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6 12:25최종 업데이트 22.02.2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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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대통령 후보를 내걸고 있는데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나요?"
"아무래도 사회주의하면 동구권의 실패나 북한의 세습 문제를 떠올리니 불편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자본주의가 바뀌듯 우리 사회주의 운동도 변하고 있습니다."


20대 대선에 출마한 노동당의 이백윤 후보를 만난 건 2월 16일 밤 10시, 당산동에 있는 그의 원룸에서였다. 그의 일정이 빡빡해 약속을 잡기 어려웠는데 인천에서 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에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7시 30분부터 유세가 있다기에 서둘러 얘기를 꺼냈는데 첫 질문부터 조금 무거웠다. 두 번째도 다르진 않았다.


"후보 기탁금 3억 원은 큰돈인데 어떻게 해결했나요?"
"힘들었죠. 앞으로 들어갈 돈도 태산이에요. 공보물, 유세차, 동행팀 경비 등등. 거대 보수정당에게 3억 원은 푼돈이겠지만 저희는 모든 당원들이 '영끌'을 했죠."


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액을 보면 이재명이 32억, 윤석열 77억, 안철수가 1979억 남짓이다. 올해 46살의 이백윤이 신고한 금액은 1억 7000만 원, 서산에 있는 반전셋집 보증금이 재산의 전부여서 부모를 빼고 본인 것만 계산하면 고작 6300만 원이다.

지금 사는 곳은 선거를 위해 몇 달만 빌렸는데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45만 원을 내고 있다. 이백윤이 속한 노동당 당원들의 처지도 다르지는 않을 터, 원내정당도 아니니 국고보조금도 없었을 테고 이래저래 당력을 쥐어짰을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데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 나온 뜻은 무엇인가요?"
"원래 진보당을 포함 좌파진영의 단일후보를 내려고 했는데 무산이 되었어요. 고민이 많았죠. 우리 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 사회주의의 가치를 알리고 그 정신이 담긴 정책을 전파하고 싶었어요."

"자본주의 틀 내에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건가요?"
"사실 저도 자본주의를 고쳐서 썼으면 해요. 무언가를 통째로 바꾸는 건 힘들잖아요? 부정적인 정서도 큰데 국가보안법도 버티고 있고 그런데 한국 사회는 너무 멀리 와 버렸어요."

  

노동당의 이백윤 후보 월세 45만원의 원룸이 그의 베이스캠프다. ⓒ 민병래

 
피케티가 만든 세계 불평등연구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상위 10%의 부가 전체의 58.5%에 이르고 하위 50%는 고작 5.6%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심각한 불평등 탓에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제일 높고 노인 빈곤률과 저출산 또한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백윤은 이런 모순을 노동 현장에서 온몸으로 체험했다.

동희오토에서 만난 비정규직의 민낯

"제가 2005년 서산에 있는 동희오토에 들어갔어요. 기아자동차는 동희오토에게 모닝의 생산을 통째로 위탁했는데 이게 완성차에서 첫 시도였죠. 기아차 입장에선 생산원가를 낮추고 직접고용도 줄이니 꿩 먹고 알 먹고였죠. 그런데 동희오토는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열 명이 넘는 소사장에게 라인별로 위탁을 주고 모든 생산직은 비정규직으로만 뽑았어요. 저는 법적으로 동희오토가 아니라 소사장 중 한 명과 근로계약을 한 거죠. 하청에 하청, 위탁에 위탁, 그 끝에 제가 서 있었던 거죠."

96년도에 대학에 들어간 이백윤은 3학년 때 문과대학생회장으로 40여 일간 본관 점거 농성을 주도했다. 학교가 과별 모집이 아니라 어문학부나 인문학부 같이 광역단위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개편안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세계화 물결을 따라 대학도 혁신해서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그 지표는 취업률이라는 논리가 대학을 포위하던 때였다.

이백윤은 이렇게 되면 역사학이나 철학 같은 학문은 학생에게 외면받고 인문학의 위기가 올 수 있다며 반대 투쟁을 조직했다. 같이 싸움을 했던 정경대는 학교안을 받고 말았는데 그가 싸움을 이끌었던 문과대는 학교의 결정을 보류시켰고, '향후 모집단위를 바꿀 때는 교수와 학생이 참여해서 결정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때 이백윤은 어렴풋하게나마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열 동강 백 동강 내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백윤은 동희오토에서 그 실상을 뼈저리게 접한 것이다.

"기자님, 혹시 주야 맞교대를 해보셨나요. 그 당시 자동차업계는 어디나 일주일씩 주야 맞교대를 했어요. 입사해서 처음 밤샘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오니 물먹은 솜처럼 몸은 가라앉는데 좀체 잠이 안 오더라고요. 빨리 잠들어야 밤에 근무를 나가니 잠들자 잠들자 되뇄는데 잠이 더 안 왔어요.

그렇게 일주일을 헤매니 눈은 퉁퉁 붓고 핏발이 섰죠. 겁이 났어요. 작업도 엄청 고됐어요. 컨베이어벨트에 2분 간격으로 차체가 한 대씩 흘러가는데 저는 엔진을 얹으면서 다른 업무를 같이 했어요. 숨돌릴 틈이 없었죠. 나중에는 1분에 한 대까지 라인의 속도가 빨라졌어요. 행동과학자들의 주장으로는 한 시간에 72대까지 가능하다나?"


동희오토의 이런 생산성은 완성차 노동자보다 몇 배 높다고 소문이 났다.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이라는 생산모델을 정립, 재고없는 현장을 구축했다는 토요타가 견학을 왔을 정도였다.

정부도 이에 호응, 2014년 제38회 국가생산성대상에 선정된 동희오토에게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주었다. 또 2017년에는 제41회 국가생산성대회 스마트혁신부문에서 국무총리표창을 안겨주었다. 하청에 하청, 생산직은 비정규직으로만 채워져 있고 월급은 완성차 노동자의 절반 언저리인 사업장이 혁신기업으로 대우받은 것이다.

내일 새벽 열릴 선대본 회의도 감안 한 시간만 하겠다는 인터뷰는 금세 시간을 넘겼는데 얘기는 무르익어가고 나눠야 할 얘기는 산더미였다. 마음은 급했지만 방이 서늘해 따뜻한 커피 한잔을 청했더니 믹스커피도 없고 포트도 없다며 멋쩍게 웃는다.

밥을 지어 먹을 시간도 없고 유세차에서 동행팀과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니 라면조차 없단다. 아닌 게 아니라 냄비며 그릇들은 바짝 말랐고 먼지마저 수북하다. 냉장고에 있는 건 생수 한두 통이 전부일 듯.

구치소에서 나오면서 사회주의 운동가가 되다 

"제가 사회주의자가 된 건 서산 구치소에서 나올 무렵이었어요. 그전에는 노동자의 어려움에 동참한다는 생각 정도였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당해보니 고쳐서 쓰기엔 자본주의가 너무 악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로계약도 나중에는 1년 단위가 아니라 3개월씩 쪼개기로 하는 경우까지 생겼어요. 이 정도면 비정규직의 지존 아닌가요?"

"3개월 단위는 정말 심했네요. 그런데 후보님은 구속도 되었나요."
"네, 해고되고 구속됐었죠."


동희오토는 설립 당시에 이미 노동조합을 서류상으로 만들어 민주노조가 들어설 자리를 봉쇄했다. 이백윤과 동료들은 움직였다. 비정규직 철폐를 비롯, 작업 속도, 식당 밥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회사는 이백윤을 주목했고 그가 대학 입학 사실을 빼고 이력서를 썼다고 해고 조치를 했다. 그와 함께 활동한 21명의 동료들까지 한꺼번에 잘랐다. 곧바로 해고 무효 투쟁이 시작되었다.

현장 진입을 시도하고 이게 막히니 차 트렁크에 몸을 숨겨 들어가고 회사 뒷산으로 발전기랑 확성기를 메고 올라가 외치기도 하고... 나중에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현대차 양재동 사옥으로 가 120여 일 동안 농성을 벌였다.

거기서 많은 곤욕을 치렀다. 회사의 용역들은 호수로 물을 뿌려대고 봉고차를 바짝 들이대 매연을 뿜고 긴 장마에 천막이라도 치려면 걷어내고... 그래도 버티며 정몽구 회장 면담을 요구한 게 급소였는지 동희오토는 복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백윤은 투쟁 중에 공무집행방해·집시법위반·도로법 위반 등 10가지가 넘는 죄목으로 2010년 10월 구속되었다.

전남 고흥에서 자란 이백윤은 중고등학교 시절 겉표지가 드러나지 않게 달력으로 감싸인, 광주항쟁 관련 책들을 다락에서 펼쳐봤다. 그는 "나중에 대학 가면 데모는 한 번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그때 마음에 쟁였다.

아버지는 평생 건설노동자로 살면서 몸져눕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포장마차, 두유 배달, 식당의 설거지 일로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웠다. 이백윤이 대학을 마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랐건만 학생운동에 노동운동 게다가 구속까지 되고 말았으니... 면회를 오신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은 괜찮니, 하고 물으셨다.

이백윤은 감옥 안에서 인생의 방향을 깊게 고민했다. 집행유예로 출소한 후 그는 사회주의변혁노동자당에 들어갔다. 현장실천 조직을 만들고 충남지역의 당 대표를 맡았다. 그게 2014~2015년 언저리였다. 2017년부터는 서산에서 3년간 산업폐기물매립장 반대투쟁을 했다. 그 후 이번 대선을 맞아 사회변혁노동자당과 노동당이 합당하여 만든 '노동당'의 대선후보가 된 것이다. 
 

노동당의 대통령후보 이백윤 민주노총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 민병래

 
"그런데 사회주의는 큰 방향성이잖아요. 지금 당장 20대 대선에서는 어떤 개혁을 하자는 건가요?"
"이번 대선은 노동 없는 대선입니다.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은 '노동존중사회'를 내걸고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겠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해서 주목받았잖아요. 물론 거의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런데 지금 이재명과 윤석열에게는 공수표가 될지언정, 이렇다 할 노동공약이 없어요."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노동당의 중요 공약

이재명은 한국노총과 "플랫폼종사자·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 등 일하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포함 세 가지 항목의 정책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노동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적용이 빠져있고 비정규직이나, 대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해소 방안이 미흡하다 보니 이백윤에게는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 이백윤 캠프는 어떤 노동공약을 갖고 있나요."
"저희는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중요하게 봐요. 지금 노인·장애인·간병·양육 같은 사회서비스의 대부분을 민간자본이 쥐고 있어서 돈벌이 마당이에요. 그러니 여기 종사하는 이들이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죠. 이걸 해결해야 합니다."


그는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이 백만여 명에 이르는데 이 부문은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다. 동네마다 마을마다 '공공가사돌봄센터'를 만들어 이들을 공공이 파견하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 돌봄이 사회화되면 비정규직은 줄고 최저임금이 보장되니 서비스도 달라질 거라고 내다봤다. 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당선을 바랄 수는 없으나 '돌봄노동의 사회화'만이라도 확실히 이슈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백윤은 사회주의적 통제로 부동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1가구는 1주택만을 갖게 하고 이를 넘어선 소유분은 국가가 사들여 공공임대로 전환하면 현재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으니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그외에도 그는 "재벌국유화나 국가책임 1,000만 일자리"같은 공약을 소개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고 인구 5천만 이상, 일인 당 국민 소득 3만 달러 이상 나라로 구성된 30-50 클럽에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가입했다. 오징어게임을 비롯 한류문화에 세계는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 드리운 그늘은 너무나 짙다.

입소스란 세계적 수준의 여론조사기관은 2021년 주요 28개국을 상대로 12개 항목에 걸쳐 갈등지수를 조사했는데 한국은 빈부·이념·정당·종교·남녀·세대·학력 등 무려 7개 항목에서 1등을 차지했다. 갈등국가 그 자체인 셈이다.

또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베타지수를 보면 1794년 혁명 당시 프랑스 사회가 7.2를 기록했는데 한국은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인 9.0을 찍고 있다. 이런 지표만 보면 한국의 거리 곳곳에 혁명적 기운이 넘쳐나야 하는데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도 촛불혁명까지 이뤄낸 한국사회는 사뭇 조용하다. 
 

노동당의 이백윤 공보물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한껏 멋을 냈다 ⓒ 이백윤제공

 
이백윤은 한국인이 신자유주의에, 능력주의, 학벌 제일주의에 영혼을 뺏겨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모두 내가 못나서라고 자신만 탓하기에 자살률이 높고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으며 각자도생하는 게 한국인의 생존방식이 되었다고 본다. 이백윤은 성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부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당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한다.

이재명과 윤석열은 임기 내에 각각 311만 채, 250만 채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반도는 이미 아열대 기후가 되었고 한반도의 주변 바다는 2도 이상이나 수온이 올랐다. 수백만 채를 공급하려면 녹지를 파괴해야 하고 콘크리트를 들이부어야 하는 데 한반도의 여름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국민소득 5만 달러(이재명)에 잠재성장률 4%(윤석열)까지 더 많은 성장만을 고집하면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지 않을까?

이백윤은 이제 바꾸자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여전히 널뛰고 국가보안법이 아직 살아있는 상황에서 이백윤과 노동당의 정치적·정책적 상상력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21세기 사회주의는 시민권을 가질 수 있을까?

자정을 훌쩍 넘겨 이백윤의 방을 빠져 나왔다. 밤도 깊고 매서운 추위 탓인지 당산동 원룸촌에는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 내일 발언할 내용을 챙겨보는지 이백윤의 쪽창 불빛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마치 검푸른 겨울바다의 등대 같은 그 불빛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못다 한 이야기>

① 이백윤은 학벌주의를 반대해 대통령후보 법정공보물에도 학력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② 이백윤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이백윤'을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③ 이 글 중 입소스와 베타지수에 관련된 부분은 김누리 교수가 KBS의 [이슈 픽 쌤과 함께]에서 2022년 1월 2일 강연한 내용에서 인용했습니다.

④ 이 글의 전문은 원고지 38매에 이르는데 본 기사는 지면 관계상 일부 내용을 줄여서 나갔습니다. 원문은 본 기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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