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2 10:59최종 업데이트 22.03.1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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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이지녀는 평창동의 신당에서 새벽 일찍 정화수를 올렸다. 방금 밝힌 촛불은 향내를 머금으며 조금씩 불꽃을 키웠다. 신당 뒤 북악산 줄기에선 햇귀가 어스름달을 밀어내며 옅은 햇살을 보내왔다.

매일 드리는 기도지만 이지녀는 특히 그림을 관장하는 환성수신령에게 더 많은 기원을 드렸다. 이날은 연개소문 여동생으로 당나라 해군을 격파한 연수영장군의 맞이(무속신앙에서 믿는 신을 그린 그림, 무신도를 이르는 말)를 완성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장군은 여러 해 전부터 꿈에 나타났는데 모시길 미루다 열흘 전에야 붓을 들었고 이제 얼굴을 그리고 갑옷의 비늘만 다듬으면 끝난다.
 

무당 이지녀가 기도를 올리는 모습 그의 신당 이름은 북두칠성당이다. ⓒ 민병래

 
맞이를 그리는 환쟁이가 되어

탱화를 배우던 이지녀가 맞이에 빠진 것은 20대 중반인 1985년 정월, 민족굿회 회원들과 '황도풍기풍어제'에 참여해 '황해도맞이'를 본 순간이었다. 태안군 황도섬의 햇빛이 오방색을 띤 가운데, 굿청에 펼쳐진 맞이에는 천지일월도신장의 큰 칼이 빛났고 까치산의 병마장군은 어기차게 말을 달렸다.


그 옆으로는 황금역사 금이신장의 긴 창이 날카로웠다. 만신의 청배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지니 장구는 꿈떼 꿈떼 꿈꿈떼, 징소리는 크앙크앙, 제금은 챙챙거렸다. 이지녀의 어깨는 절로 덩실거렸고 오금질은 흥겨웠다. 애를 끊듯 이어지는 태평소 소리는 소름을 돋게 했다. 그의 입에서는 "그래, '맞이'를 그리는 환쟁이가 되자"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난 이지녀는 화가가 되려 동국대 불교미술학과를 지망했는데 거푸 떨어졌다. 우연히 민중미술화가 김봉준과 인연이 되어 그의 화실을 드나들었다. 덕분에 민족굿회에 들어가 굿을 접했고 민족미술협의회 사람들과 걸개그림도 그리고, 머리띠나 작업복에 "함께 가자 우리" 같은 글귀를 새겨넣기도 했다.

이지녀는 또 단청장 만봉스님 밑에서 탱화를 배웠다. 불화를 그리는 일은 엄격한 수련이었다.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초그림을 놓고 필력을 키우는데 첫 단계는 본이 되는 그림 위에 습자지를 놓고 3천 장을 베낀다. 다음에는 습자지 없이 3천 장을, 마지막 단계는 머릿속으로 시왕초를 떠올리며 역시 3천 장을 그린다. 
 

무당 이지녀, 신당의 이름은 북두칠성당이다. 그가 환쟁이 무당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 민병래

      
이런 수련이 3년쯤 되었을 때 이지녀의 붓놀림은 모양새가 났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자 그는 불화를 그리는 화가의 길을 잠시 생각했다. 부처님을 모시는 그림은 엄격한 형식과 전통기법을 따라야 했다.

탱화의 묘미였지만 이지녀는 갑갑함이 있었다. 그럴 때 접한 '황해도맞이'에는 신령님과 장군님의 의젓한 기상이 있고 속세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친근함이 있었다. 이지녀의 영혼은 단번에 맞이에 사로잡혔고 그날부터 맞이를 그리는 환쟁이가 되었다.

기도를 마친 이지녀는 신당에서 1층 화실로 내려와 연장군의 얼굴을 그려나갔다. 탱화에선 부처님 얼굴을 맨 나중에 그린다. 그게 몸에 배어서인지 신령님이나 장군님을 그릴 때도 얼굴을 끄트머리에 남겨뒀다. 꿈에 나타난 장군은 말을 휘몰아 서해바다를 헤쳐나갔고 일월도를 높이 들었다. 이지녀는 꿈을 더듬으며 한 획 한 획을 그었다.

이지녀가 맞이에 뜻을 두고 공부할 때는 탱화와 달리 스승이 없었다. 맞이는 봉안하던 무당이 죽으면 땅에 묻거나 태워버리기 때문에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 시절 것도 접하기 어려웠다. 이지녀는 신당과 굿판을 쫒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았다.

유명한 환쟁이 안승삼과 그의 아들 안정모, 유수명과 그의 제자 박영길이 그린 맞이를 접하며 안목을 키웠다. 고맙게도 박수무당 최동호 선생과 인천의 큰 만신 원곡 선생은 소장하고 있던 맞이를 내어주며 참고하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이지녀의 붓놀림은 날로 발전했다.

신당에 걸린 맞이는 세월이 가면 색이 바래고 창호지와 같은 종이재질에 그린 지라 뒤틀렸다. 또 야외에서 굿청이 열리면 맞이를 접거나 말아서 옮기기에 조금씩 해졌다. 만신들은 낡은 옷을 벗기고 신령님께 새 옷을 입혀드리려 이지녀에게 많은 주문을 했다. 비록 의뢰를 받아 하는 작업이나 신령님을 모시는 일이기에 이지녀는 기도와 정성으로 그려나갔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기만의 화풍을 쌓아갔다.

환쟁이에서 무당으로 나아가다

간밤에 내린 비 탓인지 널리 퍼진 햇무리가 작업실 창문에 은은하게 빛을 드리웠다. 연수영장군의 얼굴을 그리는 이지녀의 붓질은 조심스러웠다. 밑그림이 있지만 획 하나라도 어긋나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여러 해 전부터 꿈에 나타난 장군의 눈매나 몸의 윤곽은 또렷했다. 다만 장군에게 어떤 갑옷을 입혀드릴지가 고민이었다. 
 

이지녀가 작업실에서 연수영장군을 그리고 있다. 1층은 작업실, 2층은 신당이다 ⓒ 민병래

      
맞이를 그리는 환쟁이 이지녀는 종내 무당이 되었다. 이지녀는 주문받은 맞이가 완성되면 이를 뫼시고 신당으로 찾아간다. 탱화가 완성되면 절에서 봉안식을 하듯, 무당도 맞이를 맞는 고사를 지내거나 '환불림굿'을 한다. 이지녀는 맞이의 자료를 모으러 전국의 굿당을 다녔는데 환쟁이가 된 이후에는 맞이를 뫼셔주러 전국의 신당과 굿판을 오갔다.

이지녀는 굿판에 참석하면 시작과 끝을 언제나 같이했다. 지금은 굿거리가 짧아졌지만 1980,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만신들은 이틀굿, 사흘굿을 벌렸다. 굿판이 시작되면 무당은 징을 울려 하늘에 고하고 장구를 두들겨 땅에 알렸다. 제금을 쳐 우주만물의 생명을 깨웠다. 그리고 열두 거리, 스물네 거리를 펼쳤다.

이지녀는 굿판에서 신명나게 놀았다. 만신의 소리를 따라 어깨를 들썩이고 공수마다 추임새를 넣었다. 징할머니가 못나온 날에는 대신 채를 잡고, 곧잘하네 소리를 들으면 장구까지 잡아 상할머니 노릇을 했다.

환쟁이 이지녀가 굿판에서 노는 걸 보고 주변에선 신내림이 홍시처럼 왔다고 했다. 이지녀도 물론 알았다. 하지만 그는 무당이 당하는 수모를 아느지라 신을 외면하고 밀어냈다.

이지녀는 대신 붓을 들었다. 맞이를 그려 신내림을 피하려고 붓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오복녀 선생에게 서도 소리를 배우고, 황해도 굿문화 연구소에서 김금화 선생에게 소리와 장단을 배운 것도 예술로서 신내림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신은 이지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병명은 없는데 시난고난한 몸상태가 계속되었다. 불면증에 우울증, 눈을 감으면 마고할머니와 별쌍마마가 보였다. 선잠이 들면 오방신장과 칠성님이 다녀가셨다. 8남매인 그의 형제들 또한 병치레가 잦아 단골무당은 병굿이라도 해서 "자네와 형제들 건강이라도 돌보자"고 했다. 이지녀는 만신의 뜻을 받아들였다.

병굿을 한 날 이지녀는 열두거리 내내 무려 8시간이나 춤을 췄다. 굿이 끝나고 이지녀는 사흘 동안 잠에 빠졌다. 깨어났을 때는 돋을볕이 햇무리를 이루었고 노오란 빛살 서너줄기가 방안을 비추었다. 먼 산에선 제금이 몸을 뒤척이며 챙챙거리고 장구소리가 꿈떼 꿈떼떼 울렸다.

햇무리 사이로 징이 두 개 떠 있고 흰 천이 하늘 높은 곳에서 드리워졌는데 장군님 갑옷과 치마저고리가 어른거렸다. 이지녀는 일어나 내려오신 몸주신들에게 절을 올렸다. 환성수님은 조금 나중에 몸주신으로 모셨다. 결국 이날 병굿은 이지녀에게 내림굿이 되었고 이날부터 이지녀는 맞이를 그리는 환쟁이 무당이 되었다.

이지녀가 신내림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운명이었다. 평안북도 운산이 고향인 이지녀의 아버지는 무당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전쟁통에 잠시 다녀온다고 아내와 헤어져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영영 이별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남쪽에서 만난 이지녀의 어머니는 고향이 황해도 해주 구월산. 남쪽의 계룡산과 더불어 조선 팔도에서 신기가 가장 강한 곳이다. 부모가 이지녀에게 물려준 피에는 무당의 기운이 도도하게 흘렀던 것이다.

이지녀가 심취했던 평안도와 황해도의 서도소리는 대동강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익힐 수 없다고 했다. 마시기는커녕 대동강 구경조차 못했던 그가 서도소리의 일가를 이룬 것도 부모의 피 덕분이었다.

이지녀는 오전을 꼬박 매달려 연수영장군의 얼굴을 얼추 완성했다. 장군의 갑옷 비늘과 말갈퀴만 조금 더 다듬으면 이제 끝이다. 중간 중간 무가를 나직이 부르며 저녁 무렵에는 테두리까지 마무리했다. 이지녀는 연수영장군의 맞이를 모시고 신당으로 올라가 향을 붙였다.

이미 봉안한 몸주신이 서른 분이 넘는다. 단군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일월성신님·칠성님·마고삼신님·구월산 산신령·별쌍마마·금강산도령애기씨·오방신장·까치산 병마장군·육갑신장·약사신장·천문신장·성수할머니·환성수님과 넋대신 등등. 미리 마련한 자리에 연수영장군을 올리고 이지녀는 신령님들의 합을 바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지녀가 그린 연수영장군 이지녀는 색감과 세부묘사에서 이지녀의 스타일을 만들려한다. ⓒ 이지녀제공

 
민화이며 종교화인 맞이의 세계

이지녀는 요즘 맞이를 그리는 풍토를 안타까워한다. 무당이 천시되고 음으로 양으로 박해를 받다보니 무당의 전승이나 전통이 많이 쪼그라들었다. 때문인가 요즘 봉안된 맞이를 보면 붓질도 서툴고 날림으로 한 게 눈에 많이 띈다. 심지어는 인쇄소에서 찍어낸 그림을 걸기도 하니 속이 상한다.

이지녀가 맞이를 그린 지 벌써 38년, 그는 맞이의 법도를 존중한다. 민화이면서도 엄연히 종교화이기 때문이다. 한 폭의 맞이에는 위계가 있어 주신은 크게 보조신은 작게 그려야 한다. 오방신장에는 다섯장군이 등장해야 하고 산신령의 그림에는 동자동녀와 호랑이의 조아린 모습이 담겨야 한다.

이지녀는 전통의 법도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노력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려한다. 그는 무엇보다 정성을 기울인다. 밑그림 아래 풀을 바른 한지를 여러 겹 포개어 붙이고 그 뒤로는 하얀 비단을 댄다. 풀을 직접 쑤어서 바른다. 서늘한 곳에서 며칠 말리면 나무판처럼 튼튼해 신당에 걸개로 모시기도 좋고 가벼워서 야외에서 굿청을 열때도 좋다.

그렇게 한지가 마르면 밑그림 위에 채색을 한다. 이지녀가 특히 신경쓰는 게 좋은 물감, 탱화안료에 돌가루를 섞으면 수명이 오래간다. 이지녀가 또 공을 들인 게 뫼셔갈 수 있는 가방이다. 가로 75cm 세로 115cm 크기의 맞이를 담을 수 있게 주문제작했다. 접거나 말지 않아도 되니 채색이 벗겨질 리 없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니 이지녀의 맞이에는 품격이 흐른다.

다음이 이지녀만의 색감, 그는 탁한 채색을 벗어나 오방색의 화려함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중간 색조를 쓰려 한다. 예전 맞이에는 없었던 접근으로 시대의 감성을 담으려는 노력이다. 한눈에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이지녀의 맞이다"라는 느낌이 올 정도로 그녀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 하나가 세부묘사. 이지녀가 그린 임경업장군의 맞이에는 장군의 수염이나 말의 갈기가 올올히 살아있다. 성수할머니가 쥔 방울부채에는 이제껏 쓰여졌던 무속의 모든 방울의 그려져 있을 정도다.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묘사가 이지녀 맞이의 특징이다.

서로 공명하는 게 굿판

이지녀는 환쟁이로서 38년, 무당으로서 27년을 살아왔다. 그의 삶에는 맞이와 무가, 춤과 지화가 담겨있다. 본래 굿은 종합예술이다. 무당은 제사장이며 소리꾼이고 춤꾼이고 주술사다.

그런 전통을 소중히 하며 이지녀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기예를 익혔다. 이지녀에게 예술은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이다. 예술없는 삶은 실패한 삶일 뿐이다. 이지녀는 최근 또 하나의 실험을 하는데 바로 신령님을 흙으로 빚는 일이다. 5천년 우리 무속사에서 없었던 시도다.

이지녀가 연수영장군을 봉안하고 작업실로 내려오니 창문 너머에는 벌써 어둠이 칠흑이다. 밤이 깊으니 신당 뒤 북악산은 몸을 스스로 떨며 꿈떼 꿈떼떼 장구소리를 내고 제금을 챙챙 울린다. 나무들은 가지와 잎을 떨며 태평소를 불어댄다. 세상 천지 어디고 신당 아닌 데가 없다. 온 세상이 굿판이고 하늘과 땅은 서로 공명하며 촬촬촬 징소리를 낸다. 이지녀도 이에 맞춰 서도소리 한 자락을 뽑았다.

무당 이지녀, 환쟁이 이지녀의 북두칠성신당에 젊은 제자들이 북적일 날은 언제일까?

<이지녀가 그린 맞이들>
 

지리천문신장의 맞이 지리천문신장은 하늘의 천문을 해석해서 들려주고 풍수지리를 일깨워준다 ⓒ 이지녀

  

구월산 산신령의 맞이 이지녀의 어머니는 황해도 해주 구월산 출신이다. 이지녀에게는 본향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이지녀

   

임경업장군의 맞이 장군은 일월도를 들고 있다. ⓒ 이지녀

 
<못다한 이야기>

① 환성수신령은 우리 무속에서 그림을 관장하는 신령이다. 신령마다 각자 역할이 있는데 지리천문신장은 하늘의 별자리 위치를 천문학적으로 풀이한다. 약사신령은 약과 건강을 돌보는 신령이다.

② 연수영장군의 행적은 위키백과를 참조하면 된다. 우리 무속에선 중요한 장군으로 받들어져 왔다.

③ '맞이'는 무속신앙에서 신령님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무신도(巫神圖)라고 말한다.

④ '환불림굿'은 탱화를 모시고 점안식을 하듯 무당이 자기가 모실 '신령님'의 '맞이'를 모시는 굿을 말한다.

⑤ 굿판에서 장구를 잡는 상할머니가 악사중 제일 중요하다. 무당과 호흡을 맞추는 것뿐 아니라 무구를 챙기고 굿상을 차리는 역할을 한다. 지금은 남자 악사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여자 악사들이 많았다.

⑥ '내림굿'은 무병을 앓아 신이 들린 사람에게 무당이 되기위해 하는 의례를 말한다. 세습무가 아닌 강신무만 행한다.

⓻ 지화는 종이꽃을 말한다. 무당이 쓰는 모자의 장식은 대개 종이꽃으로 한다.

⑧ 이지녀 만신은 2019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창성동 실험실 갤러리에서 이제까지의 그린 작품을 모아 '맞이' 전시회를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만신으로서 예술가로서 소소한 일상을 올린다. 페이스북에서 '이지녀'를 검색하면 만날 수 있다.

⓽ 이 글의 전문은 원고지 52매 분량인데 이 기사에는 지면관계상 32매로 줄여서 게재했다. 이지녀에 관한 더 많은 얘기는 본 기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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