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8 15:58최종 업데이트 22.02.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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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배우 박신혜 ⓒ 박신혜 인스타그램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한 일이 계속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인들이 분노하고 항의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인들이 도리어 공격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12일에는 배우 박신혜가 결혼식 때 입은 한복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중국 누리꾼들의 악플 테러를 당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누리꾼들은 "한복은 중국 전통 의복 개량품이다", "중국 전통 옷을 훔쳐 입었다"라며 구토나 배설물 등의 이모티콘을 남겼다.

우리 정부는 한복 논쟁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한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물론, 커다란 논란으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베이징을 방문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8일 한국 특파원 간담회 때 "지난해 도쿄 하계올림픽 홈페이지가 지도상에 독도를 일본 영토인 것처럼 표시한 것과는 사안이 다르다", "중국 정부가 한복을 중국옷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며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황희 장관의 발언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문화관광부(中华人民共和国文化和旅游部)가 운영하는 중국비물질문화유산망(https://www.ihchina.cn)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미 2008년에 국무원 승인을 거쳐 한복을 포함한 '조선족 복식'을 국가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인정했다. 아래 화면이 그에 관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중국 백과사전 바이두는 한복을 중국 의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빨간 줄로 표시한 세 개의 사각형 박스에서 '중국비물질문화유산망'에 '조선족 복식'이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중국 문화관광부

 
외교부 관계자도 8일 국내에서 기자들을 만나 황희 장관과 유사한 발언을 했다. 8일 자 <연합뉴스> 기사 <중국, '한복은 명백한 한국 고유문화' 외교 경로로 해명>은 한국 외교부 당국자의 전언이라는 형식을 빌려 "중국 측은 개회식 공연에는 조선족 등 중국 내 여러 소수민족이 각자의 전통 복장을 그대로 착용하고 출연한 것이라며 한국이 문화적으로 특별히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다. "또 한복이 한국과 한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라는 명백한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도 외교적 소통 과정에서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기사는 말한다.

기사에 따르면, 외교부 당국자는 그 말을 전한 중국 정부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한복을 중국 문화로 다룰 의사가 전혀 없다면, 위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을 택하는 게 좀 더 확실했을 것이다.

중국인의 욕심과 망상? 문제는 다른 데 있다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 저고리와 댕기 머리를 등 한복 복장을 한 공연자가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2022.2.4 ⓒ 연합뉴스


2004년을 전후해 한-중 관계를 악화시킨 동북공정은 '어느 왕조 역사는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다'라는 식으로 전개됐다. 이는 단순히 역사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적 문제와도 맞닿는 것이었다. 그 '어느 왕조'가 있었던 현재의 땅도 중국 땅이라는 논리와 연결될 수 있었다. 역사공정은 영토공정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동북공정 같은 역사분쟁에 대해서는 사안의 심각성이 쉽게 인식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문화공정은 위험성이 덜 느껴질 여지가 많다. '한복도 중국옷이므로 한복(韓服)이 아니라 한복(漢服)으로 불려야 한다', '아리랑도 중국 민요이며 중국의 무형문화유산이다', '김치도 중국 음식이며 중국의 파오차이에서 유래했다', '삼계탕도 중국 음식이며, 이는 광둥성에서 유래했다', '태권도도 중국 무술이므로 중국이 종주국으로 불려야 한다'라는 주장들은 중국인들의 욕심과 망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이런 주장들이 주는 코믹한 느낌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덜 느껴질 수도 있다.


문화공정은 역사나 영토의 관련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문화 현상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 학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이 전면에 서 있다. 그래서 덜 경계하게 될 수도 있지만, 이런 문화공정이 아무런 맥락도 없이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역사공정의 연속선상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학자들이 앞장서서 역사공정을 수행한 데 이어 거기서 나온 내용들을 토대로 대중들이 문화공정의 전면에 서는 것은, 역사공정의 결과물이 상당부분 축적됐으며 대중이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이 전면에 서고 있으므로, 소수 학자들이 주도할 때보다는 전선(戰線)이 훨씬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상은 더 위험하다.
  

소수민족 박물관인 베이징 중화민족원(중화민주웬)의 조선족 코너에서 2008년에 찍은 사진. ⓒ 김종성

 
역사공정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문화공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두 개의 공정이 동일한 목적의식 하에 전개되고 있다는 점은, 중국 당국의 공식 표명을 근거로 한 역사학계의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윤은숙 강원대 교수가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 하에 연구한 결과물을 담은 '중국의 북강(北疆) 항목 추진 현황 및 평가'라는 논문에서도 중국의 그런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몽골 땅이었지만 지금은 중국 북부변강(북강)으로 간주되는 내몽골(내몽고) 자치구에 대한 중국의 역사공정 및 문화공정을 다룬 이 논문은 2020년에 <강원사학> 제30집에 수록됐다.

이 논문은 내몽골자치구 사회과학원의 표명을 근거로 "자치구 사회과학원이 밝힌 북강 연구의 목적은 국가전략의 안전과 북강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라며 "그들에 따르면 북부 변강의 중심인 내몽고자치구는 북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소통시키는 동시에 국가 전략 방어의 일선 지대로, 북강을 공고히 하는 것은 국가의 중흥과 현대화에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라고 소개한다.

중국 중앙의 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은 변경 지역에 대한 연구가 소수민족 통합과 영토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 표명한다. 내몽골자치구를 대상으로 하는 북강 연구 역시 동일한 필요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그런 필요에 따라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역사뿐 아니라 복식과 음식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문화 현상들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했다. 2020년에 <동북아 역사논총> 제68호에 실린 김성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논문 '네이멍구자치구의 민족문화공정 연혁과 전망'에 따르면 내몽골자치구 사회과학원이 공모한 연구 과제들 속에는 복식·음식·세시풍속 같은 항목도 들어 있다. 소수민족의 옷이나 음식 등에 대한 연구도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위해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의도 
 

본문에 인용된 논문의 내용. ⓒ 김성수·동북아역사재단

 
중국 정부는 그렇게 해서 생산된 소수민족 문화에 대한 연구 성과를 대중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위의 윤은숙 논문은 "최근에 북강 공정은 연구 진행과 함께 각종 학술 연토회는 물론이고 북강 논단, 북강 학술 살롱과 북강 강연 등을 통해 연구 성과를 확산하고 대중들과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역사공정은 학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거기서 생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 누리꾼들이 논문이 아닌 댓글을 통해 인터넷과 SNS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공정이 문화공정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전선이 확대돼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복은 중국옷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중국 누리꾼들이 당국자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해야 한다면, 역사공정도 애당초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공정을 주도한 학자들 역시 당국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동북공정 등에 대해 우려를 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 나서는 사람들이 당국자냐 아니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누리꾼들이 전면에 나선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문화공정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앞에 서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중국 정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국 내 소수민족은 물론이고 이웃나라들에 대한 전략적 의도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더 위험한 것은 중국 정부가 문화공정을 통해 중국 국민들에게 '한국 역사뿐 아니라 한국 문화도 우리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좀더 발전하면 '한국 자체가 다 우리 것'이라는 인식이 중국 내에서 확산될 가능성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올림픽 개막식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정부 차원에서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

중국은 중국 내부를 통합함은 물론이고 중국 외부로도 영향력을 팽창할 의도를 갖고 있다. 문화공정 배후에 그처럼 큰 그림이 있으니, 한국 정부도 큰 그림을 갖고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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