 같다. 국무총리는 다른 내각과 달리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과반인 국회의 동의를 수월하게 이끌어내기 위해 호남 출신에 김대중·노무현 정권에도 중용되었고 경제 전문가인 그가 '안전하다'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저렇게 기업들 돈에 파묻혀 10년이 넘게 안락하게 살았으면 적어도 공직에는 돌아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아무리 윤 당선자가 요청했다 해도 먼저 거절했어야지. 국민을 위한다는 선의도 선의가 아니고 경제를 구한다는 다짐도 믿을 수 없다. 

그가 받고 있는 의혹은 공직에서 물러난 후 불어난 재산만이 아니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 통상산업부 차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외국 기업의 국내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직에 머물렀던 10년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단독주택을 미국 통신업체 에이티앤티(AT&T)와 미국계 글로벌 정유사 모빌(현 엑슨모빌)의 자회사 모빌오일코리아에 임대해 6억 2천만 원의 고액 임대소득을 올린 일도 있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한덕수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한 것을 두고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외환은행을 불법 매각한 론스타의 국내 법률대리인이었다는 점을 들어 지난 6일 그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 그가 총괄하는 국정을 어떤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까. 한덕수 총리 지명자의 낙마를 진심으로 빈다. 이제 그만 그가 진짜로 퇴직해 지긋지긋한 노인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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