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9 14:13최종 업데이트 22.03.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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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노예무역에 대한 사과가 있었다. 여왕 즉위 70주년 기념 차 여왕이 국가 원수로 있는 벨리즈(Belize), 자메이카(Jamaica), 바하마(Bahama) 등 캐리비언 3국을 방문한 윌리엄 영국 왕세손은 자메이카에서 "노예제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지난 2018년, 아버지 찰스 왕세자가 노예제를 "끔찍한 잔혹 행위 (appalling atrocity)"라고 사과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위 발언 배경에는 2020년 미국의 'Black Lives Matter(BLM, 흑인 인권도 소중하다)' 운동이 있다. 인권이 주 의제였던 미국과 달리 영연방에서의 BLM 운동은 제국과 식민지 문제로 확장되었다. 제국의 두 얼굴, 종속 대 근대화를 둘러싼 논쟁은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구식민지 캐리비언 국가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바베이도스(Babados)는 지난 11월 말, 완전한 독립을 선택, 더 이상 영국 국기를 게양하지 않는다. 벨리즈와 자메이카도 바베이도스의 길을 갈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제국주의 측인 영국에서는 문화 전쟁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식민지 확장, 경제적 예속과 노동 착취, 서구 우월주의 등 제국주의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는 이미 끝난 일을 굳이 지금 다시 평가해야 하냐고 반문한다. 누군가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깨어있음'(woke)이 사회적 강요라며 반감을 표한다. 또 누군가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21세기 지배적 가치로 만들었다는 자국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싶어 한다.

이런 다양한 의견이 동상을 통해 충돌했다. 2020년 6월 7일 영국 남서부 브리스틀 청년들은 노예 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동상을 무너뜨렸다. 며칠 후, 옥스퍼드 대학 학생들은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Cecil Rhodes) 동상을 대학 건물에서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노리치(Norwich)의 넬슨 제독 동상에는 스프레이가 뿌려졌다.
 

노예 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 위키 커먼스

 
브렉시트와 문화 전쟁

2018년 평론가 로드 리들(Rod Liddle)은 <타임스>(The Times)를 통해 문화 전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늘날 문화 전쟁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개인으로서 갖는 권리에 대한 것이다. 개인적이기에 적대적이다. 딱 집어 설명하기 어렵다. […] 도덕적 상대주의 대 도덕적 절대주의이기도 하고,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립이기도 하다. 혹은 도시와 농촌의 문제이기도 하고, 런던 대 나머지, 혹은 전통 대 근대, 세속 대 종교 갈등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스로 피해자라고 정의하는 측과 억압자라고 비난 받는 쪽의 갈등이기도 하다. 무엇이든지, 문화 전쟁은 본능적이고 감정적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경제적 인간, 사회보다는 개인이요, 세계주의적·다문화적 인간, 자유 경쟁적 존재였다. 이 정의 하에 성소수자와 소수 인종의 인권 그리고 페미니즘이 성장했다. 하지만, 벌어지는 격차가 주는 불안과 상실감 속에 다시 공동체가 주는 안정감, 전통적 가치, 옛 사회 질서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이를 반영한 것이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EU로부터 탈퇴, 브렉시트였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재정의하는 브렉시트 과정에서 역사가 소환되었다. 첫 논쟁은 학계 논쟁으로 "영국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영국적인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였다. 의원 내각제 등 제도사 쪽 학자들은 영국만의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민이나 무역 등 사회사와 문화사 쪽은 누군가만의 고유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며 국수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탈퇴 지지 정치인들은 2차 대전기의 윈스턴 처칠과 애국심을 소환했다. EU 탈퇴를 '독립'에 비유, 윈스턴 처칠의 "침착하라, 그리고 나아가라"의 구호 하에 독일 대공습을 이겨냈던 '블리츠(Blitz)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은 애국심의 승리가 아니었고 미국과 소비에트의 도움 없이 이길 수 없었다며 역사를 정확히 보라는 비판이 따랐다. 몇 년의 진통 끝에 영국은 "유럽과 함께 가지만 그 일부로 편입되지는 않겠다"는 윈스턴 처칠의 원칙을 계승, 자국 독자성을 지향하는 보리스 존슨을 선택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2020년 BLM 운동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영국 내 흑인 사회 형성과 현재 서구 백인 헤게모니 형성의 결정적 계기였던 제국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브리스틀의 노예상인 콜스턴 동상

2022년 1월, 공공기물 파손 혐의로 기소된 "콜스턴 4인방(Colston Four)"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혐의는 2020년 6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남서쪽 항구 도시 브리스틀 시위에 참석한 청년 4명은 반인종주의 구호를 외쳤다. 미국 BLM 운동에 호응, 영국 전역에서 진행된 시위였다. 이들은 콜스턴 동상을 무너뜨리고 굴려서 근처 항구까지 옮겼고 강에 빠뜨렸다. 공공기물 파손죄로 기소된 후 '콜스턴 4인방'이란 별명을 얻었다.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을 무너뜨린 자리 ⓒ 위키 커먼스

 
논란의 동상 주인공은 17세기 대표적인 노예 상인 에드워드 콜스턴(1636-1721)이다. 그는 노예무역으로 쌓은 부를 브리스틀 지역 학교 및 빈민 구제 시설 설립 등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 브리스틀 시는 1895년 그가 지역 사회에 이바지한 점을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 브리스틀에는 동상뿐 아니라 그의 이름을 딴 학교, 거리, 음악 공연장이 있다.

브리스틀은 런던, 리버풀과 함께 노예무역의 3대 항구였다. 영국은 포르투갈과 함께 노예무역의 양대 축으로, 두 국가는 전체 노예무역의 70%를 차지했다. 브리스틀 박물관에 따르면 1501-1866년간 약 12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팔리고, 200만 명이 배 안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예제 하면 많은 사람이 영국보다 미국을 떠올린다. 내전으로까지 갈등이 치달은 미국과 달리 영국은 1833년 하원에서 노예제 폐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폐지론자들이 반세기 이상 쏟아부은 노력의 성과였다. 당시 영국에서 풀려난 노예는 80만 명에 이르렀다. 영국 정부는 '재산'을 잃은 4만 2000명의 노예 소유주에게 총 160억 파운드(약 24조)를 보상해 주었다.

영국 사회는 노예제 역사를 꺼낸 '콜스턴 4인방' 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다. 변호인 측은 "진짜 범죄는 동상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많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동상이 125년 간이나 있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판결을 비판하는 측은 이번 판결이 다른 동상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교통부 장관 그랜트 샤프스(Grant Shapps)는 영국이 공공물 파괴가 용납되는 사회가 아님을 강조하며 "무언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투표를 하거나 지방 정부에 청원을 넣어라"라고 말했다.

현재 콜스턴 동상은 훼손된 상태 그대로 브리스틀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무너진 후 물에 빠졌다가 박물관에 놓여 있는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 ⓒ 위키 커먼스

 
옥스퍼드 대학의 인종주의자 로즈 동상

콜스턴 동상이 물에 빠진 며칠 후, 영국의 관심은 옥스퍼드 대학의 세실 로즈 동상으로 쏠렸다. 학생과 시민 수 천 명이 대학 앞으로 집결,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대학의 이념과 양립할 수 없다"며 로즈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세실 로즈(1853-1902)는 제국주의자이며 영국인을 '우월종'으로 여겼던 인종주의자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광산을 매입, 21세기 초까지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지배한 회사 드비어스(De Beers)를 1888년 설립했다. 1890년 케이프 식민지(Cape Colony) 총독으로 임명된 그는 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타운에서 카이로를 잇는 아프리카 종단 철도를 추진했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 불리는 아프리카의 인종 분리 정책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쌓은 부의 상당 부분을 옥스퍼드 대학에 기부했다. 세계적 권위가 있는 로즈 장학금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으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수혜자 중 한 명이다.
 

세실 로즈(1853-1902). 제국주의자이며 영국인을 '우월종'으로 여겼던 인종주의자다. ⓒ 위키 커먼스

 
로즈 동상에 대한 분노는 201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시작했다. 학생들은 "교육의 탈 식민지화"를 외치며 캠퍼스 내 세실 로즈 동상 철거를 요구했고 관철시켰다. 같은 해 옥스퍼드 대학생들도 로즈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당시 로즈 재단은 로즈의 과거 제국주의 행적보다 현재적 기여도를 부각시켰다. <가디언>에 "역사속의 그의 행적을 변명하지는 않겠지만, 세실 로즈의 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학생들과 전 세계 학생들에게 교육 혜택을 주었다." "이들의 상당수가 인권 분야의 선두에 있고 사회 정의를 지지한다"고 했다.

2016년 옥스퍼드 대학 측은 동상을 철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로 "(로즈 동상은) 역사의 복잡한 측면을 환기시키는 식민주의 유산이다"고 밝혔다.

2020년 BLM 운동은 꺼져가던 "로즈 동상 무너뜨리기" 운동을 되살렸다. 취지에 동의하는 온라인 청원이 수십만에 달했다. 옥스퍼드 대학은 철거를 고려하겠다고 밝히고 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철거하지 않기였다. 대신 2021년 10월, 동상 밑에 "(로즈는) 식민주의자로서 그는 남아프리카의 광물, 토지, 노동력 약탈로 부를 축적했다.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그의 행적은 비판을 받고 있다"는 문구를 달았다.

교육부 장관 개빈 윌리엄슨(Gavin Williamson)은 대학의 결정을 "합리적 균형 잡힌 결정"이라며 "역사를 검열하기보다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한다. 그리고 불평등을 줄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실 로즈 동상이 있는 옥스퍼드 오리엘 컬리지 ⓒ 위키 커먼스

 
콜스턴 동상과 로즈 동상의 다른 운명은 '올바름' 과 '역사적 문맥'을 둘러싼 문화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한다. 하지만 동상 논란을 통해 영국은 영국의 부가 식민지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를 명시한 것이 왕위 서열 1, 2위의 공식 사과 발언이다. 사회 정체성을 묻는 '우리는 누구인가'에서도 애국심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이와 관련, 유럽의 문화재 반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10월 케임브리지 대학은 영국 기관들 중 최초로  "Okukur(오쿠쿠르)"로 불리는 문화재를 나이지리아에 반환했다. 1898년 약탈된 후 1905년 한 학부모가 대학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12일, 프랑스 역시 문화재 26점을 베냉(Benin)에 반환했다. 독일도 지난해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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